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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교해설서 독도 영유권 지침 내일 발표
일본 고교해설서 독도 영유권 지침 내일 발표(ytn, 09.12.24)
日, 내일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발표‥독도 언급?
日, 내일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발표‥독도 언급?(MBC, 09.12.24)
[야스쿠니 캠페인] 누가 오키나와를 기념하는가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미군이 오키나와 본섬에 상륙한 것은 1945년 4월1일이다. 1942년 미드웨이에서 일본 해군에 대승을 거둔 미군은 사정없이 일본군을 몰아붙였다. 1944년 4월 사이판이 깨졌고, 한 달 뒤 다시 괌이 깨졌다. 이듬해 1월 필리핀이 함락됐고, 3월엔 이오지마가 떨어졌다. 파죽지세였다. 오키나와의 중심 나하시에서 서쪽으로 10km쯤 떨어진 게리마열도에 상륙한 것은 그해 3월26일이었다. 오키나와 본섬에 주둔한 일본군 32군 본대는 곧 오키나와에 몰아칠 미군에 대비해 전원 옥쇄를 각오하고 있었다. 미·일 두 나라 군대 64만 명이 동원된 석달간의 처절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 오키나와 요미탄촌에 있는 ‘치비치리가마’에서는 지금도 사람의 유골이 발견된다. 이곳에서 83명이 집단 강제사 당했다. 아이의 머리를 으깬 아비… 미군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은 오키나와 본섬 서남쪽 해안 마을 요미탄촌 앞바다였다. 마을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본군은 주민들을 상대로 “미군이 오면 큰 고통을 받다가 죽을 것”이란 말을 되풀이 가르쳤다. 그들은 “여자들은 강간을 당한다”고도 말했고, “천황의 명을 따라 수치를 당하지 말고 깨끗이 최후를 마친다”는 전진훈(戰陣訓)도 가르쳤다. 일본군은 오키나와인을 믿지 않았다. 오키나와 주둔 32군(총병력 8만6400명) 사령관 우시지마 미쓰루는 “오키나와어로 말하는 사람은 간첩으로 처벌한다”는 군회보를 공포하기도 했다. 요미탄촌 주민들은 산속 깊은 곳의 동굴로 숨어들었다. 사람들은 그 동굴을 ‘치비치리가마’라고 불렀다. ‘가마’는 오키나와말로 동굴이라는 뜻이다. 요미탄촌에서 만난 치바나 쇼이치(59)는 “그날 할아버지가 미군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딸(치바나의 이모)과 함께 살고
한(恨)의 섬-오키나와를 다녀와서
동선희(선임연구원) 지난 6월 21일부터 3박 4일 동안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 이희자 선생과 함께 강인창 어르신(강제동원피해자: 86세, 오키나와전 당시 조선인 군부(軍夫))을 모시고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작년 이맘때도 2박 3일간 여정으로 강인창 어르신의 통역을 맡은 적이 있으니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작년보다는 일정에 약간 여유가 있어 작년에 가지 못한 곳도 두루 둘러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구면인 여러분들과 1년 만에 재회의 기쁨도 나누었으며 새로 만난 분들과 친교도 다질 수 있었다. 1945년 6월의 오키나와전은 태평양전쟁 기간 벌어진 가장 처절한 전투 중 하나일 것이다. 방어하는 입장이었던 일본군, 상륙작전을 벌인 미군, 전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주민들이 총 25만 여명이나 죽음을 당했으니 오키나와는 전쟁의 참상을 증언해 주는 역사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오키나와는 오랫동안 류큐(琉球)라는 독립국으로 존속하였으며, 17세기 초에 가고시마(鹿?島)의 영주에게 복속되었고, 명치유신 이후에 본격적으로 일본에 편입된 곳이다. 언어, 풍습, 사람들의 이름과 생김새 등이 일본 본토와는 상이하였으며 지금도 다소의 차이가 있다. 물론 고유 언어를 쓰는 사람은 이제 없는 것 같지만… 강인창 어르신은 바로 이 오키나와전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분이다. 경상북도에서 약 3,000명이 오키나와에 끌려 와서 일본군의 명령으로 군량미나 실탄 같은 장비를 배에서 내려 동굴로 옮기는 노역에 종사했고, 이 분들 중 1,2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작년 6월 강인창 어르신은 자신이 어떻게 오키나와로 끌려왔는지, 전쟁 당시 어떻게 살아남아
동해·독도 지킬 사이버 외교관 탄생
동해·독도 지킬 사이버 외교관 탄생(서울신문, 09.12.24)
동해·독도 오류 시정 원어민 교사 퍼나리씨 국제서한 공모 대상
동해·독도 오류 시정 원어민 교사 퍼나리씨 국제서한 공모 대상(한국일보, 09.12.23)
