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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살아있는 동안 과거사문제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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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군 위안부’ 김순덕 할머니 오늘 오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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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진(mindle21) 기자   


 


 


[기사 보강 : 30일 오후 5시50분]

















 


 


 


ⓒ 나눔의 집


구 일본군 위안부 생활로 고통을 겪었던 김순덕(84·나눔의 집 거주) 할머니가 30일 오후 1시55분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은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지하1층 14호 ☎02-3010-2411~2)이며 발인은 다음달 2일이다.

경북 의령 출신인 김 할머니는 ‘일본 공장에서 일할 여공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중국 상해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지난 92년 나눔의 집에서 생활을 시작한 김 할머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항의집회에 참석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실태 고발과 사죄촉구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30일 “김순덕 할머니는 잔혹했던 일본군 위안부 실상에 대해 그림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며 “매주 수요시위를 참가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위한 운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일본 정부로부터 어떠한 사죄도 받지못한 채 응어리진 한을 안고 갑작스레 돌아가심에 안타깝기만하다”며 “할머니… 험한 세상의 모습은 모두 잊으시고 한 많은 과거도 훌훌 벗어 던지고 편히 쉬라”고 조의를 표했다.


‘못다핀 꽃’을 통해 일제의 성 수탈 전 세계에 고발

















 


▲ 30일 오후 별세한 김순덕 할머니가 구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을 고발하며 직접 그린 그림 ‘못다핀 꽃’.


 


ⓒ 나눔의 집


김순덕 할머니는 ‘못다핀 꽃’ 등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 일제의 성(性) 수탈을 전 세계에 고발했다.

지난 95년과 97년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김 할머니를 비롯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자작 그림 전시회가 열려 큰 반응을 일으켰다. 또한 미국, 캐나다의 순회전시회를 통해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키며 사죄촉구 국제여론을 모았다.

김 할머니는 생전 증언을 통해 “아버지는 일본 순사에게 잡혀가 모진 매를 맞고 온 후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며 “어머니가 오빠 둘, 언니, 나, 여동생, 이렇게 다섯 명의 자식을 어려운 생활로 꾸려갔다”며 일본에 의한 고통과 초근목피의 어려운 생활을 밝혔다.

김 할머니는 “17세 때(1937년) 조선인 남자가 일본 공장에서 일할 여자들을 모집해 일본에 가기로 했다, 공장에 돈벌러 가는 줄만 알았고 위험하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며 “(상해에서 위안부 생활이 고통스러워) 강물에 뛰어들려고도 했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려고도 했고 차에 뛰어들려고도 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철도청 노동자였던 남편과 만나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으며 딸은 6.25 때 잃었다. 특히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작은 아들과 며느리가 크게 실망해 또 다른 아픔이 있었다고 김 할머니는 밝혔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무관심한 정부를 이렇게 원망했다.

“일본도 나쁘지만 그 앞잡이 짓을 한 조선 사람이 더 밉다. 한국정부에 할 말이 많다. 한국정부도 우리들에게 보상해주어야 한다. 집이 없어 너무 고생이 심하다. 정부에서 살집이라도 마련해주면 좋겠다.”



2004/06/30 오후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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