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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과학, 돈에 눈먼 민영화…썩은 정치세력 퇴출이 급선무
[릴레이기고] 일본에 희망을 / 임헌영 초보적인 자연재해인 태풍이나 홍수에도 연례행사처럼 당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화산과 지진까지도 확실하게 대비하여 과학문명의 극치를 자랑해 왔다. 진도 7.9의 간토대지진(1923)은 9만9000여명, 한국인만도 2000~600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한국인 희생자는 정확한 통계도 피해 보상도 없었다. “조선인(또한 중국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는 언론의 거짓 선동에 흥분한 일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죽창이나 몽둥이로 죽였다. 그 8년 뒤 ‘만주사변’을 일으킬 정도로 ‘대일본제국’은 건재했고, 이 비극은 일본에서 ‘방재(防災)의 날’로 남아있다. 72년 뒤 진도 7.3의 한신·아와지 대지진(1995)의 괴력은 6400여명의 희생자를 냈지만 불과 1년여 만에 복구했고, 이때 보여준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은 세계의 경탄을 자아냈다.한신대지진 이후 16년 만의 동일본대지진은 충격이었지만 워낙 경이의 나라인지라 그 폐허를 금세 성형수술 해버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쓰나미가 닥쳤다. 그 참상을 담아낸 화면을 보노라면 누구라도 측은지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만다. 피해 지역이 어느 나라, 어떤 사상, 어떤 신앙이든, 아니 모든 생명체는 물론이고 도로나 집 같은 무생물체에까지도 처절한 연민이 솟구친다. 이런 정황에서 ‘하나님의 경고’니 ‘천벌’ 운운은 지진에 뒤지지 않는 충격이었다. 신앙이나 사상이 다른 대상의 불행도 ‘기회’로 받아들이는 이 견고한 배타주의가 하늘의 뜻인지는 모르지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이 통곡할 일이다. 정작 자연재해보다 더 끔찍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지진과 쓰나미만이었다면 이미 일본은 지금쯤 빈틈없는 복구의 발길로
“아시아의 전체평화 위협” “왜곡기술 즉각 수정하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교과서의 확대 승인 사실이 알려진 30일, 국내 시민단체들은 “전쟁 범죄와 식민정책을 미화하고 아시아 전체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며 일제히 비판했다. 한·중·일 70여개 시민·사회단체 연합체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공동대표 안병우 등)는 이날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중·일 국민들이 동일본 대지진 피해 돕기에 앞장서는 상황에서 독도 영유권 등을 주장한 역사왜곡 교과서를 일본 정부가 승인한 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역사 왜곡 교과서 기술을 즉각 수정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이날 제963회 수요집회에서 “대지진에 따른 일본 시민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우리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전쟁 범죄를 미화하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막돼먹은 교과서’의 승인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도수호전국연대 등 독도 관련 단체들도 “일본이 억지 논리를 어린 세대들에게 가르치려는 부끄러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31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일본 교과서 분석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공동 릴레이 항의 성명 발표와 한일 대국회 활동, 대안 역사교육 운동 등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경북도교육감과 교육장 23명은 이날 오전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평화호에서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규탄하는 공동결의문을 냈다. 이들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반역사적 행위이자,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무시하고 위협하려는 철저히 의도된 만행”이라고 규탄했다. 이날 선상회의에서는 독도 교육 사례 발표 및 독도 교육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으며, 참석자들은 독도에 내려 규탄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런 반발과는 별개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원 움직임은
친일·독재잔재 드리운 어린이대공원
