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매국을 용인하는 나라에 산다는 것
송영한 문화재 제자리찾기 실행위원 ..대법원에 묻고 싶다. 그가 치부한 막대한 부는 매국의 대가로 받은 은사금이 종자돈이 되었을 터인데 만약에 그 때에 받은 국공채를 가진 후손이 국가에 현금지급을 신청한다면 대법원은 “국가는 현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할 것인가? 대한민국 제헌헌법 부칙 101조는 “해방 전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병과 징용으로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신 어버이 같은 마음에 감읍한다“며 징병과 징용제도를 찬양하면서 동포를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몰아넣고 ..<기사 발췌> 매국을 용인하는 나라에 산다는 것(한겨레신문, 10.11.17) 관련기사 박찬종, 친일파 이해승 재산환수 취소 판결은 ‘사법변란’(노컷뉴스, 10.11.18)조선왕족 ‘이해승’ 친일재산 300억 국가환수 못한다(폴리뉴스, 10.11.15)300억대 ‘친일재산 국가환수’ 소송..이해승 손자 승소(아시아투데이, 10.11.15)친일재산 환수 안된다니?(포커스신문, 10.11.15)대법, 친일후손 재산환수 첫 취소 논란(한겨레신문, 10.11.15)일제로부터 받은 작위가 친일대상인가… 1·2심 엇갈린 판결(법률신문, 10.11.15)‘친일재산국가귀속법’이 친일파 구했다?(오마이뉴스, 10.11.15)
[최승희 선양사업 추진 논란] 상. 선양사업 타당한가
[최승희 선양사업 추진 논란] 상. 선양사업 타당한가(강원도민일보, 10.11.17)
전직 대통령 필적 편액 등 현황 자료
전국 방방곡곡 문화재 34곳에 ‘박정희 편액’ 황평우(wearea) 기자 ▲ 강릉 오죽헌의 문성사. 1976년에 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이다. 최근 강릉시는 편액 방범을 위해 야간당직을 강화하고 모니터를 설치했다. ⓒ2005 황평우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충남 예산 ‘충의사’ 현판이 지난 1일 시민단체 회원에 의해 철거되는 등 잘못된 과거사 청산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역대 대통령 필적의 편액이 전국 문화재 37곳에 43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편액이 34건(28곳)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기자가 문화재청에 정보공개요구를 함으로써 밝혀졌다.3일 문화재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 대통령의 편액은 서울 3곳, 부산 1곳, 대구 2곳, 인천 1곳, 경기 3곳(4건), 강원 3곳, 충북 4곳, 충남 6곳, 전북 2곳, 전남 1곳, 경북 6곳, 경남 4곳, 제주 1곳 등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외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3건, 노태우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 각 2건, 윤보선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각 1건순이다.필적을 많이 남겼을 것으로 여겨졌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무 편액보다 주로 돌에 필적을 남겼으며, 국립도서관, 경찰청, 중소기업회관 앞, 경찰대학 등에 남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필적 남기기를 즐겼는데 문화재에는 필적을 남기지 않았다. ▲ 경기도 파주의 화석정.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이다. ⓒ2005 황평우문화재청의 관계자는 광화문 편액 교체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한승조 망언, 친일파 최후 발악”
이기호 (actsky@dailyseop.com) 기자 ‘꿩 잡는 게 매.’ 한상범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이 한승조 전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논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최근 ‘살아있는 헌법이야기(현암사)’를 발간해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한 교수는 7일 오전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데일리서프라이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승조의 주장은 현재 진행중인 과거청산에 의도적으로 방해하려는 친일파의 반발”이라고 지적했다. ▲ 한상범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그는 또 박정희를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옛날 만주시절 상전에게 충복노릇을 하면서 굴욕밀실외교를 자행하고 그들의 지도에 따랐다”고 밝혀 눈길을 모았다. 이외에도 한 교수는 한승조 씨의 주장을 △한국의 일본식민지화 찬성론 △일본의 한국여성 성노예제도의 변호·옹호의 망발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일제강점 찬양론 △친일파 비판은 빨갱이란 매카시즘의 논법 등으로 요약하고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론에 자주 등장하는 논객과 기본 논조에 대해 한 교수는 “이시하라신타로(石原愼太郞) 현 동경도(東京都)지사와 극우수구 군국주의와 반한(反韓) 반중국(反中國)의 배외주의 논조”라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의 글을 실어 이번 파장을 야기한 일본우익 잡지 ‘정론’에 대해서는 “일본의 보수신문인 산케이신문이 발간하고 있으며 산케이신문은 최근 역사왜곡의 선봉에 서있는 후쇼사(扶桑社)가 배후에 있다”며 이들의 유착관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승조,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 찬양 한 교수는 한승조 씨에 대해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를 찬양해온 것은 알려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제 친일파가 해방 후 미군정시기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배해
한·일 강제 병합 되새긴다
한·일 강제 병합 되새긴다(경인일보, 10.11.17)
軍 “한반도 유사시 日개입 우려”
軍 “한반도 유사시 日개입 우려”(서울신문, 10.11.17)
3·1운동 참여는 했지만 ‘변절’한 독립유공자들
