대한민국 국회 심장부에 친일 미술가로 알려진 김경승의 작품이 버티고 있다. 문제의 작품들은 충무공상과 세종대왕상 등 2점으로, 1991년 이후 지금까지 국회 의사당에 전시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경승은 친일 행적 뚜렷한 인물”
국회 의사당 중앙 현관으로 들어서면 붉은 카펫이 깔린 넓은 로비와 오르막 계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계단 입구의 좌우에 흰색 위인상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왼쪽에는 문(文)을 상징하는 세종대왕상이, 오른쪽에는 무(武)를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을 만든 김경승(1992년 사망)은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윤효중과 함께 일제 시대를 대표하는 친일 경력 조각가로 지목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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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통신 김진석기자 |
7일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 세워진 세종대왕(왼쪽)과 이순신장군상의 모습. |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김경승은 대표적 친일미술단체로 꼽히는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작품”이라며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 ‘여명'(1942년)과 ‘제4반'(1944년)은 각각 보국·총후(銃後) 활동에 나선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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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
조선미술 전람회에 출품된 김경승의 작품 ‘여명’ (1942년) |
박 실장은 “또한 김경승은 1944년 대동아 전쟁의 전의를 다진다는 명목하에 열렸던 결전미술전의 심사위원이었다”며 “최악의 친일 전시회에 ‘대동아 건설의 향'(響 : 울림이란 뜻)이란 작품을 출품했을 정도로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김경승은 공공연하게 친일 의지를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1942년 6월 3일자 매일신보를 통해 김경승은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데,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 전쟁 하에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중대한 사명을 위해 미력이나마 다해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심장부에 친일조각가 작품이라니…
김경승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1973년 12월 26일. 최초 위치는 중앙청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들이 국회에 흘러들어 온 것은 17년이 지난 후였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1991년 1월 21일부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양도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지금의 문화재청에서 받은 것으로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국회에 양도됐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은 시간이 많이 흐른 사안인데다, 그 동안 조직 구성의 변화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정확한 경과 파악에 각각 난색을 표시했다.
현재 이 작품들은 본회의장 입구 양옆에 1점씩 전시돼 있다. 의사당 현관을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국회의원 등 의사당을 출입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두 위인상의 눈길을 피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결국 국회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심장부에서 김경승의 작품은 오랫동안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반응 제각각 속 김원웅 “공론화 할 것”
이에 대해 여의도통신-양산시민신문 연대를 통해 모니터하고 있는 김양수 의원(한나라당)은 “작품 자체에서 왜색이나 친일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예술가와 작품은 별개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칫 친일 논란이 지나쳐 비생산적으로 흐른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여의도통신-백제신문 연대를 통해 모니터하고 있는 정진석 의원(무소속)도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이 과정이 지나쳐 사회적 갈등 요인이 양산되고, 이로 인해 사회 통합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반면 최근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씨의 친일행위를 공개한 바 있는 김원웅 의원(열린우리당)은 “공공 기관에 있는 소장품을 만든 사람이 과거 민족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치열한 반성이 없었다면 더욱 큰 문제 아니겠느냐”며 “공론화를 위해 동료 의원들과 숙의를 거쳐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독도 문제 등엔 발빠르게 대응했는데…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은 “친일 행적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김경승이 해방 이후 독재 정권하에서 독립 운동가 동상 제작을 도맡았다는 것”이라며 “조형물의 공적 가치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국회는 독도 분쟁,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등에 대해 특위를 만들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국회 심장부를 지키고 있는 친일 잔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의도통신=이정환 기자
대규모 기념사업 조각 작품 도맡아 김경승과 역대 대통령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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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
김인승(사진왼쪽)과 김경승 형제 |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김경승이 제작한 민족 위인 동상은 무려 51개에 달한다. 김경승은 김구(남산), 안창호(도산공원), 안중근(안중근기념관) 등 독립 운동가는 물론, 국회 의사당에 있는 충무공, 세종대왕 동상 이외에도 정몽주(제2한강교), 김유신(남산) 등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 제작을 도맡았다.
뿐만 아니라 역대 독재 정권에서 이뤄진 대규모 기념사업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김경승은 박정희 정권 주도하에 이뤄진 4.19기념사업에 참여, 기념탑은 물론 기념탑 하단 청동 인물상, 돋을 새김(부조), 수호자상 등을 만들었다. 탑골공원 3.1운동 부조상도 그의 작품이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갑오농민혁명 기념사업에 참여, 황토현 기념관에 전봉준 장군 동상을 세웠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1964년에는 3.1문화상, 문화훈장을 받았고, 1981년부터 1992년 2월까지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처럼 김경승은 역대 독재 정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이승만 전 대통령과는 어땠을까. 그는 1985년 하와이 호놀룰루에 이승만 전 대통령 전신상을 세웠을 뿐 아니라, 다음해인 1986년에는 ‘이승만 흉상’을 제작하여 이화장에 기증했다. 역시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통신=이정환 기자>(시민의신문, http://www.ngotime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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