친일·독재잔재 드리운 어린이대공원 [현장취재] 박정희 전 대통령 휘호-친일문인 김동인 동상 버젓이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조호진(mindle21) 기자 ▲ 어린이대공원 안내문에는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놀때마다 고 박정희대통령 내외분의 높은 뜻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며 그 뜻에 보답하는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아직도 유신치하인 셈이다.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우리 어린이들은 이 곳에서 놀 때마다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의 높은 뜻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기며 그 뜻에 보답하는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서울 광진구 능동 소재 어린이대공원의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곧 나타나는 안내문에 새겨진 글귀의 일부다. 이밖에도 어린이대공원 정문 현판과 공원 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와 친일문인 소설가 김동인의 문학비와 흉상이 버젓이 서 있다.친일 독재자와 친일 문인이 차지한 어린이대공원 ▲ 어린이대공원 분수대 옆에는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자’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석이 당당히 서 있다.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 분수대 왼쪽에는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자’라고 새겨진 박정희 전 대통령 휘호석이 서 있다. 그리고 휘호석을 받치고 있는 돌다리의 동판에는 유신독재의 잔재가 물씬 풍겨지는, 다음과 같은 문귀가 새겨져 있다.“어린이는 겨레의 희망이요, 나라의 보배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1970년 12월 4일 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들이 슬기롭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곳 서울칸트리 구락부골프장에 어린이를 위한 자연공원을 마련하라고
제2회 국제연대협의회 서울대회 개최
제2회 일본의 과거청산을 위한 국제연대협의회 서울대회가 서울여성프라자(서울, 대방동 Tel 02-810-5000)에서 20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열립니다. 전후 60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은 대일 과거사문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등 일제 과거사문제 해결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적 정의를 회복하는 일입니다.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 서울대회를 통해 갈수록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정부에 대응하고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문제 해결의 전환점을 마련코자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이기도 한 임헌영 교수가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번대회에는 연구소를 비롯한 국내 과거사 관련 운동단체들과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와 피해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며 특히 북한에서 처음으로 리상옥(78), 황종수(78) 씨 등 피해자와 관련단체 인사들도 참가하고 있습니다.7개국이 참여하고 남북의 피해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뜻깊은 행사에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님 전상서 -홍성표
쉰 한 번째 편지 – 2011년 3월 29일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님 전상서 -홍성표- 선생님께서 일제에 찢긴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행동하는 지식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하신 성균관대학에 1981년 첫발을 디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 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학교 행정실에서 합격증과 함께 받은 책 한 권이 지금도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표지에 ‘明倫堂’이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장식되었고, 그 위에 ‘金昌淑’이라고 커다랗게 인쇄 되어있었지요. 명륜동에서 신림동 집까지 95번 버스를 타고 가면서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저는 누런 봉투 안에 있는 바로 ‘그 책’을 아무 생각 없이 꺼내들었습니다. 감수성 예민하던 젊은이에게 표지부터 우중충하고 한자가 범벅이 된 이 책은 첫 장부터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히는 선생님의 존함을 그 당시 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기껏 연상되는 인물이라고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탤런트 ‘김창숙’정도였다고나 할까요. 제 나이 때 이미 선생님께서는 유학을 공부하시면서 ‘동학농민전쟁’으로 고양된 민족혼을 교육을 통해 승화시키고자 결심하셨고, 훌륭하신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 ‘평등사상’을 주변 식솔들과 늙은 종, 집안 일꾼들에게 몸소 실천하셨던 계몽적?실천적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생각 없이 몇 페이지를 넘기던 제 손이 어느 부분에서 멈추었습니다. ▲ 심산 김창숙 선생 “천하는 지금 어느 세상인가. 사람과 짐승이 서로 얽혔네. 붉은 바람,
