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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서울 곳곳 일제 조선총독 글씨 새긴 머릿돌 남아있어

2016년 6월 7일 1251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책임연구원 “보존하되 교육수단 활용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한국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마포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별다른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이들 건축물의 공통점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 총독을 지낸 일본인의 글씨가 새겨진 머릿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최근 작성한 ‘조선총독들이 남긴 오욕의 흔적들- 식민통치자들의 휘호가 새겨진 정초석(머릿돌)과 기념비’라는 글에서 우리 곁에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7일 전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건축물과 조형물의 머릿돌·표시석에 적힌 글씨가 조선 총독 등이 썼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이 연구원은 사례를 수집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 총독의 휘호가 새겨진 한국은행 본점의 머릿돌(정초석)이다. 이 머릿돌에 새겨진 휘호는 안중근 의사에게 처단된 이토 히로부미가 쓴 것이다. ▲ 한국은행 본점 건물 이토 히로부미의 휘호가 새겨진 머릿돌. [이순우 책임연구원 제공] 1920년대 옛 경성역사를 신축할 당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글씨를 받아 부착한 서울역 머릿돌도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리는 부분은 뭉개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는 1927년 경성법원청사를 신축하면서 사이토 총독의 글씨로 제작한 머릿돌이 또렷한 글씨체로 남아 있다. 제기동 선농단 터에 세워졌다가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진 잠령공양탑 비석의 앞면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고수(皐水)’라고 쓰여있는데 이는 사이토 총독의 호다. 연세대 캠퍼스에는 ‘흥아유신기념탑’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의미를 담아 세운 것으로, 미나미 지로 총독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연구원은

[뉴스타파] 방송불가…박정희-기시 친서

2016년 6월 6일 1514

KBS 탐사보도팀이 취재한 <훈장 2부작> 이 넉 달째 방송날짜조차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불방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KBS 간부들이 방송불가와 원고 삭제를 요구한 것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친서였다. 친서는 1961년 8월과 1963년 8월에 박정희 의장이 기시에게 보낸 것이다. ▲ 박정희가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두 개의 친서 원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있는데, KBS 탐사보도팀이 일본 현지에서 확인했다.사진은 국사편찬위 사료실에 있는 사본이다. KBS 탐사보도팀이 취재한 <훈장 2부작> 이 넉 달째 방송날짜조차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불방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KBS 간부들이 방송불가와 원고 삭제를 요구한 것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친서였다. 친서는 1961년 8월과 1963년 8월에 박정희 의장이 기시에게 보낸 것이다. 현재 친서의 원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 있고, 국내에는 사본 형태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실에 남아있다. 기존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김상중`현무암 저, 2012) 저서에 해당 친서 내용의 일부가 소개됐지만, 언론사가 친서 전문을 촬영한 것은 KBS 탐사보도팀이 처음이다. KBS 탐사보도팀이 확인한 해당 친서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당시 전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에게 한일수교협정의 협력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61년 8월과 1963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보낸 친서를 통해 당시 박정희 당시 의장이 한일협정의 방향을 어디로 끌고가고자 했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 학계전문가들은 해당 친서가 1965년 한일수교 과정과 그 내막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고

한국과 우간다의 연결고리, 새마을운동

2016년 6월 6일 937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고속도로를 달리다 청도 새마을 휴게소에 들립니다. ‘근면, 자조, 협동’을 상징하는 새마을운동 로고가 바람개비에 새겨져 있네요. 저 멀리 산허리에 나무를 베어내고 세운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야외 간판도 보이네요. 청도 신도마을 주민들이 단합해 마을을 복구하는 모습이 박정희 대통령 눈에 띄었고, 그것이 새마을운동의 아이디어가 됐다는 설명을 봅니다. 그런데 과연 새마을운동은 성공한 농촌개혁운동일까요? 농촌의 나태함과 빈곤을 퇴치하는데 크게 기여했을까요?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던 1970년대, 농가의 평균 소득은 10배 증가했으나 부채는 21배 증가했다. 저곡가정책 등으로 인한 도농 불균형발전은 이촌향도 현상을 가속화했다. 잘 살기 운동인 새마을운동 기간 내내 수많은 농민들이 대대로 살아온 정든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minjok.info/archives/856) 그리고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님께서는 며칠 전 트위터에 이렇게 말하기도 하셨죠. “일제하 ‘농촌진흥운동’과 ‘새마을운동’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농촌이 가난한 건 농민들이 나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널리 유포시킨 겁니다. 가난을 ‘당사자의 나태’ 탓으로 돌리는 건, 모든 귀족체제, 식민지체제, 독재체제의 공통점입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중 새마을운동의 동반자라고 밝힌 우간다는 무세베니 대통령이 30여 년 넘게 독재하고 있는 국가지요. 새마을운동이 독재와 궁합이 맞는 건지요. 강제동원형 의식개조 운동이었다는 비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국립묘지가 범법자들의 안식처인가”

