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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연합뉴스(06.12.01)
<한일학자, 독도문제 공동 저술>(종합) 김병렬ㆍ나이토 교수 공저 `한일전문가가 본 독도’ 양국서 발간 자국중심주의적 사관ㆍ논리 탈피..실존사료를 있는 그대로 실증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기자 = 독도문제에 대해 한일 학자가 함께 집필한 책이 나왔다.한국과 일본의 독도문제 전문가인 김병렬 국방대 교수와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시마네(島根)대 명예교수가 독도문제를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객관적으로 접근한 `한일전문가가 본 독도’를 펴냈다. 한일 양국의 학자가 독도문제 연구서를 공저 형태로 출판한 것은 처음이다. 조만간 일본에서도 발간된다.독도에 관한 책이나 논문은 한일 양국에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각각 자국 중심주의적인 사관이나 논리로 일관해 상대방 쪽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거나 견강부회라고 폄하하기 일쑤였다.`한일전문가가 본 독도’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제로 있는 확실한 사료를 있는 그대로 실증’하는 데 치중했다. 한국인 저자라고 한국중심주의적으로, 일본인 저자라고 일본중심주의적으로 기술하지 않으면서도 지금까지 간과돼 왔던 부분에 대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예를 들어 한국측은 고문헌 상에 나타나는 우산도를 독도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우산무릉이도(于山武陵二島)’라고 본도인 무릉도를 뒤에 쓰고 부속도인 우산도를 앞에 쓴다든지, 우산도에 사람이 살았다든지 하는 모순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게 해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각종 기록에서 우산도가 변천돼 가는 과정을 추적, 우산도가 명백히 독도임을 입증하고 있다.또 지금까지 안용복의 활동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기록이 서로 달라 일본 학자들은 안용복의 활동이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는 안용복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 책은 안용복 활동에 대한
‘한일 전문가가 본 독도’-연합뉴스(06.12.01)
‘한일 전문가가 본 독도’ 김병렬 국방대 교수와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시마네(島根)대 명예교수가 공동 저술한 ‘한일전문가가 본 독도’.
광주서 친일인명사전 시민 보고대회
광주서 친일인명사전 시민 보고대회(연합뉴스, 10.03.01)
전국 곳곳서 91돌 3.1절 기념행사 펼쳐져(종합)
전국 곳곳서 91돌 3.1절 기념행사 펼쳐져(종합)(연합뉴스, 10.03.01)
새역모 전 회장, 아베식 교육 지지단체 출범-ytn(06.10.23)
새역모 전 회장, 아베식 교육 지지단체 출범 역사왜곡으로 비판받은 일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전임 회장 등이 중심이 돼 아베 총리의 교육개혁을 지지하는 모임을 발족했습니다.새역모 회장 출신 야기 히데츠구 다카사키경제대학 교수는 ‘일본교육재생기구’를 설립하고 아베 총리의 교육개혁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중학교와 고교 교과서를 비롯한 교재 제작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아베 정권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기존 교육기본법에 ‘애국심’을 명문화하는 등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日 극우 후쇼샤 교과서 채택율, 수년새 7배 가까이 급증-노컷뉴스(06.10.27)
日 극우 후쇼샤 교과서 채택율, 수년새 7배 가까이 급증 일본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만든 후쇼샤 역사교과서 채택률이 최근 수년사이에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외교부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후소샤 역사교과서 채택율은지난 2001년 일본의 만 천 191개 중학교 가운데 11개 중학교가 채택해 채택율이 0.098%에 못미쳤다.그러나 지난해에는 1만 960개 중학교 가운데 81개교가 후쇼샤 교과서를 채택해채택율이 0.739%로 급증했다.
민족문제硏 일제시대 자료 역사관 개관
민족문제硏 일제시대 자료 역사관 개관(연합뉴스, 10.02.28)
전국 곳곳서 91돌 3.1절 기념행사 열려
전국 곳곳서 91돌 3.1절 기념행사 열려(이뉴스투데이, 10.03.01)
“납치 비난하는 일본, 강제징용은 왜 얘기않나?”
오마이뉴스 박철현 기자 ▲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도쿄지부(회장 조한철)는 단체 설립 25주년을 기념해 도쿄대학의 강상중 교수의 특별강연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 박철현 “지금 일본에서 북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비판을 나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북핵, 납치문제를 들면서 무조건 북한을 비판하고 있는 여론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재일동포들이 과거에 일본땅에 끌려온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냉전시대의 납치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한국의 햇볕정책을 동북아시아라는 틀 속에서 평가해야 하며, 나는 이 햇볕정책이야 말로 6자회담에 큰 역할을 담당해 왔고, 또 앞으로도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일본의 탈식민/제국주의 대표적 논객이자 평화적인 동북아시아 공동체 건설이론의 1인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일본 미디어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도쿄대학의 강상중(56) 교수가 최근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세 및 일본내의 북한비판 여론등에 대해 자신이 품어왔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았다. 11월 25일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도쿄지부(이하 OKTA Tokyo. 회장 조한철)가 단체 설립 25주년 기념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신주쿠 오쿠보에 위치한 아스카 신용금고의 15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7층 홀에는 강연시작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강연이 시작된 오후 3시에는 200여명의 청중으로 가득찼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재일의 역할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한 강상중 교수는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동북아시아의 평화, 6자회담, 납치문제, 햇볕정책등을 1시간에 걸쳐 강연했다. “동북아시아는 지금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김성수와 사이토 총독의 부적절한 만남-오마이뉴스(06.11.20)
김성수와 사이토 총독의 부적절한 만남 [김성수 집안 재산 축적기 ④]경성방직은 어떻게 살아났나 개항과 국권침탈 이후 농업으로 자본을 축적한 조선 지주계급의 상당수는 일제시대에 자본가 겸 지주가 되거나 혹은 자본가로 전환하였다. 김성수 집안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 집안은 1920년대 이후 지주 겸 공업자본가로 변신했다.1910년대 중반 일본에서 돌아온 김성수는 방직회사 설립을 의욕적으로 준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호황 속에서 일본의 섬유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개항 이래 김성수 집안은 일본의 동향에 안테나를 맞추고 있었다.와세다대 출신의 젊은 재원(才媛) 김성수(당시 28세)의 의욕적인 준비 끝에 경성방직(지금의 주식회사 경방)은 1919년에 일제 당국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다. 창립총회는 1919년 10월 5일 명월관의 지점인 태화관에서 열렸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경성방직 ▲ 경성방직 창립총회가 열린 명월관 지점 태화관. ⓒ <경방 80년> 설립 당시의 자본금은 100만원(圓)이었고, 제1회 납입주금(納入株金)은 25만원이었다. 실질적인 사업 밑천은 25만원이었던 셈이다. 사장에는 친일파 귀족인 박영효(철종의 사위, 1861~1939년)가 임명되었다. 김성수는 취체역(이사)을 맡았다. 실질적인 책임자인 김성수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대신 박영효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갑신정변(1884년) 이후 일본에 체류할 때에 야마자키로 개명한 바 있는 박영효는 동학농민전쟁(1894년) 이후 제2차 김홍집 내각(친일내각) 하에서 내무대신을 지냈고, 1907년에는 이완용 내각의 궁내대신이 되었으며, 일제 강점 이후에는 후작·중추원 고문·일본귀족원의원이 된 인물이다. 그는 경성방직 초대 사장일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초대 사장이기도 하다.박영효가 경성방직 사장으로 추대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