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2004 울릉도-독도탐방단 모집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주둔 50주년 기념2004 울릉도-독도탐방 및 독도경비대 위문방문 독도수호대는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주둔 50주년을 맞아 울릉도, 독도탐방단을 모집합니다. 이번 탐방은 5월 28일 포항여객터미널을 출발하여 30일까지 울릉도, 독도일원에서 진행됩니다. 이번 행사를 주도하고 있는 독도수호대 김점구 사무국장은 연구소의 열성 회원이기도 하며 지난 1998년 이대에서 제정하려던 김활란 상 반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상 제정을 무산시킨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책동에 대한 경계와 함께 우리 내부적으로 일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의미를 새롭게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해 연구소에서는 이번 독도탐방행사를 적극 동참합니다. 회원인 경우 신청하실 때 반드시 연구소 회원임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주 최 : 독도수호대 □ 기 간 : 2004년 5월 28일(금)∼5월 30일(일) (2박 3일간) □ 장 소 : 울릉도, 독도 □ 참가비 : 350,000원 (차량/선박/숙식비 포함) □ 입금계좌 : 우체국 012013-01-002111 (예금주 : 독도수호대)□ 신청방법 : 이메일(tokdo@tokdo.com) 또는 팩스 02-3672-5735 □ 신청할 때 반드시 알려주실 항목 (독도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름 / 주민등록번호 / 주소 / 연락처(이동전화, 이메일)□ 문의 : 독도수호대 02-3672-5733∼4 사무국장 011-436-8518 □ 일 정5월 27일 23:00시 출발 -서울 경운궁(덕수궁) 대한문 앞 5월 28일 04:00 포항 도착(포항여객터미널, 영일만식당) 10:00 ~ 13:00 포항 → 울릉도 이동 (썬플라워 호) 13:00 ~ 14:00 짐 정리, 점심식사
파주시민단체, 친일인사 백선엽 동상건립 반대 농성 진행
예산 2억원을 들여 문산임진각에 친일인사 백선엽의 선양비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중인 파주시에 대해 ‘친일인사 백선엽 동상건립 반대 파주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가 반대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파주시가 ‘백선엽 장군 기념사업이 아닌 6·25 참전용사의 선양사업으로 변경하라’는 파주시의회의 권고안을 무시하고 다음달 말게 선양비를 원안대로 세우리로 한 것. ▲ ? 경기북부일보시민대책위 이재희 집행위원장은 “우리조상을 등쳐먹으며 개인의 영달을 꾀하고 독립군 때려잡은 일제의 앞잡이인 백선엽에게 동상이 왠말이냐”며 “파주시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또한 이 위원장은 “백선엽 동상에 대한 파주시민들의 반대여론이 들끓고 있는데도 파주시가 기어이 반민족 친일인사를 6·25 참전용사 선양사업의 맨 앞자리에 세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시민대책위원회는 백선엽을 부조물의 중심에 두지 말고, 헌시와 건립기는 특정인물에 대한 기록이 되지 않도록 할 것과 이인재 파주시장의 편향된 역사인식으로 파주시민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에 대해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또한 백선엽의 동상건립을 위해 배정된 2억원의 예산을 전면 삭감하고 6.25참전유공자사업예산으로 전환 편성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한편 최종 시안을 결정하기로 했던 15일 선양비건립추진위 회의는 이번 농성으로 연기된 상태다.
김상덕 평전 출간
‘반민특위위원장’ 이자 민족해방투쟁에 평생을 헌신한 독립투사인 ‘김상덕’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 발간되었습니다. <김삼웅(저), 책보세, 2011> 이 책은 특히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험난한 역정에 동행했던 선생의 외아들 김정륙(연구소 회원)의 생생한 증언을 김삼웅 선생의 엄정한 필치로 담아냄으로써 애국지사 김상덕 선생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아래에 출판사 보도자료(책소개)의 내용과 관련기사를 첨부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평생을 민족독립 쟁취에 바친 애국지사 김상덕, 그에 대한 기록물이 세상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내다 애국자라는 수식어가 낯선 광복지사 영주 김상덕 선생은 우리에게 ‘반민특위위원장’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가 우리 근현대사의 물구나무선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독립지사 가운데 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기록물은 여태까지 미비했다. 아주 멀지 않은 과거, 한국을 강제로 병탄한 일제의 식민통치가 엄혹했던 시절, 유학차 건너간 적도 도쿄에서 2.8독립선언(1919)을 주도했다가 피체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루고 나와 학업(와세다대학)도 중단한 채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하이에서 만주로, 다시 만주에서 난징, 충칭으로 대륙을 전전하며 온 청춘을 민족해방투쟁에 바친 독립투사가 바로 김상덕이다. 그는 지절을 지킨 다른 독립투사들과 마찬가지로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목숨을 건’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이유는, 친일파 및 민족반역자 청산작업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이후 김상덕의 일생은 시종여일 애국애족의 한길이었고, 그만큼 희생과 고난에 찬 가시밭길이었다. 김상덕이 걸었던 그 길은 바로 우리 민족해방투쟁의 길, 일제잔재청산의 길 그대로다. 그래서 이 책은 김상덕 개인을 평한
이제 이들이 ‘친일청산’의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17대
이래도 야스쿠니 참배하겠는가.
