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경기일보] [광복 76주년, 우리가 몰랐던 친일 잔재 알리기] ‘일제 잔재 청산’ 조례 만들어… 76년 민족의 치부 털어낸다

2021년 5월 24일 3971

이승만 정권 당시엔 부정적이었던 ‘친일파 처벌’ 2004년 특별법 통과로 반민족행위 규명 재추진 1천5명 친일행위자 공개·토지 2천359필지 환수 경기도 친일 잔재 청산은 어디까지? ■ 친일 잔재란 우리 역사는 1910년 8월29일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 이른바 ‘일제강점기’라고 한다. 해방 직후에는 ‘왜정시대’라고 불렀으며 한때는 ‘일제 식민지’라고 했다. 일제강점기는 독립운동과 친일 행위라는 길항 관계로 한 시기를 겪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친일의 사전적 의미는 ‘일제강점기 일제와 야합해 그들의 침략과 약탈 정책을 지지하거나 옹호해 추종함’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정의하면 ‘일본에 관심을 가지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에게는 그렇게만 인식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우리 사회는 역사와 문화, 제도 등 많은 분야에서 왜곡되고 뒤틀렸다. 이른바 ‘동화(同化)’라는 식민정책으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내세우면서 일본식 이름을 쓰도록 강요했고, 학교에서는 우리 말과 글인 한글 사용을 금지하면서 한국인의 민족정신과 역사,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러다 보니 비본질이 본질을 구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강점기 우리 사회는 부정적인 잔재들이 남아 있다. 이를 ‘친일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친일 잔재는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침략과 강점기 식민지배 과정에서 남겨진 유무형의 부정적 유산이다. 그렇다면 친일 잔재의 범주는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간략하게 구분하면 인적 잔재와 물적 잔재, 그리고 유형 잔재와 무형 잔재로

[아시아경제] 강북구 ‘쿠바 이민 100주년 기념 특별사진전’ 개최

2021년 5월 24일 656

김동우 작가 사진 52점 전시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 독립운동 사적지 담겨…온라인 또는 전화로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강북구(구청장 박겸수)가 8월18일까지 근현대사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를 개최한다. 근현대사기념관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쿠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김동우 작가가 촬영한 52점의 사진이 준비됐다. 김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왔다. 독립운동가들은 먼 타국의 땅에서 굶주림, 차별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한인교회, 한글학교 등을 세워 정체성을 유지하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도 자금 모집 등 활동을 해 왔다. 전시회에서는 쿠바 마나티 항구와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 등 한인 이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와 3·1운동 2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던 미국의 타운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인도 레드포트 훈련지,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의 묘적지 등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쿠바와 멕시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전시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관람 희망자는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예약하거나 전화신청 후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무료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이번 전시회가 세계 곳곳에서 광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했던 숨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관심 있는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람

[서울&] 식민지배가 후세에 끼친 영향 보는 곳

2021년 5월 21일 1181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용산은 일제강점기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식민지배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용산에는 통감부 청사가 자리 잡았고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대륙 침략 전초기지로 이용하기 위해 100만 평에 달하는 군사철도기지를 조성했다. 해방 이후 용산에는 독립운동 선열 묘역이 들어섰다. 1946년 7월 김구 선생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의사 유해를 효창공원에 모셨다. 2년 뒤엔 임시정부 요인(이동녕 주석, 조성환 군무부장, 차리석 비서장)들이, 다음해 7월엔 김구 선생이 이곳에 묻혔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효창공원과 맞닿은 청파동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청파로47다길 27)이 있다. 서울에는 수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이곳은 조금 더 특별하다. 일제강점기를 전문으로 다룬 최초의 역사박물관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2018년 8월29일 문을 열었다. 경술국치(1910년 8월29일) 108주기에 맞춰 날을 정했다. 역사박물관 건립은 민간에서 추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독립운동 학계, 시민단체 등이 중심이 됐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도 박물관 건립에 참여해 그 의미를 더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건립 기금 모금에 참여했다. 박물관에는 운요호 사건(1875년)부터 해방(1945년)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정,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 치열했던 항일 투쟁 과정을 상세히 전시했다. 현재 박물관에는 1만여 점에 이르는 물품이 전시돼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 피해자 유족을 비롯한 시민들이 상당수의 전시자료를 기증했다. 박물관 1층에는 기획전시실·뮤지엄숍, 2층에는 일제강점기 전시 체험공간이 있다. 3층과 4층은 연구와 자료 보존공간이다. 현재 1층에서는 기념전 ‘일제 부역 언론의 민낯’이 열리고 있다. 일제가 발행을 허가한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1~20편

