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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소사]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의 설립과 활동

2017년 11월 16일 824

지난 9월 25일 교육부는 역사교과서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고석규)를 출범시키고 박근혜정권의 국정화 추진과정의 전모를 밝히는 작업에 착수했다. 조사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고 임종국 선생의 정신을 거론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보면서 한 인물을 생각합니다. 전 재산을 들여 평생 동안 친일연구를 한 임종국 선생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친일연구 과정에서 본인 아버지의 이름도 친일인물로 기록하였던 분입니다. 사실에 기초한 기준 이외 혈연, 지연 등 다른 것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저 역시 이와 같은 마음으로 위원회가 세운 기준을 존중하고 일관성 있는 조사를 추진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임종국 선생이 시대의 귀감으로 인정받기까지는 단연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의 역할이 컸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에 대한 요구는 연구소 출범 당시부터 조금씩 논의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착수한 계기는 2003년 8월 22일 〈KBS 1TV 인물현대사〉 ‘임종국 편_배반의 역사를 고발하다’(연출 김정중)가 방송된 직후부터다. 방송 이후 선생의 대표 저작인 <친일문학론> 판매가 급증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그러나 당시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준비에도 힘이 부쳐 기념사업은 언감생심이었다. 기념사업을 위해서는 연구소 재정 외에 외부의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 필요하였다. 그러던 차에 당시 연구소 조문기 이사장이 광복군 장이호 선생의 아들이며 연구소 이사를 맡고 있던 장병화 가락전자 대표에게 이 같은 사정을 설명하고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장병화 이사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 자리에서 회장직을 수락했다. 이후부터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기증자료] 강만길 지도위원, 소장자료 75점 기증

2017년 11월 16일 754

강만길 지도위원, 소장자료 75점 기증 10월 16일, 강만길 지도위원(고려대 명예교수)이 북한 방문증명서, 리영희·이우성 선생 등과 주고받은 서신, 2004년 평양 남북학술토론회 관련 자료 등 소장자료 75점을 기증했다. 특히 이번 기증자료에는 강만길 지도위원이 1984년 ‘통일문제에 관한 교과서 분석사업’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을 당시의 사정을 알려주는 보고서, 탄원서, 공동성명 등도 포함되어 있다. 심정섭 지도위원 제59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50점 보내와 9월 19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59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각종 보험증서와 통장, 해방 직후 학교 관련 문서 등이 주를 이룬다. 또한 『새농민』(1970),『국민독본』(1964),『지방행정』(1964)등 박정희 정권기에 발행된 도서류도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근현대사기념관, 청소년 역사캠프 ‘순례길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개최

2017년 11월 16일 1000

근현대사기념관은 10월 20일(금)부터 21(토)까지 1박 2일 청소년 역사캠프 ‘순례길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를 개최했다. 이번 캠프는 근현대사기념관 상설전시를 역동적인 체험을 통해 새롭게 접근하고, 강북구의 애국선열 묘역에 잠든 독립운동가를 만나며 선열의 생애와 활동을 되새겨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는데 도움을 주고자 마련했다. 캠프는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오후 1시까지 진행되었고, 사전에 홈페이지와 전화로 선착순 모집한 13~16세 청소년 33명이 참석하였다. 저녁 6시, 근현대사기념관에 모인 청소년들은 식사 후 특별히 야간 개장한 기념관에서 첫번째로 독립운동가가 남긴 명언과 제헌헌법의 내용과 관련해 빈 칸에 들어갈 단어를 찾아 문장을 완성하는 퀴즈를 풀고 전시물을 본 후 사발통문에서 사라진 격문을 완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두 번째로 비밀리에 독립운동가, 민중, 일본 순사로 각각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코너별로 태극기 타투, 의병 책갈피 만들기, 독립민주기념비에서 기념사진 촬영 등의 체험활동을 포함한 독립운동 런닝맨을 시행했다. 마지막으로 4·19혁명 당시 상황을 재연한 그림자 연극을 함께 만들었다. 이튿날, 청소년들은 순국선열 애국지사 묘역을 답사하며 시대별 태극기를 그려보았다. 또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전 재산을 처분하고 일가족과 함께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중국으로 떠난 이시영 선생의 가족사를 스톱모션으로 표현하고, 독립운동가가 되어 자신만의 어록을 남기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캠프에 참가한 한 청소년은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져서 함께해서 좋았고, 학업 스트레스를 잠깐 내려놓고 놀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에 관한 지식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주어진 시간이 짧아 더

