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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해방 후에도 타향살이..아픔 담긴 ‘위안부 귀국인 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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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이후 타국을 떠돌던 독립운동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들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몇 년씩 타향살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배준우 기자입니다.

<기자>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중국 상해 일대에서 작성된 ‘위안부’ 피해자 명단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광복군 간부가 피해자를 대면해 작성한 것으로, 한국행 배에 탑승할 명단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의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는데 220명이 넘습니다.

[‘위안부’ 탑승객 명단 작성 및 기증자 : (해방 후) 책임을 군인 중에서 내가 맡았어. 내가 아는 사람이 거기 타고 있었고. ‘위안부’들한테도 굉장히 그게(명부가) 가치 있는 줄 사람들은 아직 모르고 있더라고 그걸.]

민족문제연구소가 보관 중인 이 ‘위안부’ 귀국인 명부는 해방 이후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2년 가까이 타향살이를 이어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 상해는 필리핀과 타이완 등 세계 각지에서 흩어져 있던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으로 향하기 위한 마지막 경유지였습니다.

[김승은/민족문제연구소 실장 : 사지에 내몰린 상황인데, 서로가 도와서 귀국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 여성들에 대한 작은 기록이나마 남아 있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립기념관이 보유하고 있는 영상입니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상해에 있는 ‘한국부녀공제회’ 시설에서 집단 수용 생활을 했던 것으로 학계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갱생과 건전한 정조” 등을 교육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졌는데, 이 관리자는 상해 일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업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선익/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 : ‘위안부’ 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단체를 만들고, 단체지만 사실상 수용 시설이었고, 수용 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확보하면서 사실상 또 다른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려고 했던 것이죠.]

일부는 귀환을 포기하고 중국 일대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김대월/’위안부’ 나눔의 집 실장 : 해방 후 2년 있다가 돌아오시거든요.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면 일본 정부는 그냥 버리고 갔고요. 한국 정부도 그들을 송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오롯이 자기 힘으로만 돌아와야 했죠.]

[이옥선/’위안부’ 피해자(2000년 귀국) : 돈이 일전도 없거든. 그러니까 길 모르지, 걸어올 수 없지. 이러니까 못 나오지. ‘위안부’ 간판 써 붙이고 부모 형제 얼굴을 어떻게 봐.]

이제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는 20명.

해방 이후에도 억압받았던 피해자들에 대한 연구와 함께, 앞으로 ‘피해자 없는 시대’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영상취재 : 조정영·전경배, 영상편집 : 오영택, CG : 강유라)

배준우 기자gate@sbs.co.kr

<2019-08-17> SBS NEWS 

☞기사원문: 해방 후에도 타향살이…아픔 담긴 ‘위안부 귀국인 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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