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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경’이 중국것?…’과학계 동북공정’ 심각-노컷뉴스(06.09.18)

2006년 9월 26일 479

‘다라니경’이 중국것?…’과학계 동북공정’ 심각    중국, 고구려 벽화 연구도 방해…”이공계-인문계 공동 접근해 쐐기 박아야”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과학기술 유물 일부가 이미 중국에 빼앗긴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17일 한국 과학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1~751년 무렵 제작)이 세계 학계에서 한국의 것이 아닌 중국의 것으로 널리 퍼져있다.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우리나라의 앞선 인쇄 문화를 입증해 주는 귀중한 유물이나, 중국 학자들이 ‘702년경 중국 낙양에서 인쇄해 신라에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장이 세계 학계에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세계 최초 목판 인쇄물인 한국의 다라니경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세계 역사학계에서 중국의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 中, 별자리 그려진 고구려벽화 ‘수몰’ – 세종 ‘측우기’도 “만들어준 것”이라 강변 뿐만 아니다. 역사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되는 ‘천문지도 연구’를 중국이 의도적으로 저지하고 있다.고천문 연구 전공자인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정보센터 박사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집안 지역 댐 공사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고구려 벽화 연구를 위해 한국 연구진이 급파됐지만, 중국이 곧바로 고분벽화가 있는 무덤을 수몰시켜버렸다.양 박사에 따르면 고분벽화 중 그림이 있는 벽화는 80여개 정도며, 이중 24개가 별자리와 관련된 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벽화중에는 28개 별자리 전체를 그려놓고, 각 별자리에 글자까지 새겨놓은 것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보면 고분벽화는 천문학적 연구가치가 높다.양 박사는

원주 항일운동지 메카 입증

2010년 3월 11일 377

원주 항일운동지 메카 입증(강원도민일보, 10.03.01)

진관사 독립운동 사료, 학술적 가치 조명

2010년 3월 11일 391

진관사 독립운동 사료, 학술적 가치 조명(뉴스천지, 10.03.07)

고구려는 중국 지방정권? 중국 정사 어디에도 안 나와-‘중앙'(06.09.13)

2006년 9월 26일 729

고구려는 중국 지방정권? 중국 정사 어디에도 안 나와     [중앙일보 기선민.최민우] 고대사를 넘어 한국사 전체의 독자성을 무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는 역사적 사실과 사료에 어긋나는 ‘억지 주장’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구려사 전공자 모임임 고구려연구회(회장 한규철 경성대 교수)가 14일 오전 10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중국의 동북공정 연구 성과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주제로 여는 학술토론회에서 밝혀지는 사실들이다.한국 학자들은 동북공정을 다루는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에 최근 실린 17개 논문을 시대로 5개 주제로 나눠 분석, 평가했다. 동북공정에 대한 국내 연구진의 대응이 본격화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동북공정은 역사 왜곡을 넘어 역사 침탈의 수준까지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중국 측 주장에 대한 한국 학자들의 반론을 들어본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중국은 2001, 2003년 잇따라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총론’과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록’을 냈다. 고구려를 중국 고대사로 편입했다. 고구려는 소위 중국의 중원 왕조에 조공을 하고 신하로서 활동한 지방정권이라고 못박았다. 독립국가로서의 고구려를 부정한 꼴이다.그러나 중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주장의 허구성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고구려가 존속했던 705년 동안 중국에선 35개 국가가 이합집산했다. 또 그 가운데 70% 가까운 24개 국가가 50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라졌다. 200년을 넘긴 나라는 한나라.당나라 단 두 곳뿐이었다. 게다가 35개국의 절반가량은 중국의 한족이 아닌 북방민족이 지배한 나라였다. 서길수 교수는 “중국 주장대로라면 지방정권(고구려)은 705년간 태평성대를 누리고, 중앙정부는 수없이 존망을 계속했다는 우스꽝스러운

日 법원, 한국인 신청 원폭 수당 소송 기각-연합뉴스(06.09.26)