지난 4월 7일 일본의 후쿠오카지방재판소에서 고이즈미수상의 야스쿠니신사참배가 일본국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이 내려졌고, 고이즈미 수상은 향후 야스쿠니신사를 계속 참배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고이즈미수상의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둘러싼 소송이 7건에 이르고 있으며, 그동안 3건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재판을 담당했던 新正那弘(아라이 쿠니히로)변호사와 재판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菱木政晴(히시키 마사하루)사무국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사무국장을 만나 이번 판결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 김은식 원고들과 재판설명회를 갖고 있는 아라이변호사와 히시키사무국장 김은식 : 먼저 독자를 위해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라이 : 재일교포3세로 한국의 원고들이 참여하고 있는 고이즈미수상야스쿠니참배위헌소송 오사카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이며, 노동자변호단을 통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도 교류하고 있는 新正那弘(아라이 쿠니히로)라고 합니다. 히시키 : 고이즈미수상야스쿠니참배위헌아시아소송단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菱木政晴(히시키 마사하루)입니다. 니시야마단기대학에서 교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아라이 변호사 김은식 : 지난 4월 7일 후쿠오카지방재판소에서 고이즈미수상의 야스쿠니신사참배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먼저 소송이 어떻게 제기되었는지에 대해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히시키 : 2001년 8월 13일 고이즈미 쥰이치로 일본수상이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했습니다. 고이즈미수상의 야스쿠니신사참배는 지난 1985년 나카소네수상의 참배 이후 최초로 이루어졌으며, 국내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나카소네수상 당시에도 수상의 야스쿠니신사참배가 위헌이라는 소송이 제기된 바 있고, 항소심 재판부에서도 위헌의 히시키 사무국장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내려진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수상은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러한 참배행위가 일본국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어린이 신흥무관학교 체험 행사 안내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대표적인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 생도들의 생활과 훈련을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 신흥무관학교 체험”행사를 진행합니다. 회원 및 시민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시: 2011년 4월 9일 (10시~15시) 장소: 천안 독립기념과 전시관, 독립군 체험 교정 대상: 초등학생 5~6학년 (남여 구분 없이 40~80명) 참가비:무료 (모든 비용은 주최측에서 제공. 교통비, 기념품 및 점심, 간식 등 제공) 접수 및 문의 : 민족문제연구소(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사무국) <기타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홍보지를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안중근 의사 순국 101주기 추모식 안내
올해는 일제의 의해 안중근 의사께서 여순감옥에서 서거하신지 101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그 유해를 아직까지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속에서 안중근 기념사업회는 백범 김구 선생이 조성한 묘역터에서 오는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서거 101주년 기념식을 주최할 예정입니다. 회원 및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장소 :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원(효창공원) 내 안중근 의사 묘역 일시 : 2011년 3월 26일(토요일) 11시 <아래는 안중근기념사업회에서 제공한 초대의 글입니다> 102년 전 안중근 의사의 살신성인 의거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린 그날! 우리민족의 동맥에 자각의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하더니 3.1 대항쟁으로 솟아올랐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뿐이랴, 님의 기품과 살신성인은 꺼지지 않는 독립정신과 평화의 향도로써 국민 가슴마다 새겨야할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하겠습니다. 금년은 안중근 의사께서 1910년 여순감옥에서순국하신지 101년 되는 해입니다. 당신은 여순감옥 뒷산에 묻히시기 전 “독립되는 날 나를 고국에 반장하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그러나 우리 후손들의 불민으로 당신의 유해를 오늘까지 찾지 못함으로써 머리를 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46년 김구 선생께서 서울 용산구 효창원(효창공원)에 안중근 의사 유해를 모시고자 허묘(빈묘)를 조성하고, 그 옆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3의사 묘소가 자리하도록 조성하였던 묘역터에 순국 100주기인 지난해 3월 26일에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와 각 사회단체 합동으로 이 ‘허묘’에 안중근 의사 ‘혼’을 모시는 영신제를 올림으로써 100년간 안착하지 못하던 의사님의 ‘혼’이 깃든 ‘묘’로 거듭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드리는 말씀은 3월 26일 안중근
