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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동아시아의 평화가 지속되기를

2018년 2월 22일 495

평창겨울올림픽이 조선이 참가함으로써 순조롭게 열리게 되었다. 평창 ‘이후’를 걱정하는 소리가 국내외에서 나오고는 있지만 잘 안 되는 쪽으로만 전망할 이유는 없다. 동아시아에서 정치 외교 안보 무역 문화예술 스포츠 등 각종 역내외의 교류들이 벌어질 경우 한반도와 일본 중국 사이의 관계보다는 역외 국가인 미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만큼 미국은 큰 나라이고 각국과 긴밀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유럽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를 만들어왔고 계속 그렇게 하려하다 부작용을 빚어왔듯이, 동아시아에서 막바지 영향력을 행사하려다가 많은 시행착오를 빚고 있다. 당장 북핵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조선의 핵문제뿐 아니라 조선 체제 자체를 부정하려는 미국의 정책이 조선측의 반발을 불러 북핵 보유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전개로 진화해왔다. 제네바 합의의 불발, 미국과 일본의 대조선 수교 거부가 오늘의 북핵 위기의 시발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핵보유도, 미국의 대조선 선제공격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재앙이다. 한국의 확고한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의 핵 확산을 막아내는 것이다. 북핵에 대응하려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부르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어리석은 파국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게는 평창겨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서 평창 ‘이후’에도 동아시아에서의 긴장 완화와 평화유지가 필요하다. 다행히 평창겨울올림픽에 이어 2020년에 일본의 도쿄 여름올림픽이 열리고 2022년에는 중국의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2022년에는 중국의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2026년에는 일본의 나고야에서도 아시안게임이 예정되어 있다. 평창에 이어 2020년부터 2026년까지 2년마다 중국과 일본에서

민족의 수난에 분노하는 신여성의 일기

2018년 2월 22일 1411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일제강점기 대구에 살았던 스무 살 여성의 일기다. 여자고등보통학교 5년생 이상으로 추측되는 주인공의 일기에는 주로 하루의 일과나 감상, 독서에 대한 소감과 자신의 습작 시나 소설이 담겨 있어 일기 자체가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빼앗긴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를 일기를 통해 토로한다.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어 모두 기뻐할 때도 그녀는 전국이 엄청난 수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시기에 같은 민족의 올림픽 1등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 일장기를 가슴에 단 ‘식민지 조선인’의 설움에 울분을 토한다. 손기정이 올림픽에서 일등을 했지만 수해로서 이재민이 막심한 이때 그렇게 떠들 것이 무엇이냐. 하지만 우리의 마라토너의 등 뒤에 일본기가 휘날린다 하니 망국 백성의 비애를 더욱 느끼게 하는구나. 일본의 식민지인 것을 세계 각국에 재인식시키는 것이 그리도 좋으냐 이무리들아! 하늘을 우러러 목이 터지도록 호소라도 하여 볼까. 전날의 영광이 이 날의 치욕이 되니 억울함이여. 그리고 폭우로 생긴 수재로 고통 받는 조선인을 안타까워하며, “온갖 쓰라린 낙인을 약소민족의 가슴에 무수히 찍어놓고도 무엇이 부족하여 인제 통틀어 이무리들을 삼키려 하느냐”라며 무심한 하늘을 보며 비에다 호통을 친다. 이처럼 그녀의 민족적 감수성은 예리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올림픽 입상은 수많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불러 일으켰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심훈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두 선수의 입상을 보도한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상 관측소, 총독부도서관의 건립 전말 – 도서관 지어주고 광통관 얻은 조선상업은행

2017년 4월 21일 2462

식민지 비망록 24 서울 을지로입구역 쪽에서 남대문로를 따라 보신각 방향으로 걷다보면 이내 도로의 동측에 해묵은 2층 벽돌건물 한 채를 만나게 된다. 서울시 기념물 제19호(2002.3.5)로 지정된 이 건물의 이름은 광통관(廣通館, 남대문로 1가 19번지)으로, 이곳과 바로 이웃한 자리에 청계천 광통교(廣通橋, 광교)가 있다는 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곳은 원래 1909년에 탁지부건축소가 수형조합사무소(手形組合事務所)의 용도로 건립했으며, 이층에는 회합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곧잘 강연회나 경축연, 만찬회와 같은 모임들이 개최되곤 하였다. 그 시절 한국의 고건축 조사를 맡았던 일본 동경제대(東京帝大) 건축과 교수 세키노 타다시(關野貞)도 이곳에서 강연회를 열고 그 결과를 담아 <한홍엽(韓紅葉; 카라모미지)>이라는 소책자를 남기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도서관 건립비용을 제공한 대가로 조선상업은행이 조선총독부로부터 소유권을 취득한 광통관 전경. 지금은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광통관의 준공 당시부터 이곳에는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의 본점이 옮겨와 상주하였고, 1911년 2월 조선상업은행(朝鮮商業銀行)으로 개칭된 시기를 거쳐 1924년 9월에 조선실업은행 건물(남대문로 2가 111번지)로 본점 위치를 변경한 이후에도 줄곧 은행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건물 전면의 출입구 상단에 여전히 부착되어 있는 ‘조선상업은행 종로지점’이라는 석판이 이 건물의 오랜 내력을 짐작케 한다. 광통관은 당초 대한제국 정부 소유였으며 대한천일은행은 세들어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건물의 소유권이 조선상업은행으로 귀속된 데는 남다른 숨은 사연이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동아일보> 1923년 7월 13일자에 수록된 「상은 건물(商銀建物)과 교환(交換)」제하의 기사를 통해 그

