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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친일사전 수록 박정희·장지연 후손들 ‘법적 대응’

2009년 11월 3일 338

친일사전 수록 박정희·장지연 후손들 ‘법적 대응’(노컷뉴스, 09.11.03)

日 신임외상 “재임중 야스쿠니 참배 안해”-연합뉴스(07.08.28)

-0001년 11월 30일 307

日 신임외상 “재임중 야스쿠니 참배 안해”(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신임 외상은 27일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 “나 자신은 적어도 외상 재임 중에는 참배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그는 외상 취임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마치무라 외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지지해 왔다.마치무라 외상은 또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애매한 입장 표명과 관련, “아베 총리의 생각도 고이즈미 전 총리와 어떤 의미에서 같지 않겠느냐”며 “아베 총리가 ‘참배 할지 안 할지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애매한 전략으로 ‘참배하지 않겠다’고 확언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적절한 지혜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그는 또 대북 문제와 관련,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에 진전이 보이면 경제 지원과 에너지 지원 분야에 한층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납치문제에서 진전이 없으면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과 차이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경술국치 하루 전 ‘순종 문서’ 발견-‘동아'(07.08.28)

-0001년 11월 30일 849

경술국치 하루 전 ‘순종 문서’ 발견   일본식 서명대신 ‘一心’ 직접 수결 “병합조약 인정못해” 의지 드러내 한일강제병합조약 비준서 서명을 거부한 순종황제가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 하루 전날 직접 수결(手決)한 훈장증서가 27일 발견됐다. 고종황제가 사용한 일심(一心) 수결을 조금 변형한 이 수결은 순종황제가 1907년 11월 18일 공식 즉위한 뒤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아 희귀 사례로 손꼽힌다.교지(敎旨)연구가 김문웅(64)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행정실장은 순종의 수결이 들어간 1910년 8월 28일자 훈장증을 공개했다. 이규상(李圭象)이란 경시(현재 경찰 직급으로 총경에 해당)에게 팔괘장(八卦章·8등급 훈장 중 6등급)을 수여한다는 이 증서에는 주로 외교관계 문서용으로 쓰이는 대한국새가 찍혀 있고 그 위에 순종황제의 일심 수결이 적혀 있다.한일강제병합조약은 1910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데라우치 마사타게 통감의 서명을 거친 뒤 내각의 의결을 거쳤으나 그 비준서에는 순종의 서명 없이 대한국새만 날인됐다. 당시 순정황후 윤 씨가 치마폭에 감춰 둔 국새를 친일파였던 그 숙부 윤덕영이 강제로 빼앗아 날인한 것으로 전해진다.김 전 실장은 이 훈장증의 순종황제 수결에 대해 “황제가 강제병합조약 체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일제에 의해 조약이 강제 공표되는 29일까지 통치권을 계속 행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설명했다.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순종황제가 공식 즉위한 뒤 대부분 공문서에 황제의 수결은 일본식으로 순종황제의 이름인 척(척) 서명으로 바뀌었다”며 “조약의 공표 일을 앞두고 마지막 황제권을 행사하는 순종황제가 정식 수결을 갖춘 문서를 통해 일제가 조작한 공문서의 부당성을 지적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장지연·박정희 후손, 친일인명사전 등재 반발

2009년 11월 3일 529

장지연·박정희 후손, 친일인명사전 등재 반발(파이낸셜뉴스, 09.11.03)

친일 인명사전 이름 삭제 요구 가처분 신청

2009년 11월 3일 385

친일 인명사전 이름 삭제 요구 가처분 신청(이뉴스투데이, 09.11.03)

경술국치 하루 전 ‘순종 문서’ 발견-‘동아'(07.08.28)

-0001년 11월 30일 845

경술국치 하루 전 ‘순종 문서’ 발견   일본식 서명대신 ‘一心’ 직접 수결 “병합조약 인정못해” 의지 드러내 한일강제병합조약 비준서 서명을 거부한 순종황제가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 하루 전날 직접 수결(手決)한 훈장증서가 27일 발견됐다. 고종황제가 사용한 일심(一心) 수결을 조금 변형한 이 수결은 순종황제가 1907년 11월 18일 공식 즉위한 뒤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아 희귀 사례로 손꼽힌다.교지(敎旨)연구가 김문웅(64)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행정실장은 순종의 수결이 들어간 1910년 8월 28일자 훈장증을 공개했다. 이규상(李圭象)이란 경시(현재 경찰 직급으로 총경에 해당)에게 팔괘장(八卦章·8등급 훈장 중 6등급)을 수여한다는 이 증서에는 주로 외교관계 문서용으로 쓰이는 대한국새가 찍혀 있고 그 위에 순종황제의 일심 수결이 적혀 있다.한일강제병합조약은 1910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데라우치 마사타게 통감의 서명을 거친 뒤 내각의 의결을 거쳤으나 그 비준서에는 순종의 서명 없이 대한국새만 날인됐다. 당시 순정황후 윤 씨가 치마폭에 감춰 둔 국새를 친일파였던 그 숙부 윤덕영이 강제로 빼앗아 날인한 것으로 전해진다.김 전 실장은 이 훈장증의 순종황제 수결에 대해 “황제가 강제병합조약 체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일제에 의해 조약이 강제 공표되는 29일까지 통치권을 계속 행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설명했다.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순종황제가 공식 즉위한 뒤 대부분 공문서에 황제의 수결은 일본식으로 순종황제의 이름인 척(척) 서명으로 바뀌었다”며 “조약의 공표 일을 앞두고 마지막 황제권을 행사하는 순종황제가 정식 수결을 갖춘 문서를 통해 일제가 조작한 공문서의 부당성을 지적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연합뉴스(07.08.23)

