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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국유지 내 친일 민영휘 후손 묘지 복구명령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청주 국유지에 설치됐던 친일파 민영휘(1852∼1935) 증손자의 묘지 등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됐다. 16일 청주시에 따르면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의 한 야산에 조성된 친일파 민영휘의 증손자 묘지와 가묘 4기를 오는 11월 31일까지 다른 곳으로 이장하라는 복구명령을 내렸다. 시 관계자는 “후손들에게 국가 소유의 부지에 있는 묘지를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나무를 심어 훼손된 산림을 조성하도록 복구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분묘는 대표적인 친일 인사인 민영휘 증손자의 묘지로 국가 귀속 이전인 1981년 조성된 것이다. 민영휘의 후손은 이 묘지 인근에 4기(400㎡)의 가묘도 설치해 논란을 빚었다. 이 부지(44만 1천㎡)는 원래 민영휘의 소유였다가 친일반민족행위 재산조사위원회가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리면서 2007년 12월 10일 소유권이 국가로 귀속됐다. 청주시는 그러나 민영휘 후손들이 허가를 받지 않고 가묘 등을 설치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형사처벌이 어렵다고 밝혔다. 산지관리법상 산지 전용을 할 경우 그 용도를 정해 관계 당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길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민영휘 후손 측은 청주시의 복구명령에 대해 이행을 약속했으며, 조속한 시일 내에 묘지를 이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vodcast@yna.co.kr <2015-07-16> 연합뉴스 ☞기사원문: 청주시, 국유지 내 친일 민영휘 후손 묘지 복구명령 ※관련기사 ☞세계일보: 청주 국유지 내 설치 논란…친일파 민영휘 후손묘 이전
[기고]광복 70주년에 돌아보는 몽양 여운형의 진실
7월17일은 몽양 여운형 선생 68주기다.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에 대비했던 그가 막상 해방 2년 만에 암살을 당한 것은 그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었다. 혁명가치고 비운에 가지 않은 사람이 드물지만 몽양의 경우 해방된 조국에서 큰 뜻을 펴보지 못한 채 정쟁의 희생물이 되고, 아직까지도 업적이 부각되기보다 왜곡과 폄훼가 심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몽양은 일급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초 중국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을 만들어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고 김규식 부인과 자신의 측근을 국내에 들여보내 3·1혁명의 ‘지하수맥’ 역할을 했다. 그리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산파역을 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몽양은 3·1혁명 후 적도 도쿄에서 일본 조야를 상대로 ‘조선 독립의 이유’를 설파하고 육군성 장관의 겁박에 “삼군지장의 목은 쳐도 필부의 뜻을 빼앗을 수 없다”고 받아넘겼다. 그의 강연이 끝났을 때 참석자들이 “조선 독립 만세!”를 합창할 정도로 담대한 활동을 폈다. 일본 내각이 붕괴될 만큼 그의 일본행은 파격적이었다. 상하이로 귀환한 몽양은 일경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되고 서대문형무소 등에서 3년 옥고를 치렀다. 석방되어 조선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했으나,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신문이 폐간됐다. 일제강점기 말에 예비검속으로 재수감되고, 옥중에서 비밀결사 건국동맹을 만들었다. 1945년 8월15일 총독부 정무총감 엔도의 제안을 받아들여 일제 항복 후 조선의 치안과 질서유지를 통괄하면서 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발족시켰다. 몽양은 해방 이튿날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독립운동가들을 석방하고 건준을 통해 새 조국 건설에
[책소개] ‘살아있는 과거-한국문학의 어떤 맥락’
창비│2015년 7월 15일 발행│신국판 양장│384면│값 20,000원│ISBN 978-89-364-6343-4 03810 염무웅의 깊이 있는 비평이 통찰하는 한국문학의 역정과 사회현실 『살아 있는 과거―한국문학의 어떤 맥락』은 올해로 평론활동 51년째를 맞은 염무웅(廉武雄)의 여섯번째 문학평론집이다. 저자는 독문학자이면서도 우리 근대문학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비평가로 문단에 정평이 나 있다. 이 점은 이번 평론집에서도 두드러진다. 이 책은 주로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과 독재정권 시기를 겪었거나 그 시대에 활동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사색을 담고 있다. “문학은 더 나은 삶을 희구하는 인간들의 소망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문학이 문학다워짐을 통해서만 현실의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문학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런데 선의에서 출발한 작가들의 노력은 왜 때때로 뜻한 바와 달리 예술적 빈곤으로 귀결되고 마는가.”(7면) 머리말에 명확히 밝혔듯이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작가의 삶과 작품의 됨됨이를 연관지어 분석함으로써 “객관적 현실과 작가의 표현의지와 작품적 결과 사이의 복잡한 변증법을 역사적으로 해명하는 것”을 비평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점은 저자가 1964년 평론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추구해온 것이기도 하다. 책 제목에서도 저자의 일관된 의식과 비평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의식의 빈곤은 현재에 대한 감각의 둔화와 지적 작업의 부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현재 안의 ‘살아 있는 과거’를 느끼고 또 현재를 발판으로 과거를 사유해야 역사의 연속성을 획득할 수
KBS ‘이승만 망명’ 보도, 무더기 문책 인사…청와대 눈치보기?