박정희 합성사진 조작 관련 명예훼손소송, 2심 승소와 스프레이 테러 형사조정

2018년 1월 25일 1823

[연구소관련 소송경과] 1. 2017년 12월 12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박정희 합성사진 조작 관련 2심 판결이 있었다.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주문 내용은 간결했고 연구소는 승소했다. 1심에 이어 2심까지 재판부는 연구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재 문퇴본(문재인정권 퇴진촉구 애국의병혁명본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모씨가 2014년 8월경부터 인터넷에 널리 유포된 박정희 합성사진을 연구소가 조작했다며 4년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소를 음해해왔다. 이에 연구소는 2016년 3월 방모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방모씨는 소송대리인으로 서석구 변호사(박근혜 변호인)를 선임했다. 그들은 재판과정에서 연구소를 종북단체라고 부르며 “방모씨의 행동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 결단”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1심에서 패소한 그들은 2심에서도 여전히 색깔론을 펼쳤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을 유지하며 방모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로써 방모씨는 500만원을 연구소에 배상해야 하는데 방모씨 측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여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2. 한편 청량리 사무실에 침입해 출입문과 현판에 붉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달아난 60대 김모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반성의 뜻을 담은 사과문을 12월 20일 연구소로 보내왔다. 작년 4월 새벽 1시쯤 연구소가 위치한 동대문구 사무실을 찾아온 김모씨는 연구소 현판에 붉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출입문에 엑스(X)자 모양의 낙서를 한 후 도주했다. 스프레이 테러 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CCTV를 토대로 수사에 들어간 동대문경찰서는 11월에 김모씨를 붙잡아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형사조정에 참석한

삼남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 배다리는 왜 사라졌을까?

2018년 1월 25일 2436

칠패, 팔패, 이문골, 도저골, 쪽다리를 지나 청파 배다리, 돌모루, 밥전거리, 모래톱 지나 동작이 바삐 건너 승방뜰 건너 남태령 넘어 인덕원 지나 과천에서 중화하고 갈미, 사근내, 군포내, 미륵당이를 지나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를 올라서서 참나무정이 얼른 지나(하략) 이것은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 1925년 12월 4일자에 연재한 〈춘향(春香)〉에 수록된 한 대목으로,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서울도성 남대문을 나서 전라도를 향해 내려가는 행로가 길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지명들을 살펴보면 칠패니 이문골이니 돌모루니 하는 곳들처럼 더러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고, 도저골(도동), 청파, 동작, 남태령, 인덕원과 같이 지금도 제법 익숙한 지명들인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정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정리고(程里考)에는 ‘성문분로(城門分路)’ 즉, 서울 도성의 각문을 나서면 전국으로 갈라지는 길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의 남쪽을 향해 한강으로 이어지는 행로는 동작나루를 건너는 8대로(해남 방향)와 서빙고로 넘어가는 4대로(동래 방향), 그리고 노량진으로 연결되는 7대로(수원 방향) 등 세 가지가 있다. <대동지지> ‘정리고’에 표시된 청파 배다리 경유 주요 대로의 행로 이들 모두 숭례문을 벗어나면 이문동을 거쳐 석우참(石隅站, 돌모루참)에 이르러 각각의 길이 갈라지는데, 요컨대 그 옛날 삼남지방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는 청파 배다리와 청파역이 오늘날의 경부고속도로 양재 톨게이트나 만남의 광장쯤으로 받아들여졌던 셈이다. 이 길은 조선시대 국왕 정조가 화성능행에 나서거나 효창원에 행차할 때도 이용했던 행로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머릿속에

자랑스러운 아버님을 두었지만 내 아이에게는 미안한 아버지입니다

2018년 1월 25일 1385

3·1절, 광복절 즈음이면 어김없이 회자되는 말이 있다. ‘친일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언급하며 이 말이 사라지게 하겠다고 했다. 나라와 민족을 우선했던 애국지사, 해방이 되고도 합당한 예우를 하지 않았던 국가, 오히려 친일파가 득세했던 세상이 있었다. 그 사이 애국지사의 가족 대부분은 3대가 망한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번 호 인터뷰 주인공은 광주지부 임병욱 회원이다. 그가 들려주는 선대 이야기와 자신의 삶에는 동학농민운동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근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와 불의에 저항했던 선대가 남긴 건 가난이었지만 선대의 명예를 되찾고자 부단히 노력한 결과, 2017년에 아버지 임국희 선생이 독립운동 공적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문 : 고 임국희 선생께 지난해 11월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셨습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 먼저 묻힐 뻔 했던 아버님의 독립운동 공적을 국가가 인정해준 것이어서 정말 기쁘고, 아버님의 힘들고 어려웠던 한을 풀어드린 것 같아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아버님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문 : 임국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사실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답 : 아버님이 1901년생이십니다. 제가 1960년생이니까 저희 아버님이 60세에 저를 낳으셨구요. 저는 집안의 막내입니다. 누나 다섯 분, 형님 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현재 누이 두 분과 저만 남았습니다. 제가 8살에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당연히 아버님의 과거사는 잘 모릅니다.

