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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활동소식] 안상호 관련 논란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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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 및 온라인 공간을 통해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과 후손들의 언행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일부 과도한 해석이나 오류도 많아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민 여러분과 회원들께서는 일제강점기 전문 연구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이 사태를 책임 있게 정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안상호의 실제 행적과 역사적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대정친목회 등 친일단체의 성격, 전문직의 친일 행위에 대한 평가 기준, 그리고 바람직한 친일청산의 방향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견해를 표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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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안상호 관련 논란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
https://www.minjok.or.kr/archives/153701

▲『매일신보』 1918년 12월 10일자 기사에 실린 안상호 가족사진(내선일체의 가정)
▲『매일신보』 1921년 1월 15일자 기사에 실린 대정친목회 신년연회

※’전문직 의사’ 안상호는 누구인가?

※구체적인 친일행적
● 일제침략의 원흉 이토 추도 : 1909년 11월,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기 위해 민간에서 조직한 ‘국민대추도회(대한국민추도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실제 추도회가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관민추도회와 별도로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 식민통치 및 수탈기구 참여 : 경성부윤의 자문기구이자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한 지방행정 보조기구인 경성부 협의회원(1914, 1918, 1920, 관선 임명직)을 역임했습니다.
또 식민지 금융수탈기구인 경성 종로금융조합의 조합장(1922∼1927)을 지냈습니다.
● 내선융화 및 친일단체 활동 : 경성신사의 씨자총대(신도 대표, 1915), 내선융화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1916), 반일운동 배척을 표방한 동민회 회원(1924) 및 평의원(1925∼1927)으로 활동했습니다.
● 동화주의의 내면화: 『매일신보』(1918.12.10.) 기사에서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사람과 상관이 없다”라며 밝히는 등 일제의 동화정책을 전면적으로 내면화한 대표적 인물로 소개되었습니다.

※ “어떤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고 친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론에 대해
※ “친일인명사전에서 전문직은 모두 다 뺐다”는 주장에 대하여
※ 왜 안상호는 친일인명사전에 없을까
※ 친일인명사전 미등재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 연좌제 금지와 사회적 성찰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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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연합뉴스: [뉴스프라임] 광복절 앞두고 하영 ‘증조부 친일논란’ 일파만파
☞ KBS: “4대째 의사 집안” 알렸다가 ‘파묘’…‘하영 논란’ 본질은?
☞ YTN: “하영 증조부, 친일 행적 분명”…계속되는 하영 논란
☞ 한겨레: “하영 증조부, 친일파 맞다…이토 히로부미 추모 준비위 참여도”
☞ 동행미디어 시대: [시대포커스]조상의 ‘업’을 짊어진 친일파 후손의 길
☞ MBC : [김종배의 시선집중] 前 친일재산조사위원 “친일 재산 국가 귀속, 후손들 거의 100% 소송 제기”
☞ YTN : 하영 증조부 ‘친일인명사전’ 미등재 이유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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