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그들은 왜 가미카제가 되었을까요-한겨레신문(06.10.29)

501

그들은 왜 가미카제가 되었을까요 
 



[한겨레] 아깝다 이책

이름 하나가 불도장처럼 머릿속에 찍혀왔다. 1985년 친일 문학작품 선집을 편집할 때였다.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언덕도/산도/뵈이지 않는/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몇천 길의 바다런가/(중략)/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서정주,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伍長 頌歌)에서)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죽은 조선인 청년을 기리는 시구가 하도 생생하고 절절해서, 내가 그 시대의 장정이었다면 이 구절들을 가슴에 묻고 분연히 레이테만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 쪼각쪼각 부서”져 내리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마쓰이 히데오’는 그렇게 화인(火印)이 되었다.

2004년, 가미카제 특공대와 미의식의 관계를 파헤친 오누키 에미코(문화인류학ㆍ미국 위스콘신대)의 책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원제 <ねじ曲げられた櫻>)를 펴냈다. 편집 과정에서 역자가 넘겨준 조선인 특공대원 명단에 바로 그 이름이 있었다. 松井秀男. 1924년 개성 출생. 인씨 집안의 둘째 아들로, 1944년 11월 29일 레이테 만에서 사망. ‘송가’는 열하루 뒤에 매일신보에 실렸다. 다시 읽어도 서늘해 원저에는 없는 이 시로 책을 열었다.

이 책은 몇 개의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왜 가미카제 대원이 됐을까. 그들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군국주의 국가는 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저자는 특공대원들의 내면 풍경을 담은 유서와 일기, 독서 노트 등을 자료로 삼아 답을 찾아 나선다.

가미카제 대원 중 85%가 고등교육을 받은 지원병이었고, 500여 명이 도쿄제국대학 출신이었다. 도쿄대 출신 대부분은 진보ㆍ급진 사상이나 휴머니즘ㆍ이상주의에 몰두했던 사람들로, 천황제 국수주의에 포박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니었다. 지원병들은 ‘한꺼번에 피었다가 동시에 져버리는’ 사쿠라꽃의 미의식을 교묘하게 이용한 군국주의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렸을 따름이었다.

사쿠라는 일본인의 삶에 녹아든 상징이다. 그것은 “안개 서린 봄의 산 저만큼 멀리 있건만/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꽃향기를 전하는구나”의 일상적 아름다움인 동시에, “천황을 위해 아름다운 사쿠라 꽃잎처럼 지라.”의 섬뜩한 생사관이었다. “야스쿠니 신사에 핀 사쿠라가 특공대원들의 넋”이라는 환생의 미학을 담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ㆍ독일 문학에 심취했고 마르크스주의까지 섭렵한 인텔리 특공대원들 역시 이러한 의식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기에서 그들은 앞서간 동료들이 “사쿠라 꽃잎이 되어 졌다”라고 썼다. 출격 전야는 처참했다. “술을 단숨에 들이켜거나 벌컥벌컥 마시기! 전등을 칼로 쳐서 떨어뜨리고, 양손에 치켜든 의자로 창유리를 부수며 (…) 어떤 사람은 엉엉 운다, 오늘 밤만의 목숨.”

저자는 이데올로기의 압력에 오랫동안 노출된 개인은 전적으로 세뇌되지 않는다 해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니체와 괴테와 보들레르, 레닌을 읽으면서도 일본제국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의 앞 세대 지식인들을 이해하는 데도, 아직 곳곳에서 지속되는 국가 폭력을 돌아보는 데도 이 책은 유용하다.

책을 읽고 어떤 분은 가미카제 대원 중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치부인데 그런 내용이 포함된 책을 왜 냈느냐고 나무라듯 말했다. 그러나 근대성의 광기에서 어느 나라도 온전하지 못했으며, 더욱이 식민지 백성으로 강제 징집된 사람들은 분명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몇 천 길의 바다 레이테 만’으로 사라진 그들의 아리랑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우리의 과제 아닐까.


 – 모멘토 출판사 편집부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