청량리 떠나던 날, 청파에서 가꿀 새 꿈을 꾸다

2018년 1월 25일 709

연구소가 드디어 청량리에서 청파동으로 이전을 마무리했다. 2000년 3월부터 청량리 떡전교 사거리 금은빌딩에 터를 잡았으니 거의 18년 만에 새 둥지로의 이사였다. 그 사이 10명에 불과했던 상근자가 4배 가까이 늘었고, 3층 한켠만 겨우 차지하던 살림살이는 5층과 지하, 2층 일부까지 다 채울 정도로 커졌으니 이번 이사에 만만치 않은 준비가 필요했다. 먼저 사무실 이사 전문 업체를 선정하고 체계적인 이사 계획을 세우는 한편, 이전해 갈 서현빌딩의 안전진단과 시설점검을 진행했다. 2006년에 준공한 건물치고는 관리가 비교적 잘 된 편이었지만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꼼꼼한 건물 점검과 필요한 보수공사는 최규필 회원이 전적으로 맡아 도와주었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이나 청파동에 찾아가 건물을 둘러보고 관리 상태를 돌아보는가 하면, 공사이력을 알아내고 가장 저렴하게 보수공사를 할 수 있도록 주변 지인들을 총동원해 주었다. 그 사이 곳곳에 쌓여 있던 묵은 짐을 정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수장고에 보관했던 유물과 고도서들은 직접 확인하고 포장해야 해서 이사 두 달 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상근자들은 보관・활용할 사무집기와 폐기물품을 점검하고, 이전하는 새 공간의 활용과 공간 배치 등 모든 이전 업무에 각자의 힘과 지혜를 모았다. 사무실 집기들을 점검하다 보니 갖가지 모양의 책상과 책장, 의자들이 수두룩했다. 문 닫는 사무실만 생기면 가서 주어다 모았기 때문에 통일감이란 ‘1’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짝 안 맞는 낡은 집기들이 우리 연구소가 걸어온 땀과 눈물의 험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도

항일음악회, 성황리에 공연

2018년 1월 25일 721

연구소와 근현대사기념관은 서울시와 강북구,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3·1혁명100주년기념사업회 후원으로 12월 18일 서울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항일음악회 – 다시 부르는 독립의 노래’를 열었다. 좌석(670석)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부득이 계단까지 좌석을 마련하여 800여 명이 관람했다. 이번 음악회에는 장사익・노브레인 등 출연진 자신의 히트곡 외에 ‘광복군 아리랑’ ‘안중근 옥중가’ ‘압록강행진곡’ ‘앞으로 행진곡’ ‘목동가’ 등 항일음악 11곡이 연주됐다. ‘망국의 한’ ‘독립의 꿈’ ‘아이들은 자라고’ ‘해방의 노래’ 등 국권 피탈부터 독립까지 한국근현대사의 흐름에 따라 구성된 항일음악회는 지난 8월 연구소가 기획하고 노동은 중앙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항일음악 330곡집』에 담긴 곡에 대한 해설도 프로그램북에 충실히 담아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고자 했다. 장사익과 오단해, 인디밴드 노브레인, 국립전통예술고교 두레소리 합창단, ‘기쁨의 아리랑’ 뮤지컬 공연단, 강북구립여성합창단 등이 출연했으며 특별히 지난해 광복절 경축식에 ‘올드 랭 사인’ 곡조의 애국가를 불러 화제가 된 여성광복군 오희옥 여사(92)가 무대에 올라 ‘안중근 옥중가’ 가사를 낭독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음악회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2011년 11월 개최한 항일음악회(총감독 노동은)에 이어 연구소가 주최한 두 번째 항일음악회다. 앞으로 연구소는 항일음악을 학교와 군대에 보급해 널리 불릴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이 음악회에는 고 노동은 교수의 큰아들인 노관우 씨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고 연구소 팟캐스트 ‘역적’ 노기환 MC와 김초롱 MBC 아나운서가 사회를 담당했으며, 송복남・황동욱 회원이 영상 제작, 장이근 회원이 사진 촬영, 손재호 회원이 오희옥 여사의 차량이동을 맡아주었다. 이 자리를

심정섭 지도위원 제61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50점 보내와

2018년 1월 25일 511

기증자료 12월 27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61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주요 자료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체신국에서 발행한 보험료영수장, 전시채권 등이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심정섭 지도위원에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