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일본의 이중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2010년 4월 22일 387

일본의 이중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경북일보, 10.04.15)

[경술국치 100년] 저임금·폭력… 화재·전염병 참상까지… ‘지옥 탄광’ 악명

2010년 4월 22일 388

[경술국치 100년] 저임금·폭력… 화재·전염병 참상까지… ‘지옥 탄광’ 악명(국민일보, 10.04.20)

-연합뉴스(06.11.20)

2006년 11월 23일 363

<`태정관 지령문’은 왜 중요한가>     日 태정관 지령문 독도 조선영토 인정일본 최고국가기관이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한 `결정적 사료’ 日정부ㆍ관변학계, `독도 고유영토설 붕괴’ 우려해 은폐ㆍ왜곡“문서 내용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려야..한국정부 공식제기 필요”(서울=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 태정관 지령문은 1877년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는 영토, 다시 말해 조선 영토라고 공식 인정한 문서다.태정관 지령문이 나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태정관 지령문은 어떤 내용인가 = 일본 내무성은 1876년 전국의 지적(地籍)을 조사하고 지도를 만들기 위해 각 현에 조사를 지시했다. 그 해 10월 16일 시마네(島根) 현은 울릉도와 독도를 시마네 현의 지도와 지적 조사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내무성에 문의했다.내무성은 17세기 말 조선과 주고 받은 왕복 문서와 기록들을 모두 조사했다. 내무성은 5개월 간의 조사 결과 이 문제는 이미 1699년에 끝난 문제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이며 ‘우리나라는 관계가 없다’고 결론짓고 일본 지도와 지적 조사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하지만 내무성은 이 문제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1877년 3월17일 당시 입법ㆍ행정ㆍ사법 3권을 장악하고 있던 메이지(明治) 정부의 최고 권력 기관이자 의사결정 기관인 태정관(다조칸ㆍ太政官)에 자문을 구했다. 이 때 내무성은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는 1699년 조선과 구 일본정부 간에 왕래가 끝나 본방(本邦.일본)과 관계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국가 판도(版圖)의 취함과 버림은 중대한 일이니 확인하고 싶다”고 조회를 요청했다. 여기서 `다케시마 외일도(竹島外一島)’는 울릉도와 독도를 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케시마’는 울릉도, `외일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日 정부, `독도 시마네현 편입’ 허구성 사실상 자인-연합뉴스(06.11.20)

2006년 11월 23일 331

日 정부, `독도 시마네현 편입’ 허구성 사실상 자인   日 태정관 지령문 독도 조선영토 인정 `독도 조선 영토’ 인정 태정관 지령문 질의에 답변 회피 “日 정부.학계, 태정관 문서 의도적 은폐..국민까지 기만” 외무성 “지금은 답변 못하겠다”…문서존재 사실은 인정“태정관 지령문은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의 아킬레스건”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 일본 정부가 1905년 단행된 독도 시마네(島根) 현 편입 조치의 불법성과 `독도 고유 영토설’의 허구성을 사실상 자인했다.일본 외무성은 1877년 메이지(明治) 정부가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고 확실히 인정한 `태정관 지령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연합뉴스의 서면 질의에 대해 “현재로서는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태정관 지령문이란 메이지 시대의 최고 국가기관이었던 태정관(太政官.다조칸)이 독도와 울릉도가 일본 영토인지를 조사한 뒤 1877년 3월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 영토와 관계가 없으니 명심하라”고 내무성과 시마네 현에 지시한 공문서다. 한국 학계는 이 문서를 일본 정부가 독도를 조선 영토로 공식 인정한 `결정적 사료’로 보고 있다.외무성의 이 같은 궁색한 답변은 “태정관 지령문이 사실이라면 `늦어도 17세기 중반에는 일본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해 영유권을 확립했고 1905년 각의 결정을 통해 영유권을 재확인했다’는 일본의 주장은 완전히 허구가 아니냐”는 국내 학계의 지적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연합뉴스는 지난 9월 중순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과 자민, 민주, 공산, 사민, 공명당 대표 앞으로 `1905년 일본 각의의 독도 시마네 현 편입 결정에 관한 질의서’를 보냈다.주된 질의 내용은 ▲`태정관 지령문’이

[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하다](2) 헛되지 않은 10년 투쟁 ‘군인·군속재판’

2010년 4월 22일 413

[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하다](2) 헛되지 않은 10년 투쟁 ‘군인·군속재판’(경향신문, 10.04.18)

日 양심적 역사교과서 씨마른다

2010년 4월 22일 317

日 양심적 역사교과서 씨마른다(연합뉴스, 10.04.22)

日 태정관 지령문 독도 조선영토 인정-연합뉴스(06.11.20)

2006년 11월 23일 423

日 태정관 지령문 독도 조선영토 인정    독도는 일본 영토와 관계없음을 분명히 한 ‘태정관 지령문’이 들어있는 태정류전(太政類典) 제2편. 이 공문서는 일본 도쿄의 국립공문서관에 소장돼 있다./김용수/문화/ 2006.11.20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안중근의사 순국 한달전 친필 첫 공개-연합뉴스(06.11.23)

2006년 11월 23일 367

안중근의사 순국 한달전 친필 첫 공개 서울옥션 내달 12일 104회 경매 출품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안중근(1879-1910)이 순국하기 한달 전에 쓴 친필 먹글씨 한 점이 소개된다.미술품 경매 전문회사인 서울옥션은 다음달 12일 열리는 104회 경매에 안중근의 묵서 중 한 점인 ‘모사재인 성사재천(謨事在人成事在天)’이 출품된다고 23일 말했다.이 글씨는 그가 1910년 3월26일 순국하기 한달쯤 전인 같은해  2월  뤼순(旅順) 감옥에서 쓴 것으로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만 일의 성패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는 뜻이다.행서 여덟자를 세로로 내려쓰고 왼편에 ‘경술이월(庚戌二月) 어여순옥중(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서(安重根書)’라고 쓴 뒤 그 특유의  왼쪽  손바닥 도장을 찍었다.이 글씨는 안의사가 옥고를 치를 당시 간수였던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일본 내에서 몇 차례 거래됐다가 한국인 개인소장가에게 들어오게 됐다고  서울옥션측은 말했다.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의 친필확인 감정서가 첨부된 이 글씨는 사형집행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써서인지 국내에 소개된 기존 작품들보다 글씨체가 더 부드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소견이라고 서울옥션 측은 전했다. 시작가는 4억원  안팎이  될 전망이며 최고 추정가는 6억원 정도.안중근 유묵은 2002년 서울옥션 제54회 경매에 ‘담박명지영정치원(澹泊明志寧靜致遠)’이 나와 2억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국내의 안중근 유묵은 총 25점이 일괄 보물로 지정돼있다.

‘누나의 3월’을 방송사에 당당히 남기다

2010년 4월 21일 342

‘누나의 3월’을 방송사에 당당히 남기다(미디어스, 10.04.20)

고법 “친일재산 가등기자, 몰수취소 청구권 없다”

2010년 4월 21일 365

고법 “친일재산 가등기자, 몰수취소 청구권 없다”(뉴시스, 10.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