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성명]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눈물과 한을 매순간 기억하라!

2021년 3월 25일 1678

[다운로드][공동성명]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첫 번째 위원회 개최에 부쳐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눈물과 한을 매순간 기억하라! 지난해, 12월 10일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국회의 위원 추천이 지연되어 출범 100일을 넘겨서야 첫 번째 위원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잊히지 않는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과 유족들, 대한민국의 올바른 과거사정리와 진실규명을 기다리는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진실규명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첫 번째 위원회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한 지 넉 달 만에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피해자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유족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피해자들, 군의문사 유족들, 권두영, 김두황, 문승필, 박창수, 박태순, 안치웅, 이내창, 이덕인, 이윤성, 이재문, 이진래, 이철규, 장준하, 정경식, 정성희, 김용권, 최우혁, 한영현, 한희철 등 의문사 유족들을 비롯하여 2,774건, 5,180명에 이르는 진실규명신청이 접수되었고 앞으로도 수천 건, 수만 명의 진실규명신청이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진실화해위의 활동기한 3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피해자들과 유족들 중에는 고령의 어르신들도 많으시고, 여러 후유증으로 건강이 상한 분들도 많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진실규명 없는 날은 하루하루가 고통일 뿐이다. 진실화해위의 위원들과 조사관들이 그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다면 앞으로는 진실화해위의 단 하루도 허투루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진실화해위의 모든 구성원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피와 눈물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위원회 활동에 임해야

[한겨레] ‘전범이 된 조선청년’ 한맺힌 65년 투쟁 빈손으로 떠나다

2021년 3월 30일 1404

[가신이의 발자취] ‘마지막 비시급 전범’ 이학래 회장 별세 17살 때 ‘콰이강의 다리’ 포로감시원 일제 패망뒤 연합군 재판 ‘사형선고’ 전후 일본 국적 박탈해 보훈도 제외 55년 70여명 동진회 결성 ‘보상’ 요구 65년 ‘한·일협정’ 구실로 ‘창구’ 닫아 91년부터 법정 투쟁 99년 최종 패소 지난해까지 의회 상대로 ‘입법’ 촉구 “슬픈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마지막 조선인 비·시(B·C)급 전범’ 이학래 동진회 회장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는 짤막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이 집단 거주하는 오사카 이카이노에서 ‘샛바람 문고’를 운영하는 후지이 고노스케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회장이 이날 오후 숨졌다고 밝혔다. 향년 96. “이학래상이 지난 26일 자택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히고 다리가 부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의 보람도 없이 28일 오후 2시10분 숨졌습니다. 학래상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먼저 숨진 동료들을 생각하고 (비시급 전범들을 구제하기 위한) 입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베 신조 정권이 힘으로 입법화를 가로막았습니다.” 후지이의 설명대로, 조선인 비시급 전범 이학래의 일생은 부당한 일본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투쟁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1925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3남매의 첫째로 태어난 그는 1942년 봄 면장에게서 갑작스런 호출을 받았다. “‘남방 포로감시원’을 모집하는데, 자네가 가소!” 근무 기간은 2년, 한 달 월급은 50원이라고 했다. 17살 소년은 2년만 고생하면 징용과 머잖아 시행될 징집을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1942년 8월19일 부산에서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뒤 일제가 패망하면서 연합국

민족사랑 2021년 03월호

2021년 3월 26일 1428

[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특별기고]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30년을 돌아본다

2021년 2월 23일 2017

[전문] [다운로드] 민족문제연구소 출범30년을 돌아본다 상임이사 조세열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유지와 반민특위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월 27일(일제침략이 시작된 강화도조약 체결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그간 연구소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역동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짧지 않은 세월인 만큼 괄목할만한 성과도 거두었지만 역량이 따라주지 않아 미처 주목하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자화자찬이 될까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지난 30년간 연구소가 이루어낸 주요성과들을 정리해본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업적은 물론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다. 연구소 창립부터 치면 18년, 편찬위원회가 발족한 뒤로도 8년의 시간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전3권 2,882쪽 4,389명의 친일파를 수록한 대사전이 빛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성원과 헌신이 있었다. 대학교수 1만2천여 명의 편찬 지지선언, 단 11일만에 5억여 원의 성금을 모아주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시민들, 진보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작업에 참여한 편찬위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바친 상근자들. 그야말로 전 국민적 여망과 시대정신이 만들어 낸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적의 산물이었다. 오랜 기간 소송과 협박에 시달렸으나 『친일인명사전』은 이제 정부기관과 사법부까지 잣대로 삼는 역사의 이정표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실용주의를 택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철저하게 퇴행의 길을 걸으며 극우세력과 손을 잡았다. 정권인수위원회의 일성이 과거사청산 중단이었던 데서 드러나듯,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을 고스란히 수용해 정책에