2006년 9월 26일 476

日 법원, 한국인 신청 원폭 수당 소송 기각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일본 히로시마 지방법원은 26일 해외에서 원폭 피폭 수당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지급이 거절된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 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소장에 따르면,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상엽(83)씨 등 2명은 피폭자 건강 수첩과 건강관리 수당을 해외에서 신청했다는 이유로 신청이 기각되자 신청 기각 취소와 1인당 35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재판부는 그러나 수첩을 지니고 있을 경우 해외에서도 수당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정됐으나 수첩의 신청은 본인이 직접 일본에 입국해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을 들어 소송을 기각했다.일제에 의해 강제 연행돼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원고들은 지난 2004년 한국에서 수첩을 신청했으나 신청이 기각되자 이듬해 9월 나가사키를 방문, 수첩을 발급받았다. 그러나 기각 처분이 취소되지않아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항일 운동으로 추방된 어느 외국인 이야기

2010년 3월 11일 328

항일 운동으로 추방된 어느 외국인 이야기(노컷뉴스, 10.03.01)

“한국인 축구사랑 뿌리는 항일운동”

2010년 3월 11일 340

“한국인 축구사랑 뿌리는 항일운동”(서울경제, 10.02.28)

아베, “10월 한국방문”-MBC(06.09.25)

2006년 9월 26일 421

아베, “10월 한국방문”      [뉴스데스크] ● 앵커: 일본의 아베 차기총리가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는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서 다음달 중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이즈미 현 총리는 오늘 퇴임 기자회견 자리에서까지 야스쿠니 문제를 놓고 한국과 중국을 비난했습니다. 도쿄에서 황외진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 기자: 내일 퇴임하는 고이즈미 총리는 마지막까지 야스쿠니 참배의 정당성을 강변했습니다. 잘못은 정상회담을 거부한 한국과 중국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고이즈미(일본 총리): 시간이 지나면 중국과 한국이 이상하다는 것을 다 알게 될 것이다. ● 기자: 고이즈미 총리의 이런 독선이 아시아 외교실패를 불렀다는 지적 속에 아베 차기 총리가 한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 다음달 전격 방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한일 양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그의 방한과 정상회담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아베 차기 총리는 고이즈미 총리보다 우파적 색채가 더 강하지만 유연성도 갖추고 있다는 평입니다. ● 소네(게이오대학 교수):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가 못한 일을 해내서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를 높이려 한다. ● 기자: 여기에 일본이 새 정권 발족 이후 한국과 첫 정상회담을 해 온 관례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황외진입니다.

46억 8300만 달러 보상 요구한 뻔뻔스러운 일본-오마이뉴스(06.09.25)

2006년 9월 26일 1156

46억 8300만 달러 보상 요구한 뻔뻔스러운 일본      전승국의 입장에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를 무대로 식민통치 피해배상을 받아내겠다던 한국의 전략은 미국의 대일 전략 때문에 수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일본을 패전국이 아닌 동맹국으로 대우하는 쪽으로 선회함에 따라, 미국은 전승국들의 대일 배상 요구에 제동을 걸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미국은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너무 많은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미국은 또 한·일 양국이 상호 ‘대등한’ 지위에서 이 문제를 조속히 처리하기를 희망했다. 이는 일본을 전범국가·패전국가의 멍에로부터 구출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할 수 없이 한일회담을 통해 식민통치 배상문제를 매듭짓는 쪽으로 전환하고 말았다. <기자 주> 미국의 대일정책이 수정됨에 따라 식민통치 배상문제는 한일회담에서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위 주(註)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일회담은 애초 한국이 의도했던 형식이 아니었다. 한국은 전승국의 입장에 서서 패전국 일본에서 배상을 받아내려 하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미국이 그것을 원치 않았다. 무인도(권력 공백의 동북아)에서 여자 ‘탈옥수'(일본)를 체포한 보안관(미국)은 그 여자 탈옥수에게 흑심을 품은 나머지, 다른 보안관(한국)이 그 탈옥수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 다른 보안관에게서 권총(전승국의 지위)마저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데리고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미국이 한국의 대일 배상청구를 방해한 뒤인 1951년 10월에 미국의 주선에 의해 한일회담 예비회담이 개최되었다. 한국전쟁 중인 한국으로서는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