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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기고] ‘독립공원’ 이름을 바꿔야한다.

2015년 12월 10일 2400

[한국NGO신문] 김정권 = 이 글은 필자가 서울시의회 초청으로 의회의사당에서 했던 광복60주년기념 특강 ‘독립문과 독립공원의 진실’의 내용을 요약, 보완한 것이다. 당시 상고역사는 물론 근대사마저도 진실과 얼마나 동떨어지게 거짓말로 꾸민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나서 고쳐나가야 한다고 외쳤었다. 이제 꼭 10년이 지나 광복70주년이 되었는데도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것은 진실을 덮으려는 세력이 집권층에 스며들어 겹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NGO신문을 통하여 고발한다. 매국집단 독립협회가 되살아나고 있다. 필자는 광복60주년을 맞이하여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열의 넋을 기리려고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거기에는 조선총독부가 붙여준 ‘독립’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고, 친일파 두목으로 매국노의 상징이 된 이완용이 친필로 쓴 ‘독립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일전쟁 일본승전기념 개선문”이 서있었다. 일인이 돈을 주면서 ‘조선에서도 청일전쟁승전기념탑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하자 독립협회가 모금을 하고 보태어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세우고 “독립문”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 독립문 민족NGO편집장 당시 일본에서는 대륙의 제국 청나라를 이겼다는 승전분위기로 들끓었으며, 참전용사가 있는 마을마다 탑을 세우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친미파에서 친러파로 갔다가 이제 친일파로 돌아선 이완용이와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갔다가 이중첩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역적 서재필이 만나서 실세운동단체로 만든 것이 독립협회였다. 결국 그 독립협회는 신세계의 신기루 속에서 매국노 역할을 충실히 하였으므로 소위 일본식 “일한합병”이라는 공을 세우고, 3일 후에 9월1일자 독립협회의 회장단 모두가 총독부로부터 엄청난 돈과 함께

박정희 측, 대선 지면 야당 후보 쏴 죽이려 했다

2015년 12월 10일 880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4> 유신 쿠데타, 스물일곱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한 번째 이야기 주제는 유신 쿠데타다. [현대사 이야기 연재 이전 주제 바로 가기] [유신 쿠데타, 첫 번째 마당] 여당도 당황케 한 청와대의 ‘공화국 죽이기’ 작전 [유신 쿠데타, 두 번째 마당] 궁정동의 은밀한 ‘사업’과 박정희, 그 특별한 관계 [유신 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와 김일성, 1인 독재 위해 뒷거래? [유신 쿠데타, 네 번째 마당] ‘멸공’ 박정희, 김일성과 대화하려 쿠데타? [유신 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온 국민이 춤춘 그때, 청와대는 딴마음 품었다 [유신 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북한보다 야당이 더 못됐다? 박정희의 위험한 선동 [유신 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쿠바가 백악관 습격했다면”…분노한 박정희[유신 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타임>은 왜 박정희 주장을 ‘상상’ 취급했나[유신 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美·日이 박정희 쿠데타 초안에 퇴짜 놓은 이유 [유신 쿠데타, 열 번째 마당] 박정희, 경제 살리려 쿠데타? 치명적인 오해

민족문제硏, ‘부민관 폭파의거’ 재연극 교육자료로 제작·배포

2015년 12월 10일 766

▲ 지난 7월24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부민관 폭파의거 재연극 ‘정의의 폭탄’이 상연된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 News1 광복 전 마지막 의거인 ‘부민관 폭파의거’를 재연한 연극이 교육자료로 만들어져 서울시내 중·고등학교에 배포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부민관 폭파의거’ 70주년 기념 재연극 ‘정의의 폭탄’을 담은 영상과 관련 교육자료를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 210여 곳에 배포했다고 10일 밝혔다. 부민관 폭파의거는 1945년 7월24일 친일단체인 대의당이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앞세워 태평양 전쟁에 젊은이들의 참여를 선동하기 위해 개최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막기 위해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등 독립투사들이 친일파와 일본 고위관료들에게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다. 일본이 패망하기 전 마지막 의열투쟁이다. 연구소는 지난 7월24일 70년 전 경성 부민관이 있던 자리인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부민관 폭파의거 70주년 기념식과 재연극 상연을 진행한 데 이어 이번 교육자료 제작과 배포 사업을 진행했다. 교육자료는 ‘정의의 폭탄’ 상연 모습 중 주요 장면을 약 20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이 담긴 CD와 교사용 계기수업 자료집으로 구성됐다. 해당 자료집에는 의거 주인공들을 소개한 글과 서울시내 관련 역사의 현장을 학생들이 직접 가볼 수 있도록 정리한 답사 자료, 실제 주인공 조문기씨의 회고록이 실렸다. 학생들이 직접 연극을 따라해 보며 공부할 수 있도록 연극 대본도 포함했다. 연구소 측은 “학생들이 일제에 강력히 저항했던 독립운동의 현장을 느끼고 독립운동 정신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번 교육자료를 제작하고 배포했다”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4.3, 5.18, 위안부…’역사’를 찾기 위한 투쟁