2021년 5월 21일 1646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주경제] [정철승 칼럼] 음악계의 친일반역자들

2021년 5월 20일 1317

가정의 달 5월에 가장 흔하게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누구나 귀에 익을 정겹고 뭉클한 선율의 이 노래의 제목은 “어머니의 마음”인데, 현제명 서울대 음대 초대학장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친일반역행위를 일삼았던 이흥렬 숙명여대 음대학장이 작곡한 노래다. 일제강점기에 음악인들이 어떻게 친일반민족행위를 했을까? 음악인들은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대화악단 등 친일활동을 위한 음악인단체를 조직하여 일본국민가요를 조선에 보급하여 일제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 정책을 도왔고, 각종 음악회를 개최하여 모금한 수익금을 일제의 전쟁군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전쟁물자 생산을 위한 공장, 광산 등을 돌며 위문음악공연을 함으로써 생산을 독려하였을 뿐 아니라, 널리 이름이 알려진 자들은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국민과 학생들에게 징용 및 학병 지원을 독려하였고, 구로야 샤이민(현제명), 나오키 오키이찌오(이흥렬), 모리카와 준(홍난파) 등 일제의 창씨개명에 앞장서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정책에 협력하였다. 위와 같은 각종 친일반민족행각을 가장 적극적 주도적으로 자행했던 음악계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현재명과 이흥렬인데, 이들은 해방 후에는 자신들의 미국 유학경력 등을 최대한 이용해서 친미반공으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변신해서 서울대 음대학장, 숙대 음대학장, 예술원 종신회원, 대통령 문화훈장 등 음악계의 행정가, 교육자, 원로, 실력자로서 죽을 때까지 권위와 명예를 누렸고, 현재 음악계는 이들이 배출한 제자나 후진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어떠한 비판도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현제명과 이흥렬은 2001년부터 8년 동안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연구자 150여 명이 선정한 일제

[광주인]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5.18민주광장에 전시

2021년 5월 18일 1268

5.18민주광장에 ‘예술법정’ 개막 ….친일독재자.5.18가해자.망언자들 전시 ‘법이 하지 못한 심판. 붓으로 심판하다’…민미협. 민문연 광주지부 주최 비엔날레 출품작 ‘일제를 빛낸사람들’ 좌우에 전두환 등 5.18학살자 추가 지난 9일 폐막한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돼 국내외 문화예술계와 언론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제41주년 5.18민중항쟁행사위원회와 광주민미협(회장 박태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는 지난 16일 오후 5.18민주광장 민주의종 앞에 ‘문화예술법정’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작품 좌우에 전두환 노태우 등 5.18학살주범 등 친일독재자와 5.18가해자 망언자들의 얼굴을 풍자한 기존 작품을 덧붙인 작품을 전시 중이다. ‘법이 하지 못한 심판, 붓으로 심판하다’라는 주제로 개막한 이번 제41주년 5.18민중항쟁 문화예술법정 작품은 악질 친일파 92명을 수갑과 포승줄로 묶은 ‘일제를 빛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군사독재로 이어진 굴곡진 역사를 그림으로 단죄한 작품이다. 전시 중인 작품은 ‘일제를 빛낸 사람들’ 좌우에는 친일파를 계승하여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노태우 등 친일독재자이자 5.18학살주범들, 그리고 5.18정신을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폄훼한 대표적인 정치인 등을 배치했다. 이번 전시작품은 이상호 화백의 그림원본을 천에 인쇄한 복사본이다. 특히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이번 5.18 전시를 마치고 민족문제연구소 부설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영구 기증되어 전시될 예정이다. 이상현 기자 <2021-05-17> 광주인 ☞기사원문: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5.18민주광장에 전시

