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일본, 초등생때부터 독도 ‘일본땅’ 교육

2010년 3월 31일 324

일본, 초등생때부터 독도 ‘일본땅’ 교육(경향신문, 10.03.31)

日, 초등 5학년 모든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

2010년 3월 31일 250

日, 초등 5학년 모든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노컷뉴스, 10.03.30)

그들은 왜 가미카제가 되었을까요-한겨레신문(06.10.29)

2006년 10월 30일 516

그들은 왜 가미카제가 되었을까요  [한겨레] 아깝다 이책이름 하나가 불도장처럼 머릿속에 찍혀왔다. 1985년 친일 문학작품 선집을 편집할 때였다.“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언덕도/산도/뵈이지 않는/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몇천 길의 바다런가/(중략)/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서정주,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伍長 頌歌)에서)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죽은 조선인 청년을 기리는 시구가 하도 생생하고 절절해서, 내가 그 시대의 장정이었다면 이 구절들을 가슴에 묻고 분연히 레이테만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 쪼각쪼각 부서”져 내리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마쓰이 히데오’는 그렇게 화인(火印)이 되었다.2004년, 가미카제 특공대와 미의식의 관계를 파헤친 오누키 에미코(문화인류학ㆍ미국 위스콘신대)의 책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원제 <ねじ曲げられた櫻>)를 펴냈다. 편집 과정에서 역자가 넘겨준 조선인 특공대원 명단에 바로 그 이름이 있었다. 松井秀男. 1924년 개성 출생. 인씨 집안의 둘째 아들로, 1944년 11월 29일 레이테 만에서 사망. ‘송가’는 열하루 뒤에 매일신보에 실렸다. 다시 읽어도 서늘해 원저에는 없는 이 시로 책을 열었다.이 책은 몇 개의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왜 가미카제 대원이 됐을까. 그들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군국주의 국가는 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저자는 특공대원들의 내면 풍경을 담은 유서와 일기, 독서 노트 등을 자료로 삼아 답을 찾아 나선다.가미카제 대원 중 85%가 고등교육을 받은 지원병이었고, 500여 명이 도쿄제국대학 출신이었다. 도쿄대 출신 대부분은 진보ㆍ급진 사상이나 휴머니즘ㆍ이상주의에 몰두했던 사람들로, 천황제 국수주의에 포박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니었다. 지원병들은 ‘한꺼번에 피었다가 동시에 져버리는’ 사쿠라꽃의 미의식을 교묘하게

“야스쿠니 참배, 정.경분리 위배 잠재위험”-연합뉴스(06.10.28)

2006년 10월 30일 331

“야스쿠니 참배, 정.경분리 위배 잠재위험”<日외무성 부대변인>    美강연서 “한.미.일 3자 안보대화 제도화 희망 공유”(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 = 다니구치 도모히코 일본 외무성 부대변인은 27일 야스쿠니 신사가 종교단체이므로 “일본 정부의 고위인사가 가면, 정.경분리 원칙에 위배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이 상존한다”고 말했다.다니구치 부대변인은 이날 브루킹스연구소 강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간 차이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그(고이즈미) 는 전몰자의 희생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야스쿠니에 갔으며, 나는 그 점에선 전적으로 그의 입장에 동의하고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하고 이렇게 말했다.그는 이와 함께 야스쿠니 신사 개혁 논란이 크게 일고 있는 사실도 강조함으로써 주목된다.다니구치 부대변인은 이날 또 한.미.일 3국 사이에 3각 안보대화의 제도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에는 북한의 핵실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시사했다.그는 최근 서울에서 한.미.일 3자 외교장관 회담이 6년만에 이뤄진 사실을 들며 “이것이 제도화 단계로 발전할지는 모르지만, 실현되면 좋은 일(great)일 것이라는 공유된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3자 사이에 동료의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한.일관계에 대해 그는 “북한의 핵실험이 더할 나위없이 적기에 이뤄졌다”며 “아베 총리가 베이징(北京)에서 서울에 도착한 순간 김정일(金正日)이 자신에게 한.일이 공유할 큰 먹잇감(a huge amount of beef)을 던져준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다니구치 부대변인은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한.일 양국간 공통의식 같은 것”이 생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채택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친일인명사전」과 「친북인명사전」