연속강좌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총괄 정리

2017년 11월 16일 608

연구소는 8월 21일부터 10월 30일까지(매주 월요일, 총 9강) 한겨레신문 청암홀에서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이라는 제목으로 연속강좌를 진행했다. 이번 강좌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무엇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적폐와 과거청산의 과제를 김미화가 묻고 전문가들이 대답하는 토크쇼 형식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강좌는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포럼 진실과 정의를 비롯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한겨레21, 한겨레TV가 힘을 모아 마련했다.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진행된 강좌는 검찰과 국정원, 경찰, 군, 재벌, 교육, 언론, 친일파와 대일과거사,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과 인권침해를 주제로 한 전문가 대담에 이어 전체 강좌를 총괄하는 종합 대담으로 마무리되었다. 박주민, 표창원, 김종대 의원을 비롯하여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 장혜옥 전 전교조 위원장, 최승호 뉴스타파 PD, 김동춘 교수 등 각각의 주제에 대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강사진으로 나섰으며, 박한용 교육홍보실장도 친일파와 대일과거사를 주제로 한 강좌를 통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번 강좌에는 고등학생을 비롯하여 남녀노소를 아울러 60여 명의 참가자들이 열띤 열기 속에 참여하였다. 모든 강좌의 동영상은 연구소 홈페이지와 한겨레TV 홈페이지를 통해 순차적으로 게재되며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김영환 대외협력팀장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 고양과 창원에서 적폐청산 토크 콘서트 열려

2017년 11월 16일 706

연구소는 촛불혁명 1년을 맞아 10월 27일부터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 전국순회 항일음악 토크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이 행사는 개관을 5개월 앞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 마련과 항일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10월 27일 고양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3일 창원, 11월 9일 대전, 11월 17일 광주로 이어지는 이 공연에는 이재명 시장, 노회찬, 박주민 의원과 김광진 전 의원이 이야기 손님으로 출연한다. 팟캐스트 ‘역적’으로 호흡을 맞춘 박한용 교육홍보실장과 MC노(노기환)의 사회로 진행된 콘서트는 『항일음악 330곡집』을 정리한 고 노동은 교수의 아들 노관우 씨(국립전통예술고 강사)의 항일음악 시연과 이야기 손님의 토크가 어우러져 잊혀진 항일음악을 알리고, 항일음악의 현재적 의미와 2017년 청산해야 할 한국사회 적폐문제를 이야기하는 토크쇼 형식의 공연이다. 10월 27일 고양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노관우 씨를 비롯한 연주단이 〈광복군 아리랑〉 〈신흥무관학교 교가〉 등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로 만들어진 항일음악과 이상준 작곡 〈깊이생각〉과 한유한 작곡〈압록강행진곡〉 등 창작 항일음악을 들려주며 관객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이어서 친일 음악가의 노래 〈희망의 아침〉(이광수 작사, 홍난파 작곡)과 〈희망의 나라로〉(현제명 작곡)를 영상으로 보여주었고 최근까지 국가 경축일에 친일음악가의 노래인 〈희망의 나라로〉나 〈선구자〉 같은 노래가 연주되었다는 점이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이야기 손님으로 나온 이재명 시장은 ‘우리 시대 적폐 청산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자가 촛불혁명 이후 1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촛불을 든 우리 전사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고,

