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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성윤환 “우리 친일, 프랑스 나치반역과는 달라”

2009년 11월 18일 492

성윤환 “우리 친일, 프랑스 나치반역과는 달라”(뷰스앤뉴스, 09.11.12)

[단독]美, 한일합방 과정 日에 천문학적 재정지원-쿠키뉴스(07.04.26)

2007년 4월 26일 1125

[단독]美, 한일합방 과정 日에 천문학적 재정지원  [쿠키 사회] 1910년 경술국치에 미국이 적극 개입하고 일본에 천문학적인 재정지원을 했다는 사료가 책으로 공개됐다.서울대 출판부는 25일 미국의 재야 사학자 캐롤 카메룬 쇼(Carole Cameron Shaw·61·여·작은 사진)의 저서 ‘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외세에 의한 한국 독립의 파괴·큰 사진)’를 발행했다.책은 1901년부터 미국의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묵인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도서관과 미 국회도서관 등에서 발굴한 이 사료들은 1900년대 초 한·중·일에서 근무했던 미국 공사가 루스벨트 대통령 및 국무장관과 한국 정책을 협의한 편지와 문서, 보도 문건 등이다.특히 일본이 1904년 러·일 전쟁을 앞두고 루스벨트 대통령 주선으로 미·영의 대기업들로부터 전비 차관을 받은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쇼씨는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앞장서 앤드류 카네기의 철강회사, 제이피 모건 등 미 대기업을 통해 일본의 전쟁비용 약 7억엔(현재 14조원 상당)을 조달했다는 사실을 ‘강철왕’ 카네기의 편지 등을 통해 확인했다. 그는 또 미국이 1905년 러·일 전쟁 처리를 위한 포츠머스 회담에서 한국과 중국을 배제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도 조약 참여자들의 개인문서를 통해 밝혀냈다.학계에서는 쇼의 책이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 과정에 미국 정부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미국측 원본자료를 이용해 밝혀낸 최초의 서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은 그 동안 미·영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용인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쇼의 연구결과로 미국이 인정한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이 부도덕하고 위법한 것이었다는

日 아베 종군위안부 ‘우회적 사과’-노컷뉴스(07.04.25)

2007년 4월 25일 361

日 아베 종군위안부 ‘우회적 사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방문을 앞두고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또 다시 사과했다.아베 총리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24일 미 CNN과 가진 회견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20세기는 수많은 인권침해가 행해진 시대로, 일본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 뒤, “위안부들에게는 몹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또 함께한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도 “같은 여성으로서 위안부 분들에게 정말로 딱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뒤, “남편도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코이즈미 전(前) 총리가 지지율을 위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지적한데 대해, “코이즈미 전 총리 참배는 지지율과는 관계가 없으며 명복을 빌기 위한 참배였다”고 반박했다.아베 총리는 이와 함께 “지지율을 위해 참배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모욕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참배에 대해서는 “외교 문제가 된 이상, 가고 가지 않고를 밝히지는 않겠으며, 이는 마음의 문제”라고 말하며 직접적 언급을 회피했다.한편 아베 총리는 26일 미국을 방문하며, 27일에는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문제 등 양국간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형은 독립군자금 조달, 동생은 ‘방패막이’ 친일

2009년 11월 18일 619

형은 독립군자금 조달, 동생은 ‘방패막이’ 친일(한겨레신문, 09.11.12)

“학자로서 시대에 진 빚을 갚고 싶었다”

2009년 11월 18일 812

친일인명사전 발간 민족문제연구소 이용창 책임연구원 경향신문 김희연 기자 ..“공부하는 사람들은 빚진 게 많아요. 1980년대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책임감이라고 할까요, 그 복잡한 와중에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축적한 지식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죠. 후배들이 좀 더 나은 여건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일이었어요. 절대 1차 자료만을 원자료로 삼지 않았습니다. 반민특위 자료나 증언·평전·회고록 등도 마찬가지였죠. 2차, 3차 사료들을 찾아내 따지고 또 따졌으니까요. 선..<기사 발췌> “학자로서 시대에 진 빚을 갚고 싶었다”(경향신문, 09.11.17)

日정부 ‘난징 학살’ 시인-‘문화'(07.04.25)