한국 최고 문학인들에게 풍자폭탄 던지다
“거기 그 거울 속 오래전부터 누님 함초롬히 앉아 계실 때동백기름 사들고 찾아 간적 없는매정한 오라비오장마쓰이 송가로호주머니 두둑히 엔화 받아 들고 물오른 걸음 할 때 인자한 내 누님 일본군 총칼 앞에 치마 들리고큐슈 치쿠호 탄광 벽에‘배가 고프다 / 내 고향 경북 상주 / 엄니가 보고 싶다’쓰던 막내 동생 죽어 갔었지” <후략> 지난 3·1절을 맞이하여 독특한 시집 한 권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위 시도 그 시집 속에 나오는 시로 어디선가 자주 접하던 시 같지 않은가? 바로 한국 최고 시인으로 꼽히는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풍자한 시 “오장마쓰이를 위한 사모곡 <서정주>” 일부이다. 이 시는 최근 도서출판 얼레빗에서 펴낸 이윤옥 시집 ≪사쿠라 불나방≫에서 볼 수 있다. 이 시집은 서정주뿐만이 아니라 김기진, 김동인, 김동환, 김문집, 김상용, 김안서, 김용제, 노천명, 모윤숙,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정비석, 주요한, 채만식, 최남선, 최재서, 최정희 등 일제강점기 당시 쟁쟁했던 20명의 문학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쿠라 불나방≫은 친일문학인들의 시를 패러디한 풍자시를 중심으로 서정주 등 시인들이 왜 친일문학인으로 꼽혔는지를 알 수 있는 시인 이력, 친일 시 한 편, 친일 작품 목록과 더보기를 통해서 친일 내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시집이다. 우리 겨레는 일제강점기 친일청산을 위해 해방 뒤 반민특위를 세워 처단하려 했지만 이승만 일파의 흉계로 좌절하고 말았으며, 그 탓에 사회적으로 여러
"일제시대 한국인을 치의학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대한치과의사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뒤늦게 사학 박사과정을 졸업한 현직 치과 의사가 한국근대치의학의 기원과 발전의 역사를 다룬 [한국근대치의학사](저자 신재의 / 발행처 참윤 퍼블리싱)를 펴냈다. 이 저서는 일제에 의해 이식된 근대 치의학을 단순히 기능적 측면에 그치지 않고,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접근한 점이 이채롭다. 여러 가지 자료와 문헌들을 찾아내 일제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동화 정책 수행이라는 보편적인 배경 속에서 근대 치의학 분야의 특수한 사례를 밀도 있게 접근한 이 책은,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일고 있는‘친일청산과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더욱 확산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일제의 조선침략과 지배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져 온 만큼 이번 저서와 같이 각 분야에서 자기 반성적 성찰 노력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특히,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1)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전통치의학의 임상적 경험이 빛을 보지 못하였고, (2)‘충치예방의 날’행사도 치과의사회보다 조선총독부와 치약회사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여, 심지어 충치 예방 활동도 ‘시국 정세’의 영향으로 국민정신총동원운동과 협력하여 이뤄져 군대의 교련을 이 닦기에 도입한 치마(齒磨)교련이었다. (3)치과치료용 금을 허가제로 통제하며 치과재료를 배급제로 제한하였으며, (4)심지어 한국인을 대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의학 약품 등을 사용하는 일도 벌어졌다. (5)끝으로, 한국인 치과의사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핍박한 조선치과의사회(일본인의 의해 일본인 의사를 위해 설립된 단체)를 현재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기원으로 두고 있는 현실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다.
“조선 정통유학이 일왕중심 변질”
“조선 정통유학이 일왕중심 변질” △ 90년대 성균관대 명륜당에서 열린 성균관장 취임식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상관 없음. 한겨레 자료사진. ‘황도유교’ 비판 학술발표회 유학의 친일 또는 왜색 문제가 학계의 전면적인 비판대에 올랐다. 비판철학회(회장 양재혁·성균관대)는 지난 1일 이 학교 경영관에서 ‘황도유교(皇道儒敎) 비판’이란 주제의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조선의 정통 유학이 일제 식민강점기 시절 일왕의 통치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황도유교로 변질됐으며 해방 이후에도 황도유교의 영향을 받은 학풍이 역대 독재정권의 극우반공 정책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해왔다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유림의 본산이라 할만한 성균관도 신랄한 비판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황도유교는 1903년 조선 정부 초청으로 한성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교사로 건너온 다카하시 도오루가 퇴계 성리학을 재구성한 일왕 중심의 유학 체계다. 