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림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 – 조선을 간호한 독립운동가, 박자혜 (7.31-27.2.28)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 조국을 간호한 독립운동가, 박자혜 기간: 2026.07.31(금) ~ 2027.02.28(일) 장소: 근현대사기념관 기획전시실
[책소개]『결국, 뿌리로 산다』 시리즈 3
『결국, 뿌리로 산다』 시리즈 구매하러 가기: https://buynow.do/UJyn “끝내 아버지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었지만 해방 후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당했다. 평생 ‘빨갱이’ 자식으로 피해를 받았던 상백은 여전히 이 세상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세상이 조금 변한 걸까. 이제 아버지 삶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인터뷰가 시작되자 상백은 자신도 모르게 격정에 휩싸여 온몸이 뜨거워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걸 느꼈다. ‘어쩌면 이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독립운동가 열한 분의 후손들이 풀어놓은 삶의 이야기 그들이 감추어야 했던 영광, 우리가 기억해야 할 뿌리 『결국, 뿌리로 산다』를 지금 온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히스토리뱅크몰에서 회원가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알림]〈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 기획전시 연장 안내 (26.2~12)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5주년 기획전 『세상을 바꾼 시민, 함께 만든 역사』가 2026년 12월까지 연장됩니다. 아직 전시를 관람하지 못하셨다면,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관심과 관람 부탁드립니다.
[알림]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 가입” 공유하기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 가입하기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원 가입하기 : bit.ly/민문연회원가입
[후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즈음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알리는 시민 긴급행동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은 지난 2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부산 벡스코에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기록하라는 기자회견과 긴급행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두번째달, 그리고 많은 연구소⸱박물관의 회원분들과 시민분들이 참가해주셨습니다. 조선인 강제동원의 진실을 숨긴 채 진정한 세계유산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올바르게 전시해야 합니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고통받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사도광산은 비로소 인권과 평화를 전하는 인류의 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소개]『결국, 뿌리로 산다』 시리즈 2
『결국, 뿌리로 산다』 시리즈 구매하러 가기: https://buynow.do/UJyn “영정사진 들고 아버지가 간 길을 걷고 싶습니다” 세걸이 그토록 오랫동안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뭔가 거창한 배경이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단순했다. 세걸은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을 뿐이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책임감이 있었고, 집안의 장남이었기에 끝까지 책임을 진 것이었다. 어쩜 그것이 독립운동가를 아버지로 둔 후손들이 져야 할 무게가 아닌가 싶다. 독립운동가 열한 분의 후손들이 풀어놓은 삶의 이야기 그들이 감추어야 했던 영광, 우리가 기억해야 할 뿌리 『결국, 뿌리로 산다』를 지금 온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히스토리뱅크몰에서 회원가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트위터: https://x.com/minmoonyeon/status/2079129186531475474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hare/p/1B8QpYZt4s/
[책소개]『결국, 뿌리로 산다』 시리즈 1
『결국, 뿌리로 산다』 시리즈 1 구매하러 가기: https://buynow.do/UJyn “양심에 가책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1956년에는 정권과 친일 유림 세력의 농간으로 성균관대학교 총장 자리를 내놓았다. 그들 ‘재단파’의 횡포 속에 김창숙은 유도회총본부 사무실에서 강제로 업혀 쫓겨났다. 그 재단파에는 김창숙의 제자는 물론 셋째 아들도 가담했다니 기막힌 일이었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부끄러운 가족사를 드러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얘기였다. 그래도 혼란스러워 보이는 말년의 할아버지 모습을 제대로 교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표정에는 고통보다 안도감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어쩌면 치유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독립운동가 열한 분의 후손들이 풀어놓은 삶의 이야기 그들이 감추어야 했던 영광, 우리가 기억해야 할 뿌리 『결국, 뿌리로 산다』를 지금 온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은 히스토리뱅크몰에서 회원가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해피빈 모금] 오키나와 ‘한의비’를 함께 기억해 주세요
※ 해피빈 모금 참여 같은 모양의 ‘한의비’ 경북 영양과 오키나와 요미탄촌(読谷村)에는 같은 모양의 브론즈로 만든 ‘한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건립됐습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전개된 곳입니다. 지형이 변형될 만큼 폭격을 받았고 일본군의 무모한 작전에 수많은 주민들이 휘말렸습니다. ‘한의비’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소중한 목숨들을 빼앗고 동아시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지금, 우리는 ‘한의비’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기록하려 합니다. 밭에서 일하다 강제동원된 강인창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강인창은 1944년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밭일을 하다 강제동원됐습니다. 그는 미군의 공격에 대비해 아카섬에 배치됐으나 미군이 섬을 점령하자 일본군은 산속으로 피난하며 조선인 군부들을 끌고 다녔습니다. 일본군은 조선인에게 식량도 나누어 주지 않았고, 벼나 고구마를 훔쳐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머니에서 겨가 발견된 조선인 군부 13명을 도둑으로 몰아 총살했습니다. 총살 직전 살아난 조선인 군부 7인은 미군에 투항해 약 1년간 포로 생활 뒤 귀국했지만 오키나와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동료들을 끝내 잊지 못했습니다. 신혼 2개월 만에 강제동원된 서정복 1944년 6월, 경북 달성 출신 서정복은 신혼 2개월 만에 오키나와 본섬 남서쪽 미야코섬으로 강제동원 되었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일본인 상관은 조선인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네 교육이 잘못되었다”며 서정복을 대나무 막대로 때리고 구타했습니다. 다행히 미야코섬에는 미군이 상륙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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