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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서울시의회 김문수 위원장 광복 70돌 맞아 영화 ‘암살’ 과 ‘친일인명사전’ 추천

2015년 8월 16일 708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김문수 교육위원장(성북 2)과 김생환 의원(노원 4)최영수 의원(동작 1)은 8.15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친일파 청산과 역사의식에 또 한 번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사관을 확고히 정립할 수 있는 영화와 도서를 추천했다. ▲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김문수 교육위원장(사진 가운데)과 김생환 의원(오른쪽)최영수 의원(왼쪽)은 8.15 70주년을 앞두고 추천한 영화 ‘암살’포스터 앞어서 역시 추천도서인 ‘친일인명사전’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의회 제공 김문수 위원장은 10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둔 영화 ‘암살’을 추천한 이유로 “영화 암살은 우리나라가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으로 인하여 1910년 일본에 나라는 빼앗기고 20여년이 흐른 1933년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끝까지 투쟁했던 선조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서 “영화 암살이 가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여주인공 안옥균이 겪은 간도참변이나 속사포가 졸업한 신흥무관학교는 실존 했던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일제 강점기의 시대상을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아직도 시대적 과제로 남은 친일파 청산에 대한 문제의식과 확고한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민족문제연구소가 2001년부터 8년간의 노력을 들여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광복 70주년에 걸 맞는 우수도서로 추천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난제가 바로 친일파 청산”이라면서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미래세대를 위한 확고한 역사관의 정립을

日 잔재 그대로 방치..갈 길 먼 ‘친일재산 환수’

2015년 8월 16일 675

<앵커> 친일 행위자들의 재산을 환수하기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됐습니다. 정부 조사위원회 활동을 거쳐서 800억 원 상당의 친일 재산이 국가에 귀속됐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김아영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서울 은평 뉴타운이 들어서기 전 도로였던 땅 11곳. 조선 왕실 종친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해승이 일제 강점기 때 갖게 된 토지입니다. 이해승의 후손이 2006년 이곳과 포천시 임야 등을 200억 원대에 처분하자, 정부는 친일 재산을 처분해 얻은 부당 이득이라며 환수 소송을 냈습니다. [SH 공사 직원 : 어차피 보상법에 따라서 이뤄지는 거니까요. 그 당시에는 그런 상황을 모르고….] 이 소송을 포함해 이해승 관련 소송 두 건이 마무리되면, 친일 재산 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한 재산 환수는 사실상 종료됩니다. 조사위가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린 토지는 1천만㎡ 가량, 하지만 친일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에 져 19%가량은 결국 환수에 실패했습니다. [장완익 변호사/前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사무처장 : 아쉬움이 있죠. 저희들 입장에서는 조금 더 역사적인 사실 관계라든지, 고려할 필요가 있고….] 그럼 국가로 귀속된 땅은 어떨까요? 민영은 일가가 소유하던 이 일대 토지는 지난 2009년 친일 재산으로 확인돼 국고로 귀속됐습니다. 하지만 보시는 것처럼 민영은의 묘지가 남아있는 등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국유지가 됐지만 그냥 방치돼 있는 겁니다. [청주시청 직원 : 국가보훈처 땅으로 (돼 있어요.) 그러면 땅 주인 이 처리를 해야 해요. 어떤 식으로든.] [보훈처 직원 :

여성 독립운동가 260여명 인명사전 11월 출간

2015년 8월 16일 983

나혜석·이은숙·홍매영 여사 등 포함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 260여명의 생애와 업적을 집대성한 인명사전이 발간된다.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여성 248명 외에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 여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지사 등이 포함된다.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오는 11월 ‘여성독립운동가 인명사전’을 출간한다고 9일 밝혔다. 이 사전에는 정부에서 공인한 독립유공 서훈자 248명을 포함해 총 260여명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수록될 예정이다. 기존에 136명이 다뤄진 ‘여성독립유공자’(김승일, 1998년)가 발간된 적은 있지만, 이번 인명사전은 표제 인물의 수나 방대한 내용 등 측면에서 완전히 새롭게 쓰여진다. 기존 서훈자 외의 인물 중에서는 현재까지 7명의 등재가 확정됐다. 항일 무장투쟁의 본산인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자 우당 선생의 부인으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할머니인 이은숙(1888~1979) 여사, 재봉틀로 직접 태극기를 만들어 3·1운동을 지원했던 김예진 목사의 부인 한도신(1895~1986) 여사, 상하이 임시정부 비서장을 지낸 차리석 선생의 부인 홍매영(1913~1979) 여사 등이다. 광주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임진실(당시 20세) 지사, 충남 천안에서 유관순 열사보다 열흘 먼저 만세운동을 이끈 황금순(당시 18세) 지사 등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여성들도 포함됐다. 화가 나혜석(1896~1948) 지사나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비서로 활동했던 이화림(1906~1996) 지사처럼 이름은 알려져 있었지만 서훈을 받지 못한 여성들도 이름을 올린다. 사업회 측은 “나 지사의 경우 부친과 남편의 친일 행적 때문에 ‘친일’ 딱지가 붙었지만 실제로는 만주에서 일제에 쫓기는 우국지사들을 숨겨 주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친일파 미화, 후손들에 의한 역사 쿠데타”

