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시민역사관

통제와 규율로 가득한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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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톺아보기 43]

통제와 규율로 가득한 교실
– 식민지 학교

학교전경, <경성마포공립심상소학교 제26회 졸업기념>, 1940
‘감시’하기 좋은 일자一字식 복도, <경성제일 공립고등보통학교 졸업앨범>, 1936
교실풍경, <제13회 남면공립보통학교 졸업기념>, 1936
위병소를 연상시키는 교문, <제12회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 졸업기념사진첩>, 1935
교실 풍경, <거창읍공립국민학교 제30회 졸업기념>, 1942
교무실과 강당, <선린상업학교 제31회 졸업기념사진첩>, 1938

잿빛 색깔의 단단한 벽으로 지어진 건물. 옥상보다 더 높은 곳에서 펄럭이는 일장기.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공터. 굳게 닫은 철문과 이어진 차가운 울타리. 마치 감옥을 연상하게 하는 풍경.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바로 ‘학교’다.

지식을 습득하고 동무들과 함께 뛰어노는 희망과 설렘의 공간을 왜 이렇게 두렵고 공포스럽게 지었을까?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면서 그들의 교육목표는 ‘내선일체’, ‘황국신민’ 따위의 슬로건을 내걸고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일본화’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학교 건물도 학생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쉬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곧은 일직선 형태의 복도를 따라 교실이 이어져 배치되었다. 복도 한쪽 끝에 서 있으면 반대쪽 끝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통제기능을 담당하는 교장실과 교무실은 건물의 가장 중간에 배치된다. 교실의 벽면은 완전히 가리지 않는다. 허리 높이까지 벽돌로 쌓아 올리고 복도에서 항시 교실 내부를 관찰할 수 있게 눈높이 정도는 유리로 된 창으로 만든다.

밀폐된 곳은 학교의 최고 통제권자가 머무르는 교장실밖에 없다. 학교가 복층인 경우는 상층 중앙에 교장실을 배치하여 운동장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마치 군대의 막사같이 위압적이고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교실 내부는 어떠한가. 교실 전면에는 벽면을 가득 채운 칠판이 부착되어 있다. 교사가 학생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교단과 교탁이 중앙에 자리 잡는다. 칠판의 중앙 상단에는 일장기, 좌우에는 교훈이나 학교 규율을 액자로 하여 걸어 놓았다. 양쪽 끝에는 수업시간표와 지도를 걸어 두었다. 특히 전시체제기에는 ‘대동아’와 세계지도를 비치하여 시국에 대한 인식을 강요하였다. 교단의 맞은편에는 학습 기사와 주의 사항, 통고 등을 게시하고, 전쟁 시에는 각종 표어나 슬로건을 부착하였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열을 맞춰 부동자세를 하고 모두 정면의 교사를 응시한다. 교실 안은 교사의 강의와 학생들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 속에 나오는 숨소리 말고는 없다.

봉안전, <졸업기념 제16회 진해공립고등여학교>, 1941

교실 밖으로 가면 봉안전(奉安殿)과 대마전(大麻殿)이 눈에 띈다. 봉안전은 교육칙어나 ‘어진영(御眞影)’이라고 높여부르는 ‘천황’의 사진을 받들어 모시도록 했던 공간이다. 대마전은 ‘천황’의 시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소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 발급하는 부적인 ‘대마’를 보관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의 학교라면 대부분 이런 시설물을 갖춰놓고 학생들에게 일상적인 참배를 강요했다.

학교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곳은 운동장이다. ‘튼튼한 황국신민’을 육성하기 위한 ‘체력 훈련’의 장소이자 ‘천황’을 향해 예禮를 올리기 위한 집단 훈육의 장소였다. 연병장의 군인들처럼 정렬하면 일장기 게양, ‘천황’에 대한 경례, 황국신민서사 제창, 선생님의 훈시, 체조가 운동장에서 이루어진다. 갖가지 의식과 집회,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학생들은 권위에 복종하게 된다. 교문에 딸린 수위실은 외부를 통제하는 위병소가 되며 학교 건물 앞 중앙에 자리 잡은 구령대는 사열대가 된다. 교관의 구령에 맞춰 학생들은 사열하고 모형 총검으로 전투훈련을 받는다. 이처럼 통제와 규율로 지어진 식민지 학교는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 강동민 자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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