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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거제-통영시, ‘친일 의혹’ 유치환 시인 기념사업 경쟁

2006년 10월 26일 427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 통영시가 자투리땅 활용 차원에서 통영우체국 앞에 세워진 시비(행복)에서 불과 20미터 떨어진 곳에 ‘향수’를 새긴 시비를 건립할 예정이다.   ⓒ 윤성효 거제시와 통영시가 친일 의혹을 받고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의 기념관과 시비 건립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시민단체는 유치환이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기념사업을 중단하거나 친일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고 난 뒤에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기념사업 : 거제시와 청마기념사업회는 25일, 유치환의 묘소와 복원된 생가가 있는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1002평에 지상 2층 규모의 청마기념관 건립 기공식을 가졌다. 거제시는 사업비 28억5000만원을 들여 2000년부터 유치환 생가 복원을 비롯해, 기념관 건립사업을 벌이고 있다.거제시는 이 기념관을 내년 3월 완공할 예정이며, 거제 둔덕면 복지회관에 전시 중인 300여점의 유치환 관련 유품을 옮겨와 내년 말 개관할 예정이다.통영시는 오는 11월 안으로 중앙간선도로변 자투리땅에 유치환의 시 ‘향수’를 새긴 시비를 세울 예정이다. 통영시는 자투리땅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이같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또다른 한 곳에는 박경리 선생의 시비를 세울 예정이다.거제시와 통영시는 유치환이 자기 행정구역에서 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경쟁적으로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생가(거제·통영)와 기념관(거제), 문학관(통영)이 건립되어 있고, 청마문학상(통영)도 시상하고 있다.통영 남망산공원에는 1970년대초 ‘충무청년회의소’에서 세운 시비(깃발)가 있고, 1990년대 말 고동주 전 통영시장 재직시 통영(중앙)우체국 앞에 세워진 시비(행복)가 있다. 통영시가 새로 건립할 시비는 기존에 세워진 ‘행복’ 시비에서 불과 20여미터

[횡성]신고자342명 대상 일제 강제동원 사실조사-강원일보(06.10.14)

2006년 10월 26일 300

[횡성]신고자342명 대상 일제 강제동원 사실조사     일제시대때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한 사실조사가 실시된다.횡성군은 오는 22일까지 일제시대때 강제로 노역 등에 동원된 피해 사례를 신고한 342명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를 벌인다.조사방법은 읍면별 조사 일정을 수립한후 조사기간 동안 피해자및 관련자의 면담 실시와 진술청취 확보 등으로 실시된다.

강제병합100년 ‘과거사 청산’ 한국실행위 출범

2010년 3월 29일 306

강제병합100년 ‘과거사 청산’ 한국실행위 출범(뉴스천지, 10.03.27)

日장관 “日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역사 필연”

2010년 3월 29일 301

日장관 “日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역사 필연”(한국일보, 10.03.28)

[세상읽기] 남양(南洋)의 ‘반도 봉사단’-한겨레신문(06.10.15)

2006년 10월 26일 357

[세상읽기] 남양(南洋)의 ‘반도 봉사단’ / 정용욱   노무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은 북한 핵실험 소식에 가려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채 공동 기자회견도, 공동 언론발표문도 없이 끝났다. 한-일의 산적한 현안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인식을 둘러싼 긴장과 충돌로 양국 외교관계가 제 구실을 못한 터라 양국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번 회담도 과거사 인식에 대해 두 정상 차원에서 공동으로 천명할 만한 공통의 합의를 끌어낼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에 합당한 실천’을 요구하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와 행동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이래 역사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보듯이 그러한 요구를 무색하게 한다. 태평양전쟁 때 미군이 남태평양에서 조선인 노무자들에게 뿌린 전단을 최근 몇 건 보았다. “반도 출신 자제군”으로 시작하는 전단들은 일본의 조선 착취와 일본군의 조선인 노무자들 학대를 직시하고 미군에게 투항할 것을 권유한다. 이 자료는 미군이 조선인 노무자들이 일본군 전투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그들의 열악한 처지를 인식하고, 일본군과 별도로 조선인 노무자들에 대한 심리전을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미국 국립문서관이 소장한 이 자료의 발굴자는 재미 사학자 방선주 박사다. 그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미군이 노획한 일본군 자료에는 ‘반도 봉사단(半島 奉仕團)’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온다. 이는 한반도에서 모집해온 노무자라는 뜻으로, 비행장 건설, 도로공사 및 전선으로 물자를 수송하는 짐꾼으로 노역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방 박사는 또

진상규명위 “日軍 마셜제도서 조선인 학살”-연합뉴스(06.10.26)

