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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대한독립에 바친 이름, ‘지대형’의 ‘지청천’ 되기

2023년 2월 27일 1950

[연구실 글방 1] 대한독립에 바친 이름, ‘지대형’의 ‘지청천’ 되기 김명환 선임연구원 일제강점기를 수놓은 독립운동가 중에는 이름까지도 독립의 제단에 바친 사람들이 있다. 의열단원 이원록은 3년의 옥살이를 한 후 이육사가 되었고, 고향 안동에서 계몽운동을 하던 김긍식은 서간도로 망명한 후 김동삼이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본명보다도 이육사와 김동삼으로 기억한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지청천(池靑天)도 본명을 대한독립에 바쳤다. 청년시절까지 본명으로 살던 그는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이청천(李靑天)’으로 이름을 고쳤다. 해방 이후 소원하던 독립이 완성되었다고 기뻐하며 본명으로 돌아갔으나, 곧 ‘지청천’으로 개명하였다. 본명보다 이청천으로 살아온 날이 길고 강렬해서 개명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이름 ‘지청천’은 오랜 항일역정과 민족국가 건설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필자가 어쩌다 지청천의 이름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별히 그의 본명을 찾아본 기억은 없는데, 어느 순간 머릿속에 ‘지청천의 본명은 지대형(池大亨)’이 들어앉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필자는 독립운동 전공자도 아닌데 말이다. 어느 날 일 때문에 정신없이 문헌을 뒤지던 중 지청천을 소개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독립기념관에서 발행한 <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이라는 책이었는데, 여기에서 지청천은 “관향(貫鄕)은 충주, 관명(冠名)은 석규(錫奎)였고, 아명(兒名)은 수봉(壽鳳)”이라고 소개되었다. ‘이런, 지대형이라는 본명이 빠졌네’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항일역정을 알만한 사람들에게 본명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젊은 연구자 중에는 지청천의 본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꽤 있었다. 만주와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된 인물인데도 말이다.

신흥무관학교의 노래 (3) : 실낙원가

2023년 2월 27일 703

[항일노래 함께 보기 3] 신흥무관학교의 노래 (3) : 실낙원가 이명숙 선임연구원 신흥무관학교에서 만들어 부른 노래로는 앞서 소개했던 <신흥무관학교 교가>와 두 개의 <신흥학우단 단가>만이 알려져 있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필자가 처음으로 발굴한 ‘신흥무관학교의 노래’이다. 새 노래 발굴의 힌트는 앞서 소개한 〈신흥학우단가〉에서 얻었다. 이 노래가 신흥학우단의 단시(團是)를 변용했을 것이라 전제했을 경우, 또 다른 신흥무관학교의 시나 글들도 노래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 자료 속에서 신흥무관학교의 노래로 변용된 경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는 현재까지 신흥교우단·신흥학우단의 기관지인 <신흥교우보> 제2호(1913.9.15.), <신흥학우보> 제2권 제2호(1917.1.13.)와 제2권 제10호(1918.7.15.)이다. 신흥교우(학우)단의 중요 사업 중 하나로 꼽힌 ‘각종 간행물을 통하여 혁명이념의 선전과 독립사상을 고취’하고자 한 계획이 <신흥교우보>·<신흥학 우보>의 발간을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내용은 주로 ‘논단(論壇)’, ‘강단(講壇)’에 잘 나타나며 한편으로 조국의 역사와 국문 연구에 관한 글들도 꾸준히 소개되었다. ‘문림(文林)’란에는 시, 한시, 소설 등의 창작 문학 작품도 실렸다. 특히 운율이 있는 시는 노래 가사로 변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 <독립신문> 수록 시가의 항일가요 변용에 대해 연구한 한 논문(김경남, 「상해 <독립신문> 소재 시가와 항일 가요 연구」, 2018)에서 분석 시가 90여 개 중 노래로 확인되는 것이 20여 편 정도였고, 그 중 현재까지 전해진 노래도 10여 편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구에 힘입어 각 교우보・학우보에 실린 시들을 주요하게 살펴보았다. <신흥교우보> 제2호에는 대우강(大愚姜)의 ‘오늘밤’, 이규훈(李圭勛)의 ‘시내물두고’,

