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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활동

[LG헬로비전] 문화재 심의 앞둔 ‘부천 고택’…친일 행적에 보존 논란까지

2021년 5월 27일 480

[앵커] 부천 향토문화재 후보군인 역곡의 한 고택을 두고 지역 사회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옛 소유주의 과거 친일 행적이 드러난데 이어 재개발 현안에 따른 보존 여부도 고민입니다. 이정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높은 돌담에 기와집 처마선. 부천 역곡동에 위치한 죽산 박씨 고택입니다. 1800년 대에 지어져 지금까지 잘 보존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가옥입니다. 이 집은 다음 달 부천시 향토문화재 심의를 앞두고 있는데, 과거 이곳에 살았던 박제봉의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박 씨는 일제 강점기 교육기관, 경학원의 책임자인 사성을 지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 조선총독부에 당시 서울 시내 집 한채 상당의 금액을 헌납한 기록이 발견된 대표적 친일파입니다. 지역 민간단체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보존 가치에 따라 문화재로 지정되더라도 과거 친일 행적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인터뷰: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 “이것이 일제 잔재니까 일제 잔재에 대한 내용을 꼭 넣어달라는 건데요. 표지석 하나 세워서 친일파 박제봉에 대한 행적을 기록한 단죄비를 넣어달라는 겁니다. 암울하고 어두웠던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는 거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고택을 포함해 역곡 지역 일대 71만 제곱미터 부지는 공공 주택 개발이 예정된 지역. 이 때문에 고택이 아예 철거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곳은 백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고택이지만 보존 방안을 비롯해 고택을 향한 시선들은 다양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옛 것을 지켜야 한다는 뜻과 [현장음: 지역 주민(음성변조)]

[오마이뉴스] “일본에 있는 ‘경남 기념물 1호’ 유물, 반환운동 다시 해야”

2021년 5월 25일 410

진주 옥봉고분군 관심 고조… ‘가야고분 유네스코 등재 추진’ ‘경남도의회 결의안” 계기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를 아시나요. 그곳에서 나온 유물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진주 옥봉고분군’이고, ‘일본 동경대학 박물관에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과 경남·경북·전북도가 가야시대 고분군(7개)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하고, 경남도의회에서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 촉구’를 결의한 가운데, ‘경남 기념물 제1호 진주옥봉고분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송현동,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전북 남원 유곡·두락리,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다. 진주 옥봉은 들어 있지 않다. 가야 고분군 등재’를 위한 신청서는 올해 1월 유네스코에 최종 제출됐고, 3월 ‘완성도 검사’를 통과했으며,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경남도의회는 지난 20일 열린 임시회에서 ‘국외 소재 경남 문화재 환수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일제강점기 등에 반출돼 국외에 소재하는 문화재는 22개국 20만 4693점에 이르고, 일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경남지역에서 나온 문화재 가운데 국외 소재는 680여 점이다. 결의안은 “유네스코를 비롯한 관련 국제기구와의 논의 등을 통해 국외소재문화재 실태파악과 문화재 환수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국외소재문화재 환수를 위해 지원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을 강구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고 되어 있다.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던 표병호 의원은 “불행했던 과거사를 치유하고 인류문화 복원을 위해서 우리 문화재를 제자리에 되돌려놓는 시대적 소명을 실천할 때이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알림] 장항습지 지뢰 폭발사고 대책회의 발족 기자회견 (6.21)

