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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리포트 (4)일본군 아소다로의 기묘한여행-오마이뉴스(05.05.11)
일본군 아소의 기묘한 여행 – 만주 무력침공작전
강제병합 100년, 학술지 재조명 줄이어
강제병합 100년, 학술지 재조명 줄이어(연합뉴스, 10.08.17)
민족문제硏 등 “8.15 기념사에 역사의식 부재”
민족문제硏 등 “8.15 기념사에 역사의식 부재”(연합뉴스, 10.08.15)
부끄러운 역사라고 덮어둘 수 없다
이승하(중앙대 교수, 시인) 우리 근대사의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경술국치일인 지난달 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인명사전에 실을 1차 명단 3090명을 공개한 것이다. 이 명단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인물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있어 적지 않은 놀라움을 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황성신문>에 발표해 조약의 부당함을 날카롭게 공박한 장지연이 후일 변절해 친일활동을 했다고 한다. 장지연의 후손들은 이미 조상의 명예가 부당하게 훼손됐다고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이밖에도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대표인 최린, 도쿄 28독립선언서 발표의 주도자였던 언론인 서춘은 애국지사에서 친일인사로 변절한 경우이다. 훗날 최초의 천주교 대주교가 되는 노기남, 천도교 교령 이종린, 조계종 초대 총무총장(총무원장)을 지낸 승려 지암 이종욱 등 종교계 지도자들의 이름도 놀라움을 준다. 장지연의 후손들이 친일인사 명단에 자기네 조상의 이름이 올려진 것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부당하다고 법적 대응에 나선 것처럼 많은 후손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기회에 한국 근현대사의 파행이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들을 단죄하지 않은 데서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잡아다 고문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고등계 경찰들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하에서 반공투사로 둔갑,군대와 경찰조직을 장악하고 권력을 쥐게 된 것은 일제 강점보다 더한 역사의 수치다. 반민족행위자가 부와 권력을 대물림한 경우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었는데 단 한 나라,
“한국인 2만여명 야스쿠니 합사 취소해야”
“한국인 2만여명 야스쿠니 합사 취소해야”(연합뉴스, 10.08.14)
“친일파 제대로 알자” 광주서 친일음악회
“친일파 제대로 알자” 광주서 친일음악회(연합뉴스, 10.08.15)
“수구언론, 작문 그만하고 공개 논쟁하자”
코리아포커스 이문영 기자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 <이문영/코리아포커스> “맘대로 왜곡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논쟁하자. 자신있다면 언제든지 와라.”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이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언론을 향해 던진 일성이다. 조 사무총장은 친일명단 발표와 관련해 이들 언론이 제기한 비판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하는 한편, “비록 수구언론이라도 사실관계에 대한 보도만큼은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보도행태에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 “정말 의구심이 있다면 취재요청 한번 없이 멋대로 작문하지 말고, 옳고그름을 놓고 논쟁해 보자”는 것이다. 이는 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함께 지난달 29일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에 대해 몇몇 언론의 왜곡보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명단 발표 이후, 일부 보수언론은 선정 기준, 발표의 정치적 의도, 연구소 재원에 관한 의문 등 친일사전편찬 작업과 이를 추진하는 주체에 대해 다양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사주가 명단에 포함된 언론사들의 대응 방식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고 있다. 조선일보처럼 “계초 방응모를 친일 인사로 규정한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표명한 뒤 철저히 무시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중앙일보처럼 각종 근거를 들어 강력 반발하는 쪽도 있다. 조 사무총장은 모두 “보도자료조차 무시하는 의도적 왜곡”이라는 입장이다. 조 사무총장은 “명단 발표 이후 이를 비판하는 언론사 중 한 곳도 취재요청을 해온 적이 없다”며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조차 거치지 않고 자기네 맘대로 써대는 언론을 언론이라 볼 수 있냐”고 비판했다. 그는
친일인사 명단 발표(1차)에 즈음한 저의 고백
이 윤 회원 [편집자 주] 우리 연구소 전 서울 북부지부장으로 현재는 홍대부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 윤 회원이 보내온 이메일 전문을 가감 없이 싣는다. ▲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 여름수련회에 참가해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 이윤 회원 2005년 8월 29일, 경술국치 95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사로 우선 3,090명의 명단을 1차로 발표하였습니다. 자신과 조상의 허물이 크면 클수록 숨죽이고 이를 지켜보아야 할 마당에 언제나 만년 기득권세력인 그 후예들은 악의적인 왜곡을 하면서 그 선정과정과 발표의도에 먹칠을 가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에 본인은 자신의 조부님이 일제관료로서 이번 명단에 실린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자신의 소회를 피력하고자 합니다. 이번 명단에서 1,168번째에 위치한 관료부문의「이준식(李畯植)」님이 바로 저의 할아버지로서, 본인은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진다면 ‘당연히’ 이렇게 그 성함이 기재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입장이었습니다. 1895년(을미년)에 충북 옥천군 이원면에서 출생하셨던 조부님은 증조모님의 독려로 일찍부터 대처로 나가 신문물에 눈을 뜨고자 하셨답니다. 장손인 제가 집안에서 들었던 이야기로는 조부님은 토지측량기사로 일제의 관료생활을 시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일제의 조선병합 후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토지조사사업에 협력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조부님은 충북도 관내에서 성실성을 인정받아 1930년대에 보은군의 내무과장을 거쳐 30년대 말에 음성군수 자리로 승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기는 당신의 40대 초반이시고, 중일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로 짐작이 됩니다. 40년대로 들어와서는 공직을 물러나셔서 경부선이 지나는 영동으로 내려오셔서 산금회사에 관여하시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일제의 고등관료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