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日 반환 도서 어떤 것 있나… 국내에 없는 을사난정기 등 유일본 6종도 고국 품으로
日 반환 도서 어떤 것 있나… 국내에 없는 을사난정기 등 유일본 6종도 고국 품으로(국민일보, 10.11.14)
한국도서 반환 일본 국회 비준 속도내나
한국도서 반환 일본 국회 비준 속도내나(아시아투데이, 10.11.14)
“친일 문제는 우리의 수치이자 국제적 수치”
‘아리랑’ 프랑스어 희곡집 한국판 맞은 조정래씨 “한국 식민경험고통 공감 이끌어” 조정래(61)씨의 12권짜리 대하소설 〈아리랑〉이 〈분노의 세월〉(해냄)이라는 제목의 한 권짜리 희곡으로 각색돼 나왔다. 12권짜리 원작에서 한 권짜리로, 그리고 소설에서 희곡으로 분량과 형식만 바뀐 것이 아니다. 〈아리랑〉과 〈분노의 세월〉 사이에는 프랑스어와 프랑스 작가들의 노력이 추가되었다. 프랑스 아르마탕 출판사에서 지난해 5월 완역 출간된 프랑스어판 〈아리랑〉(변정원·조르주 지겔마이어 옮김)을 역시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피에르 앙드레 테르지앙이 희곡으로 각색한 것이다. 이번 한국어판은 테르지앙의 프랑스어 희곡을 시인 겸 번역가 성귀수씨가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프랑스인 희곡작가가 한국사를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와 슬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희곡 양식으로 표출하려 많은 노력을 한 게 놀라웠어요. 심지어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식민 세력에 부역한 친일파들에 대한 척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것이 분단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할 정도였어요.” 조정래씨는 5일 낮 기자들과 만나 〈아리랑〉의 희곡 출간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조씨는 프랑스어판 희곡 출간에 맞추어 지난달 18일 프랑스 파리에 가 문학 강연을 하고 프라 안젤리코 극단 배우들의 〈분노의 세월〉 낭독회를 참관했다. 〈분노의 세월〉은 1894년~1945년에 걸쳐 펼쳐지는 〈아리랑〉의 대하 서사를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의 불특정한 사흘간으로 요약했다. 송수익, 공허 스님, 신세호, 수국 등 주요 인물들을 크게 간추려 살리고, 원작에는 없던 ‘춘향’과 ‘투사’를 새롭게 창조해서 배치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내년 5,
연구소 충남지부 “장 화백 영정 봉안되면 당장 철거하겠다”
문광부 “우리 소관 아니다”… 천안시 “문광부에서 결정해야”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윤평호(뮈토스) 기자 ▲ 천안시 사적관리소에 봉안된 유관순 열사 영정. 이 영정은 친일의혹을 받고있는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유관순 열사 영정 제작자의 친일 혐의 규명을 놓고 천안시와 문화관광부(문광부)가 서로 “담당 업무가 아니다”라며 떠 넘기고 있어 비난여론이 증폭되고 있다.문광부 영정심의위 “친일논란은 심의대상이 아니다”지난달 21일 문광부는 2004년 제1차 동상영정심의위원회(영정심의위)를 개최했다. 이날 영정심의위에서는 영정 제작자의 친일혐의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유관순 열사의 영정도 심의대상에 포함돼 위원회 개최 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위원회는 심의결과 “유 열사의 영정에 일부 문제가 발견됐다”며 지적사항을 보완해 향후 재심의를 요청하라고 천안시에 통보했다. 문광부가 최근 시에 통보한 공문에 따르면 영정심의위의 지적사항은 ▲왼쪽 볼의 부은 부분 교정 ▲흰 머리카락을 검정으로 교체 ▲비단신을 검정고무신으로 교체 ▲팔 소매속 손 모양을 해부학적으로 맞도록 교정 등이다.유 열사 영정 제작을 맡은 월전 장우성 화백의 친일혐의 논란에 대해서는 일부 의원들의 의견이 개진됐지만 화가의 친일 시비는 위원회 권한 밖의 문제라는 의견이 다수를 형성해 더 이상 논의가 전개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다만 영정심의위는 시에 보낸 지적사항 공문에서 수정된 작품을 차기 심의에 올려 재심의하고 표준영정 지적문제도 차기회의에서 논의한다고만 덧붙였다.이에 대해 문광부 관계자는 “영정심의위는 영정의 기술적 완성도를 심의하는 것일 뿐 화가의 친일혐의나 적정성까지 따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천안시, 친일혐의는 있지만 물증이 없다?천안시사적관리소(소장 안대진)는 지난해
“조선왕실의궤 내년 봄 고국 돌아온다”
“조선왕실의궤 내년 봄 고국 돌아온다”(강원일보, 10.11.15)
조정래, “작가로 살다 작가로 죽을 것”
조정래, “작가로 살다 작가로 죽을 것”(PD저널, 10.11.17)
독립운동사 다시 써야한다