[오마이뉴스] “일본 지원 받은 인물, 왜 소녀상과 노동자상을 공격할까”

2021년 3월 24일 5271

<김운성 작가의 탄원서 바로가기> [인터뷰] 반일종족주의 저자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한 김운성 작가 “정말로 우리 사회가 역사정의를 온전히 실천하고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바란다면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사람들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사법부가 이번 소송에서 역사정의에 입각한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만든 김운성씨가 <오마이뉴스>를 만나 한 말이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2017년 8월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세워졌다. 일본에 끌려가 노역을 살다 쓰러진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민주노동과 한국노총이 기금을 모아 건립했다. 제작은 ‘평화의 소녀상’ 작가로 알려진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맡았다. 문제는 <반일종족주의>의 공동저자로 알려진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인터넷 언론 ‘제3의길’과 자신의 SNS를 활용해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은 일본인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 강제징용노동자상은 역사왜곡”이라면서 “강제징용노동자상의 모델은 1926년 일본인”이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벌어졌다.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김소연 전 광역시의원 등 역시 SNS와 인터넷뉴스, 보도자료 등을 통해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이 때문에 김 작가는 부인 김서경 작가와 함께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주동식 제3의 길 대표,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김소연 전 광역시의원 등 4인에 대해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민사소송 결과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이미 김 작가 부부는 2019년 말 이 연구위원 등 4인을 상대로 허위사실 등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들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지난 11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설치된

[한겨레] “박정희 등 ‘일제 빛낸 사람들’ 92명 수갑 채워 심판했죠”

2021년 3월 30일 2378

[짬] 민중미술가 이상호 화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였다. 감옥 안 마룻바닥에서 글을 새긴 흔적을 발견했다. ‘대한독립만세’라는 글씨였다.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친일파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목숨바쳐 나라를 구한 독립지사들의 후손은 가난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광주비엔날레 초대작가 이상호(61) 화가는 화폭에 친일파 92명을 그려 일일이 손에 포승줄로 묶고 수갑을 채웠다. 이 작가는 30일 “70여년 전 ‘반민특위’ 해체로 심판받지 못했던 자들을 그림으로 심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4월1~5월9일)에 그는 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417㎝×245㎝)에서 그는 친일 인사 92명을 소환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친일인명사전’(2009) 수록 인물 중 군인·경찰·관료·언론·문화예술 부문에서 92명을 간추렸다. 박정희·노덕술·방응모·김성수·김기창·김은호·최남선·이광수·서정주·안익태·김활란 등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아버지 백낙승, 소설가 전혜린의 아버지 전봉덕,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로 민비 시해사건 주동자 우범선도 포함됐다. 인물 옆엔 그의 행적을 기록했다. 이 작가는 “반복해서 색을 칠해가며 그들의 비열한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부터 작업을 시작한 그는 “친일파들의 얼굴을 그리면서 메스꺼움이 가슴에서 튀어나와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럴때마다 “김구·장준하 선생의 얼굴이나 내가 그린 ‘통일열차 타고 베를린까지’라는 그림을 보며 붓을 곧추 세웠다”고 했다. 친일파들의 기록과 사진 등을 찾는 것은 이지훈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사무국장이 도맡아 큰 힘이 됐다. 그의 이번 작품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광주비엔날레가 끝나면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2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① 미션 답 찾기

2021년 3월 24일 714

[박물관은 뭐하니] Ep.2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① 미션찾기 ※관련영상  ☞유투브: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1 인턴은 뭐하니 VLOG 

