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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일본,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연금수당 99엔 지급

2009년 12월 23일 496

일본,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연금수당 99엔 지급(ytn, 09.12.23)

日-美 핵 밀약 문서, 일본 전 총리 집서 발견

2009년 12월 23일 542

日-美 핵 밀약 문서, 일본 전 총리 집서 발견(뉴시스, 09.12.23)

日JC ‘침략전쟁 미화’ 대만 수학여행 추진-경향신문(07.06.28)

2007년 7월 4일 409

日JC ‘침략전쟁 미화’ 대만 수학여행 추진   침략전쟁을 미화한 애니메이션 DVD(야스쿠니 DVD·사진 오른쪽)를 제작해 물의를 빚은 일본청년회의소(일본JC)가 이번엔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해외연수를 기획해 파장이 일고 있다.   28일 일본 공산당에 따르면 시마바라(島原)JC는 청소년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아시아를 해방한 일본인의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대만 연수를 추진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수는 시마바리시 외에도 운젠(雲仙)·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시와 각 시교육위원회가 후원하고 있다.특히 일본JC는 연수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문제의 ‘야스쿠니 DVD’(제목 ‘긍지’)도 보게 할 계획이다. 이 DVD는 야스쿠니신사를 예찬하고 과거 침략전쟁을 자위의 전쟁, 아시아해방의 전쟁으로 왜곡하고 있다. 또 A급 전범을 판결한 도쿄재판을 두고 “승전국이 패전국을 일방적으로 심판한 복수 재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과 대만 식민지 지배에 대해선 “근대화를 위해 도로를 만들고 학교를 세웠다”라고만 말할 뿐, 가해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즉 일본JC가 기획한 이 연수는 학생들이 DVD를 시청한 후, 과거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아시아에서 얼마나 큰 업적을 남겼는지 직접 보고 체험하라는 의도가 깔려있다.실제 일본JC는 연수 안내문(왼쪽)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2차대전 후 일본의 근현대사 교육을 다시 돌아보고, 2차대전 중에 선조들이 가졌던 마음을 헤아려 일본인으로서의 ‘긍지’를 다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제목에 ‘여러분은 진정한 일본인의 모습을 알고 있나’라고 돼 있는 이 안내문은 시마바라 반도의 모든 중학교에 배포될 예정이다.이에 대해 일본 공산당은 “과거 침략전쟁은 정당하다는 것을 주입시키기 위한

[시론]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부쳐-‘중앙'(07.06.27)

2007년 7월 4일 522

[시론]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부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역사적 책임과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26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통과됐다. 1997년 처음 위안부 문제 관련 결의안이 미 하원에 제출된 이래 일본 측의 로비 등으로 여섯 차례나 무산된 끝에 드디어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됨으로써 다음달 중순 하원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결의안은 1월 31일 마이클 혼다 등 7명의 미 하원 의원들이 제출한 결의안으로 일본 정부에 대해 다음의 4개항을 촉구하고 있다. 첫째로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에 대한 공식적 인정ㆍ사죄 및 역사적 책임의 수용, 둘째로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총리의 공식 사과 권고, 셋째로 위안부들의 성 노예 및 인신매매 사실의 부정에 대한 공식적인 부인, 넷째로 현재와 미래 세대에 중대한 범죄 행위에 대한 교육 및 국제사회의 권고에 대한 이행 등이다. 이번 결의안이 제출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협의의 강제성을 증명할 자료가 없으며,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정부 차원의 사죄는 하지 않겠다”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방미를 앞두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여론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고노 담화의 계승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를 피력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방미기간 중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안한 느낌을 갖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강제연행에 대해서는 발언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와 함께 미 하원의 결의안 저지를 위해 거대 로비회사를 동원해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자료를

굿모닝 안중근, 메리크리스마스 안응칠

2009년 12월 23일 634

굿모닝 안중근, 메리크리스마스 안응칠(뉴시스, 09.12.23)

日극우세력, 야스쿠니 시위 대만 의원 고발

2009년 12월 23일 510

日극우세력, 야스쿠니 시위 대만 의원 고발(연합뉴스, 09.12.23)

북적대는 야스쿠니, 썰렁한 전몰자묘원-프레시안(07.06.27)