2006년 10월 26일 333

진상규명위 “日軍 마셜제도서 조선인 학살”     170여명 학살기록 발견..진상조사 착수 (서울=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26일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남태평양 마셜제도에서 강제동원된 조선인 군속 170여명을 반란죄로 집단학살했다는 문건이 최근 발견됨에 따라 직권으로 진상조사에 착수키로 했다.진상규명위는 일제가 마셜제도에 있는 밀리 환초(산호섬이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 내 첼퐁 섬에서 조선인 군속을 집단학살했다는 기록이 담긴 일본의 공식문서를 최근 발견했다고 밝혔다.진상규명위는 이번에 발견한 밀리 환초 학살사건 관련 문서는 1952년 일본 제2보건국(옛 일제 해군성) 직원이 작성한 `구(舊)해군 군속 신상조사표’로, 이 문서에 조선인 군속들이 총살당한 경위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다.1945년 3월18일 일본군이 주둔했던 섬 중 하나인 첼퐁 섬에서 조선인 군속들이 일본인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군 지휘부는 중무장한 일본군 토벌대를 이 섬으로 보내 대다수 조선인을 반란죄로 총살했다는 것이다.진상규명위는 신상조사표의 기록 분석을 토대로 첼퐁 섬에 있던 조선인 184명 가운데 170여명이 당시 학살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진상규명위는 또 진상규명위는 이달 중순 밀리 환초에 강제동원됐던 생존자인 이인신(83).김재옥(82) 씨를 만나 관련 증언을 확보하는 한편 이씨가 강제동원부터 밀리 환초를 탈출할 때까지 3년여 간의 군속생활을 기록한 123쪽 분량의 수기를 입수했다고 전했다.

日각료 “조선 식민지화 ‘역사적 필연’” 파문

2010년 3월 29일 306

日각료 “조선 식민지화 ‘역사적 필연’” 파문(아시아투데이, 10.03.28)

“조선식민지배는 역사적 필연”

2010년 3월 29일 328

“조선식민지배는 역사적 필연”(매일경제, 10.03.29)

손들고 항복하는 사람도 기관총 사살-‘동아'(06.10.26)

2006년 10월 26일 446

손들고 항복하는 사람도 기관총 사살   1945년 초. 미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활용됐던 남태평양 마셜제도 내 밀리 환초의 일본군 부대에도 미군의 잇따른 폭격과 굶주림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밀리 환초엔 강제 동원된 조선인 군속 800여 명이 총알받이로 내몰리고 있었다. 이때 밀리 환초 내 첼퐁 섬에선 조선인 군속 실종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고 이들의 시체에선 한결같이 살점이 도려내져 있었다.61년 전 밀리 환초에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밀리 환초로 끌려갔다 천우신조로 살아 돌아온 이인신(83) 씨가 1995년 집필한 수기를 토대로 당시 일제의 만행과 조선인 집단 학살 상황을 재구성했다.○조선인의 실종과 공포1945년 2월 초 첼퐁 섬에 있던 조선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본인을 따라간 동포 한 명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것.당시 첼퐁 섬엔 일본인 148명과 조선인 군속 184명이 있었다. 조선인들은 일본인 감독관의 눈을 피해 몇 명씩 조를 짜 실종된 조선인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몇날 며칠이 지나도 그 조선인의 행적을 알 수 없었다.어느 날 조선인 몇 명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첼퐁 섬 인근 무인도를 갔다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실종된 조선인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허벅지살이 포를 뜬 것처럼 도려내져 있었다.이들이 더욱 경악한 것은 며칠 전 일본인들이 선심을 쓰듯 건넨 고래고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모처럼 먹는 고기 맛에 포만감을 느꼈지만 그 고기가 고래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전율에

61년만에 밝혀진 징용 한인 억울한 죽음…日軍, 170명 학살-‘동아'(06.10.26)

2006년 10월 26일 470

61년만에 밝혀진 징용 한인 억울한 죽음…日軍, 170명 학살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남태평양 마셜제도 내 밀리 환초(環礁·산호초 섬이 띠 모양으로 연결된 곳)에서 강제 동원한 조선인 군속 170여 명을 반란죄로 집단 학살한 사실이 61년 만에 일본 정부문서를 통해 확인됐다.특히 조선인 군속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굶주림에 지친 일본군들이 조선인 군속들을 살해해서 인육(人肉)을 먹은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생존자의 증언과 수기가 나와 사건의 실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최근 일제가 밀리 환초 내 첼퐁 섬에서 조선인 군속을 집단 학살했다는 기록이 담긴 일본의 공식문서를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진상규명위는 이 문서를 근거로 ‘밀리 환초 집단학살사건’에 대해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했다.직권조사란 피해자나 유족의 신청이 없어도 위원회가 진실 규명 차원에서 반드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취하는 조사 방식.밀리 환초 학살사건과 관련해 진상규명위가 발견한 문서는 1952년 일본 제2보건국(옛 일제 해군성) 직원이 작성한 ‘구(舊)해군 군속 신상조사표’로, 여기엔 당시 조선인 군속들이 무차별하게 총살당한 경위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신상조사표의 기록에 따르면 밀리 환초에 주둔한 일본군은 미군 함정의 봉쇄작전으로 보급로가 끊기자 여러 섬으로 군대를 분산 배치해 식량을 자급자족하도록 했다.1945년 3월 18일 일본군이 주둔했던 섬 중 하나인 첼퐁 섬에서 조선인 군속들이 일본인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군 지휘부는 중무장한 일본군 토벌대를 이 섬으로 보내 대다수 조선인을 반란죄로 총살했다는 것이다.신상조사표엔 이런 사실을 당시 조선인 학살에 직접 참여했던 나카가와 기요히토(中川淸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