조선의 민중이 독립을 이뤄냈다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의열단밀양역사기행 소회

2023년 2월 27일 509

[후원회원마당] 조선의 민중이 독립을 이뤄냈다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의열단밀양역사기행 소회 최보금 용인 프로칸영어학원 원장 1923년 1월 28일, 약산 김원봉이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한 지 딱 100년이 되는 2023년 1월 28일에 그의 고향 밀양으로 역사기행을 갔었습니다. 사실 100여 년이 지난 독립운동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었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필요성도 딱히 보이지 않기에 저는 가벼이 산책가듯 추운 날씨만 걱정하며 오랜만의 새벽 버스를 탔습니다. 38명을 꽉 채운 버스 안은 놀랍게도 근현대사의 대가들이 다 모여있었습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한국현대사를 쓰신 전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 안경환 전 서울대 교수, <차미리사 평전>의 저자 한상권 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윤세주 평전>을 쓰신 김영범 대구대 교수, 전 성신여대 양보경 총장, 전 독립기념관 이준식 관장, <김원봉 평전>의 이원규 작가 등이 편안히 웃고들 계셨습니다. 이분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이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나 낯설어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우연히 앉은 옆자리가 <김산 평전>의 이원규 작가인 줄도 모르고 “김산이 누군가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4시간이 넘게 차근히 설명해 주시는 행운을 얻었건만 그분이 쓰고자 했던 독립운동이 이 시대 왜 필요한지는 묻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영웅들의 이야기 같았던 독립운동은 동화학교의 보통학생들이 장터에 모여 독립을 외치고,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는 우리 민중의 이야기였습니다. 36년간 우린 정말이지 끝없이 싸우고 싸웠던 것이었습니다. 이 답사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81명과 함께 산기슭 굽이굽이 찾아

미주지역 이민사 강연 후기

2023년 2월 27일 525

[후원회원마당] 미주지역 이민사 강연 후기 김미현 워싱턴디씨지부 후원회원 한 국민이 다른 나라로 이주해서 다시 터전을 잡는 이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옮겨심은 식물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만큼 뿌리가 취약해서 외부에서 오는 낯선 자극에 상처받기 쉽고 또한 제대로 다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요. 미국으로 이민을 온지 16년이 지났습니다. 전자사전에, 스마트폰에, 온갖 최첨단 문명의 도움을 받으며 이제 겨우 할말을 하고 사는 수준에 이르고 보니 옛날의 이민 1세대는 어떻게 먼 타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이번 김도훈 박사님의 미주지역 이민사에 대한 강의는 이민 1세대에 대한 저의 막연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었습니다. 사탕수수와 커피에 대한 서문은 왜 본국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하와이와 멕시코에서 겪어내야 했던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으로 버텨내었는지 짐작케 했습니다. 이민 1세대의 노력과 희생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 그리고 또 그 다음의 세대들이 지금 이곳에 자리 잡고 성장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느낍니다. 이런 좋은 강연을 해주신 김도훈 박사님께도 다시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강연을 통해 처음 인사드리게 된 멕시코 지부 여러분들이 진행하시는 ‘숭무학교’ 안내판 설치사업을 꼭 순탄히 이뤄내시기를 응원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2023 겨울 인턴활동 소감문

2023년 2월 27일 934

[후원회원마당]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2023 겨울 인턴활동 소감문 이한나 안녕하세요, 2023년 1월부로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희대학교 사학과 학생 이한나입니다. 사학과 학생인 저는 역사에 대한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고 더 나아가 바른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알리는 교육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지난 2019년, 광복 74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진행했던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태풍으로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울음으로 목이 메셨는데도 ‘그때 가서 고생한 것이 원통하고도 힘든데 오늘은 즐겁고 반갑고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에 저도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보태야겠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한일 과거사 청산에 대한 관심이 민족문제연구소 인턴 지원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인턴으로 활동하며 보게 된 연구소의 모습에서 저는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획실은 후원회원을 위한 여러 행사를 진행하거나 지원하고 있는데 1만여 명의 회원분들이 민족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자료실에서는 각종 서적이나 문서를 정리하는데 연구소에 소장된 방대한 도서와 유물 중에서 회원이나 일반인들이 기증해준 도서와 유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데에 인상 깊었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과 운영에는 연구소 회원뿐 아니라 국내 지부와 세계 각지의 지역위원회,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지원하는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같은 뜻을 갖고 한 자리에 모인 것이 뭉클하게 느껴졌고 민족문제연구소 존립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비록 작은 힘이나마