-0001년 11월 30일 418

<뉴라이트 계열, 작가 조정래에 집중포화?>   ‘아리랑’ 이어 ‘태백산맥’도 혹평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프랑스 일간 라 크루아(La Croix)는 지난 9일자에서 18면 전면을 할애해 현재 7권까지 프랑스어로 번역돼 출간된 소설 ‘태백산맥’과 그 작가 조정래를 집중 소개하면서 “이 작가는 한국인들에게 한국 근대사를 재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극찬했다.나아가 조 작가야말로 “조국분단의 원인을 이해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한 열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비슷한 시간, 국내에서는 그의 태백산맥을 향한 뉴라이트 계열의 혹평에 가까운 비판이 나왔다.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교양지 ‘한국사시민강좌’ 41호에 ‘소설 태백산맥 속의 대한민국’을 투고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양동안 교수는 작가 스스로 ‘진실의 기록’임을 강조한 태백산맥은 “허위의 기록이라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태백산맥은 여순사건 이후 한국전쟁 휴전 직후까지 전라남도 벌교를 시ㆍ공간으로 설정하면서 이를 무대로 좌익인사들이 전개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로 구축한 대하소설.양 교수는 이 소설이 “대한민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서술했으며, 그러한 내용은 거의 모두가 실제와 부합하지 않거나 과장된 것”이라면서 “북한공산군의 침공을 받아 사멸해가는 대한민국을 구원해준 미국에 대해서도 마치 악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서술했다”고 말했다.또 태백산맥은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전부 다 극히 긍정적으로 서술”했으나, 이 역시 “거의 모두가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예컨대 소설은 대한민국을 미국이 세운 속국과 다름없다고 설정했으나, 실제 미국정부는 이승만을 정계에서 퇴출시키려 했으며, 1946년 12월 이후 이듬해 4월에 걸친 미국방문에서 이승만은 차관급 이상 고위관리를 한 사람도 만나지

‘학생독립운동기념식’ 광주 제일고에서 열려

2009년 11월 3일 364

‘학생독립운동기념식’ 광주 제일고에서 열려(문화저널21, 09.11.03)

“그래도 투쟁은 계속된다!”

2009년 11월 3일 417

“그래도 투쟁은 계속된다!”(ytn, 09.11.03)

-연합뉴스(07.08.23)

-0001년 11월 30일 438

<뉴라이트 계열, 작가 조정래에 집중포화?>   ‘아리랑’ 이어 ‘태백산맥’도 혹평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프랑스 일간 라 크루아(La Croix)는 지난 9일자에서 18면 전면을 할애해 현재 7권까지 프랑스어로 번역돼 출간된 소설 ‘태백산맥’과 그 작가 조정래를 집중 소개하면서 “이 작가는 한국인들에게 한국 근대사를 재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극찬했다.나아가 조 작가야말로 “조국분단의 원인을 이해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한 열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비슷한 시간, 국내에서는 그의 태백산맥을 향한 뉴라이트 계열의 혹평에 가까운 비판이 나왔다.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교양지 ‘한국사시민강좌’ 41호에 ‘소설 태백산맥 속의 대한민국’을 투고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양동안 교수는 작가 스스로 ‘진실의 기록’임을 강조한 태백산맥은 “허위의 기록이라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태백산맥은 여순사건 이후 한국전쟁 휴전 직후까지 전라남도 벌교를 시ㆍ공간으로 설정하면서 이를 무대로 좌익인사들이 전개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로 구축한 대하소설.양 교수는 이 소설이 “대한민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서술했으며, 그러한 내용은 거의 모두가 실제와 부합하지 않거나 과장된 것”이라면서 “북한공산군의 침공을 받아 사멸해가는 대한민국을 구원해준 미국에 대해서도 마치 악의 화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서술했다”고 말했다.또 태백산맥은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전부 다 극히 긍정적으로 서술”했으나, 이 역시 “거의 모두가 실제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예컨대 소설은 대한민국을 미국이 세운 속국과 다름없다고 설정했으나, 실제 미국정부는 이승만을 정계에서 퇴출시키려 했으며, 1946년 12월 이후 이듬해 4월에 걸친 미국방문에서 이승만은 차관급 이상 고위관리를 한 사람도 만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