[새 책] 한 시간 후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한 시간 후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검색1 인물과사상사 검색2 금액 8,000원 할인가 7,200원(10%,800원 할인) 수 량 개 한 시간 후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조선일보시민연대 편 인문(사회)/4×6배판/204쪽/값 8,000원/ISBN 89-88410-87-4 03300 스스로를 ‘비판언론’이라 부르는 조선일보 최근 들어 조선일보는 스스로를 ‘비판언론’이라 부른다.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로부터 군부독재 정권에 이르기까지 조선일보는 결코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이 아니었다. 조선일보가 본격적인 ‘비판언론’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다. 조선일보는 정부 여당 내 ‘개혁세력’과 각종 개혁정책에 딴죽을 걸면서, 자신이 ‘권력’을 ‘비판’한다고 착각하게 된 듯하다. 어쨌든 자신이 권부를 비판하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대단한 착각은 ‘언론탄압’에 대한 피해망상으로 번졌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해도 “정권의 비판언론 탄압”, 경품 주지 말고 신문을 팔아 보라고 해도 “언론자유 위축”이라고 발끈하고 나섰다. 기업 투명성, 시장질서 확립과 같은 최소한의 자본주의 룰도 조선일보에겐 ‘비판언론 탄압’이 된다. 그러니 “거짓말 하지 말고 사실보도 하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침해하는 ‘몰상식한’ 행위로 몰리기 십상이다. 조선일보가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비판언론’이나 ‘언론자유’의 개념을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조선일보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일언반구 반성 없이 ‘비판언론’을 자처하며 ‘언론자유’를 운운하는 행태가 얼마나 낯뜨겁고 파렴치한 일인지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다. ‘조선일보와 페어플레이 하고 싶다’ 『주간 안티조선』 중
역사적 안목으로 본 탄핵사태
역사적 안목으로 본 탄핵사태 우리 공화주의 역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가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가, 그 원인이 반드시 추구되어야 한다. 당장에는 아무래도 정치적 측면의 원인이 많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회·경제적 원인도 추구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역사적 관점에서의 원인이 밝혀지게 마련이며, 그것이 더 높은 객관성과 종합성을 가지게 된다. 흔히 역사적 관점의 원인 추구는 시간이 많이 지나야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게 마련인데, 역사 보는 눈만 제대로 가지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승만 문민독재정권이나 박정희 등의 군사독재정권 시대는 그만두고라도 장면 정권이나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때도 없었던 대통령 탄핵사태가 왜 노무현 정권에서 벌어졌는가. 그것도 민의의 전당이 난장판이 되면서까지. -21C형 노무현정권 출범-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을 근거로 해서 그 원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21세기적 정권이라 할 노무현 정권의 성립으로 20세기 내내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세력의 위기의식이 한층 더 높아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중세적 기득권세력인 양반층에 대신해서 근대적 기득권 세력이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시대부터라 하겠다. 그 때문에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전선의 우익전선까지도 민족의 해방은 토지와 대기업을 국유화하고 일제하에서 성장한, 그래서 일제지배체제가 계속되기를 원하는 기득권세력을 숙청하는 ‘혁명’이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해방전에 임정을 승인하지 않은 이유가 이 점에도 있었다. 8·15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해방은 혁명이 되지 못했고, 일제시대의 기득권세력이 8·15 후의 이 땅에서도 모든 분야에서
야노 강제병합100년일본실행위 사무국장 감사편지
※ 연구소는 지난 14일 “일본 대지진 관련 논평”을 통해 충격적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본 사회에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이에 일본의 야노 히데키 강제병합100년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 사무국장이 연구소의 논평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연구소 논평과 야노씨의 답신을 함께 게재합니다. ▼일본의 야노 히데키(강제병합100년공동행동일본실행위원회 사무국장)씨의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