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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브리핑] 日 야스쿠니 공부모임 발족-부산일보(06.11.16)
[외신브리핑] 日 야스쿠니 공부모임 발족 일본 집권 자민당의 최대 지지기반인 ‘일본유족회’가 15일 A급 전범의 분사를 포함한 야스쿠니신사의 향후 운영방식을 논의하는 공부모임을 발족했다. 일본유족회는 이날 열린 상무이사회에서 회장인 고가 마코토 전 자민당 간사장의 제안에 따라 공부모임을 발족,야스쿠니신사를 둘러싼 현안 전반을 협의하기로 했다.
英 엘리자베스2세 1975년 야스쿠니 문제로 외교일정 변경-쿠키뉴스(06.11.16)
英 엘리자베스2세 1975년 야스쿠니 문제로 외교일정 변경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75년 5월 영국 왕실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야스쿠니 신사가 걸림돌이 돼 외교 일정을 변경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6일 보도했다.신문은 영국 정부가 14일 공개한 외교기밀문서를 인용,엘리자베스 여왕이 방일 당시 일본 측의 요청으로 무명용사 추도시설인 ‘지도리가후치 전몰자묘원’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취소됐다고 전했다. 당시 야스쿠니 신사의 국영화 법안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정세가 어지럽게 돌아가자 일본 외무성 측이 방문하지 않는 게 좋다고 제안,영국 정부가 일본의 정치 문제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여왕은 대신 요코하마시 호도가야구에 있는 2차대전 당시 영국연방 전몰자묘지를 찾았다.태평양 전쟁 당시 유족을 찾지 못한 전몰자들이 묻혀있는 지도리가후치 묘원은 야스쿠니 신사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1959년 설립된 묘원은 최근 국립추도시설을 생각하는 모임 등에 의해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 할 수 있는 국립추도시설로 거론되고 있다.1975년은 야스쿠니 신사를 국가가 관리하도록 하는 ‘야스쿠니 법안’ 제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오랜 공방이 절정에 이른 때였다. 일본 우익세력은 1969년부터 도쿄도의 종교법인인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실이 관할하는 특수법인으로 만들어 야스쿠니의 위상을 높이려는 입법을 추진했으나 1975년 야당의 반대로 결국 법안이 폐기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관순열사 초등교과 빠져 반발 확산
유관순열사 초등교과 빠져 반발 확산(뉴시스, 10.02.25)
일제, 한인 5800명 남양군도 강제징용
일제, 한인 5800명 남양군도 강제징용(경향신문, 10.02.25)
日 창가학회, 야스쿠니 참배 반대-한국일보(06.11.19)
日 창가학회, 야스쿠니 참배 반대 연립 공명당 모체… 정계 파장 일본 연립여당 공명당의 모체인 종교단체 창가학회(創價學會)의 신임 회장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지난 17일 창가학회 제6대 회장으로 취임한 하라다 미노루(原田稔)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갖지 않으며 교전권을 부인하는) 9조의 평화헌법은 견지해야 한다”며 “(개헌은) 광범위한 국민적 논의를 거쳐 진행해야 하며, 졸속적으로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아베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에 대해서도 “헌법 9조의 평화주의를 견지할 것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서는 “정교(政敎) 분리원칙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참배를) 자중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참배 문제와 관련, 그 동안 공명당이 자민당에 ‘신중 대응’을 요청한 적은 있지만 공명당의 존립 기반인 창가학회 회장이 직접 나서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일본 정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일본 일련정종(日蓮正宗) 계통의 신흥 불교로 신도가 900만명이 넘는 창가학회는 공명당은 물론 자민당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거대 정치 세력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첫 관문이었던 중의원 가나가와(神奈川)16구와 오사카(大阪)9구 보궐선거에서 창가학회와 공명당의 지원에 힘입어 낙승하는 등 1990년대 중반 이후 자민당 정권 유지의 관건이 되고 있다.한편 제1야당인 민주당은 일본 정부가 ‘보유는 하고 있지만 행사는 헌법상 용인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집단적자위권’을 허용하는 내용의 기본정책을 마련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는 제대로 이뤄지나?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가 다 잘됐다고 생각합니까?”“공적심사위원들이 한 것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혹시 잘못된 걸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근데, 그건 공적심사위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일이기 때문에…” ▲ 10월 23일 국가보훈처 국정감사 때 차명진 의원이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 국회영상회의록 10월 23일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 차명진 의원과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이 주고받은 문답이다. 차명진 의원은 “3·1운동과 관련 건국훈장 애족장 및 건국포상 수여자 1526명 중 178명이 공적심사 기준보다 높이 서훈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유철 처장은 “공적심사위에서 결정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지금까지 훈격 재심사를 요청한 독립유공자 유족은 모두 27명.