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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강만길 친일진상규명위원장 사의-서울신문(07.05.22)

2007년 5월 29일 342

강만길 친일진상규명위원장 사의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강만길 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강 위원장은 개인 신상을 이유로 지난달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으며, 이달 말 사임할 것으로 전해졌다. 강 위원장은 이날 위원회 임시확대간부회의와 11인 위원회의에서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강 위원장은 취임 전부터 책을 집필하고 젊은 역사학자를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사퇴에 특별한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임기 4년인 위원장 후임으로는 김삼웅 독립기념관장과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위원회가 하반기부터 일제시대 말기를 다루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쟁점이 될 만한 현안이 많다.”면서 “후임 위원장은 일제시대 역사를 잘 알고 추진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지난 2005년 3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따라 신설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왔다.

강만길 친일진상규명위원장 사의-서울신문(07.05.22)

2007년 5월 29일 337

강만길 친일진상규명위원장 사의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강만길 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강 위원장은 개인 신상을 이유로 지난달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으며, 이달 말 사임할 것으로 전해졌다. 강 위원장은 이날 위원회 임시확대간부회의와 11인 위원회의에서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강 위원장은 취임 전부터 책을 집필하고 젊은 역사학자를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사퇴에 특별한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임기 4년인 위원장 후임으로는 김삼웅 독립기념관장과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위원회가 하반기부터 일제시대 말기를 다루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쟁점이 될 만한 현안이 많다.”면서 “후임 위원장은 일제시대 역사를 잘 알고 추진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지난 2005년 3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따라 신설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왔다.

日 ‘백두학원’ 설립한 조규훈 선생 아십니까

2009년 11월 27일 406

 日 ‘백두학원’ 설립한 조규훈 선생 아십니까(연합뉴스, 09.11.26)

뉴욕60대 한인 마라톤 완주 100회달성 초읽기

2009년 11월 26일 381

뉴욕60대 한인 마라톤 완주 100회달성 초읽기(뉴시스, 09.11.26)

‘독도는 일본령’, 독도문제연구회 최종보고서-産經(07.05.29)

2007년 5월 29일 323

‘독도는 일본령’, 독도문제연구회 최종보고서  독도문제의 자료수집과 역사연구를 목적으로 시마네현이 설치한 독도문제연구회(좌장 시모조 탁쇼쿠대학 교수)는 28일 연구성과를 정리한 최종보고서를 미조구치 시마네현지사에게 제출했다.시모조 교수는 보고서에 대해 “역사연구자가 읽으면 독도가 일본령이라고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며 “독도문제는 한일간 역사문제 등에도 관련됨으로 국가는 해결을 위한 조직을 만들기 바란다”고 말했다.보고서를 받은 미조구치 지사는 가을경까지 시마네현의 홈페이지에 개설하는 “Web 독도문제연구소”(가칭)에 보고서의 내용 등을 게재, 연구자나 현민 등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도 사이트에 만들 것이라고 표명. 미조구치지사는 “국민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이해가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도는 일본령’, 독도문제연구회 최종보고서-産經(07.05.29)

2007년 5월 29일 408

‘독도는 일본령’, 독도문제연구회 최종보고서  독도문제의 자료수집과 역사연구를 목적으로 시마네현이 설치한 독도문제연구회(좌장 시모조 탁쇼쿠대학 교수)는 28일 연구성과를 정리한 최종보고서를 미조구치 시마네현지사에게 제출했다.시모조 교수는 보고서에 대해 “역사연구자가 읽으면 독도가 일본령이라고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며 “독도문제는 한일간 역사문제 등에도 관련됨으로 국가는 해결을 위한 조직을 만들기 바란다”고 말했다.보고서를 받은 미조구치 지사는 가을경까지 시마네현의 홈페이지에 개설하는 “Web 독도문제연구소”(가칭)에 보고서의 내용 등을 게재, 연구자나 현민 등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도 사이트에 만들 것이라고 표명. 미조구치지사는 “국민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이해가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 동지사대서 만난 정지용의 ‘향수’

2009년 11월 26일 1041

[문화기행] 일본 속의 한국문화 톺아보기 제4부-윤동주 교토 시비편 ② 이윤옥·김영조 ▲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 윤동주 시비 옆에 세워진 정지용 시비     ? 김영조 동지사(同志社,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교정 윤동주 시비 옆에는 “향수”라는 시로 우리에게 친근한 시인 정지용의 시비도 있다. 정지용 시비는 윤동주보다 10년 늦은 2005년 12월 18일에 세워졌다.     월북작가라 해서 한동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정지용은 그의 시 “향수”를 노래한 성악가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에 의해 널리 알려졌고, 이제 그의 모교 동지사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비와 나란히 서서 오붓한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 다정하다.  시비엔 정지용이 1924년 쓴 “압천(鴨川)”이란 시가 새겨져 있다. 압천은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 근처에 있는 가모가와 강의 한자 표기이다. 윤동주 시비를 찾아 나섰던 날 저녁 우리 일행은 가모가와 강변을 걸었다. 한강처럼 강폭이 넓지는 않지만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려는 듯 많은 교토 시민들이 강변에 나와 도심 속의 또 다른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의 도심 불빛을 그대로 받아내어 반짝이며 흐르는 가모가와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는 우리 가슴에 윤동주와 정지용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스치운다. 정지용도 고국의 향수를 느끼며 이 강가를 거닐었을까?   저녁밥을 해먹고 산책 나온 강가에는 가족단위의 모습이 많았고 아베크족들도 꽤 눈에 띄었다. 이곳을 걸었을 정지용과 윤동주와 그리고 많은 조선 청년들은 고국의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다.   ▲ 정지용 시인     ?김영조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저물어…  

