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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 작가 이인직 (2)

2018년 1월 9일 1688

계몽운동과 신소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이인직은 일본육군성 한국어 통역으로 임명되어 제1군 사령부에 배속되며, 1905년에 그 공적을 인정받아 80원의 사금(賜金)을 받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이미 일본제국주의에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그였기에 가능했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가 러일전쟁의 성격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갖기 위한 전쟁,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국 강점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 결정적 계기부터 기여했다는 것은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호의가 곧바로 직접적인 매국행위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과 1905년 을사늑약 등을 계기로 일제로부터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고, 문학에 있어서도 계몽주의 문학이 전개됩니다. 한국의 계몽주의 문학은 갑오개혁 이후의 창가나 신소설 등을 말하는데 이인직이 쓴 <혈의누>가 신소설로는 최초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계몽주의는 서구의 계몽주의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어찌 보면 계몽운동이 일어나는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차이점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서구의 계몽주의는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되어 18세기를 풍미합니다. 계몽주의의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단어인 ‘enlightenment, Aufklärung, lumières’에 볼 수 있듯이 서구의 계몽주의는 빛(light)과 관련된 말로 표현됩니다. 그 빛의 연원은 성경에서 출발합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가 그것입니다. 즉 빛은 그것이 생김을 통해 무질서한 혼돈의 카오스(chaos)가 질서정연한 코스모스(cosmos)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한 자료 기증 잇달아

2018년 1월 9일 615

[기증자료] 심정섭 지도위원 제60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50점 보내와 10월 25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60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발행한 우편저금통장, 보험증서가 주를 이룬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한 자료 기증 잇달아 10월 19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의 히구치 유이치 공동대표가 연구소를 방문하여 1950~60년대 소책자와 『民族時報』등 총 18점을기증했다.아울러11월 14일 우편으로 소장자료 5박스를 기증했는데, 주로 일본의 과거사 청산운동과 인권운동에 관한 자료로 전단, 포스터, 뉴스레터, 전단지 자료 등이다. 기타무라 메구미 씨, 제5차 일본 교류관계의 소장자료 전달 일본에서 수화 통역자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무라 메구미 회원이 이번에도 교류단체와 개인의 소장자료를 전달받아 11월 20일 연구소에 기증했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1941년 태평양전쟁 등 관련 기사가 실린 일본의 주요 신문(나고야, 마이니치, 아사히, 서부마이니치 신문) 등 총 33점이다. 또한 지난 9월 26일에는 우편으로 소장자료 2점을 기증했다. 이준 열사의 외증손 조근송 선생이 1961년 재건운동본부 관련 자료 3점을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추모글] 연구소 구원투수, 한상범 교수님

2018년 1월 9일 607

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상범 교수님이 지난 10월 15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교수님은 2001년 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연구소 2대 소장을 지내셨으며 2002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끝으로 공식적인 대외활동은 거의 못하셨다. 그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 선과 악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으셨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본질을 꿰뚫어 설명하셨던 교수님, 실천하지 않고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지식 장사꾼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던 교수님을 더 이상 뵙지 못함이 안타깝다. 연구소 소장님으로 2년 남짓 모셨던 인연으로 몇 가지 교수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1991년 창립부터 10년 동안 봉사해온 김봉우 초대 소장이 피치 못할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