그 내용은 대강 이렇다. △조선의 유교는 중국의 아류이며,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건설을 위해 공맹의 정치적 이상인 왕도유교는 일본을 국체로 한 천황 중심의 황도유교로 바뀌어야 한다 △왕도 유교가 ‘충’과 ‘효’를 분리해 ‘효’를 강조한 것이라면, 황도유교는 충효 일치가 기반이다 △중화사상은 주변국을 오랑캐로 간주해 포용력이 없지만 일본은 세계정신으로 황화(皇化)천하를 선포하며, 조선 병합은 포용의 사례다. 다카하시는 1920년대 대구고보(현 경북고) 교사와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 설립 간사 및 교수로서 식민지 조선의 교육방향을 주도했다. 1930년 경학원(구 성균관)을 황국신민 양성을 위한 명륜학원으로 바꾼 뒤, 1940년 11월 내선일체정신을 강조한 ‘왕도유도에서 황도유도로’라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1944년 명륜학원을 명륜연성소로 바꾸고 자신이 소장을 맡았다. 김원열 한국기술교육대
친일후손 재산환수 취소 소송에 대법원은 ‘맞장구’
1960년대부터 홀로 친일파 연구를 수행한 임종국 선생의 생전 모습.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낸 민족문제연구소는 2005년부터 ‘임종국상’을 제정해 민족사 바로잡기에 기여한 인물들에게 시상하고 있다. 2005년 3월 민족문제연구소 산하에서 발족한 임종국기념사업회는 ‘임종국상’을 제정했다. 이 일을 떠맡은 이는 장병화 회장이었다. 그러면 그는 누구인가? 그는 독립투사의 아들로 어릴 때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 자랐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집도 없이 떠돌다가 가락전자회사를 일으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후원자가 되었다. 장 회장은, 친일 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을 내걸고 임종국상을 제정하고서 상금과 모든 부대 경비를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심사위원으로는 이만열·이이화·조정래·주섭일·함세웅(뒤에 김삼웅 합류) 등이 맡았다. 이만한 인사들이 모인 심사위원이라면 객관성을 인정할 만할 것이다. 대상은 학술과 사회운동 부문으로 나누었는데 1차 심사에서 3배수씩 올라오면 최종 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수상자를 결정했다. 1차나 2차 심사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려 신중을 기했다. 학술상은 단순할지 모르지만 친일청산을 다룬 저술을 골랐고, 사회운동 부문은 기자가 쓴 기사나 방송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등 대상 범위가 넓었다. 2010년 수상자를 보자. 학술부문 수상작은 문준영 교수(부산대)의 <법원과 검찰의 탄생>이었는데, 한국 사법의 관료적 폐해와 비민주성의 근원이 일제 식민지 시기에 태동했다는 점을 밝히고 오늘날의 사법 개혁과 법조 민주화 문제를 제기했다. 사회운동 부문 수상자로는 일본인 야노 히데키를 선정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전후청산운동을 벌여왔으며 이어 한국인 희생자의 위령사업과 보상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해왔다. 그리고 한-일 공동으로 강제병합
[한겨레가 만난 사람] “대재앙 일본, 세계에 친절한 나라로 재건되길”
※일본의 대지진 참사와 관련하여 연구소 이사를 역임한 ‘지일파’ 소설가 한수산 세종대 교수가 한겨레 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고 일본사회의 최근 기류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조망했다. – 편집자 ≫한수산씨는 소설 <까마귀>가 2009년 일본에서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나오면서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 일본의 8개 신문이 그의 인터뷰를 실었고, <도쿄신문>은 2면에 걸쳐 특집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인이 일본에 대한 원한이나 증오가 아니라 어려운 시대를 함께 산 인간의 시선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의 비극을 조명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일어난 지 17일이 지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계인의 관심은 이 전대미문의 대재난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지만, 일본 현지의 대참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많은 실종자들이 폐허 속에 묻혀 있고, 파괴된 원전은 대재앙의 그림자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주일 동안 전세계인들은 대자연이 초래한 엄청난 재난 속에서도 인간의 위대함과 희망을 목격했다. 일본인들이 보여준 높은 수준의 질서의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공동체를 향한 용기 등은 어느 서구 신문의 표현처럼 “인류가 진화하고 있다”는 믿음을 품게 했다. 한편으로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문명의 허약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인류는 ‘지구의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일본에서 직접 생활하기도 했고, 작품이 일본에서 출판돼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던 많지 않은 ‘지일파’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