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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이승만과 박정희, 찬양받아 마땅하다고요?
[리뷰] 다큐영화 <백년전쟁>, 이승만과 박정희를 재조명하다 ▲ 영화 <백년전쟁>의 포스터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말했다. “우리가 점령한 곳에서는, 항상 사람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 한 쪽에는 레지스탕스(저항세력), 다른 쪽에는 콜라보(협력세력)가 있다. 그 사이에 머뭇거리는 대중이 있다. 그 나라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온갖 부가 약탈되는 것을 참고 견디게 하려면, 머뭇거리는 대중이 저항세력에 가담하지 않고 협력세력들 편에 서도록 해야 한다.”일본이 침략하자, 조선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한 쪽에는 독립운동가들, 반대쪽에는 친일민족반역자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있었다. 영화 <백년전쟁>중 <두 얼굴의 이승만> 편은, 위와 같은 대사로 시작된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침략국의 ‘협력세력’이었음에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재조명하면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침략과 약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식민지 근대화론’의 정곡을 찌른다. 미국 정보부 문서로 파헤친, 우리가 몰랐던 ‘진짜 역사’ ▲ <두 얼굴의 이승만> 포스터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백년전쟁>은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초대 대통령이자 일부에서는 국부라고 불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룬 <두 얼굴의 이승만>과 ‘경제부흥의 주역’으로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화를 해부한 <프레이져 보고서>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서 다루어진 사실들은 대부분 미국 정보부 문서들이다. 충격적인 내용의 문서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알던 역사가 뒤집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재공개] 다카키 마사오의 충성 혈서
12월 4일의 대선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향해 일갈한 ‘다카키 마사오‘가 포털 검색어 최고 순위를 달리고 있다. 박정희의 창씨명 다카키 마사오가 인기 검색어로 떠오름에 따라 박정희 혈서를 둘러싼 진위 논란도 재점화하는 상황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조세열 사무총장의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 기고문을 재공개 한다 [기사 바로가기]
이정희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독재비난, “김일성 독재도 욕해봐라” 논란
▲다카키 마사오 발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맹비난 이정희 후보(사진=연합뉴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다카키 마사오 발언에 여론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4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로 치러진 TV토론에서 종북논란 공방외에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특히 TV토론 시작부터 이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인 다카키 마사오를 거론하며 박 후보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날 이 후보는 “충성혈서를 써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것이다”며 “한국이름 박정희 해방되자 군사쿠데타로 집권하고는 사대매국 한일협정 밀어붙인 장본이다 좌경용공으로부터 나라 지킨다면서 유신독재, 철권 휘둘렀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같은 발언에 박 후보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고 순간 토론장의 분위기가 냉각됐다. 현재 온라인 상에는 다카키 마사오가 검색어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으로 네티즌들의 반응들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주요 포털게시판과 사이트의 이 후보의 발언을 옹호하는 측의 네티즌들은 박정희의 친일 행위를 확실히 하는 분명한 발언이었다는 식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반면 이 후보의 발언에 대해 비난 하는 측의 네티즌들은 대선후보로서 정책과는 빗나간 단순 비난성 발언이었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부 네티즌은 박정희 독재를 비난하는 이 후보가 김일성 일가 3대 세습 독재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시티신문>2012-12-5 [기사원문보기] 이정희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민주, 日우파서 “친일 박정희 정신으로 돌아가라” 편지·말뚝 받아
서울=뉴시스】추인영 기자 = 민주통합당은 4일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뉴욕 등에 말뚝테러를 했던 스즈키 노부유키 일본국 유신정당·신풍 대표로부터 “친일파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에 되돌아가라”는 편지와 함께 말뚝을 배달받았다. 민주당 박광온 대변인에 따르면,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시민캠프는 이날 오후 사무실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와 함께 ‘독도는 일본땅이다’,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적힌 말뚝을 배달받았다.박 대변인이 공개한 편지 내용에 따르면, 편지는 “문재인에게 충고한다”며 “당신이 제시한 ‘대일(對日) 5대 역사현안’은 절대로 인정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이 편지는 이어 독도 및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다. 독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종군 위안부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 배상 책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이 조선에 준 물건은 있지만 빼앗은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특히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 “모두는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과 맺은 ‘한일기본조약’으로 최종적 동시에 완전히 해결하고 있다”며 “국제조약을 지키지 않는 태도는 근대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한일기본조약’을 맺은 친일파의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에 되돌아가라”고 언급했다.