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32년 만에 바로 세운 ‘사법정의’
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 법원이 23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유신정권 긴급조치 위반으로 사형이 집행된 8명에게 무죄를 선고해 수사ㆍ재판의 위법성과 재판의 오류를 인정했다.인혁당 사건은 현대사의 암울했던 각종 의혹사건 중에서도 유신정권 시대에 자행된 `사법살인’의 대표적 사건이자 정치권력에 예속된 사법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으로 손꼽혀 왔다.1975년 4월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8명에 대해 사형 확정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 재심 기회를 원천 박탈해 스위스 국제법학자협회로부터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유신정권 시절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법원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솔직히 인정하고 피고인들의 명예를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관련기사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이수병 평전> 발간(오마이뉴스, 05.04.08)‘사법살인’ 인혁당 사건 32년만에 무죄(쿠키뉴스, 07.01.23)‘인혁당 재건위 사건’ 32년 만에 무죄 선고(YTN, 07.01.23)“모래알씹은 30년..法, 인혁당사건무죄”(뉴시스, 07.01.23)‘인혁당 사건’ 30여 년 만에 무죄 선고(SBS, 07.01.23) 정권 안보 차원에서 희생양이 필요하면 정보기관이 희생자를 선별해 고문과 조작을 통해 허위진술을 받아내고 검찰은 정보기관의 입맛에 따라 기소, 법원 역시 정권의 요구에 부응하는 판결을 내렸던 `전근대적 형사사법 절차’의 오류를 인정한 셈이다.재판부는 숨진 피고인 8명에게 적용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ㆍ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심 사유가 아닌 사안을 제외한 모든 판단 사안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유신정권에서 `인혁당 사건’이 조작됐다는
日, 징용자 유골조사 ‘시늉’만…고의축소 의혹
경향신문 박용채 특파원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반환에 ‘성의있는 협조’를 약속한 일본정부가 지난 2년간 해온 것이라곤 강제징용과 관련된 전체 일본 기업 4000여곳 가운데 100여곳에 정보제공 협조 공문을 보낸 게 고작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강제성이 없는 공문에 회답한 기업은 10곳도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04년말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유골반환 작업이 일본측의 무성의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유골반환의 전제가 되는 강제징용 사망자에 대한 조사조차 벌이지 않고 있어 ‘눈가리고 아웅’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1일 한·일 양국 정부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1939~45년에 일본기업에서 일하다 사망한 조선인 유골이라며 1720기의 정보를 한국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상당수의 사망시기가 47~83년으로 확인돼 정보 제공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안겨주고 있다. 일본 정부의 징용자 유골 실태파악은 강제징용 기업과 지자체 및 사찰 등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본 외무성이 2005년 4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전체 조선인 강제징용에 관여한 기업 4000여곳 가운데 공문을 보낸 곳은 100여곳으로 전체의 2.5%에 불과했고, 회답한 기업은 10곳도 채 안되는 것으로 확인돼 ‘조사 축소’ 의혹이 일고 있다. 양국은 이와 별도로 70년대부터 도쿄 유텐지(祐天寺)와 사이타마현 곤조인(金乘院)에 보관돼 있던 조선인 군인·군속, 강제징용자 유골 1135위, 131위에 대한 신원 확인작업을 진행 중이다. 유텐지의 경우 한국계 240위의 신원을 확인, 현재 유족들의 인수의사를 타진
법원 “일제 토지기록, 친일파 재산 확인 근거”
법원 “일제 토지기록, 친일파 재산 확인 근거”(뉴시스, 10.02.06)
“한일관계 근본적 정립 전 일왕 방한 반대”(종합)
“한일관계 근본적 정립 전 일왕 방한 반대”(종합)(연합뉴스, 10.02.07)
-연합뉴스(07.01.19)
<`요코이야기 못배운다’ 등교 거부한 허보은양> “나쁜 한국인 문장에 눈물터질 뻔” 1주일만에 교재금지 (뉴욕=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 “조금도 떨리지 않았어요. 그건 옳은 일이니까요” 일제 말기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피신하던 일본인 아녀자들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의 실화소설 `요코이야기’를 배울 수 없다며 일주일간 등교를 거부한 허보은양(11.미국명 알렉스 허)은 의외로 침착했다.한국인을 가해자, 일본인을 피해자로 묘사한 잘못된 책을 배우지 않겠다고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선생님께 집에 가겠다고 말할 때도 가슴이 뛰지 않았다”고 보은양은 말했다.미국에서 태어나 뉴욕 근교의 한 사립학교 7학년에 다니는 보은양은 2004-2006년 여름 어머니를 따라 잇따라 한국을 방문해 국립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일본이 식민지 통치 등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줬다는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한국인이 오히려 일본인들을 위협하고 성폭행했다는 내용의 책이 지난 9월 영어시간에 교재로 배포되자 보은양은 선생님께 “나는 집에 가겠다”며 가방을 싸들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보은양은 이후 이 책의 수업이 계속되는 동안 일주일간 계속 등교를 거부했고, 이 학교는 결국 `요코이야기’를 가르치지 않기로 결정했다.보은양은 이 책을 읽은뒤 이렇게 썼다.“어떤 문장을 읽고선 눈물을 터뜨릴 뻔 했다. 한국을 침략해 많은 사람을 죽인건 일본인데 이 책에는 여러 곳에서 한국인이 일본사람을 성폭행하고 아주 나쁜 것처럼 나온다. 우리 반 친구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나를 놀리고, 슬퍼지지 않을까. 내가 편안하게 느끼고 마음껏 의견을 표현해야 할 우리 반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요코` 아버지 731부대 최고위 간부 의혹-일간스포츠(07.01.18)