[야스쿠니 캠페인] 야스쿠니, 내 만화의 정면승부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고경일(39) 상명대 만화학과 교수는 풍자만화가다. 그동안 그가 그려온 만화들을 보면, 그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7년 동안의 일본 유학 시절에는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를 종이 위에 옮겼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빽빽이 들어선 집들과 구불구불한 오르막 계단으로 연상되는 산동네 골목들을 자주 그렸다. 좀처럼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 산동네 오르막 계단에 앉아 소주 병나발을 부는 노인의 모습에선 사라져가는 것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파스텔톤의 그의 펜 터치는 동화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 일본 유학 시절 한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이 떼어진 뒤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만화를 그려온 고경일 교수. 그가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만화로 그리고 있다. “안전을 위해 작품 전시를 불허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까지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다. 일본 유학 시절 그의 펜 끝이 겨냥한 것은 오른쪽으로 치닫는 일본 사회였다. 고 교수는 “일본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입에 담지 않으려 하는 세 가지 금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세 가지 금기란 뭘까. 첫째 종교, 둘째 우익, 셋째 천황이다. 무슨 뜻일까?“대학원 시절 진행했던 한 전시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 교수가 말했다. 1995년, 교토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미대 연합전시회였다. 당시 일본은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추종하는 옴진리교 광신도들이 일으킨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는
[야스쿠니 캠페인] 야스쿠니, 내 만화의 정면승부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고경일(39) 상명대 만화학과 교수는 풍자만화가다. 그동안 그가 그려온 만화들을 보면, 그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7년 동안의 일본 유학 시절에는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를 종이 위에 옮겼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빽빽이 들어선 집들과 구불구불한 오르막 계단으로 연상되는 산동네 골목들을 자주 그렸다. 좀처럼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 산동네 오르막 계단에 앉아 소주 병나발을 부는 노인의 모습에선 사라져가는 것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파스텔톤의 그의 펜 터치는 동화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 일본 유학 시절 한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이 떼어진 뒤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만화를 그려온 고경일 교수. 그가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만화로 그리고 있다. “안전을 위해 작품 전시를 불허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까지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다. 일본 유학 시절 그의 펜 끝이 겨냥한 것은 오른쪽으로 치닫는 일본 사회였다. 고 교수는 “일본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입에 담지 않으려 하는 세 가지 금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세 가지 금기란 뭘까. 첫째 종교, 둘째 우익, 셋째 천황이다. 무슨 뜻일까?“대학원 시절 진행했던 한 전시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 교수가 말했다. 1995년, 교토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미대 연합전시회였다. 당시 일본은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추종하는 옴진리교 광신도들이 일으킨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는
독도 지킴이 ‘파란눈 외교관’ 떴다… 경남 화개중 원어민 교사 퍼너리씨 동해 오류시정 국제서한 공모 대상
독도 지킴이 ‘파란눈 외교관’ 떴다… 경남 화개중 원어민 교사 퍼너리씨 동해 오류시정 국제서한 공모 대상(국민일보, 09.12.23)
日, 韓 정신대 피해자에 연금수당 99엔 지급
日, 韓 정신대 피해자에 연금수당 99엔 지급(연합뉴스, 09.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