[초점] UN인권기구에의 야스쿠니 문제 제기를 위한 국제회의 개최

2017년 11월 16일 694

10월 20일 국회에서는 침략신사 야스쿠니 문제를 보편적인 국제인권의 시점에서 조명하고 UN인권기구에 이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같은 주제로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행사는 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와 강창일 의원이 주최하고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와 연구소가 주관하였으며 동북아역사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김민철 책임연구원의 사회로 진행된 회의에서는 이희자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공동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의 시민연대를 통해 노력해 온 전문가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아베 정권과 메이지유신 150년 그리고 야스쿠니’라는 발표를 통해 메이지 유신 150년을 앞두고 아베 정권이 시도하고 있는 ‘메이지 영광의 부활 프로젝트’의 본질을 파헤치고, 이것의 극복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들의 과제에 대해 발표하였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 근현대연구실장은 ‘한국의 시점에서 본 메이지 150년과 야스쿠니신사 문제’라는 제목으로 메이지 시대가 한국사회에 갖는 의미, 야스쿠니신사가 기억하는 메이지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고 야스쿠니신사의 기억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연대를 호소하였다. 야스쿠니 소송 담당 변호인으로 한국 원고들과 함께 오랫동안 야스쿠니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워 온 오구치 아키히코(大口昭彦), 아사노 후미오(浅野文生) 변호사는 야스쿠니 소송의 국내외적 의의와 소송의 현황과 쟁점 그리고 전망에 대해 발표하였다. 마지막으로 백가윤 제주다크투어 공동대표는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오랫동안 UN인권기구의 국제회의에 참여하며 얻은 경험을 소개하면서 야스쿠니 문제를 UN인권기구에 제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언을 발표하였다. 종합토론에서는

[시론] 박근혜정권 퇴진 범국민촛불 1년, 촛불시민혁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2017년 11월 16일 561

대작가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통해 한반도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의 민초들의 신산한 삶을 ‘한(恨)의 모닥불’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한반도의 역사는 민초들의 한이 큰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 ‘한의 물줄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한 맺힌 세월을 뒤집기 위해 격렬히 항거했던 우리 국민들의 ‘저항의 모닥불’과 ‘투쟁의 물줄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과 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핏빛 5월과 뜨거운 6월이 오면 가슴이 한없이 부풀어 오릅니다. 5·18 광주민중항쟁의 처절한 투혼과 87년 6월 항쟁의 뜨거웠던 함성이 동시에 되살아나 역사의 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올해 5·18 추모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현 정부는 5·18 민중항쟁과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한 정부라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촛불시민혁명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4·19에서 부마항쟁과 5·18로, 5·18에서 6월 민주항쟁으로, 6월 민주항쟁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발전으로 그렇게 면면히 이어오는 우리 민초들의 투쟁과 저항의 역사가 있었기에, 그 놀라운 역사적 경험에 대한 국민들의 공유가 있었기에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촛불혁명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2016년을 살았고, 2017년을 살고 있는 국민들 모두는 지난 여섯 달 동안 전개되었던 촛불집회를 앞으로도 두고두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2016.10.29.~2017.4.25.까지 총 23차례 범국민촛불행동 진행했는데, 무려 1700만여 명이 참여했다. 평일 촛불집회,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촛불집회 참여자들까지 합산하면 연인원·총인원은 2천만여 명이 넘는다) 매주 토요일 엄청난 국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의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전후해서 수없이

이른바 ‘을사조약 기념사진’에 등장하는 일본인 면면의 정체

2017년 11월 16일 5588

러시아제국정부는 일본국이 한국에 있어서 정사상(政事上), 군사상 및 경제상의 탁절(卓絶: 견줄 데 없음)한 이익을 가진 것을 승인하며 일본제국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指導), 보호(保護) 및 감리(監理)의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이를 조애(阻礙: 저해)하거나 이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함. 이것은 1905년 9월 5일에 체결된 포츠머스조약 제2조의 내용이다. 러일전쟁의 전승국인 일본이 패전국 러시아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대목인 셈이다. 이로부터 두 달이 지난 1905년 11월 9일, 이 구절을 근거로 삼아 겉으로는 한국황실을 위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서울로 왔다. 경부선을 타고 남대문정거장에 도착한 그는 첫날과 이튿날만 공식 숙소인 손탁호텔에 머문 것을 제외하고 그달 29일 서울을 떠날 때까지 줄곧 한국주차군사령관인 육군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의 관저에 머물며 이곳에서 을사조약의 체결을 강요하기 위한 배후공작을 벌였다. 이윽고 11월 17일 경운궁 수옥헌에서 억지 조약을 성사시킨 이토 히로부미는 1주일이 지난 그달 25일에 필동에 있는 주차군사령부의 구내 호도원(好道園)에서 성대한 야유회를 거행하였다. 이때 이곳에 있는 큰 바위에 ‘보조지륭여천양무궁(寶祚之隆與天壤無窮: 천황의 융성함이 하늘땅이 무궁한 것과 같아라)’이라는 기념휘호를 새겨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기 하루 전날, 그는 일제침탈사와 관련한 여러 책자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한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게 된다. 이 사진의 촬영경위에 대해서는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 25권(국사편찬위원회, 1998)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1905년) 11월 28일 화요일, 대사는 여전히 하세가와 대장 관저에 머물렀다. 본일 오후 2시 하세가와대장 관저에서

이토 통감 일가족은 왜 한복을 입었을까?