[오마이뉴스] 나라 망한 을사년에 태어난 도서관계의 별들

2021년 5월 17일 1961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 경북대 초대 도서관장, 원암 이규동 ① 우리 사회에 근대 도서관 제도가 도입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이식된 도서관은 이제 시민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일상 공간이자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역사와 도서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잊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서관 선구자임에도 잊힌 사람의 발자취를 찾아 그들을 다시 조명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잊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합니다.[기자말] 조선인 중 근대도서관에서 일한 최초의 ‘사서’는 누구일까? 기록으로 확인 가능한 최초의 조선인 사서는 송재(松齋) 서재필(徐載弼)이다. 서재필은 1888년 가을부터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육군 의학도서관(the Library of the Surgeon General’s Office)에서 ‘사서’로 일했다. 육군 의학도서관에서 서재필은 동양에서 입수한 의학서적을 담당했다. 이 땅에서 일한 최초의 조선인 사서는 누구일까?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의하면 경성도서관 종로 분관(지금의 종로도서관)에서 일한 이긍종(李肯鍾)이다. 일제강점기 ‘사서 자격증’을 처음 발급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조선총독부도서관에서 일한 최장수(崔長秀)다. 최장수는 1937년 조선인 중 최초로 사서 자격증을 발급받았다. 최장수에 이어 두 번째로 사서 자격증을 발급받은 사람은 ‘한국 도서관의 아버지’ 박봉석(朴奉石)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사서 자격증’을 발급받은 사람은 10만 명을 헤아린다. 그중에 ‘사서 자격증’을 처음 발급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원암(圓庵) 이규동(李揆東)이다. 1905년 을사년에 태어난 원암 이규동은 1905년 4월 28일 충청북도 영동읍 화신리 291번지에서 태어났다. 원암의 아버지가 서른일곱, 어머니 서른넷에 낳은 외동아들이었다.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빼앗긴 을사년, 한국 도서관계에 별이 되는 인물이 여럿 태어났다. 이재욱, 박봉석, 강진국과 함께, 이규동도 1905년 을사년 생이다. 1916년 4월 5일 이규동은 영동보통학교에 입학해서 1919년 2월 21일 졸업했다. 1920년 1월 29일 그는 이갑희(李甲姬)와 결혼했다. 결혼하고 한 해 뒤인 1921년 5월 2일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관립 중등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늘자, 1921년 5년제로 개교한 학교가

[프레시안] ‘친일’ 반야월‧서정주, 같지만 달랐다

2021년 5월 17일 1721

[손호철의 발자국]31. 충북 박달재 : ‘친일 문인의 두 얼굴’ – 반야월과 ‘종천(從天) 친일파’ 서정주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유명한 옛 유행가 ‘울고 넘는 박달재’ 가사다. 박달재는 충북의 충주에서 제천을 잇는 38번 국도를 따라 제천에 거의 다 이르면 있는 고개다. 특히 이 고개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경상도 청년 박달과 이 고개 아랫마을의 금봉이가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에 대한 전설을 가진 곳으로, 인기 작사가 반야월이 이 전설을 노래가사로 만들었다. 이 노래 덕에 이 고개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고개 이름 박달재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고개는 한 때는 많은 트럭들의 정체가 일어났던 곳이지만, 이제 박달재터널이 생긴 뒤 통행량이 한적해졌다. 이제는 거의 버려진 이곳이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인 이유는 반야월 때문이다. 그는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이라고 불린 탁월한 작사가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소양강 처녀’, ‘산장의 여인’ 등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히트곡을 작사했고 그런 만큼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가진 작사가로 알려졌다. 이 곳 박달재에도 박달과 금봉이의 사랑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각 동상이외에 ‘박달재 노래비’라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노래비 옆에 세워져 있는 작은 팻말이다. 2016년 제천의병유족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가 설치한 하얀 이 팻말은 ‘반야월의 일제 하