2015년 12월 9일 635

[기고] 역사교과서, 역사인식, 그리고 시민의식 ③ 일제 하 민족해방운동과 해방 이후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세계사상 유례없는 장기성, 지속성, 강인성을 자랑하며 결국 한국 사회를 민주화의 도정 위에 올려놓았지만 민족해방운동이나 민주화운동 그 어느 것이나 해당 시점에서는 동시대사로서 자유롭게 분석될 수 없었고, 심지어는 공개적인 대화의 화제로도 삼을 수 없었다. 일제 식민지기에 발간된 신문과 잡지를 보면 가끔 ‘■■’와 같이 활판을 거꾸로 조판해서 인쇄한 ‘벽돌문자’를 발견하게 된다. 검열에 의해 삭제되었지만 미처 다른 단어로 교체하지 못했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교체하지 않은 채 인쇄했기 때문이다. 전후 문맥과 앞뒤 내용을 따져보면 주로 독립운동이나 사회운동에 관한 기사, 당시 정치, 사회, 경제에 관한 비판 기사에서 많이 발견되고, 대체로 ‘민족주의’, ‘제국주의’, ‘민족’, ‘계급’, ‘사회’, ‘쟁의’, ‘파업’ 같은 단어들이다. 이와 같이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고, 자기 사회에 대한 분석 대신 무지와 외면을 강요받았던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적·정신적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은 해방 이후에도 장기간 시정되지 않았다. 이승만 극우반공독재체제로부터 시작해 1970년대의 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국내 역사학계의 민족해방운동사 서술의 하한은 3·1운동이었고, 최초의 식민지기 사회주의운동사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집필되고, 출간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만 해도 이른바 ‘기관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며 사실상 사전검열을 통해 기사들을 보도한 것이 한국의 언론 상황이었다. 식민지, 분단, 독재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의 세월은 자기 사회의 현실과 역사조차 자유롭게 연구할

함세웅 신부 11일 대전서 ‘현대사 콘서트’

2015년 12월 9일 690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인 함세웅 신부(73)가 11일 대전을 찾아 현대사 콘서트를 갖는다. 함 신부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다. 함 신부와 시사주간지 <시사IN> 주진우 기자의 현대사 콘서트는 11일 저녁 7시 대전 기독교연합봉사회관 연봉홀에서 개최된다. 함 신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곧 역사”라며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려는 듯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이즈음, 역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개인사, 가정사, 나아가 공동체를 위한 공동선을 지향하는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현대사 콘서트에 나서는 이유를 밝혔다. 또 주진우 기자는 10여 년 전 고등학교에 학생 신분으로 잠입취재할 방법을 찾다가 함 신부를 처음 만나게 됐다고 한다. 그 뒤 함 신부의 생각과 인품에 매료돼 교분을 쌓아왔다는 그는 “청년들이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아온 어르신을 모시고 우리가 몸 담은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보면서 희망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함 신부와 주 기자는 이날 현대 민주화 과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숨겨진 현대사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이들은 역사·정치·민주·통일·신념 등 5가지 주제로 지난달 13일부터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 5개 도시를 순환하는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콘서트 티켓가는 1인당 2만원이며 예매는 예스24를 통해 이뤄진다(http://ticket.yes24.com). 지정 좌석없이 공연 당일 선착순 입장하며 티켓 판매수익의 일부는 역사 바로세우기 활동에 기부된다. 문의 : 02-2700-3270 <2015-12-09>

양주톡톡포럼 창립 토크콘서트

2015년 12월 9일 560

시민참여네트워크를 표방하는 ‘양주톡톡포럼(대표 한호종)’이 12월12일 창립총회를 갖는다. 이날 오후 3시 양주희망도서관 1층 희망극장에서 열리는 창립총회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의 ‘한국 근현대사 100년과 국민의 역사의식 토크콘서트’가 함께 진행된다. 송수연 기자 <2015-12-09> 경기북부시민신문 ☞기사원문: 양주톡톡포럼 창립 토크콘서트

[영상] “대통령인 내가 사과를 왜 하나?”

2015년 12월 9일 720

[임기상의 1분 역사산책] 야반도주한 대통령, 미국도 모르고 국회도 몰랐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기습해 한국전쟁이 시작됐습니다. 6월 27일 새벽 1시에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한 의원들은 ‘국회는 일백만 애국시민과 같이 수도를 사수한다’는 결의안을 가결해 신익희 국회의장과 조봉암 국회부의장이 대표로 경무대로 갔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야반도주해 이미 없었습니다. CBS 스마트뉴스팀 김성기 기자 <2015-12-09> 노컷뉴스 ☞기사원문: ?[영상] “대통령인 내가 사과를 왜 하나?”?