2007년 7월 4일 673

북적대는 야스쿠니, 썰렁한 전몰자묘원   [조선학교 이야기②]귀화해서 편하게 살라고? 지난 25일 일본 도쿄의 민족학교인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도쿄도 정부의 운동장 부지반환 소송에 맞서 싸운 결과 운동장을 싯가의 1/10인 1억7000만 엔(약 14억 원)에 사기로 했는데, 남측에서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모금활동을 펼쳐 2개월 동안 1억여 원이라는 금액을 전달한 것이다.사실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총련계 학교’라는 등, 일본 정부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는 등의 짧은 해설로는 부족하다. 이 학교에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다. 또 재일조선인 사회의 역사는 모국인 남과 북의 역사와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편집자> 재일조선인 밀집 거주 지역에 쏟아진 미군 ‘불’ 폭탄                         ▲ 도쿄 대공습 당시 화염에 휩싸인 도쿄시내.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자리 잡은 곳은 일본 도쿄 남동쪽의 고토(江東)구 에다가와(枝川). 1940년 일본이 올림픽을 추진하면서 도쿄도 정부는 조선인들을 이 곳으로 내몰았다. 당시 이 지역은 허허벌판 황무지에 쓰레기 매립장이 있던 곳이다. 또 고토구와 바로 옆의 주오(中央)구는 일본 군함을 만들고 수리하던 조선소와 군수기지가 밀집해 있던 곳으로 일본에 징용돼 온 조선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던 곳이기도 했다.이곳은 특히 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의 최대 피해지이기도 하다. 이일만(63) 도쿄 조선인강제연행 진상조사단 사무국장은 “도쿄 대공습 당시 조선인이 적게는 3000명, 많게는 1만 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대공습 당시 사망자는 10만여 명인

“산시성 살던 12세 소녀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중앙'(07.07.04)

2007년 7월 4일 486

“산시성 살던 12세 소녀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12세 소녀 위안부, 일본군 사령관 명령에 따른 위안소 설치, 공자에 제사 지내는 문묘대전(文廟大殿)에 위안소 설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에 관해 중국이 처음 내놓은 보고서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3일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변호사협회와 법률구조기금회 등으로 구성된 위안부 조사위원회가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산둥(山東).하이난(海南).윈난(雲南).랴오닝(遼寧).지린(吉林)성 등에서 조사를 진행해 1단계 보고서를 만들었다.이 단체들은 반관반민 성격이다. 따라서 1972년 일본과 수교하면서 일제 침략에 대한 배상권을 포기한 뒤 그동안 민간의 손해배상 요구 노력을 묵인해 온 중국 정부의 의중이 이번 보고서 발표 과정에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이번 조사에서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온 47명의 생존 위안부 외에도 산시(山西)와 하이난성에 각각 16명과 1명의 위안부가 생존 중인 사실이 확인됐다. 산시성에 사는 위안부 출신 여성 중 한 명은 겨우 12세에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로 고초를 겪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원회는 일본군들이 동향회 회관이나 주택뿐 아니라 심지어 윈난성 텅충(騰沖)현에서는 공자의 사당인 문묘대전 건물에 위안소를 운영해 온 사실도 있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안후이(安徽)성에 주둔하던 일본군 117사단장의 전범 재판 기록을 뒤져 차오(巢)현에서 중국인과 한국인 여성 위안부 20명으로 위안소를 운영했고, 동북 지역에 위안소를 설치하라는 명령을 직접 내린 사실도 밝혀냈다.일본군이 패전 뒤에도 위안부 시설을 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고서는 국민당의 염석산(閻錫山) 장군 휘하에 ‘보안 제6대대’로 편입된

[뉴시스아이즈]신동립의 잡기노트-서거 100년…다시보는 ‘영웅’ 안중근

2009년 12월 23일 571

[뉴시스아이즈]신동립의 잡기노트-서거 100년…다시보는 ‘영웅’ 안중근(뉴시스, 09.12.22)

중-일 ‘역사인식’ 끝내 평행선

2009년 12월 23일 394

중-일 ‘역사인식’ 끝내 평행선(한겨레신문, 09.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