2015년 8월 15일 939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59]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오는 15일이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을 맞는다. 이에 정부는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떠들썩하게 70주년 행사를 치르고 있다. 광복 70주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친일 청산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친일파 후손이 여전히 정치·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독립 운동가 후손들 대부분은 가난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광복 70주년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그 답을 듣고자 그동안 친일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온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을 12일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교육홍보실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15일이면 광복 7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 70년 어떻게 평가하세요? “(정부는) 올해가 광복 70년이라고 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우리가 정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었느냐를 생각하면 부끄럽고 민망해요. 왜냐면 첫째, 일본 잔재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핵심 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죠. 잘 알다시피 일제 잔재란 건 다양한 방면에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다 장악했어요. 한 역사학자가 ‘해방 이후 친일파가 청산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수립 이후에 독립운동가가 친일파에 의해 역청산 당했다’라고 할 정도로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를 중용했어요. 일제에 충성을 다 바쳤던 반민족 행위자들이 대한민국 모든 권력과 기득권을 이어왔는데, 이걸 진정한 독립이고 광복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것이겠죠. 둘째, 한일 과거사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잖아요. 아베 정권의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4부 ‘나는 고백한다’

2015년 8월 15일 1723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4부 나는 고백한다<2015.8.14> ※관련영상 ☞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3부 ‘부의 대물림’ ☞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2부 ‘뿌리깊은 친일’ ☞ [해방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1부 ‘친일후손 1177′ 지난 8개월 동안 뉴스타파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발표한 친일파 1,006명의 후손 찾기 작업을 벌였다. 그리고 후손으로 확인된 1,177명을 대상으로 그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친일 후손들이 친일 문제와 선대의 친일반민족행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감없이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또 친일파 후손 1,177명의 학력과 직업, 거주지를 확인해 그들의 삶의 모습과 인생의 궤적을 파악하려 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친일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친일 청산과 과거 극복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단초를 찾아 역사적 화해를 시도하고자 했다. 뉴스타파는 1,177명 가운데 모두 350명과 접촉했다. 이메일과 전화, 사무실과 자택 방문을 통해서다. 이 가운데 이메일에 대해 답변을 보내 온 사람이 20 여명, 전화 연락에 응한 사람이 10여 명, 만남에 응한 사람은 10여 명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만남 자체를 회피했고, 일부는 친일 청산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방 이후 본인이나 선대의 친일 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일제 강점기 하동군수를 지낸 이향녕, 일제의 선전활동에 동원된 ‘국경의 밤’의 시인인 김동환의 3남 김영식,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음성군수를 지낸 이준식의 손자 이윤 등

[해방 70돌 특집 다큐] 반.역.사

2015년 8월 15일 653

[해방 70돌 특집 다큐] 반.역.사 <2015.08.13> 1945년 8월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한반도는 곧 혼돈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친일파는 이런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1949년 6월6일. 반민특위 조사관 정철용은 출근하자마자 괴한들의 공격을 받는다. 이들은 정철용의 팔을 꺾고 무기와 신분증을 빼앗았으며 소총 개머리판으로 정철용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쳤다. 정철용은 뒷마당으로 끌려 갔는데, 뒷마당엔 다른 반민특위 동료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2015년 7월31일. 훗날 반민특위 습격사건으로 불리는 이 날의 사건을 떠올리다 김정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의 아들이다.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있기 전, 이 박사(이승만)가 우리 집에 은밀히 찾아왔었습니다.” 대통령 이승만과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의 마지막 협상. 이 날의 아버지의 표정을 김정륙은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지는 ‘역청산’의 과정도. 친일파에게 독재자는 구원이었고 반대로 민주주의는 공포였다. 친일파가 독립운동 세력을 역청산하는 과정, 친독재파로 변신하는 과정, 그들이 만들어놓은 반역적 질서에 순응해 승승장구한 친일파의 후예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친일-친독재의 반.역.사를 조명한다. 구성·연출: 김도성 kdspd@hani.co.kr <2015-08-13> 한겨레TV ☞기사원문: [해방 70돌 특집 다큐] 반.역.사 – 1부 ☞기사원문: [해방 70돌 특집 다큐] 반.역.사 – 2부  