2007년 4월 25일 422

日정부 ‘난징 학살’ 시인 중의원 답변… “희생자수는 단정 못해”   일본 정부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난징대학살(南京大虐殺)을 공식 시인했다.그동안 중국과 일본 양국의 역사문제에 있어 논쟁거리를 제공해온 난징대학살에 대해 일본이 그 책임을 시인함에 따라 두 나라가 지난해 말부터 가동한 ‘중·일역사공동위원회’의 논의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와 함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이달 초 방일을 계기로 뚜렷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양국 간 해빙무드가 ‘역사 화해’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심을 끌고 있다.일본 정부는 24일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 중의원 무소속 의원의 대정부질문에 대해 “1937년 일본군의 난징 입성 후 비전투 인원에 대한 살해와 약탈행위 등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공식 채택하기로 결정했다고 중국의 관영 중궈신원왕(中國新聞網)이 이날 일본 언론들을 인용 보도했다. 답변서는 “그러나 구체적인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어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중·일전쟁 당시인 1937년 일본군은 난징을 공략한 뒤 일반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다. 희생자 수와 관련, 2차대전 후 도쿄(東京)에서 열린 전범재판에서는 최소 20만 여명으로 제시됐었으나 일본 정부와 학계에서 이를 부인하는 발언을 해왔다. 일부 일본학자들은 난징대학살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피해 정도와 규모 등을 놓고서는 중국 학자들과 현격한 견해차를 노정하고 있다.이에 중국 정부와 언론 등에서는 난징대학살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이 그 역사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일 때만 아시아와 세계의 진정한 일원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광적 벚꽃 사랑에 국수주의 숨어 있나-주간동아(07.04.25)

2007년 4월 25일 458

광적 벚꽃 사랑에 국수주의 숨어 있나     아무리 봐도 일본의 새해는 1월이 아니라 4월 초 ‘하나미(花見·벚꽃놀이)’와 더불어 시작되는 듯하다. 온 나라가 들떠서 하나의 꽃이 피기만을 고대하고 개화를 계기로 모든 것을 일신하기 때문이다.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을 즐기기 위해 나선 벚꽃 군락지에서는 아침부터 자리 맡기가 성행한다. 모든 학교가 개학하고 신입사원 입사식이 일제히 열리는 것도, 관청의 회계연도 시작도 벚꽃이 피는 4월부터다. 벚꽃이 지고 나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벚꽃 전선의 북상과 함께 꽃을 따라 북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이런 풍속도를 보며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일본 기자의 글이 떠올랐다. 남아프리카의 잡지기자가 도쿄의 하나미를 본 소감을 “외부인이 스며들 수 없는 ‘부족(部族)적’ 축제에 가깝다”고 했다며 약간은 자조적으로 쓰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부족’이란 아프리카 부족처럼 집단 불문율과 집단 자의식으로 뭉친, 시민사회로 발전되지 않은 폐쇄집단을 말한다. 안에서 보자면 공동체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모습을 객관화해 보려는 시각이 재미있어 그 기사를 오려놓았다.도쿄에서도 벚꽃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 야스쿠니신사와 지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역 부근이고, 도쿄의 벚꽃 개화를 알리는 기준수(樹)가 야스쿠니신사에 핀 세 그루의 벚꽃이란 점을 알고 나면 더욱 벚꽃은 일본인들의 정서와 정체성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든다.올해 들어 일본에서는 벚꽃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TV 광고가 부쩍 늘었다. 1월에서 3월에 시작한 TV 광고만 31가지로 지난해의 2배, 5년 전의 5배에