이 편지는 또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을 동봉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을 액(액자)에 넣어서 매일 아침 예배하라”고 밝혔다.박광온 대변인은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이 사건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며 대한민국 대통령후보에 대한 말뚝테러로 규정한다”며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일본 정부에 엄중한 항의의 뜻을 전하고, 일본 정부가 진상을 파악해서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비롯한 강력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 소포의 발신자를 확인하기 위해
사이비 보수세력의 장기집권 막아야 한다
[기고] ‘박정희주의자들=대한민국 보수’? 천만에!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한국사회의 자칭 보수세력은 보수란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한 번도 진정한 의미의 보수를 지향한 적이 없다. 보수란 보전하고 지키는 것인데 그 대상은 한 사회의 구성원 다수가 합의한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건전한 보수세력은 비록 변화와 개혁에는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가질지라도 통념화한 가치기준의 수호와 도덕적 책무의 이행에 있어서는 신념을 가지고 앞장서기 마련이다.그렇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럴싸한 한국적 보수파의 형용은 어떠한 것일까. 첫째, 외세로부터 민족의 자존과 국가의 독립을 지켜나가는 데 뜻을 같이한다. 둘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한다. 셋째, 국가가 부과하는 납세ㆍ병역 등 공민으로서 의무를 다한다. 넷째, 무엇보다도 체제유지의 근간인 법질서를 존중한다. 다섯째, 우월한 사회적 입지에서 비롯하는 관용과 양보를 주요한 미덕으로 삼는다.해방 이후, 우리의 ‘보수’는 거꾸로 갔다그런데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위에 열거한 덕목 어느 하나에도 충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추구했다고 봄이 적실할 것이다.우선 사대매국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일관되게 외세를 추종해왔다. 이들 중 다수는 일제시기 친일파 출신이거나 이들과 혈연ㆍ학연ㆍ혼맥 등으로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비호세력들이다. 이러한 원죄 때문에 지금도 ‘친일’이라는 말만 나오면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천황’의 세계지배를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귀축(鬼畜)영미타도’를 외치던 친일파들은 일제가 패망하자 표변하여 미국을 새로운 상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다시 외세의 종노릇을 자임하였으며, 대신 이 사회의 주류로 굳건히 자리 잡고 부와
윤봉길 의사가 테러리스트인가?
[뉴라이트는 어떻게 역사를 왜곡했나]<3> 항일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서술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1. 기본 입장뉴라이트 교과서의 ‘항일 민족독립운동의 전개'(112~133쪽) 서술은 간략하며 단조롭다. 기존의 교과서보다 그 비중이 크게 줄었는데, 이는 일제시기 역사서술이 지나치게 항일운동사 중심이며, 독립운동사는 이미 많이 언급되었다고 보고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다루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교과서가 견지하는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기본입장은 다음 세 가지이다.첫째, 민족의 독립운동이 개인의 자유나 인권보다 하위개념이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민족주의적 입장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민족독립운동 서술을 사실보다 부풀렸다고 본다. 민족독립운동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민족감정에 치우쳐 사실을 왜곡 또는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민족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교과서는 “민족중심의 역사관을 누그러뜨리려고 애썼으며”, “‘우리 민족’ 대신에 ‘한국인’을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 설정하였다.”(5쪽). 개항 이후 130년간의 역사를 “자유와 인권을 갈망하고,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처지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보통사람들의 역사”(5쪽)로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민족보다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서술이 “기존의 역사 서술에 비해 꽤 큰 변혁”(5쪽)이기는 하나, 이러한 관점이 식민지지배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한 우리 역사에도 적합한지는 의문이다.잘 알다시피 일본 제국주의 지배는 근대 사회의 핵심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였으며, 조선인의 정체성,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인은 일제 파시즘의 폭력정치에 의해 일체의 권리가 무시되었고 복종과 굴욕의 노예적 상태를 강요당했다.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이에 따른
독재,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이 글은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연구원으로 현재 YTN 라디오 ‘권기봉의 걸으며 생각하며’와 MBC ‘도시탐험M’을 진행하고 있는 권기봉 회원이 최근 발간한 새 책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에 실린 것으로 전재를 허락해 준 권 회원께 감사드린다. – 엮은이 독재,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과 신당동 ‘박정희 가옥’을 찾아 권기봉 서울서부지부 회원·한국문명교류연구소 연구원 유럽에서 가장 낙후했던 봉건국가를 단 30년 만에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2위의 산업국으로 발전시킨 인물이 있다. 그는 중공업 위주의 발전 전략을 택해 중단 없는 경제성장을 도모했다. 부족한 노동력은 2500만 세대에 이르는 농민들을 도시로 이주시킴으로써 보충했다. 국산품 애용을 유달리 강조했던 그는 수입을 억제하는 동시에 강력한 수출드라이브를 걸기도 했다. 