[오마이뉴스] 만주 장교가 ‘광복투쟁’? 현충원 속 기막힌 신분세탁

2021년 3월 23일 2026

장군 제1묘역의 문용채와 최석용이 독립운동가였다고? 최근 제주 4.3 사건 73주년을 앞두고 제주 4.3 사건 당시 체포돼 육지에서 수형생활을 하던 중 6.25 한국전쟁 발발 직후 실종된 335명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왜곡된 역사 하나를 바로잡는 순간이었다. 제주 4.3 사건의 역사는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도 서려 있다. 기자는 이미 동작민주올레 시즌1에서 ‘4.3길’을 걸으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되돌아본 바 있다. 이때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국립서울현충원 ‘4.3길’을 보충하는 뜻도 담아 두 명의 장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장군 제1묘역에는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인사로 이미 동작민주올레 시즌1에서 소개한 ‘제주의 의인’ 김익열 장군(관련 기사: 제주와 대화한 군인, 민간인을 짓밟은 군인)말고도 사건 당시 경찰과 군인 간부로 가해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 넷의 묘가 더 있다. 무덤의 주인공은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경찰서 서장이었던 문용채(1916~1976, 제1장군-72)와 제주 4.3 사건 당시 미군정 경무부 공안국장이었던 김정호(1909~1970, 제1장군-39), 이승만 정부의 육군총참모장이었던 채병덕(1910~1950)과 2연대(연대장 함병선) 소속 대대장이었던 최석용(1903~1974, 제1장군-60)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친일행위를 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경찰 간부로 제주 4.3 사건에 개입한 문용채와 군 간부로 제주 4.3 사건에 개입한 최석용의 묘비명엔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던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는 만주국군 출신의 문용채 문용채는 1937년 봉천군관학교를 제5기로 졸업했다. 김백일(김찬규), 김석범, 김홍준,

[KBS] 보훈처 “간도참변 유공자 발굴”…경찰 과거사 반성 또 미루나?

2021년 3월 23일 1299

[앵커] 100년 전 일본군이 한국인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 이른바 ‘간도참변’ 당시, 일제에 협력해 동족을 학살한 한국인 경찰관 48명, 그리고 이때 체포된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KBS가 최초 발굴해 보도해 드렸는데요. 보훈처가 이 자료를 제공받아 독립유공자 발굴에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경찰도 역대 기관장들의 친일 이력을 전수 조사하기로 했는데, 친일 이력을 병기하는 문제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송락규 기잡니다. [리포트] 100년 전 일본이 간도 지역 항일 독립운동가와 민간인들을 학살한 간도 참변. 일제는 전국 각지에서 차출돼 학살 현장에 가담했던 한국인 경찰관 48명의 이름과 공적을 기록했습니다. 간도에 파견된 한국인 경찰들은 무봉촌과 의봉촌 등 간도지역 각 부락의 초토에 종사하는가 하면, 장암촌 부근을 소탕하는 동안 한국인을 조사하고 가택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간도참변 당시 한국인 경찰관에 의해 체포된 독립운동가는 17명. 이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사람은 4명뿐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KBS 보도 이후 자료를 제공받은 국가보훈처는 자료 분석 결과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독립유공자 발굴과 공적 검증에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민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료들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조사를 해서 발굴하는 사업들을 반드시 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도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70여 명의 역대 청장, 서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라는 KBS의 보도와 관련해 역대 기관장들의 친일 이력을 전수 조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친일 이력을 병기하는 것에 대해선 정부 부처 전체가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해야 할 사안이라며

[오마이뉴스] 충남교육청, 학교 내 일제잔재 청산 2기 사업 나섰다

2021년 3월 30일 1164

전국 최초 청산위원회 구성, 조사범위 학대… 1기 때 일본 향나무 56곳 교체 등 성과 충남도교육청(교육감 김지철)이 ‘일제 잔재 청산위원회'(아래 청산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 내 일제 잔제 청산 2기 사업의 시작을 선언했다. 다른 지역 일부 도교육청에서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청산위원회를 구성하고 청산 범위를 확대한 곳은 충남교육청이 처음이다. 충남도교육청은 29일 오후 3시 도교육청 1층 회의실에서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위원회 협의회’ 위원 위촉식과 1차 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청산위원회는 충남도 학교 내 일본풍 음계 교가 파악, 일본식 기념비 시설물 조사, 친일 반독재 경력자(설립자, 이사장) 파악과 더불어, 학교에서 기리는 친일 반독재 인물을 조사하기로 의결했다. 조사범위도 일선 학교에서 산하기관까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충남교육청의 일제 잔재 청산 활동은 지난 2018년부터 김 충남교육감의 강한 의지로 본격 추진됐다. 일본인 학교장 사진 게시, 교가, 교표(학교를 상징하는 무늬를 새긴 휘장), 교훈, 학생징계규정 등 일제 잔재를 조사했다. 지난해에는 도교육청과 민족문제연구소충남지부 간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많은 성과를 남겼다. 충남도교육청은 지난해까지 일본인 교장 사진 29개를 철거했다. 또 친일행위 경력자가 작사, 작곡한 교가를 둔 24곳을 찾아냈다. 이 중 4곳이 교가를 변경했다. 일본이 원산지인 58곳에 있는 가이즈 향나무를 교체했고, 머릿돌도 4개 철거했다. 충남도의회에서는 이에 호응해 ‘일제잔재청산특위’를 구성했다. 이번 청산위원회는 그동안 조사에서 누락된 내용을 추가 조사하고, 이를 교육공동체의 합의로 폐기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