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모두 “재심사 불가”라고 통보했을 뿐이다. 이유는 하나 같이 “공적심사위에서 결정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유족들 “심사에 불만”- 보훈처 “공적심사위에서 공정하게 심사”독립유공자의 서훈 등급을 결정하는 곳은 ‘공적심사위원회(이하 공적심사위)’다. 전문가 49명으로 이루어진 공적심사위는 제1공적심사위와 제2공적심사위로 나뉘어진다. 각 공적심사위 간에 이견이 있을 때는 합동심에서 최종적으로 공적을 심사한다.포상 훈격은 3·1운동, 광복군, 의병 등 12개 분야로 나뉘어 보통 수형기간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3·1운동을 하다가 4년 이상의 형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이, 8년 이상이면 독립장(3등급)이 추서되는 식이다.(훈격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과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으로 나뉜다.)여기에는 수형기간뿐만 아니라 종합평가라고 할 수 있는 공적 심사 준칙이 포상 훈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중에서 문제가 되는 준칙은 ‘독립운동의 공헌과
총알받이, 자살강요…짐승보다 못한 처우 日강제징용
총알받이, 자살강요…짐승보다 못한 처우 日강제징용(뉴스한국, 10.02.25)
日 남양군도 5800명 징용 첫 확인
日 남양군도 5800명 징용 첫 확인(서울신문, 10.02.26)
[영남대학교]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쥬’ 본산, 경주 최부잣집 사랑채 복원-연합뉴스(06.11.27)
[영남대학교]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쥬’ 본산, 경주 최부잣집 사랑채 복원 35년 만에 원형 복원, 28일 준공식영남대, 한국문화체험 및 전통문화교육 ‘산실’로 활용“흉년에는 곳간을 열어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를 후원하다. 해방 이후에는 인재육성을 위해 전 재산과 가옥까지 영남대학교 설립에 희사하다.”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 지도층의 의무)’의 본산, 경주 최씨 ‘교촌가(校村家)’의 고택 사랑채가 35년 만에 원래의 모습으로 부활한다.영남대(총장 우동기)는 28일 오전 11시, 경주 교동에 위치한 교촌가 고택에서 ‘경주 최씨 정무공파 교촌가 사랑 준공식’을 갖는다. 이날 준공식에는 지역 유림과 최씨 문중 인사를 비롯해 경주시, 문화부, 문화재청, 박물관, 문화재연구소, 문화단체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신라시대 요석궁이 있던 자리에 위치한 교촌가 고택은 300여년의 세월을 간직한 중요민속자료 제27호로, 1971년 11월 화재로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모두 잃었다. 그러나 그동안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방치되어오다가 지난해부터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복원사업이 추진돼 5억3천여만 원의 예산이 투자된 결과, 이제 큰 사랑채만이 옛 모습을 되찾게 됐다.교촌가 사랑채는 많을 때는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정도로, 누구나 머물다 갈 수 있었던 열린 공간으로 유명하다. 구한말에는 의병장 신돌석 장군에게 피신처를, 면암 최익현 선생에게는 의병 수백 명과 함께 며칠동안 머물 곳을 제공했었으며, 육당 최남선과 위당 정인보도 1년 이상 이 곳 사랑채에 머물며 ‘동경지’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 의친왕 이강이 엿새를 머물며
말 많던 부산 영도다리 “원형 살려 재가설” 결정-‘중앙'(06.11.25)
말 많던 부산 영도다리 “원형 살려 재가설” 결정 107층 규모의 제2롯데월드 건설로 6년째 존폐 논란이 됐던 부산의 상징 영도대교가 도개교(큰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상판이 들어 올려지는 다리)로서의 옛 모습이 보존된다.부산시 문화재위원회는 23일 영도대교를 지방문화재(부산시 지정 기념물 56호)로 지정,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되 늘어날 교통량을 감안해 기존 4차로를 6차로로 넓혀 재가설키로 의결했다.문화재위원회는 또 다리 상판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구경하는 전망대 역할을 했던 다릿목의 석축과 이곳에 세워진 다리 개통 기념비 역시 역사적.건축사적 보존 가치가 높아 보존키로 했다.부산시 관계자는 “다음달 14일 영도대교 재가설을 위해 본격적 공사에 들어간다”며 “2009년 말까지는 다리가 완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예전과 달리 특별한 기념일 등에만 상징적으로 상판을 들어 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이 다리는 건축주인 롯데쇼핑이 재가설한 뒤 부산시에 기부채납하도록 돼 있다. 영도대교는 1934년 일제에 의해 도개교로 개통돼 하루 7차례씩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1000t급 이상의 배가 다리 사이를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지나가는 차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도개 횟수가 점차 줄어들어 60년 초부터는 하루 두 차례로 감소했으며 66년 9월 1일 고정교로 바뀌었다.2000년 들어 왕복 4차로가 너무 좁아 아예 철거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부산 명물을 살려야 한다”는 시민의 여론이 들끓어 존폐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문화재청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보존하라고 권고했고, 이에 따라 부산시문화재위원회가 1년여간 회의를 거듭한 끝에 ‘원형을 살린 재가설’이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