2010년 3월 30일 913

아래 글은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 누리집(www.edasan.org) 다산포럼에 실린 글이다. <엮은이 주> 김정남 언론인 경제학자들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경제적 양극화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나는 경제적 양극화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 정치적· 이념적 양극화 문제라고 본다. 경제적 양극화는 분명 정책적 과제이기는 하지만, 국민내부의 분열과 적대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큰 나라’에서 ‘따뜻한 나라’로의 정책적 지향을 통하여 완화 또는 개선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이념적 양극화는 그 안에 증오와 적대를 품고 있어 국민내부의 분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러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우리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대립은 해방직후의 그것을 방불케 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경술국치 100년을 앞둔 우리의 참회 얼마 전 보수계열의 한 민간단체에서「친북 반국가 인명사전」을 펴낸다면서 일차적으로 1백 명의 명단을 발표했다고 한다. 일일이 그 명단을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보도된 바에 따르면 현역 국회의원 3명을 비롯한 정치인 14명과 재야인사 36명, 학계인사 17명, 문화예술언론계 13명, 법조계 3명, 의료계 2명, 해외인사 5명이 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웬 1950년대식 매카시 선풍인가 싶다. 그 단체가 말하는 선정근거는 ‘과거 인터뷰나 논문 등을 통해 북한당국의 노선을 찬양하거나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인사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매카시적 수법으로 비겁하게 명단을 발표하는 수법이 아니라, 차라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살아있지 않은가. 「친북인명사전」은 그 발상에서부터가 최근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후에까지

2010년 3월 30일 486

이규봉 대전지부장 아! 이놈의 건망증, 배낭을 길에 두고 오다 7시쯤 출발에 나서니 어제 내리던 보슬비는 더욱 굵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도로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자전거가 잔뜩 뒤엉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속을 가까스로 뚫고 1번 국도로 들어섰다. 1번 국도 역시 출근하는 인파들로 뒤덮여있으며 밤새 내린 비로 도로엔 물이 고여 있어 도로 표면이 보이지않았다. 위험을 감수하며 정신없이 물을 헤치며 달렸다. 한 시간 쯤 달려 하노이 시내를 빠져 나왔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아직 문을 열지 않는 가게 처마 밑에 쉬었다. 모두 물속에 빠진 생쥐 모양으로 흠뻑 젖어 있고 자전거도 엉망이 되었다. 잠시 쉬고는 다시 달렸다. 한참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등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 순간 바로 자전거를 돌려 온 길을 향해 다시 돌아갔다. 잠시 쉴 때 배낭을 잊고 두고 온 것이다. 가끔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또 다시 그 건망증이 도진 것이다. 배낭에는 여권을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뒤따라오던 사람이 가져오겠지 했으나 그들도 남겨진 배낭을 보지 못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전 속력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려도 쉬었던 장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쉴 때눈여겨보았던 주변 장소가 멀리 눈에 들어온다. 거기엔 노란색이 선명한 내 배낭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순간 기쁨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 비난피하기 ‘꼼수’ 부린다-국민일보(06.10.25)

2006년 10월 30일 320

야스쿠니 신사, 비난피하기 ‘꼼수’ 부린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A급 전범 분사론,국가 관리에 의한 비종교 법인화 등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끊이지 않자 ‘전몰자를 위한 제의’라는 신사의 종교성을 지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야스쿠니 신사는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숭경자’의 대표 10명 중 한 명에 전국 7만9000개의 신사를 총괄하는 신사본청의 총장을 임명키로 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신사본청 관할이 아닌 독립 종교 법인인 야스쿠니 신사가 본청 총장을 숭경자 대표에 초빙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A급 전범 분사론에 반대를 표명한 본청과 야스쿠니 신사가 연대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아사히는 분석했다.야스쿠니 신사 부설 전쟁박물관인 유슈칸은 지난 5일 전시물에 대한 설명 중 일부를 수정키로 결정했다. 바뀌는 부분은 미국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온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전략’이라는 설명문으로 “불황 시 루스벨트에게 남겨진 길은 자원이 부족한 일본을 수출 금지로 압박,전쟁 개시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참전으로 미국 경제는 완전히 부흥했다”고 돼 있다.유슈칸은 제목을 ‘루스벨트와 미국의 2차대전 참가’로 바꾸고,내용에서 “전쟁 개시 강요”,“미국 경제는 완전히 부흥했다”를 삭제키로 했다. 또 일본의 침략주의를 비판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을 새로 넣기로 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국·중국 등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신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자 이를 무마하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야스쿠니 신사는 지난 12일에는 본전 옆 진영사를 32년 만에