김경현(경남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 / [김경현 칼럼]그들의 예우를 박탈해야 지금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인물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는 주로 3·1운동 관련자들이 많다. 하지만 나중에 일제의 녹봉을 받는 식민통치기구의 관공리가 되거나 일제의 협력자가 되고 만 경우도 허다하였다. 더구나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대개 독립유공자로 예우 받거나 국민을 대표하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되었다. 진주의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 중에 몇몇의 행적을 살펴보자. 이강우는 진주에서 3·1운동으로 복역한 인물이지만 출옥 후 일제 관공리로 변신하여 진주고등보통학교에서 서기로 근무하다가 일제 말에는 진주부 내무과 소속의 갱생원에서 지도원을 지냈다. 해방 후 이강우는 자신을 신임했던 일본인 부윤과 그의 가족을 보호하며 직접 일본으로 탈출시켜주는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해방 직후 진주부청 내에서 직장자치위원회를 조직할 때 소속 직원들로부터 ‘진정한 애국자’로 추대되었으며 나중에는 제헌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역시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천 다솔사의 대처승 최범술도 불교계의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북지 황군위문단의 위문사’로 1개월씩이나 참여해 중국을 침략중인 일본군을 위로하는 위문행사를 벌이고 돌아오는 친일행위를 저질렀다. 변절한 독립운동가 많다 해방 후에는 그도 역시 사천에서 제헌국회의원을 지냈고, 1950년대 초에는 진주에서 교육사업을 벌여 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진주시 강남동에 소재한 해인대학(현재 마산에 있는 경남대학교의 전신)의 학장까지 지냈다. 마찬가지로 진주에서 사립학교 교원을 지내다가 3·1운동에 뛰어들어 징역 1년을 언도받고 복역한 한규상도 나중에는 일제 관공리가 됐다. 그는 일본왕의 ‘은사 감형’으로
김민수 교수, 6년만에 강단 다시 서다
조호진 기자 ▲ 김민수 교수가 6년 6개월만에 다시 들어간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 ⓒ2005 권우성 ▲ 김민수 교수가 8일 오후 2시부터 복직후 첫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5 권우성 [2신 : 8일 오후 1시50분]6년 6개월만에 열린 김민수 교수의 연구실 ⓒ2005 권우성“저항이 없는 메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6년 6개월동안 문이 닫혀있던 김민수 교수의 연구실 52동 413호 책상 앞에 붙어있는 문구다. 김 교수가 강단을 떠날 때부터 A4용지에 적어 놓았던 글귀다. 오늘 오전 11시, 김 교수 연구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 6년여전의 기억을 되살리는 각종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구실 문에는 빛바랜 경고문이 부착되어 있었다. 김 교수가 강단을 떠나던 때인 42대 총학생회(현재는 47대 총학생회)가 붙인 경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김민수 교수의 연구실이 강제로 철거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만약에 연구실이 강제로 철거된다면 강력대응할 것이다.”김 교수의 연구실에는 또 각종 전공 원서 및 수백권의 책자들이 빼곡히 쌓여있고, 벽에는 ‘자화상 1 – 김민수 교수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독문과 고원 교수의 시가 붙어있다. 김 교수의 책상 위에는 98년 2학기 디자인학부 전공 강의 시간표가 부착되어 있다. 김 교수 연구실의 시간은 98년 이후 멈춰버린 것이다. 김 교수는 1시50분 현재 6년 6개월만에 열리는 첫 수업을 하기 위해 강의실로 향하고 있다. ⓒ2005 권우성 [1신 : 8일 오전 11시]김민수 교수,
신성한 훈민정음에 사쿠라를 달지 마라!
[서평] ≪사쿠라훈민정음≫,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김영조 회원 ▲≪사쿠라훈민정음≫ 책표지 ⓒ인물과사상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서정쇄신은 ‘여러 방면에서 정치 폐단을 고쳐 새롭게 함’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이 말은 여러 곳에서 더욱 날개 돋친 듯 쓰인다. 정확한 어휘로 기사를 작성하고 내보내야 하는 신문 같은 매체에서도 서정쇄신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서정쇄신이 우리 겨레를 개조시키려 한 일제강점기 미나미 지로 총독의 ‘조선통치 5대 목표’였음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위 글은 ≪사쿠라훈민정음≫ 책에서 인용한 글귀다. 올해는 나라를 빼앗겼던 국치 100돌이고 나라를 되찾은 지 벌써 65년이 된 해인데 아직도 우리의 일본말찌꺼기 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고대 야마토시절 자신들에게 고급문화를 가르쳐줬던 은혜의 나라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통치하려고 일제가 썼던 <서정쇄신>을 우리는 자존심도 버린 채 쓰고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치인들이 더욱 많이 쓴다. 이런 잘못을 통렬히 꾸짖는 책이 나와 화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에서 오랫동안 일본어 교육에 전념하던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이 “인물과사상사(대표 강준우)”를 통해 낸 ≪사쿠라훈민정음≫이 바로 그 책이다. 책에는 또 “참배”도 좋지 않은 일본말이라며 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참배를 일본국어대사전 《다이지센》에 찾아보면 “さん―ぱい【參拜】 社寺, 特に神社にお參りしておがむこと. 「伊勢神宮に―する」 →삼빠이: 신사나 절 등에 참배하는 것. 이세신궁에 참배하다.”라고 풀이했다. 곧 이 참배라는 말은 전쟁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들에게도 하는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신 국립현충원에 갈 때도 쓰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런
보훈처 야스쿠니 출장 논란
보훈처 야스쿠니 출장 논란(포커스신문, 10.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