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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독립운동사 다시 써야한다

2004년 7월 7일 883

(이 글은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연구소 소식지 <민족사랑> 6월호에 실은 내용으로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조문기 이사장   ⓒ 박도 금번 홍익대학교 대학원신문이 ‘신친일의 지형도를 그려보겠다’면서 글을 부탁해왔다. 평생을 외곬 친일파 청산문제에만 매달려오느라 녹초가 된 늙은이의 조언이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신친일의 지형도. 그것은 역사를 비켜놓고는 그려지지 않는다. 역사의 힘이 아니고는 방법이 없다. 그것이 내가 체득한 마지막 결론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역사가 없다.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갈기갈기 찢어서 땅 속 깊이 묻어버렸다. 친일의 역사는 더욱 참담하다. 8.15 이후 친일세력이 일제를 대신한 새로운 통치자 미군을 등에 업고 해방정국을 가로채자마자 친일의 역사 감추기, 파묻기에 광분했고(예: 반민특위 때려잡기 등) 두터운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이렇게 민족의 역사는 일제가 묻어버리고 친일의 역사는 친일세력들이 묻어놓았다. 그 바람에 역사를 모르는 민족이 필연적으로 겪게 마련인 가지가지의 끔찍한 불행을 겪어야 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이렇게 역사를 묻고 감춘 죄를 일제와 친일세력에게만 돌릴 것인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모르쇠로 방관하고 방조한 죄인들이다. 묻혀있고 숨겨진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아무 데도 없었다. 특히 친일의 문제는 그 심각성이 더하다. 나는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고 열불이 치민다. 독립운동사 전공 학자들 절반만 친일 역사 연구했다면..친일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느 한쪽을 떼어놓고는 결코 논리가

히틀러와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 신화 깨기

2004년 7월 5일 1856

히틀러와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 신화 깨기 박상표 수의사 독재자들은 뽐내기를 좋아하는 ‘과시병 환자’들이다. 그들은 피라미드나 자금성 같은 거대한 기념비적인 건축을 통하여 자신의 업적과 위대함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물론 대규모 기념물은 독재 정치를 정당화시켜주기 위한 상징장치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독재자들의 이러한 과시행위가 ‘신화’가 되어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생생하게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 히틀러의 ‘아우토반(Autobahn) 건설’과 ‘국민차 계획(Volkswagen-Projekt)’이나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신화가 된 거짓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나치의 침략전쟁과 테러, 인종학살을 경험한 독일인들 중에서 히틀러가 처음으로 아우토반 건설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실행하여 실업을 해소하고 2차 대전 이후 독일 근대화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많다고 한다.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군부와 중앙정보부를 앞세운 고문과 인권탄압으로 악명 높은 박정희가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내고 실행하여 고도성장과 근대화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히틀러와 박정희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이러한 신화들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독일에서 최초로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한 것은 1909년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와 몇몇 사업가들이었다. 이 계획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1921년 9월에 처음으로 짧은 구간의 자동차 전용도로(Nur-Autostra e)를 건설했다. 그 후 민간경제인을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들에 의해 아우토반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나치집권 이전인 1932년에 최초의 아우토반이 완공되었다. 히틀러는 집권 후 ‘아우토반 건설과 국민차 생산’을 통한 경제개발이라는

알마티에서도 제 71주년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개최

2010년 11월 18일 428

알마티에서도 제 71주년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개최(뉴시스, 10.11.17)

[순국선열의 날 기획 ①] 옥중에서도 꺾이지 않은 불굴의 ‘독립정신’

2010년 11월 18일 332

[순국선열의 날 기획 ①] 옥중에서도 꺾이지 않은 불굴의 ‘독립정신’(천지일보, 10.11.16)

친일재산환수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

2004년 7월 1일 1347

친일재산환수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  을사오적 이근택의 친형이자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인 이근호의 손자가 조부의 땅을 되찾겠다고 지방자치단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낸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땅 찾기’ 소송은 이번 일만이 아니다. 이완용 후손의 소송에 이어, 송병준 후손과 이재극의 손자며느리가 조상 땅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을 진행하여 땅을 찾아간 사례도 있고, 재판이 진행중인 경우도 있다.   정부수립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을 팔고 나라를 판 친일 인물들을 법적으로 처단하지 못하고 친일인물들이 오히려 법의 이름으로 보호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제정으로 친일 민족반역자를 역사법정에서 심판할 수 있는 인적 청산의 토대는 이제 마련됐다. 그러나 물적 토대를 이루고 있는 친일재산의 문제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개정과 아울러 가칭 ‘친일재산환수특별법’ 의 제정이 시급하다. 친일파 후손들은 헌법상의 재산권과 소급입법 금지원칙 등을 자신들의 방패막이로 악용하고 있다. 친일세력들이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내세우는 법리들은 정상적인 사회상태에서 적용되는 법원칙으로 친일반민족행위 등에는 적용될 수 없다. 첫째, 매국의 대가로 형성·취득한 친일재산이 헌법상 재산권의 객체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 헌법 전문의 ‘상해임시정부 법통 계승’의 명문화는 일제 식민지배에 협력한 친일세력과 지배수단이 된 법체계를 부정하고 임시정부의 건국정신과 이념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특히, 임시정부 건국정신의 토대가 된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건국 후 식민시대의