2016년 6월 6일 1636

▲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와 평화재향군인회 등 대전지역 시민단체회원들이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김창룡, 안현태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제1장군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김창룡의 묘에서 ‘파묘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와 평화재향군인회 등 대전지역 시민단체회원들이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김창룡, 안현태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일본밀정 출신 김창룡과 국가내란 반란범 안현태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 “애국지사 눈 못 감는다. 친일 반민족행위자 묘를 파내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일.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동차의 행렬이 가득 메운 국립 대전현충원 정문 앞에 피켓을 들고 소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친일군인이면서 애국지사를 탄압하고, 양민학살에 앞장섰던 김창룡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고 주장하는 대전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다. 민족문제연구대전지부와 평화재향군인회,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세상을바꾸는대전민중의힘 등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6일 오전 대전현충원 앞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김창룡, 안현태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이들의 이러한 김창룡묘 이장촉구대회는 벌써 15년째를 맞고 있다. 국립묘지법을 개정하여 반민족 반국가 사범들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고 촉구해 왔지만 여전히 법 개정은 되지 않고 있고, 반민족 행위자들은 애국지사 및 순국선열들과 함께 나란히 누워있다. 이날 대전현충원 정문에 모인 40여 명의 회원들은 현충일을 맞아 현충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가 만든 책자를 나눠주며 국립묘지법 개정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발언에

2016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수련회

2016년 6월 3일 1030

참가접수가 종료되었습니다

현충일, 국립묘지 안 떠나는 친일파들

2016년 6월 6일 1850

독립군 때려잡던 사람, 뇌물수수 혐의 징역형 받은 인물도 국립묘지에 ▲  서훈을 박탈당한 박성행의 묘. 지난 해 11월 이장했다. ⓒ 홍경표 관련사진보기 6일은 현충일이다. 이때가 되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일이 하나 있다. 대전국립현충원에는 친일·반민족 행위가 드러나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사라졌는데도 국립묘지를 떠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많이 있다. 정부가 애초 국립묘지 안장을 허투로 결정해, 정작 순국선열을 욕되게 하는 인물들도 있다. 그동안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가 친일·반민족 행위가 드러나면서 뒤늦게 서훈이 취소돼 이장된 사람은 여럿이다. 그런데 이장을 달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004년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던 서춘(1894∼1944)의 묘비가 이장됐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친일행위로 서춘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박탈한 지 8년만의 일이었다. 이장을 요구했지만 유족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이장을 거부한 때문이다. ‘서훈 박탈’에서 ‘묘지 이장’ 까지 최소 수 년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대전현충원 안장자 중 박성행(1892∼1950), 김응순(1891~ 1958), 박영회, 유재기(1995∼ 1949), 이동락(1890∼1969) , 강영석(1906~1991)은 친일행위가 드러나 2010년 또는 2011년 서훈이 박탈됐지만 묘 이장까지는 수 년이 걸렸다. 이중 강영석은 묘지는 그대로 남겨두고 묘비만 그의 부인인 신경애 명의로 바뀌었다. 그의 부인인 신경애(1907~1964)는 강영석의 부인으로 독립운동단체인 근우회 활동 등으로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친일행위가 드러나 서훈이 취소되자 부인의 안장 자격을 빌어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것이다. 대전국립현충원 관계자는 “부인인 신경애 여사와 함께 합장돼 있다”며

수유동에 새로운 근현대사 학습장

2016년 5월 30일 836

동학운동부터 4·19까지 근현대사기념관 지난 17일 개관 토요일인 지난 21일 오후 북한산 등반을 마친 주민들이 근현대사기념관을 찾아 상설전시실에서 역사 자료들을 관람하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1912년 일제강점기 시절 의암 손병희 선생이 국권 회복을 위해 세운 ‘봉황각’은 근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하나다. 천도교 지도자를 길러내던 이곳은 훗날 3·1 운동의 구상을 비롯해 운동의 주체로 활동하는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북한산 주변 자락은 봉황각을 비롯해 국립 4·19민주묘지, 순국선열 16위 묘역, 동요 ‘반달’을 작곡한 윤극영 선생 가옥 등 역사문화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지난 17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역사의 암울한 시기에 일어난 동학운동부터 3·1운동, 민족해방 이후 4·19까지 격동기를 시대별로 조명하기 위한 ‘근현대사기념관’이 개관했다. 지난해 1월 착공해 16개월간의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연 근현대사기념관은 대지 면적 2049㎡(620평)에 연면적 951.33㎡(약 290평)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1층에 상설·기획전시실과 강의실을 갖춰 전시물 관람뿐 아니라 세미나, 교육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기념관 건립에 들어간 예산 39억원은 서울시에서 부담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위탁 운영을 맡았다.   지하 1층 상설전시실은 세 구역으로 나누어 주제별로 전시한다. 외세의 침입을 막아 자주국을 세우기 위해 일으켰던 동학농민운동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4·19혁명까지의 역사에 시대별·사건별로 생생한 이야기를 입혔다. 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시대의 선구자들 역사에 디딤돌을 놓다’ 개관 특별전이 9월18일까지 열린다.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 초대 검사인 이준 열사와