부끄러움 회복시키는 계기 … 친일문제 학문적 정리 시작됐다

2009년 11월 26일 722

친일인명사전 발간, 이렇게 본다 김시업 성균관대 명예교수 ..사전의 편찬 취지가 ‘고백적 자기성찰’에 있고, 편찬 목적이 “개인에게 책임과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리와 역사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한 데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우선 학문적 작업으로 읽어야겠다. 흥미 위주나 감정 중심의 단정과 판단의 자료로 볼 것이 아니라 사실의 규명과 수정 보완을 계속하고 또한 반론적 관점의 토론이 열려 있어야 한다. 식민지 근대의 연구와 관심이 심화돼야 한다. 다음은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고양하는 방향으로 읽어야겠..<기사 발췌>   부끄러움 회복시키는 계기 … 친일문제 학문적 정리 시작됐다(교수신문, 09.11.23) 

[야스쿠니 캠페인] 소송, 지옥같은 고난의 행군

2007년 5월 29일 463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서울 청량리역 3번 출구에서 내려 전농동 쪽으로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떡전사거리’란 이름이 붙은 교차로 너머로 5층짜리 허름한 건물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이 건물 3층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어둠의 야스쿠니에 평화의 촛불을 들자’는 취지로 2005년 한국·일본·대만·오키나와인들이 모여 만든 야스쿠니공동행동 한국위원회(이하 한국위원회)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 허름한 사무실이 일본을 상대로 끈질긴 전후보상 소송을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중추다.  △ 일본의 전후 책임을 요구하는 운동이 계속될 수 있었던 데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의 공이 컸다. 2001년 종로 시절의 모습. 이희자(가운데) 회장과 김은식 사무국장(오른쪽·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마지막으로 60만엔만 달라” 김은식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은 “한국의 전후보상운동이 지금과 같이 기틀을 잡은 것은 일본 시민사회에 빚진 바 크다”고 말했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한·일 두 나라 활동가들이 이어온 끈끈한 유대의 역사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신파극 같은 느낌이 난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는 전후보상운동은 ‘위안부’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999년에 이르러서 △야스쿠니신사 강제합사 △군인·군속 강제동원 △유골 반환 등 다른 문제들로 눈을 돌려볼 여유가 생겼고, 그 사연을 모두 모아 일본 법원에 제소를 하자는 움직임으로 연결됐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려면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첫 번째는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로 구성되는 원고단, 두 번째는 실제 소송을 진행하는 일본 쪽 변호단, 세 번째는

친일화가 ‘논개영정’ 뜯어낸 4명, 결국 노역장행

2007년 5월 28일 483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 –>   ▲ ‘논개영정’을 뜯어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유재수·박노정·하정우·정유근씨가 창원지검 진주지청 집행과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논개영정 벌금 모금운동’을 벌여 2370여만원을 모은 권춘현 진주신문 사장이 통장을 하해룡 공동대표한테 전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미인도 ‘논개’ 복사본(일명 논개영정)을 진주성 의기사에서 뜯어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던 시민단체 대표들이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장을 택했다.박노정 진주민예총 회장과 하정우 민주노동당 진주시위원장, 유재수 전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정유근 전 공무원노조 진주지부장은 28일 오전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역장에 유치되었다.이들은 이날 오전 11시 하해룡 진주진보연합(준) 의장과 정현찬 전 전농 의장 등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친일 잔재 청산은 계속되어야 할 민족적 과제입니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관련기사  친일청산 시도 시민대표 결국 ‘노역장’으로(진주신문, 07.05.28) ‘논개영정 벌금 모금운동’을 벌인 권춘현 진주신문사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모금액 2370여만원이 든 저금통장을 하해룡 진주진보연합(준) 공동대표한테 전달했다.이들은 곧바로 창원지검 벌금 집행과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창원지검 진주지청 집행과 관계자는 "신원을 확인하고 벌금을 납부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곧바로 진주교도소로 이송될 것"이라고 밝혔다.박 회장 등 4명은 1주일간 구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진주시민운동본부 대표들은 이들이 구속되는 1주일 동안 진주성 공북문 앞에서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