[광주일보] 이상호 비엔날레 참여작가 “시대 담은 민중미술 계속 이어가야죠”

2021년 5월 14일 1420

“힘든 삶 지켜준 사람들에 좋은 그림으로 보답” ‘걸개그림’ 국보법 위반 구속…30년 아픔 트라우마센터 통해 안정 찾아 불교미술 접목 작품 확장…5월 유족과 인연, 삶·예술 연극으로 만들어져 올해 예순 둘이 된 민중미술 작가 이상호는 최근 3년 동안의 삶이 참 행복했다고 말했다. 힘든 삶이었지만 자신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도 했다.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며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호 작가는 오랜 시간 정신질환과 싸워왔다. 조선대 미술학과 3학년 때 화염병을 던지다 경찰에 끌려가 수없이 구타당한 후 닥친 불행이었다. 6월 항쟁 때는 걸개그림이 발단이 돼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됐다. 30여년간 나주정신병원을 수차례 오고 가는 삶이 계속됐다. 모두 합치면 6년여, 2000여일의 시간이다. 어둠의 시간을 지나, 그는 3년 전 광주트라우마센터에 다니며 상담을 통해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한 동안 놓았던 그림 작업에도 매진했다. 이 작가는 최근 막을 내린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선보였고 뉴욕타임즈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다. 또 그의 삶과 예술이 모티브가 된 오월 연극 ‘어머니와 그’도 공연된다. 5·18이 발생하고 아직은 엄혹한 세월이었던 1980년 초반, 오월어머니회 유가족들은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위를 하곤 했다. 1984년, 이 작가는 우연히 시위에 합류했다 어머니들과 나주 경찰서로 끌려갔다. “당시 경찰서에서도 내 아들 살려 내라며 외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한과 슬픔을 알 수 있었죠. 유가족 사이에 혼자 있는 저를 경찰들이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니,

[쿠키뉴스] 일제에 맞서 싸웠지만 서훈 못 받는 ‘녹두장군’

2021년 5월 12일 1178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지정된 지 3년째를 맞았다. 그러나 혁명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은 지지부진하다. 11일 오후 3시 서울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제127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열린다. 동학군은 지난 1894년 5월11일 전북 정읍 황토현 일대에서 관군을 무찌르고 첫 승리를 거뒀다. 2019년 정부는 5월11일을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매년 정부 주최 기념식도 열린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동학 세력이 주축이 돼 일으킨 대규모의 민란이다. 동학농민운동 또는 동학농민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동학농민혁명은 크게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에서 동학군은 탐관오리의 폭정에 저항, 궐기했다. 2차는 달랐다. 당시 일본군은 1차 혁명 진압을 돕겠다며 조선에 주둔해 내정간섭을 벌였다. 동학군은 일본군을 몰아내자는 취지에서 2차 혁명을 일으켰다. 최시형과 전봉준 등이 주축이 돼 관군·일본군에 저항했다. 치열하게 싸웠으나 신식무기로 무장한 관군·일본군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차 혁명이 항일운동이었다는 점은 ‘전봉준 판결 선고서’에도 명시돼 있다. 선고서에는 “전봉준은 일본 군대가 대궐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필시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병탄(倂呑·남의 재물이나 영토를 제 것으로 만듦)하고자 하는 뜻인 줄 알고 일본군을 쳐서 물리치고자” 군대를 일으켰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전봉준·최시형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는 전봉준·최시형에 대한 독립유공 공적심사 요구에 “활동 내용이 독립운동 성격 불분명하다”고 반려했다. 학계 의견을 청취한 후 서훈 여부를 재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자료에 의거,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차 혁명에 참여했다가 일본군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