조선혁명선언

2023년 2월 27일 2244

[자료소개] 조선혁명선언 신채호 1922년 12월 신채호는 의열단장 김원봉으로부터 의열단 선언문을 작성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신채호는 1개월여의 숙고 끝에 1923년 1월 조선혁명선언을 완성하였다. 5개 부분 6,400여 자로 이루어진 이 선언문은 ‘5파괴’의 대상―이족통치(異族統治)·특권계급·경제약탈제도·사회적 불평등 및 노예적 문화사상과 ‘5건설’의 목표 – 고유적 조선·자유적 조선민중·민중적 조선·민중적 사회 및 민중적 문화를 천명하였다. 이 선언문은 의열활동의 방향과 자주독립국가 건설방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이후 한국 독립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의 원문을 바탕으로 하여 일부 한자어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현행 맞춤법에 의거하여 표기하였다. – 편집자주 1. 강도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애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川澤)·철도·광산·어장 …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가옥세·인구세·가축세·백일세(百一稅)1·지방세·주초세(酒草稅)·비료세·종자세·영업세·청결세·소득세…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여간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차차 자본집중의 원칙 하에서 멸망할 뿐이요 대다수 인민 곧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一身)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강도에게 진공(進供)하여 그 살을 찌워주는 영세(永世)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종내(終乃)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이민의 수입이 해마다 높은 비율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려가 아귀(娥鬼)부터 유귀(流鬼)가 될 뿐이며 강도일본이

기증자료

2023년 2월 27일 370

기증자료 • 안미정 자료실 주임연구원 1월 12일, 김광렬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가 조선문제자료총서, 전시기 식민지통치자료, 근대일본 사회운동사인물대사전, 재일 조선인 관련 도서 등 약 400권을 기증했다.

‘약산 김원봉과 함께’, 1박 2일 밀양 답사 다녀와

2023년 2월 27일 729

[초점] ‘약산 김원봉과 함께’, 1박 2일 밀양 답사 다녀와 • 방학진 기획실장 지난해 11월 창립한 ‘약산 김원봉과 함께’(공동대표 김언호 한길사 대표, 서중석 전 성균관대 교수, 안경환 전 서울대 교수)가 우리 연구소와 함께 1월 28일~29일 1박 2일 일정으로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 의열단 밀양역사기행’을 진행했다. 약산 김원봉과 함께가 창립 후 처음으로 마련한 이번 답사에는 전국에서 8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는데 김언호·서중석·안경환 공동대표를 비롯해 밀양 출신의 원로 민주화운동가 박중기 선생, 임헌영소장, 송기인 신부, 한상권 전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 양보경 전 성신여대 총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김원봉 평전>을 쓴 이원규 소설가, 밀양 출신 김춘복작가, 김원봉의 오촌 조카인 김재현(밀양) 선생, 의열단원 초산 김상윤 의사의 장손자 김기봉 선생 등 다양한 분들이 참여했다. 1박 2일동안 안내를 맡은 이준설 밀양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사는 “현재까지 정부에서 인정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는 91명이고, 이는 전국 어느 곳 못지않게 많은 수치”라며 “특히 김원봉선생의 생가터에 세워진 의열기념관에서 반경 1km 안에는 2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독립운동가의 밀집도가 높다”고 말했다. 답사단은 첫날 황상규 선생 묘소를 비롯해 밀양독립운동기념관, 의열기념관, 의열체험관을 둘러본 후 저녁에는 밀양시청 강당에서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과 그 사상’을 주제로 한 김영범 교수(대구대)의 특강을 들었으며 둘째 날에는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지, 영남루, 표충비각을 둘러보고 박차정 여사 묘소, 신영복 선생 묘소 등을 참배했다. 약산 김원봉과 함께는 삼일절에는 ‘독립과 민주의 현장을 가다’라는