▲ 1950년 8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국회 개회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굴욕적 반론보도 이어 보도 책임자 4명 평기자 발령 새노조 “연임 노리는 조대현 사장의 청와대 향한 구애” 명백한 징계성 인사 반발에…사쪽 “징계성 인사 아냐” 지난달 24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정부가 일본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이른바 ‘이승만 정부 망명설’을 보도한 <한국방송>(KBS)이 지난 3일 긴 분량의 반론보도를 내보낸데 이어, 당시 보도의 책임자인 보도본부 간부 4명을 평기자로 발령해 ‘징계성 인사’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케이비에스는 인사를 내어 처음 보도를 내보낸 국제부의 이재강 국제부장을 디지털뉴스부 평기자로, 국제부와 해외지국들을 총괄지휘하는 용태영 국제주간을 심의실 평기자로 발령했다. 또 이 보도와 관련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임진왜란 당시 백성을 버리고 도성을 빠져나간 선조와 비유한 온라인용 기사를 내보낸 디지털뉴스부의 송종문 디지털뉴스국장을 심의실 평기자로, 백진원 디지털 뉴스부장을 라디오 뉴스제작부 평기자로 발령했다. 이날 인사에서는 이 네명을 비롯해 총 11명의 간부급 인사가 이루어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케이비에스 새노조)는 15일 성명을 내어 “‘화요일 밤의 대학살’이라고 불릴 만한 명백한 징계성 인사를 단행했다”며 “임기 만료 넉달을 앞둔 조대현 사장이 연임을 위한 욕심으로 차기 사장에 대한 선임권을 행사할 (이인호) 이사장에게 충성 맹세를 한 것이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새노조는 “조 사장을 ‘제2의 길환영’으로 규정하고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새노조 관계자는 “이번에 인사가 난 사람들 가운데
[7.13] 한일협정 체결을 둘러싼 추악한 뒷거래
7월 13일 보이는 라디오 ‘박한용의 백년전쟁’ 다시보기 <2015-07-13> 국민TV ☞기사원문: 한일협정 체결을 둘러싼 추악한 뒷거래
“‘백년전쟁’ 징계는 정당” 항소심도 같은 결론
“공정성 잃어, 부정적 시각으로 대한민국 정통성 폄훼”… RTV “퍼블릭액세스 채널 성격 무시 아쉽다”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민족문제연구소 제작·김지영 감독)을 방송했던 시민방송 RTV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가 정당하다는 2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제6행정부(재판장 김광태 부장판사)는 15일 RTV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의취소 소송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RTV는 일주일 내에 방통위로부터 법정제재 조치를 받았다는 내용의 ‘고지방송’을 해야 한다. 결국 2심 재판부도 “백년전쟁이 특정 자료만을 근거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전직 대통령들을 폄하했다”는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차행전 부장판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한 셈이다. 1심 재판부는 “두 전직 대통령(이승만·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없이 부정적 사례와 평가만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이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해 사실을 왜곡하고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루면서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포스터 게다가 당시 재판부는 방통위의 손을 들어주면서 5·16군사쿠데타를 ‘5·16혁명’이라 적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관련기사 : ‘백년전쟁’ 재판부, 5·16을 ‘혁명’으로 규정 파문)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백년전쟁 1부 <스페셜 에디션 프레이저 보고서 :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는가?> 편의 ‘박정희가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활동하였다’는 부분을 지적하며 “박정희 대통령이 주체가 돼 시행한 5·16 혁명의 내용과 그 이후의 행보에 비춰 볼 때,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항소기각 판결에 대해서도 RTV 측 관계자는
‘공순이’ , 역사와 예술의 영역에서 비로소 존중 받다
봉제공장 ‘시다’ 로 40년 세월을 보낸 어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은 아들이 세계 미술계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임흥순의 휴먼아트다큐 ‘위로공단’은 지난 40여 년 고도경제성장 시기에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평화시장 가발공장 버스회사 동일방직 대우어패럴 기륭전자에서 일했던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나아가 이들이 겪었던 소외가 현재도 항공사 콜센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감정노동자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자 미술작품이다. 임흥순의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헌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국 내 이주노동자, 캄보디아 내 한인기업 여성노동자들에게 그 소외가 어떻게 전가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올해 120주년을 맞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임흥순을 주목했다. 영화와 미술의 경계에 서 있는 ‘위로공단’은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전시 주제에 걸맞게 모든 세계와 세대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진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조건과 관련된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살펴보는 영상작품, 자본 이동과 노동 변화에 따른 현실 불안을 예술적 언어로 써내려간 새로운 역사기록”이라는 찬사와 함께 임흥순에게 은사자상을 수여했다. 가장 낮은 계층인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니? 한국에서는 종북 타령이 나올만한 이야깃거리 아닌가. 그런데 현대미술이 이 아트다큐의 형식과 내용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현대미술의 중심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아트다큐를 상영하고 있다. 한국 미술계도 주목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다. 당장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지는 문제의식과 형식, 미적 가치가 남다름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 ‘위로공단’의 내용과 형식에 찬사 가리봉 5거리. 구로공단의 중심이다.
