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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시의회, ‘조두남기념관’ 변경 조례 부결 파문
윤성효(cjnews) 기자 ▲ 지난해 ‘조두남기념관’으로 있을 때 모습. 지금은 ‘마산음악관’으로 바뀌었지만, 23일 시의회가 조례 개정안을 부결시켜 파문이 일고 있다. ⓒ2004 오마이뉴스 윤성효 자치단체와 시민위원회가 친일혐의를 받은 조두남씨의 이름을 딴 음악관을 ‘마산음악관’으로 변경하려하자 시의회가 관련 조례 개정안을 부결해 파문이 일고 있다.마산시의회는 23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조두남 기념관 설치와 운영조례’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이 조례 개정안은 음악관 명칭을 ‘마산음악관’으로 하고, 용도도 조두남만 기리지 않고 마산 출신의 음악가를 함께 기리는 것으로 바꾸었다.마산시가 이같은 조례 개정안을 내게 된 데는 “친일 혐의 음악가를 기리는 기념관은 부당하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마산시는 지난해 조두남이 활동한 중국 연변 현지 조사를 거치고, 시민위원회를 두어 명칭 변경문제를 결정짓도록 했다. 각계 대표와 전문가로 구성된 시민위원회가 명칭 변경 등의 결정을 내리자 마산시는 기념관 입구와 도로변의 안내문을 ‘조두남기념관’에서 ‘마산음악관’으로 바꾸기도 했다.그런데 마산시의회가 개정안을 부결해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23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찬반 토론 끝에 표결이 붙여졌는데, 27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0표, 반대 17표가 나왔다. 표결에 앞서 찬반토론에서 반대 의원들이 밝힌 이유는 시와 시민위원회가 시의회를 무시했다는 것.정상철 의원은 “의회의 결정없이 시민위원회가 구성되고 명칭이 바뀐 것은 의회를 무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시민단체가 떠들어서 결정된 것 아니냐”면서 “시민위원회도 일부 입맛에 맞는 위원들로 구성된 것”이라 주장했다.또한 김승현 의원은 “의회를 무시하는 사태에 대해
친일파의 면죄부가 된 친일진상규명법
역사의 길목에서 사상최악의 국회로 평가 받은 16대 국회는 이제 국민들의 단호한 심판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구세력의 급격한 쇠퇴와 새로운 기운의 태동을 지켜보면서 20세기와 21세기를 가름하는 시대 변화의 와중에 서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탄핵정국과 이어진 총선 결과에 따른 의회권력의 교체와 진보세력의 진출 등은 단순한 정치적 현상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차원이 다른 역사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정치 지형의 변동에 흔히 생각하는 게임의 법칙과는 다른 거대한 역사의 손길이 작용하였다고 본다면 과도한 판단일까.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민주주의의 상식을 저버린 다수의 구시대 정치인들이 동반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수구기득권세력의 현저한 퇴조라 규정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정치권 내부의 발전과정이라기보다 역사적 전환기에서 이루어진 국민의 선택에 따른 강요된 결과였다. 16대 국회는 시대의 변화를 읽고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생래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다 알다시피 한국 현대 정당사는 일탈된 정치행태로 일관하였다. 보 혁의 정책대결은 고사하고 부패와 야합으로 일관하여 그 도덕성마저 의심 받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축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세력이었고 다른 쪽은 지주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세력이었으며, 더욱이 친일세력과 그 아류를 주요기반의 하나로 출발한 원죄를 안고 있었다. 물론 한 쪽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였기에 이 같은 평가가 가혹하다 강변할 수 있겠으나,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정권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과거사 청산이 되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전적으로
친일인명사전은 나왔지만 서훈취소 등 ‘미적’
?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5년 8월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3090명을 발표하고 있다. 필자(오른쪽 둘째 모자 쓴 이)는 ‘감수’를 맡아 2009년 8월 발간이 완료될 때까지 참여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1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을 발족하고 그 산하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를 설치했다. 2004년 초 국민모금 운동이 번진 덕분에 극적으로 기금을 마련한 친일사전 편찬 작업은 출발할 때부터 말할 나위도 없이 말들이 많았다. 극소수지만 어떤 분들은 ‘주요 친일인물 몇백명만 싣자’라든지, ‘마지못해 친일한 인사를 제외하자’라든지 하는 상식 밖의 주장을 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이는 다분히 억울한 사람을 가려내자는 게 아니라 아무개 언론사의 창업주 같은 세력가들을 제외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였다. 또 공청회나 명단 발표가 있을 적에는 친일파 후손이나 퍼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와 방해를 놓기도 했는데, ‘사실규명이 잘못되었다’고 떠드는 수준은 그래도 순진하게 보였지만, ‘빨갱이들이 모여 민족분열을 일삼는다’고 호통을 칠 적에는 어이없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했다. 또 당시 천도교의 아무개 교령은 청와대 모임에 참석해 민족종교인 천도교 인사가 열몇명 수록되었다고 떠들기도 하고, 천도교 인사의 친일행각을 공식으로 사죄한 천도교 지도자 박남수씨를 교단에서 제명하기도 했다. 막바지 출간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2009년 출간 보고회 행사장이 외부세력의 압력으로 취소되는가 하면 박정희를 지지하는 노인들이 떼로 몰려와 연구소에 달걀을 던져대는 소극도 벌어졌다. 만주 관동군의 장교였던 박정희가 수록된 걸 불만으로 여긴 것이다. 박정희 지지세력은
서승 교수 “감옥서 민주주의 희망 만나”