역사에 대한 범죄

2004년 7월 1일 1266

역사에 대한 범죄 노무현, 그는 누구인가 그는 스스로 대통령 권좌에 오르기 전과 오른 뒤의 노무현은 다르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를 뽑은 국민에게 그는 미국에 대한 그의 인식이 “사진 찍으로 미국가지 않겠다”에서 “미국이 없었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 것”으로 왜 달라졌는지 설명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믿는 듯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라는 권좌가 그를 그렇게 바꾸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말하자면, 노무현은 이미 사라졌고 대통령 권좌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권좌에게 당부한다. 노무현이라면 이렇게 당부할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있는 우리나라 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대답은 없고 ‘국제적 약속’과 ‘국익’이란 말만 돌아온다. 국제적 약속의 그 ‘국제’가 부시와 네오콘의 ‘미제국주의’를 뜻함을 솔직히 말하지 않는다. ‘국익’이란 대개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의 사익’이라고 지적해도 소용없다. 이라크에 파병을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국익이 있는지, 또 파병을 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마침내 김선일씨가 처절하게 권좌를 향해 “이것은 당신의 실수입니다”라고 외칠 때, 그는 미국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추가파병 방침 변함없다”고.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이 말했듯이, “한 사람 잡혀갔다고 파병 철회하는 나라”도 없겠지만, ‘테러에 굴복한다’고 말하는 나라도 없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버릴 수 없어 깡패의 바지가랑이 사이를 긴다는 한신에게 엎드려 간곡히 당부한다. 테러 위협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전쟁에서 발을 빼는 것이라고.

한·일 정상,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 반환 공식 합의…한·일 EPA도 조기 재개

2010년 11월 18일 397

한·일 정상,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 반환 공식 합의…한·일 EPA도 조기 재개(뉴시스, 10.11.14)

日정부, 조선왕실의궤 반환 16일 의회 제출

2010년 11월 18일 315

日정부, 조선왕실의궤 반환 16일 의회 제출(헤럴드경제, 10.11.11)

피해자가 살아있는 동안 과거사문제 해결해야

2004년 6월 30일 851

‘구 일본군 위안부’ 김순덕 할머니 오늘 오후 별세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조호진(mindle21) 기자        [기사 보강 : 30일 오후 5시50분]       ⓒ 나눔의 집 구 일본군 위안부 생활로 고통을 겪었던 김순덕(84·나눔의 집 거주) 할머니가 30일 오후 1시55분 세상을 떠났다.장례식장은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지하1층 14호 ☎02-3010-2411~2)이며 발인은 다음달 2일이다.경북 의령 출신인 김 할머니는 ‘일본 공장에서 일할 여공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중국 상해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지난 92년 나눔의 집에서 생활을 시작한 김 할머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항의집회에 참석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실태 고발과 사죄촉구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30일 “김순덕 할머니는 잔혹했던 일본군 위안부 실상에 대해 그림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며 “매주 수요시위를 참가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위한 운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또한 “일본 정부로부터 어떠한 사죄도 받지못한 채 응어리진 한을 안고 갑작스레 돌아가심에 안타깝기만하다”며 “할머니… 험한 세상의 모습은 모두 잊으시고 한 많은 과거도 훌훌 벗어 던지고 편히 쉬라”고 조의를 표했다. ‘못다핀 꽃’을 통해 일제의 성 수탈 전 세계에 고발   ▲ 30일 오후 별세한 김순덕 할머니가 구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을 고발하며 직접 그린 그림 ‘못다핀 꽃’.   ⓒ 나눔의 집 김순덕 할머니는 ‘못다핀 꽃’ 등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 일제의 성(性) 수탈을 전

故 김선일 범국민추모대회

2004년 6월 25일 797

To President Roh, MooHyun.I want to live.I want to go to Korea.Please, don’t send to Iraq Korean soldiers.Please, this is your mistake.This is your mistake.Many Korean people don’t like their to send to Iraq.All Korean soldier must out of Iraq.Please, please this is your mistake.Why do you send why do you send Korean soldiers to IraqTo my all people all Korean people please support me.please, * President please Bush to President Roh, MooHyun.please I want to live, I want to go to Korea. 노무현 대통령에게,나는 살고 싶습니다.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제발, 이라크에 한국 군인들을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많은 한국인들은 이라크에 그들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모든 한국 군인들은 이라크에서 나가야합니다.제발,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왜 당신은 왜 당신은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냈나요?고국에 계신 한국 동포에게.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제발. 대통령님! 제발, 부시! 제발, 노무현 대통령! 제발 이라크에서 나가 주십시오.제발. 나는 살고싶습니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노무현정부는 무릎꿇고 사죄하라! 이라크 추가 파병을 당장 중단하라! 서희,제마부대를 즉각 철수하라! 더러운 침략전쟁, 미군은 이라크를 떠나라! 이라크 파병철회 서명운동http://www.antiwar.or.kr/banner/withdraw.html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www.antiw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