성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1928년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시작한 이후 10년 만에 전력 생산량이 8배로 증가했으며, 철강과 석탄, 원유, 시멘트 생산량은 각각 5배, 4배, 3배, 2배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일본이 84퍼센트 성장한 데 반해, 이 나라는 무려 497퍼센 트의 성장세를 보였다. 통계가 과장될 수 있음을 감안해도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성장이었다. 심지어 1950년대 말에는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 까지 했다. 그 지도자의 이름은 바로 스탈린이다. 세계 정치 지도자 가운데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해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처럼 탁월한 지도력의 이면이 폭력과 인권 탄압으로 얼룩져 있는 인물 또한 스탈린이다.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2000만 명에
우리는 지금 ‘역사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기고] 역사 다큐 <백년전쟁> 관람기 이준식 연세대 교수·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오래 전에 <4억 민중>(The 400 Million)(1938년)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4억 명’이라는 숫자는 중일전쟁을 전후한 시기 중국의 인구를 가리킨다. 이 영화는 당시 세계 각지의 반파시즘 운동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벌이던 요리스 이벤스(Joris Ivens)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맞선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그리고 중국 민중의 투쟁을 영상에 담은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는 저명한 영화인이 대거 동참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것도 할리우드의 일류 배우인 프레드릭 마치(Fredric March)였다.민족운동사를 공부하면서 독립과 해방을 위한 운동세력의 연대와 통합 문제에 관심을 갖던 나에게 가장 감동적인 것은 영화에 담긴 중국인의 항일투쟁 모습 그 자체였다. 그래서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전쟁에서) 중국 민중이 이길 것인가? 이들은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10년 이상이 걸릴지 모르며 크나큰 고난을 겪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무장을 갖추었고 왜 싸워야 하는지 알고 있다. 결국 이것이야말로 승리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대사를 한동안 컴퓨터 책상 한편에 붙여 놓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영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화가 가장 영향력 있던 대중매체로서의 위상을 지닌 20세기를 지나 오늘날에는 새로운 대중매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영화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중매체임에 틀림없다. 특히 오로지 돈만을 추구하는 상업영화의 범람 한 가운데서도 <워낭소리>,
이승만과 박정희의 민낯, 줄서서 봅니다
역사다큐 <백년전쟁> 관람기 <오마이뉴스> 2012-11-26 | 강성률 교수 ▲ 300석 규모의 <백년전쟁> 시사회 좌석이 부족해 많은 시민들이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2012년 한국영화계에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두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영화 총관객이 1억 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다큐 <두 개의 문>이 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이다. 우리에게 다큐는 영원히 변방의 장르였다. 게다가 정치적인 다큐는 변방 중의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산 참사의 비극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하면서 파헤친 <두 개의 문>이 엄청난 흥행을 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두 개의 문> 때문인지, 정치적인 영향 때문인지 이후 <맥코리아> <MB의 추억> <유신의 추억> 같은 정치적 다큐가 대중들의 기대를 받았다. 여기에 <남영동 1985> <26년>까지 보태면 하나의 자장을 만나게 된다. 이 자장 안에는 다큐에서 극영화까지 폭넓게 포진하는데, 이를 ‘영화 저널리즘’ 또는 ‘무비 저널리즘’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저널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가 나서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이슈를 제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유독 올해 이런 현상이 심했던 것은 지난 5년 동안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관객들의 진실을 향한 욕구가 강하기도 하며, 대선을 앞두고 진실을 알려는 욕망이 팽창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백년전쟁> 시사회에 앞서 김지영 감독이
[공지] 역사다큐 영상 인터넷 공개 연기
민족문제연구소가 ‘근현대사 진실찾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제작한 역사다큐 <백년전쟁> 시사회가 26일 저녁 7시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성황리에 진행됐습니다.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00석 좌석도 모자라 발길을 돌리신 많은 분들께는 다시 한 번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더불어 오늘 정오로 예정되었던 역사다큐 <백년전쟁>의 인터넷 공개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내일(28일) 오후 5시로 연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제 시사회 이후 각 분야 전문가의 의견과 관람평을 일부 수렴해, 현재 몇 가지 보완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내일 더욱 완성도 높은 <백년전쟁>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진실의 역사를 담기 위해 불철주야 작업 중인 연구소 영상팀에 대한 응원도 아울러 부탁드립니다. <백년전쟁> 인터넷 공개 후, 시청방법 등 자세한 사항은 <백년전쟁> 공식 블로그를 통해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래 배너 이미지 클릭) 여러분의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http://ibuild.tistory.com/1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