친일문학론을 일역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 별세

2023년 2월 27일 692

[초점] <친일문학론>을 일역한 오무라 마스오 교수 별세 오무라 교수 부부 한국 근·현대문학 연구에 헌신한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지난 1월 1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2017년 소명출판에서 「윤동주와 한국 근대문학」 「식민주의와 문학」 등 그의 저작집 총6권이 발간되었고 2018년엔 한국문학번역상을, 2022년엔 연세대 용재학술상을 받았다. 오무라 교수는 1970년에 결성된 ‘조선문학의 회’의 주요 인사로 활동하면서 동인지 <조선문학 소개와 연 구>(1970~1974)를 간행하고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하였으며 임종국, 김윤식 등과 학문적인 교류를 해왔다. 임종국 선생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된 계기는 <친일문학론> 번역이었다. 1975년 봄에 일본의 고려서림에서 일어판 번역을 오무라 교수에게 의뢰했다. 그해 6월부터 1976년 11월까지 번역과정의 세부사항을 서신을 통해 논의했다. 1976년 12월 마침내 <친일문학론> 일어판이 출간되자 임종국선생은 오무라 교수 부부에게 작은 병풍과 연수정 목걸이를 선물했다. 오무라 교수는 <친일문학론> 일어판 출간의 1등 공신이었을뿐더러 “임종국 씨의 <친일문학론>은 해방 직후와 같은 친일파 규탄의 책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객관적 사실을 리얼하게 정리하여 문학사의 공백을 메우는 시도이다”라는 역자 해설에서 임종국의 연구사적 위상을 정립한 최초의 평론가라 할 만하다. 일어판 출간 이후에도 두 사람은 매년 초에 안부 편지를 나누었고 임종국의 임종 전까지 학문적·인간적 교류를 가졌다. 임종국 선생의 요청으로 1981년과 1987년에는 요산재에 방문하여 회포를 풀기도 했으며 임종후인 1989년 11월 하순에 임종국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오무라 교수 부부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직전인 2018년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속 이미지(3)

2023년 2월 27일 1475

[소장자료 톺아보기 46]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속 이미지(3) – 강제병합의 주역들, 침략자와 친일파 • 강동민 자료팀장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에 수록된 약 400컷의 사진 중 인물사진은 단체사진을 포함해 약 200컷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대부분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주역들로 일본의 ‘천황가’와 군부를 비롯한 관료들, 이에 협력한 친일 조선 관료들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제작된 <병합기념조선사진첩>에 등장하는 첫 인물은 메이지(明治) ‘천황’ 부부다. 이와 함께 ‘천황가’ 일족을 수록하고 ‘이왕가’로 전락한 대한제국 황실일가는 다음 순서로 밀려났다. 이어서 ‘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한다는 순종의 칙유와 병합조약체결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를 수록하였다. 조선의 병합은 ‘원만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일본의 내각대신, 역대 조선통감, 조선주차군사령관 등 일본의 인물들부터 대한제국 내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 이완용·박제순·민병석·고영희·조중응·김윤식 등 ‘병합’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였던 친일 인사들의 사진이 줄지어 나온다. 특히 ‘왕비사건 당시의 공사, 자작 미우라 고로’, ‘강화도사건 당시의 함장, 이노우에 요시카’, ‘제물포조약 당시의 전권대사, 구로다 기요타카’ 등과 같이 한국병합에 결정적인 사건의 주요 인물들이 사건 당시 직위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사진첩에 수록된 주요 인물들은 다양한 책자와 화보에 지속적으로 소개되는데 연구소의 소장자료인 <한국병합기념화보>에도 실려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상설전시장을 방문하면 강제병합의 일본 주역들을 비롯해 친일파들의 상세한 이력을 살펴볼 수 있다.  「반도의 명사」는 강제병합 당시 조선인 주요 관료들과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부분으로 친일 인사들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