요코` 아버지 731부대 최고위 간부 의혹 미국 중학교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요코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의 저자 가와시마 요코 왓킨스씨의 부친은 일제 시대 인간 생체실험의 만행을 저지른 ‘731부대’의 최고위급 간부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실 여부가 주목된다.요코씨가 자전적 실화소설이라고 밝힌 책들에 따르면 요코씨의 아버지는 만주에서 일한 고위 관리였다. 러시아군의 정밀추적을 받고 현상금까지 걸린 요코씨의 아버지는 결국 체포돼 시베리아에서 6년형을 살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책은 밝혔다.일반 포로도 아니고. 공개적인 전범재판 대상자가 아니면서 시베리아에서 6년형을 복역한 경우는 731부대 관련자들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731부대 진상규명위원회의 김창권 회장은 “일제 전범 중 시베리아에서 6년형을 복역하고 귀국한 경우는 하바로프스크 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은 731부대 관련자들 뿐”이라고 강조했다.요코씨 책에 아버지와 대학 동창으로 나오는 다케다 가즈조는 일본 황실 출신으로 731부대에서 근무한 행적이 재판기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 특히 다케다는 교토의대 출신으로 책에 따르면 요코씨의 아버지도 교토의대를 나온 셈인데. 731부대 창설자인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이 부대 고위 간부 상당수가 교토의대 출신이기도 하다.731부대원과 가족 2000여명이 1945년 8월 11일 만주 하얼빈 근처 핑팡에서 기차에 탑승.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철수했다는 기록도 [요코이야기]와 대단히 비슷하다.[요코이야기]를 번역한 윤현주씨는 요코씨가 자신의 부친이 “아주 비밀스런 일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요코씨의 부친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와 관련. 731부대 최고위급 장군이었던 K씨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으며. 미국의 한 학교에서는 요코씨에게 부친이 K씨가 아니라는
美역사교과서 한국사 오류시정한 한인여고생
美역사교과서 한국사 오류시정한 한인여고생(연합뉴스, 10.02.05)
일본 “중일전쟁은 일본군의 침략 전쟁이었다” 인정
일본 “중일전쟁은 일본군의 침략 전쟁이었다” 인정(세계일보, 10.02.01)
-연합뉴스(07.01.18)
<`요코이야기’ 허구 시사 기록 발견> “731부대원과 가족 수천명 만주서 열차로 철수” “한국인 적대행위 없었고, 오히려 물 건네줘” (보스턴.뉴욕=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 일제 말기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상대로 강간 등의 만행을 자행했다는 ‘요코이야기’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일제 731부대원 2천명과 가족 등 수 천 명이 일본 패전 직전 열차를 타고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빠져나갔다는 기록이 발견돼 주목된다.미국 도서관에 남아 있는 이 기록은 요코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가족의 철수상황과 매우 비슷하지만, 당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물을 건네는 등 친절하게 대했으며 적대행위를 한 일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와 있다.인간 생체실험 등으로 악명을 떨친 731부대의 창설자인 이시이 시로의 딸 하루미가 1982년 `재팬 타임스’에 두차례에 걸쳐 기고한 글에 따르면 731부대원과 노인, 여자, 어린이 등 가족 2천여명은 1945년 8월 11일 오후 3시 15량의 화물차에 나눠타고 이 부대가 있던 만주의 핑팡을 출발했다.이 열차는 하얼빈과 장춘에 이어 한반도 동부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으며, 일본인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마이즈루로 건너갔다. 마이즈루는 `요코이야기’에서 요코의 세 모녀가 도착한 항구이다.또 만주에서 한반도 동부를 연결하는 철도는 나남과 단천, 원산을 지나 부산에 이르기 때문에 `요코이야기’에 나오는 나남을 틀림없이 통과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열차는 북한 지역에서 잠시 멈춰서 일부 사람들이 타고 내렸던 것으로 나타나 이곳이 나남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또 요코이야기에는 한 여자가 아기를 낳은뒤 바로 숨지자
2차대전 중 사망 한국인 유골 대규모 반환-노컷뉴스(07.01.19)
2차대전 중 사망 한국인 유골 대규모 반환 [양국 정부 조사로 신원 밝혀진 군인과 군무원 유골 140주]2차대전 중 일본에서 사망한 한국인 유골이 처음으로 대규모 반환된다.일본 정부는 2차대전 당시 일본에서 사망한 한국인 출신 유골 가운데, 양국 정부 조사로 신원이 판명된 군인과 군무원 유골 140주를 일괄적으로 한국 유족에 반환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19일 보도했다.이에 따라 양국 정부는 곧 서울에서 열리는 심의관급 회의에서 유골 반환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한국인 유골은 지난 2004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반환이 시작됐지만 지금까지 단 2주에 그쳤으며, 이만큼 대규모 반환은 처음이다.반환되는 유골은 일본 도쿄 메구로의 유우텐 사찰에 보관된 1,135주 가운데 일부이다.하지만 전쟁중 일본 기업에 징용 당해 사망한 민간인의 유골은 관계 자료가 흩어진 경우가 많아,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한편 일본 정부는 125개 관계 기업과 묘지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나 종교단체 등에서 유골 관련 정보을 받아, 1,720주의 유골 정보를 이미 한국 정부에 전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