정년퇴임하는 서승 교수 (서울=연합뉴스) 동아시아의 대표적 평화ㆍ인권운동가인 서승(66)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오는 26일 서울에서 열리는 정년퇴임 기념식과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한국, 대만, 오키나와를 돌아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려고 한국을 찾았다. 2011.03.24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대한민국 전체가 큰 감옥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소용돌이 가운데서 희망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통일운동을 했던 분들 모두 감옥에서 배출됐다고 생각합니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자신의 정년퇴임 기념강연을 한 인권ㆍ평화운동가 서승(66)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대 교수는 자신의 19년간 옥중 생활에 대해 “폐쇄된 공간에서 가장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었던 시기”라며 이같이 회고했다. 분신 기도와 사형 선고, 단식 투쟁 등 생명의 위기를 세 차례나 넘기고 8.15 해방과 1990년 석방, 2005년 평양 민족대회 참가라는 세 번의 `해방’을 경험했다는 그는 이를 통해 생명과 인권, 민족과 평화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석방되고 나서 세계 각지를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한 곳에 있었다면 보지 못했을 시각을 얻었다고 자부합니다. 동아시아가 무엇인지, 한반도는 세계사에서 어디에 있는지 입체적인 인식과 감각을 지니게 됐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유학 중이던 1971년 `재일교포 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주모자로 몰려 19년간 옥살이를 했다. 군사정권이 자행한 인권유린의 산 증인인 그가 이날 퇴임 행사를 한 곳은 공교롭게도 옛 안전기획부 청사 자리였다. 서 교수는 “이곳은 과거 일제 통감부가 들어서는 등 폭력의 중추로 유서깊은
친일 ‘판도라 상자’를 건드린 김민수, 복직길 열리나
▲작년 11월 김민수 복직 집회 중인 연구소 회원들 ©민족문제연구소 [한겨레] 김민수 전교수 재임용 길 트여 대법 “공정한 심사요구 당연”고법 돌려보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연구논문 부실을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전 서울대 미대 조교수 김민수씨가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낸 교수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청구 각하 결정을 내렸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김씨가 고법 심리 등을 거쳐 서울대 교수로 재임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교육부의 관련 지침 등을 볼 때 임용기간이 만료된 국·공립대 조교수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공정한 심사를 요구할 법규상 신청권을 갖는다”며 “임용권자가 해당 조교수에게 재임용을 거부하며 임용기간 만료를 통지한 것은 교원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행정소송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임용권자가 인사위원회 심의 결정에 따라 교원을 재임용하지 않기로 결정해 통지한 것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판시한 1997년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변호인 쪽은 “이번 판결은 재임용에서 탈락한 대학 교원들이 법원에서 재임용 심사의 적법성을 심사받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파기환송심에서 1심 결과대로 김씨의 승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씨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 판결은 1심 심리 내용을 반영한 명쾌한 판결”이라며 “학교 쪽 태도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1994년부터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조교수로 재직해온 김씨는 98년 7월
보추협, ‘일제 강제동원피해자를 위한 안내서’ 발간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산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일제 강제동원피해자를 위한 안내>서를 발간하였다. 이번에 발간한 안내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를 주제로 해서 문답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 뒷부분에는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이 책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는 무료로 배표되고 있다. 전체 30쪽, 안내서 문의 전화 02-957-8817, 02-969-7075 팩스 02-957-8827 – 자료 목차 – Q1. 일제강제동원피해란? Q2.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 피해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나요? Q3. 일제 강제동원 명부 찾는 방법Q4. 선조의 유골을 찾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Q5.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Q6. 공탁금이란 무엇이며 찾을 수 있는가요? Q7.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모든 배상이 끝났다는데… Q8. 여러 건의 보상재판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되었나요? Q9.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Q10.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Q11. 소송에 원고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Q12. 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Q13. 진상규명특별법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친일인명사전 나왔지만 정부는 서훈취소 등 ‘미적’
?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5년 8월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3090명을 발표하고 있다. 필자(오른쪽 둘째 모자 쓴 이)는 ‘감수’를 맡아 2009년 8월 발간이 완료될 때까지 참여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5년 8월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3090명을 발표하고 있다. 필자(오른쪽 둘째 모자 쓴 이)는 ‘감수’를 맡아 2009년 8월 발간이 완료될 때까지 참여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1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을 발족하고 그 산하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를 설치했다. 2004년 초 국민모금 운동이 번진 덕분에 극적으로 기금을 마련한 친일사전 편찬 작업은 출발할 때부터 말할 나위도 없이 말들이 많았다. 극소수지만 어떤 분들은 ‘주요 친일인물 몇백명만 싣자’라든지, ‘마지못해 친일한 인사를 제외하자’라든지 하는 상식 밖의 주장을 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이는 다분히 억울한 사람을 가려내자는 게 아니라 아무개 언론사의 창업주 같은 세력가들을 제외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였다. 또 공청회나 명단 발표가 있을 적에는 친일파 후손이나 퍼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와 방해를 놓기도 했는데, ‘사실규명이 잘못되었다’고 떠드는 수준은 그래도 순진하게 보였지만, ‘빨갱이들이 모여 민족분열을 일삼는다’고 호통을 칠 적에는 어이없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했다. 또 당시 천도교의 아무개 교령은 청와대 모임에 참석해 민족종교인 천도교 인사가 열몇명 수록되었다고 떠들기도 하고, 천도교 인사의 친일행각을 공식으로 사죄한 천도교 지도자 박남수씨를 교단에서 제명하기도 했다. 막바지 출간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기득권 아킬레스건” 건드리는 친일사전 편찬위 참여