[8.03] 정미년~한일합방까지 재조친일파와 재야친일파

2015년 8월 14일 779

8월 3일 보이는 라디오 ‘박한용의 백년전쟁’ 다시보기 <제1세대 친일파:매국형 친일파>   <2015-08-03> 국민TV ☞기사원문: 정미년~한일합방까지 재조친일파와 재야친일파

분단으로 귀결된 ‘가능성의 역사’

2015년 8월 14일 620

잠깐독서 해방 후 3년 -건국을 향한 최후의 결전 조한성 지음/생각정원·1만6000원 70년 전인 1945년 8월15일,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한반도는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을 맞이했다. 3년 뒤인 1948년 8월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한달 뒤인 9월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한반도에 들어선 두 정부는 극단적인 대결과 기나긴 체제 경쟁에 돌입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해방은 도대체 어쩌다가 기나긴 분단으로 귀결됐던 것인가? 한국 근대사 연구자인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해방 뒤 3년이란 기간을 ‘가능성의 역사’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해방 뒤 3년이란 무대에 7명의 민족 지도자를 주인공으로 올린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꾸려 자주적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여운형, 한국 최고의 공산주의자로 꼽혔던 박헌영, 국내 우파 민족주의 세력의 거두였던 송진우, 항일무장투쟁의 전설적인 지도자로 꼽혔던 김일성, 미국의 적극적인 후원을 업고 급부상한 이승만, 독립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김구, 중도우파를 대표했던 김규식 등이다. 한반도의 정치 지형이 지금처럼 굳어진 데에는, 불현듯 찾아온 해방 공간에서 이들이 숙고를 거듭하며 내린 선택들이 있었다. 물론 해방 뒤 3년이 가능성으로 가득한 공간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기에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을 피할 수 없었고, 세계자본주의와 세계공산주의의 대립이 본격화하는 전초기지라는 환경 아래에서 이들의 선택은 모스크바 3상회의, 미소공동위원회 등을 통한 국제적인 주체들의 선택으로 끊임없는 제약을 받았다. 그렇지만 지은이는 “해방 뒤 3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미·소가 만든 세계 질서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영상] 독립운동가가 꿈꾼 나라

2015년 8월 14일 661

  일제강점 36년 학계가 추산하는 독립운동 참여자는 40만명 이름도 모르는 독립운동가와 무고하게 죽어간 이 땅의 백성들이 꿈꾼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독립운동가 꿈꾼 나라  <!– style="TEXT-ALIGN: left"   ※ Orgin link: http://youtu.be/V4mhzj4m47M    

강원 출신 친일파 124명…해방 후에도 기득권 지켜

2015년 8월 14일 1393

【강릉=뉴시스】김경목 기자 = 강원도 출신의 친일파는 몇 명이고 누구였을까? 14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의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강원 출신 124명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조사돼 등재됐기 때문에 현재의 경기도 이천 출신 2명과 경상북도 울진 출신 1명이 강원 출신으로 분류돼 총 127명을 고발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강릉이 13명으로 가장 많고 춘천 12명, 철원 10명, 통천(북강원도) 6명, 홍천·원주 5명, 양양 4명, 고성·삼척·영월 3명, 평강(북강원도) 2명, 평창·정선·양구·횡성 1명 등이다. 직업군별로는 경찰이 40명으로 가장 많고 관료 31명, 중추원(조선총독 자문기구) 참의 13명, 예술가 8명, 판사 7명, 종교인 4명, 군인 3명, 교육자 2명, 일본군위안소운영자 1명 등이다. 해방 후 이들은 자신의 경력을 이용해 경찰국장, 국회의원, 고위직 관료, 고위직 군인, 변호사, 종교계 대표, 대학 부총장, 교수, 기업인 등을 지내며 기득권을 유지했다. 민족주의 진영은 친일 잔재 청산에 이들이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해방 후 기득권을 유지한 강원지역 친일파는 친일인명사전에만 16명으로 조사됐다. 또 해방 후 남과 북의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 대한민국 무공훈장, 건국훈장 애족장, 국기훈장 제1급 등 훈장을 받은 친일파도 5명이나 됐다. 이 중 국기훈장 제1급은 무용가로 명성을 떨친 월북 예술인 최승희가 받은 북한 정부의 훈장이다. 강원 출신은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범익도 대표적인 친일파다. 광복회 등은 2013년 이범익의 친일 행적을 알리는 단죄문을 춘천시 소양로 비석군에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