(이 글은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연구소 소식지 <민족사랑> 6월호에 실은 내용으로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것입니다… 편집자 주) ▲ 조문기 이사장 ⓒ 박도 금번 홍익대학교 대학원신문이 ‘신친일의 지형도를 그려보겠다’면서 글을 부탁해왔다. 평생을 외곬 친일파 청산문제에만 매달려오느라 녹초가 된 늙은이의 조언이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신친일의 지형도. 그것은 역사를 비켜놓고는 그려지지 않는다. 역사의 힘이 아니고는 방법이 없다. 그것이 내가 체득한 마지막 결론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역사가 없다.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갈기갈기 찢어서 땅 속 깊이 묻어버렸다. 친일의 역사는 더욱 참담하다. 8.15 이후 친일세력이 일제를 대신한 새로운 통치자 미군을 등에 업고 해방정국을 가로채자마자 친일의 역사 감추기, 파묻기에 광분했고(예: 반민특위 때려잡기 등) 두터운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 이렇게 민족의 역사는 일제가 묻어버리고 친일의 역사는 친일세력들이 묻어놓았다. 그 바람에 역사를 모르는 민족이 필연적으로 겪게 마련인 가지가지의 끔찍한 불행을 겪어야 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이렇게 역사를 묻고 감춘 죄를 일제와 친일세력에게만 돌릴 것인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모르쇠로 방관하고 방조한 죄인들이다. 묻혀있고 숨겨진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아무 데도 없었다. 특히 친일의 문제는 그 심각성이 더하다. 나는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고 열불이 치민다. 독립운동사 전공 학자들 절반만 친일 역사 연구했다면..친일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느 한쪽을 떼어놓고는 결코 논리가
히틀러와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 신화 깨기
히틀러와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 신화 깨기 박상표 수의사 독재자들은 뽐내기를 좋아하는 ‘과시병 환자’들이다. 그들은 피라미드나 자금성 같은 거대한 기념비적인 건축을 통하여 자신의 업적과 위대함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물론 대규모 기념물은 독재 정치를 정당화시켜주기 위한 상징장치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독재자들의 이러한 과시행위가 ‘신화’가 되어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생생하게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 히틀러의 ‘아우토반(Autobahn) 건설’과 ‘국민차 계획(Volkswagen-Projekt)’이나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신화가 된 거짓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나치의 침략전쟁과 테러, 인종학살을 경험한 독일인들 중에서 히틀러가 처음으로 아우토반 건설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실행하여 실업을 해소하고 2차 대전 이후 독일 근대화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많다고 한다.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군부와 중앙정보부를 앞세운 고문과 인권탄압으로 악명 높은 박정희가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내고 실행하여 고도성장과 근대화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히틀러와 박정희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이러한 신화들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독일에서 최초로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한 것은 1909년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와 몇몇 사업가들이었다. 이 계획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1921년 9월에 처음으로 짧은 구간의 자동차 전용도로(Nur-Autostra e)를 건설했다. 그 후 민간경제인을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들에 의해 아우토반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나치집권 이전인 1932년에 최초의 아우토반이 완공되었다. 히틀러는 집권 후 ‘아우토반 건설과 국민차 생산’을 통한 경제개발이라는
알마티에서도 제 71주년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개최
알마티에서도 제 71주년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개최(뉴시스, 10.11.17)
[순국선열의 날 기획 ①] 옥중에서도 꺾이지 않은 불굴의 ‘독립정신’
[순국선열의 날 기획 ①] 옥중에서도 꺾이지 않은 불굴의 ‘독립정신’(천지일보, 10.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