2004년 1월19일 오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위한 누리꾼 모금액이 목표치인 5억원을 넘은 것을 기념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제 민족의 과제인 친일파 청산 활동에 참여한 기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1991년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발족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문제연구소에 이어 나와 인연이 깊다. 특히 95년 반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이름이 바뀐 뒤 많은 사람들이 두 연구소를 헷갈려 했는데 어쩌면 상당부분 인맥이 겹치는 탓도 있을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 선생은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으로 나와 함께 고락을 같이한 사이이기도 하고 많은 일을 서로 의논하며 의지해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실무자들과도 나이를 떠나 의견을 주고받으며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조세열 사무총장, 박한용 연구실장, 김민철 책임연구원 등과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상일을 논하고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그럴 때면 이들은 종종 “젊은이들에게도 말할 짬을 달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술이 몇 잔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말이 길어지는 버릇 탓에 “선생님은 혼자서만 말씀하신다”고 타박을 하며 “저희들도 얘기할 틈 좀 주십시오라는 말을 추임새로 여기시는 모양”이라고 애정 어린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에는 초창기부터 지도위원 등으로 참여했는데 특별한 느낌을 주는 단체다. 80년대 많은 학술단체들이 실천적 연구를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민족연구소만큼 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사례는 없었다. 11평 남짓 되는, 세탁소 2층 사무실에서 상근자 4명이 시작해서 이제는 월 회비를 내는 회원만 6000여명에 상근자도 수십명이니, 민간 연구소로서는
17대국회 바로 펴야할굽은법-친일진상규명법
법안 곳곳 제한규정으로 발목 묶여 △ 지난 1월29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열릴 예정이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2소위가 정족수 미달로 열리지 못하자,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오른쪽)이 소위 위원들을 성토하고 있다. 윤운식 기자 관련기사 조세열 “원안회복 넘어 한걸음 더” 대통령 직속 진상규명위 어떻게 17대국회 바로 펴야할굽은법 ① 친일진상규명법 오는 6월5일 문을 여는 17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높다. 여대야소로의 정치지형 변화가 이뤄졌고 한나라당의 합리적 변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국회는 여소야대인 16대 국회에서 왜곡·변질된 주요 개혁 법안을 바로 잡을 책무를 안고 있다. 해묵은 구시대의 유물을 이번 기회에 청산해야 한다는 바람도 거세다. 새 국회가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주요 법률을 몇차례로 나누어 짚어본다. ‘찬성 151명, 반대 2명, 기권 10명’ 지난 3월2일 국회 본회의에 부쳐진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의 표결 결과는 조금 뜻밖이었다. 법안 통과는 예상됐던 바였지만, 찬성표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을 것으로 전망한 이는 별로 없었다. 국회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법안 처리 고비고비마다 딴지를 걸고 반대한 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을 앞둔 의원들로선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는 법안을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투표 방식이어서 법안에 대한 찬반 의사가 훤히 드러난다는 ‘정치적 부담’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마지막까지 집요하게 법안의 처리를 가로막았던 한나라당
친일규명법 8월중 개정
오는 9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인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크게 확대되고, 활동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28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오는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해,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8월 중에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16대 국회 법사위에서 왜곡·변질된 내용을 바로 잡아 과거사진상규명특위의 원안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법사위의 열린우리당 간사인 최용규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 중에도 개정에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큰 어려움 없이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의원 등 열린우리당 쪽이 준비중인 개정안은 기존 법 곳곳에 포함된 ‘전국적 차원에서’ 또는 ‘중앙의’라는 문구를 삭제해, 지방 단위에서 학병·지원병·징병·징용 또는 공출을 권유하거나 강요한 행위도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또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복무해 침략전쟁에 협력했더라도 ‘중좌 이상의 장교’인 경우에만 조사하도록 했던 것도 ‘장교’로 확대하도록 했다. 열린우리당은 이와 함께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조사대상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에 따라 신설한 법 제23조의 ‘일제 행정기관·군대·사법부 등 특정한 지위에 재직한 사실을 갖고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것으로 신문·잡지·방송에 공표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에 따라 삭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