친일인명사전 헌정식

2009년 11월 16일 1062

민족문제연구소 친일문제연구의 선구자 고 임종국 선생과 친일청산운동에 평생을 바친 고 조문기 선생께 친일인명사전을 바치는 헌정식을 <아래>와 같이 진행합니다. 두 분의 높은 뜻을 기리는 소중한 자리에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래> 때 : 2009년 11월 22일(일) 곳: 고 임종국 선생 묘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신덕리 산22번지 / 천안공원묘원 무학지구 철쭉 4-1) 고 조문기 선생 묘소 (대전시 유성구 갑동 산23-1 대전국립묘지 / 애국지사 제3묘역 묘지번호 705) – 일정 09:00~11:00 _ 집결과 이동 (09:00 사당역 출발)11:00~11:30 _ 헌정식 (천안 고 임종국 선생 묘소) 11:30~13:00 _ 이동 (천안 → 대전) 13:00~14:00 _ 점심 식사 14:00~14:30 _ 이동 (식당 → 국립묘지) 14:30~15:00 _ 헌정식 (대전 고 조문기 선생 묘소) 15:00~17:00 _ 해산, 사당역 도착 교통편 헌정식 참석자분들을 위해 45인승 버스 1대를 준비했습니다. 버스로 출발하실 분은 미리 연락주십시오.자리 배정에 도움이 됩니다. vacationjin@empal.com 사당역 출발 사당역 4번 출구 과천 방면 300m, S-OIL 대공원 주유소 앞에서 오전 9시 출발 점심 식사 장소 우희경 검은콩수제비 (대전시 유성구 갑동 387-90번지 / 042-823-6338) 약도 1. 천안공원묘원 2. 우희경검은콩수제비 – 문의 : 02-969-0226

“쓸쓸한 노후 보내는 독립운동가 돕자”

2009년 11월 16일 853

민족문제연구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랑의 김장’ 서울신문 유대근 기자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행사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등에 기여했지만 지금은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서우영 기획실장은 “최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인물들의 친족들은 광복 후 사회적 지위를 유지한 반면 독립운동가들은 무관심 속에 어렵게 지내고 있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생존해 있는 200여명의 독립유공자들은 대부분 팔순을 넘겨 쓸쓸한 노후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 실장은 “당연히 보살핌을 받으셔야 할 분들인데 봉사라는 이름으로 1년에 한번씩 찾아 뵙는 것이..<기사 발췌> “쓸쓸한 노후 보내는 독립운동가 돕자”(서울신문, 09.11.14) 김치판매 한글 안내문 내려받기  문의: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서우영 010-2207-0364 / 기획실 김영선 010-7757-9733

안산 할머니 5인방 역사다큐 만든다-연합뉴스(07.04.24)

2007년 4월 25일 461

안산 할머니 5인방 역사다큐 만든다 ‘은빛둥지 프로덕션’ 창립 독립운동가 염석주 삶 추적                    ◇24일 은빛둥지 영상단 사무실 앞에서 할머니들로 구성된 영상단원들과 은빛둥지              노인정보화교육원 라영수 원장(맨 오른쪽), 박상묵 총무(맨 왼쪽)가 다큐 제작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   “염석주씨는 여운형 선생과 함께 ‘신간회’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인물로만 여겨지는 게 아쉬워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요.”60∼70대 할머니들이 독립프로덕션을 설립,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 화제다. 경기 안산시 본오동 은빛둥지 프로덕션의 창립 멤버 강희정(76), 조경숙(76), 윤아병(68), 박춘지(65) 할머니와 강명희(53)씨가 주인공. 평균 연령 67.6세로 지난해 은빛둥지 동영상 제작반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 영상쟁이’인 이들은 지난해 11월 프로덕션을 세운 뒤 창립작품으로 ‘잊혀진 안산의 독립운동가 염석주를 찾아서’를 제작 중이다.염석주는 ‘상록수’의 여주인공 최용신(극중 채영신)의 농촌계몽운동을 후원했던 재력가로 실존 인물임에도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잊혀진 인물이다.“일제강점기 기록과 신문, 그를 기억하는 생존자들을 찾아보면 염석주가 여운형 선생과 함께 ‘신간회’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것을 확인하는 게 어렵지 않은데도, 소설 속 인물로만 여겨지는 게 아쉽더라고요. 식민시대를 산 마지막 세대인 우리가 그걸 안 하면 앞으로 누가 하겠어요?”물론 젊은이들도 쉽게 하기 힘든 영상물을 제작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무거운 장비를 들고 원거리 촬영을 갔다 오면 멤버들 중 몇몇이 며칠 동안 몸살을 앓기도 했고, 열악한 장비와 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윤아병 할머니는 “촬영비용은 그때그때 1만∼2만원씩 쌈짓돈을 모아서 충당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