2021년 6월 19일 405

주민청구토론회 온라인 청구 서명

[광주인]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5.18민주광장에 전시

2021년 5월 18일 486

5.18민주광장에 ‘예술법정’ 개막 ….친일독재자.5.18가해자.망언자들 전시 ‘법이 하지 못한 심판. 붓으로 심판하다’…민미협. 민문연 광주지부 주최 비엔날레 출품작 ‘일제를 빛낸사람들’ 좌우에 전두환 등 5.18학살자 추가 지난 9일 폐막한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돼 국내외 문화예술계와 언론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제41주년 5.18민중항쟁행사위원회와 광주민미협(회장 박태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는 지난 16일 오후 5.18민주광장 민주의종 앞에 ‘문화예술법정’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작품 좌우에 전두환 노태우 등 5.18학살주범 등 친일독재자와 5.18가해자 망언자들의 얼굴을 풍자한 기존 작품을 덧붙인 작품을 전시 중이다. ‘법이 하지 못한 심판, 붓으로 심판하다’라는 주제로 개막한 이번 제41주년 5.18민중항쟁 문화예술법정 작품은 악질 친일파 92명을 수갑과 포승줄로 묶은 ‘일제를 빛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군사독재로 이어진 굴곡진 역사를 그림으로 단죄한 작품이다. 전시 중인 작품은 ‘일제를 빛낸 사람들’ 좌우에는 친일파를 계승하여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노태우 등 친일독재자이자 5.18학살주범들, 그리고 5.18정신을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폄훼한 대표적인 정치인 등을 배치했다. 이번 전시작품은 이상호 화백의 그림원본을 천에 인쇄한 복사본이다. 특히 ‘일제를 빛낸 사람들’은 이번 5.18 전시를 마치고 민족문제연구소 부설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영구 기증되어 전시될 예정이다. 이상현 기자 <2021-05-17> 광주인 ☞기사원문: 이상호 화백의 ‘일제를 빛낸 사람들’ 5.18민주광장에 전시

[광주일보] 이상호 비엔날레 참여작가 “시대 담은 민중미술 계속 이어가야죠”

2021년 5월 14일 475

“힘든 삶 지켜준 사람들에 좋은 그림으로 보답” ‘걸개그림’ 국보법 위반 구속…30년 아픔 트라우마센터 통해 안정 찾아 불교미술 접목 작품 확장…5월 유족과 인연, 삶·예술 연극으로 만들어져 올해 예순 둘이 된 민중미술 작가 이상호는 최근 3년 동안의 삶이 참 행복했다고 말했다. 힘든 삶이었지만 자신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도 했다.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며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호 작가는 오랜 시간 정신질환과 싸워왔다. 조선대 미술학과 3학년 때 화염병을 던지다 경찰에 끌려가 수없이 구타당한 후 닥친 불행이었다. 6월 항쟁 때는 걸개그림이 발단이 돼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됐다. 30여년간 나주정신병원을 수차례 오고 가는 삶이 계속됐다. 모두 합치면 6년여, 2000여일의 시간이다. 어둠의 시간을 지나, 그는 3년 전 광주트라우마센터에 다니며 상담을 통해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한 동안 놓았던 그림 작업에도 매진했다. 이 작가는 최근 막을 내린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선보였고 뉴욕타임즈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다. 또 그의 삶과 예술이 모티브가 된 오월 연극 ‘어머니와 그’도 공연된다. 5·18이 발생하고 아직은 엄혹한 세월이었던 1980년 초반, 오월어머니회 유가족들은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위를 하곤 했다. 1984년, 이 작가는 우연히 시위에 합류했다 어머니들과 나주 경찰서로 끌려갔다. “당시 경찰서에서도 내 아들 살려 내라며 외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한과 슬픔을 알 수 있었죠. 유가족 사이에 혼자 있는 저를 경찰들이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니,

[인천일보]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역사 탐방 프로그램 ‘4.19 혁명 운동 현장 답사’ 개최

2021년 4월 19일 738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19일 오후 인천 숭의동과 중구청 일원에서 ‘인천지역 4.19 혁명 운동’ 역사 현장 답사 행사를 개최했다. 인천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2021년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이 행사에는 일반 시민과 지부 회원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옛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인 숭의역에서 집결한 답사단은 오후 2시부터 숭의동 공구상가, 싸리재, 경동파출소 자리를 거쳐 옛 인천시청 청사인 중구청 앞까지 2시간여의 탐방을 이어갔다. 해설을 맡은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는 4.19 혁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현장을 지나면서 당시의 전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 1960년 3.15 부정선거 하루 전 시작된 인천지역 학생 시위 인천지역의 4.19 혁명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자행된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됐다.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동시에 선출하는 1960년 3.15 선거일을 앞두고 상황이 불리해진 이승만 정권은 공무원과 경찰은 물론 정치깡패까지 동원한 부정선거를 획책했다. 이에 항의하는 대구학생들이 2월 28일 의거를 일으키자 이 불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으로 번져왔다. 선거 하루 전인 3월 14일 인천고와 제물포고, 송도고, 동산고 학생 30여 명이 ‘공명선거 실시’와 ‘학원자유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다음날인 3월 16일에는 민주당 인천시당 당원들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준비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좌절되고 말았다. – 학생, 노동자, 시민들, 이승만 정권 퇴진 시위에 가세 4월 19일에 이르자 인천지역 학생들과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이승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