4.3, 5.18, 위안부…’역사’를 찾기 위한 투쟁

2015년 12월 9일 732

[기고] 역사교과서, 역사인식, 그리고 시민의식 ③ 일제 하 민족해방운동과 해방 이후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세계사상 유례없는 장기성, 지속성, 강인성을 자랑하며 결국 한국 사회를 민주화의 도정 위에 올려놓았지만 민족해방운동이나 민주화운동 그 어느 것이나 해당 시점에서는 동시대사로서 자유롭게 분석될 수 없었고, 심지어는 공개적인 대화의 화제로도 삼을 수 없었다. 일제 식민지기에 발간된 신문과 잡지를 보면 가끔 ‘■■’와 같이 활판을 거꾸로 조판해서 인쇄한 ‘벽돌문자’를 발견하게 된다. 검열에 의해 삭제되었지만 미처 다른 단어로 교체하지 못했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교체하지 않은 채 인쇄했기 때문이다. 전후 문맥과 앞뒤 내용을 따져보면 주로 독립운동이나 사회운동에 관한 기사, 당시 정치, 사회, 경제에 관한 비판 기사에서 많이 발견되고, 대체로 ‘민족주의’, ‘제국주의’, ‘민족’, ‘계급’, ‘사회’, ‘쟁의’, ‘파업’ 같은 단어들이다. 이와 같이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고, 자기 사회에 대한 분석 대신 무지와 외면을 강요받았던 것이 식민지 조선의 지적·정신적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은 해방 이후에도 장기간 시정되지 않았다. 이승만 극우반공독재체제로부터 시작해 1970년대의 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국내 역사학계의 민족해방운동사 서술의 하한은 3·1운동이었고, 최초의 식민지기 사회주의운동사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집필되고, 출간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만 해도 이른바 ‘기관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며 사실상 사전검열을 통해 기사들을 보도한 것이 한국의 언론 상황이었다. 식민지, 분단, 독재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의 세월은 자기 사회의 현실과 역사조차 자유롭게 연구할

“야스쿠니서 아버지 이름 빼라”…74세 딸 법정서 눈물로 호소

2015년 12월 8일 1546

외국인이라며 지원은 제외, 합사때는 일본군 취급…”모순” 지적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외국인이라서 보상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외국인이니까 야스쿠니(靖國)신사에서 이름도 빼주세요.” 2차 대전 때 일본군으로 징병 돼 전사한 이의영(1921년생, 1945년 사망) 씨의 딸 이미대자(74) 씨가 부친을 야스쿠니신사에 강제로 합사한 것을 취소시켜달라고 일본 법정에 출석해 눈물로 호소했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이미대자(74) 씨가 8일 변론기일이 끝나고 나서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요다(千代田)구 소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재판 관련 보고 행사에 참석한 모습. 아버지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한 것을 취소해달라며 2013년 10월 국가(일본)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씨는 8일 도쿄지법 민사합의28부 심리로 열린 변론기일에 출석해 ‘일본군으로 전사했으므로 부친의 이름을 빼 줄 수 없다’는 야스쿠니신사 측의 대응이 모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군으로 죽은 일본인에게는 원호(援護, 돕고 보살펴 줌)가 이뤄진다고 하지만 우리 한국인 유족은 1엔도 받지 않았다”며 “끌려간 한국인은 한 집의 가장이었고 남은 가족, 유족의 경제적 고통은 너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원호가 필요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만 외국인이라서 보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일관성 있게 해달라”며 아버지의 이름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빼달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일본 정부가 가족에게 전사 통지조차 해주지 않아 부친이 필리핀 루손 섬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을 2001년 12월 한국 국가기록원 기록을 확인한 후에야 알게 됐다며 울먹였다. 그는 자신이 기독교 신자라서 이른바 종교시설로 분류된 야스쿠니 신사에 부친이 합사된 것이 종교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고 굴욕적인 일이라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정권 불복종운동이라도 해야”

2015년 12월 8일 609

경북대 교수모임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요구 “국정화는 학자로서 부끄러워” ▲  경북대학교 교수들로 구성된 ‘한국사를 사랑하는 경북대 교수모임’은 7일 오후 경북대학교 인문대학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촉구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검인정 구분고시를 확정 발표했지만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경북대학교 전·현직 교수들이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경북대학교 전·현직 교수 123명이 참여한 ”한국사를 사랑하는 경북대 교수모임’은 7일 오후 대구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교수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 국정화를 철회하고 올바른 역사가 아니라 다채롭고 풍요로운 역사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교수모임은 “정부가 경원시하는 북한과 몽골, 라오스와 캄보디아 같은 전제국가, 터키 같은 이슬람국가, 아이슬란드처럼 작은 나라들이나 활용하는 것이 국정화 교과서”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교수모임은 이어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정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교과서 집필진의 면면마저 비밀주의에 부치고 있다”며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과서 국정과 작업이 어떤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찬석 전 총장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왔을 때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다”며 “대부분의 국민들이 반대하는데도 밀실에서 진행하는 것을 보고 학자로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주보돈 교수는 “정부는 수차례 집필자를 비롯한 일체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집필자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비밀리에 작업을 추진하는 것은 백주대낮에 테러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주 교수는 이어 “내가 알기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