취임 한달 맞은 아베 ‘변하나, 숨기나’-한국일보(06.10.25)

2006년 10월 30일 297

취임 한달 맞은 아베 ‘변하나, 숨기나’  아시아 외교 실용노선… 국내외 우려 불식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로 취임 한 달이 된다.첫 전후 세대 총리로서 우익으로 기운 보수 강경노선을 걸을 것으로 예상됐던 아베 총리는 취임 후 현실적이면서도 실용적 노선을 선택해 국내외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행 등으로 엉망이 됐던 한국ㆍ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당면 과제였던 중의원 보궐선거에서도 승리해 정권운영을 안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시아외교를 개선하기 위해 그가 보여준 적극적 노력이었다. 총리가 되기 전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자위를 위한 전쟁’으로 자리매김하고, 과거 일본 정부의 반성 및 사과를 ‘사죄외교’로 비판했었다. 또 전후 체제의 극복을 위한 헌법개정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자위를 위한 핵 무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전형적인 보수 강경파 정치가였다.그러나 그는 총리가 된 후 극적인 궤도수정을 했다. 그는 국회 답변 등을 통해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와 일본군 군군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한 ‘고노 담화’의 계승을 천명했다. 그의 정치적 우상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등 전쟁을 이끈 지도자들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이 같은 변신은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결국 불분명했던 정상회담의 재개로 연결됐다. 실제로 중국측은 “아베 총리가 보여준 적극적인 태도는 칭찬 받을 만한 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측 관계자도 “아베 총리는 상당한 실용주의자”라며 신뢰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물론

일본 정부, “초등교과서 독도영유권 강화해야”

2010년 3월 30일 313

일본 정부, “초등교과서 독도영유권 강화해야”(ytn, 10.03.30)

안중근의사 순국 100돌, 효창원서 시민추모행사

2010년 3월 30일 689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 등 시민단체 중심으로 추모행사 열어 대자보 김영조 기자 “1910년 3월 26일 아침 10시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낸 새 한복을 단정히 입고 안중근은 교수대로 향했다. 아아, 그리운 조국의 하늘 땅 형제들! 안 의사 나이 서른둘. 아 가슴이 찢어진다. 분단 65년. 항일 독립의 화신. 안중근! 그 이름 일월과 더불어 영원하리”위는 지난 3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효창원 안중근 의사 허묘 앞에서 있은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모제”에서 임시정부사적지연구회 이봉원 회장이 낭송한 이기형 시인의 헌시 <안중근의 순국기도> 중 일부이다.   ▲ 안중근 의사 추모제에서 초헌관으로 첫 잔을 바치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 김영조 이날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돌을 맞은 날로 나라 안팎에서 추모행사가 줄을 이었다. 우선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중앙추념식”이 26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거행됐으며, 배화여고 등 서울시내 10여 개 학교에서는 1만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안 의사 공적과 헌시 낭독, 안 의사께 바치는 글, 손도장 찍기 행사 등을 펼쳤다.또 안중근의사추모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도 이날 뤼순 감옥에서 남북공동추모식을 열었고, 안 의사를 기리는 행사는 미국 뉴욕 등 나라밖에서도 줄을 이었다. ▲ 안중근 의사 추모제에서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재배를 하고 있다.     ⓒ 김영조   ▲ 읽은 축문을 태우는 “분축”으로 추모제례는 끝났다.    ⓒ 김영조   ▲ 헌시 <안중근의 순국기도>낭송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