2017년 10월 23일 5662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1906년 이후 한국통감으로 재임하면서 유달리 ‘동양평화’니 ‘우호선린’이니 하는 말들을 입버릇처럼 앞세웠던 인물이었다. 그러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관한 사진자료에는 갓을 쓴 한복 차림새로 영락없는 한국 사람의 행색을 한 모습도 남아 있다. 그가 과연 무슨 까닭에 이런 사진을 남겼는지가 궁금하여 무슨 단서가 될 만한 자료가 있나 뒤져보았더니, <매일신보> 1915년 1월 1일자에 「일본복의 조선부인과 조선복의 일본부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사진 화보 한 장이 눈에 띈다. 여기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인들은 한복 차림의 이토 사진에 나오는 그들과 완전히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들의 면면과 옷차림에 비추어 보아 두 장의 사진은 모두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것이라는 사실이 저절로 드러난다. 조선옷을 입고 뒤로 오른편에 선 부인은 공작 이토 히로부미 씨의 미망인 우메코(梅子)요, 왼편은 이토 공작의 딸 스에마츠(末松) 자작의 부인 노리코(德子)요, 앞으로 일본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은 부인은 이지용 씨 부인 이옥경(李鈺卿: 홍옥경-필자)이요, 왼편은 박의병 씨 부인 박주경(朴洲卿)이라. 이 사진은 지난 명치 39년(1906년) 11월 이지용 씨가 특파대사로 동경 갔을 때에 이토, 스에마츠 두 부인에게 조선의복을 선사한 답례로 두 부인이 이, 박 두 부인에게 일본의복을 선사한 기념사진. 그러니까 이 사진들은 1906년 12월에 대한제국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1870~1928)이 특파대사로 일본 동경에 갔을 때에 이토 히로부미 내외에게 한복을 지어 선물로 건네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촬영한

독재의 연원, 1949년 6월 공세

2017년 10월 19일 1293

국회프락치사건의 시작 그것은 프레임이었다. 만들어지는 순간 각인되고 부인할수록 견고해졌다.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온몸을 옥죄었다. 그것은 흡사 개미지옥과 비슷했다. 1949년 5월 9일 동아일보는 ‘의정 단상의 1년 회고’라는 코너에 민국당 국회의원 김준연의 글을 실었다. ‘회고’라기보다는 반대파에 대한 일방적 매도로 가득 찬 글이었다. 그는 주장했다. 김구와 김규식이 남북협상 운운하며 5·10선거에 불참하고 대한민국의 성립을 방해했다고,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소위 ‘소장파’라 불리는 무리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남로당의 선전방침을 추종하고 있다고. 그의 주장은 놀라웠다. 국회 내에 김일성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고, 그들이 남로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준연이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ML파임을 숨기고 서울파 고려공산동맹의 책임비서를 꿰찬 후,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김철수 몰래 당 중앙을 탈취하여 선전부장에 올랐던 자이다. 체포 후 전향하여 우익의 논객이 되었고, 동아일보와 긴밀한 연관 속에서 해방 후 민국당(한민당의 후신)의 중진이 되었다.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과거를 지우고 싶었던 것일까. 얼굴에 올라오기 시작한 검버섯처럼 그는 어느새 독기 가득한 극우 인사가 되었다. 김준연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이날 동아일보엔 심상치 않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최근 남로당원 3명이 검거됐는데, 그들이 소장파 국회의원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 황윤원과 접촉했다는 것이었다. 남로당원들은 이들 국회의원들에게 외군(外軍) 완전 철퇴, 남북 정치범 석방, 남북통일정치회의 개최, 선거에 의한 최고입법기관 구성과 중앙정부 수립, 조국방위군 재편 등을 주장하여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후일 남로당 7원칙으로 알려진 사항이다. 남로당원들은 국회의원들이 소속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