다시 보는 국정교과서 문제 – 시민사회 움직임을 이어보다

2016년 5월 27일 1356

우리가 사는 세상 / 가능 사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가 내려진 지 7개월이 되어간다. 교육부는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은 채 역사 교과서 집필을 진행 중이다. 올해 3월 교육부는 초등학교 사회 국정교과서가 5 · 18민주화운동을 왜곡 서술했다는 의혹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2017년 3월이면,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역시 단일 배포된다. 학생들은 대한민국 역사를, 하나의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으로 접하고, 익히며, 외우게 된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가 낸 국정교과서 반대선언에 따르면, “국정화는 제2의 유신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 정부의 기조를 놓고 볼 때 국정화 추진은 형용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국정화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지난 7개월간 학교와 거리에서 시민사회는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대학교수들은 국정화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을 냈고, 한국역사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학회도 국정화를 공개 반대했다.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세대 구분 없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났고, 국정화 반대 서명에는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국정화 문제는 시민사회 대부분이 정부와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다 평가해도 과하지 않다. 작년부터 7개월간, 시민사회의 움직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었나. 잊혔을지 모를 그간의 노력을 사안별로 추렸다.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언제나 미래의 결정에 도움이 되기에. 1) 시위의 현장 – 2015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지난 9월 10일 교육부는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2017년 3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를 국정 도서로 배포하는 사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유동에 새로운 근현대사 학습장

2016년 5월 26일 713

동학운동부터 4·19까지 근현대사기념관 지난 17일 개관 토요일인 지난 21일 오후 북한산 등반을 마친 주민들이 근현대사기념관을 찾아 상설전시실에서 역사 자료들을 관람하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1912년 일제강점기 시절 의암 손병희 선생이 국권 회복을 위해 세운 ‘봉황각’은 근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하나다. 천도교 지도자를 길러내던 이곳은 훗날 3·1 운동의 구상을 비롯해 운동의 주체로 활동하는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북한산 주변 자락은 봉황각을 비롯해 국립 4·19민주묘지, 순국선열 16위 묘역, 동요 ‘반달’을 작곡한 윤극영 선생 가옥 등 역사문화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지난 17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역사의 암울한 시기에 일어난 동학운동부터 3·1운동, 민족해방 이후 4·19까지 격동기를 시대별로 조명하기 위한 ‘근현대사기념관’이 개관했다. 지난해 1월 착공해 16개월간의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연 근현대사기념관은 대지 면적 2049㎡(620평)에 연면적 951.33㎡(약 290평)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1층에 상설·기획전시실과 강의실을 갖춰 전시물 관람뿐 아니라 세미나, 교육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기념관 건립에 들어간 예산 39억원은 서울시에서 부담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위탁 운영을 맡았다.   지하 1층 상설전시실은 세 구역으로 나누어 주제별로 전시한다. 외세의 침입을 막아 자주국을 세우기 위해 일으켰던 동학농민운동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4·19혁명까지의 역사에 시대별·사건별로 생생한 이야기를 입혔다. 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시대의 선구자들 역사에 디딤돌을 놓다’ 개관 특별전이 9월18일까지 열린다.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 초대 검사인 이준 열사와

양심의 이름으로, 헤세

2016년 5월 24일 790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 <격변기 문호들을 찾아 떠나다> 전세계 문학 현장을 25년 누빈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의 새 연재 매주 만나는 세계 문학의 절정 “자유, 평화, 인도주의”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래된 질문을 <한겨레21>이 다시 묻는다. 야차 같은 정권의 그늘 아래 한반도 남쪽 민주주의는 갈수록 창백해지고 있다. 농민은 병실에 누워 있고, 노동자는 붉은 띠 두르고 하늘에 오른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상살이의 태반은 말글살이다. 사람들은 비정한 비언어의 세계에서 언어로 소통하고 언어로 환호하며 언어로 절규한다. 언어 없는 인간세를 상상할 수 없듯이, 언어의 힘을 불신하는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 문학이 ‘겨울공화국’의 혹한을 견디고 봄날을 꿈꾸며 삶의 근육을 다지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문학비평가 임헌영(75·사진)의 세계문학기행 연재를 이번호부터 싣는 까닭이다. 연재는 일본의 두 형제 이야기로 시작해, 유일한 한국인 이미륵에서 마침표를 찍을 참이다. 전쟁과 역사, 민중의 저항, 침략과 제국주의 반대를 열쇳말 삼아 세계문학의 ‘절정’이 차례로 소개된다. 작품의 현장을 두루 돌아본 저자의 안내에 따라 독자들 또한 시대를 읽고 자신을 해석하며 타인과 공존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재는 매주 이어진다. _편집자 [시작하는 글] 기획연재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 격변기 문호들을 찾아 떠나다 [연재] 1화 일본의 윤동주 일본의 톨스토이 [연재] 2화 춘원 이광수의 양부 일본의 괴벨스 [연재] 3화 위대하고 혼란스런 파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