외교부 띄우다 ‘강제노동’ 물타기에 화들짝
<일본 세계유산 등재 언론보도> 조선인 강제노동 인정 부각 日 정부 등재결정문 왜곡에 주석 간접반영 문제점 지적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시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가운데 언론이 외교부의 자화자찬을 그대로 받아쓰면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단체에선 일본의 들러리만 서줬다며 한국 정부의 외교적 무능력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5일(현지시각)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회의에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위원회는 “과거 일부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자신들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동(forced to work)을 했다”는 일본의 입장 발표문을 주석 형식으로 등재 결정문에 명시했다. 지난 6일자 신문에서 주요 일간지들은 1, 2면 등에 관련 내용의 제목을 달고 이 같은 소식을 전달하는 데 할애했다. 이날 언론들의 관련 보도 제목은 <‘조선인 강제노동’ 일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 명기 합의>(경향 1면), <日, 한국인 강제징용 국제사회서 첫 인정>(국민 1면), <日정부 “조선인 강제노역” 첫 공식 인정>(동아 1면), <日, 징용시설 ‘강제노동’ 첫 인정>(서울 1면), <‘日 강제징용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세계 1면), <日帝 강제노역 동원, 日 국제무대 첫 인정>(조선 1면), <일본 “한국인들 자신의 의사 반해 강제노동?한 사실 있다”>(중앙 10면), <일 군함도 등 산업 유산도 등재…‘조선인 강제 동원’ 사실 인정>(한겨레 2면), <日, ‘조선인 강제노역’ 국제회의서 첫 인정>(한국 1면) 등이었다. 상당수 신문들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한국측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하게 반영됐다”는 평가와 정부
80여년 전 당긴 방아쇠 현재를 관통하다
잊혀진 독립군에 대한 영화적 추모, 최동훈 감독 ‘암살’ #1.“두 사람 죽인다고 해방이 되고, 독립이 되나?”(하와이 피스톨) #2.“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안옥윤) #3.“어쨌든 미안하다.”(강인국) #4.“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았으면 그랬겠나.”(염석진) #5.“우리 잊지 마.”(영감) 영화 ‘암살’ 속 각자 다른 인물이 발화하는 다섯 개의 대사는 영화 속에 담긴 여러 역사적 사회적 메시지를 함축한다. 특히 영화의 시점을 과거 역사 속 한 대목으로 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지금, 여기’를 사는 이들과 갖는 현재적인 교감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와의 교감을 염두에 둔 1933년 조선 독립군 ‘친일파 암살 작전’ 기록 대사 #1, #2는 민족, 독립 등 거창한 대의의 이면에 있는 현실적 무망함에 대해 회의를 품는 당대 또는 후대의 심경을 대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 속에 자신을 던진 이들이 이름 없이 스러져 가는 순간까지 가슴에 품었던 당당한 사명감이 묻어난다. 반면 대사 #3, #4는 친일파 혹은 일본이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자신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반성하지 않은 채 ‘어쨌든’으로 뭉뚱그리며 내뱉는 진정성 없는 사과와 함께 그들의 비루한 역사의식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대사 #5는 독립운동에 헌신, 해방된 조국을 만드는데 기여했지만 역사도, 후세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이들에 대한 영화적 추모이자 해방 70년을 맞은 후대들에게 건네는 당부다. ●만주·경성 등 오가며 벌이는 총격전·추격신 등 볼거리 가득 ‘암살’은 친일파와 함께 한 하늘을 지붕 삼을 수 없는 조선 독립군
부암동에서 만난 안평대군·현진건 그리고 윤웅렬
<2015-07-14> 한국일보 ☞기사원문: 부암동에서 만난 안평대군·현진건 그리고 윤웅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