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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지원병’이란 미명 아래 침략전쟁에 내몰린 조선인 청년들의 운명

2018년 9월 6일 4374

조선인의 참정권 및 병역의무에 대하여는 당국자 간에 숙의한 결과로 약 10개년 간 후에 부여하기로 정하였는데 특히 외국에 재주(在住)하는 조선인에게는 외무성의 주장으로 일본관민과 동일한 자격을 여(與)하기로 결(決)한 후 각국 정부에게 통첩하였다더라. 이것은 원래 <황성신문>이었다가 경술국치와 더불어 제호 변경을 강요당한 <한성신문>1910년 9월 6일자에 수록된 「조선인 권리 의무」 제하의 기사 내용이다. 여길 보면 막 식민지로 편입된 조선에 대해 병역의무의 부과를 10년간 유예한다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그 이유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으나 언어 차이로 지휘통솔이 쉽지 않은데다 함부로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만주사변(1931년)을 거쳐 중일전쟁(1937년)에 이르러 소모적인 침략전쟁이 지속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급변하기에 이른다. 신무천황제일(神武天皇祭日)인 1938년 4월 3일에 맞춰 시행된 ‘육군특별지원병령’은 부족해진 병력자원을 식민지 조선에서 긴급 조달하기 위한 응급조치의 하나였다. 겉으로는 ‘내지인(內地人)’과 신분취급상 아무런 차별이 없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핑계를 내세웠지만, 본질은 역시 조선인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에 따라 육군병지원자훈련소(陸軍兵志願者訓練所)가 양주 공덕리에 이어 평양 신양정과 시흥 독산리에 잇따라 설치되었고 1944년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통해 배출된 1만 7천여 명에 달하는 입소자들은 현역병 또는 제1보충역의 신분으로 일본군대에 편입되어 전선으로 끌려갔다. 이와 아울러 1943년에는 ‘해군특별지원병령’이 별도로 제정되어 해군병지원자훈련소(海軍兵志願者訓練所)가 경남 창원(진해)에 설치되었다. 육군에 이어 해군에까지 지원병제도가 확장된 것은 태평양전쟁(1941년)의 확전에 따라 해군병력의 조달이 시급한

일제의 병영으로 가득한 땅

2018년 8월 1일 4464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는 용산이 일제침략의 총본산이었음을 알려주는 1929년에 발행한 지도이다. 축적은 1:7,500이며 색인으로 행정구역(町, 洞, 里) 표기와 함께 관청과 회사, 학교를 표기하였는데 총독관저, 보병영步兵營, 병기지창兵器支廠, 군사령부, 군사령관 관저, 야포병영, 공병영工兵營, 기병영騎兵營, 사단사령부, 사단장관저 등 군사시설과 철도국, 철도원양성소, 철도공장, 철도병원 등 용산역을 중심으로 한 철도관계 시설, 용산소학교, 중학교, 효창보통학교, 삼판三坂소학교 등 학교 시설, 용산경찰서, 경성형무소, 형무소공장 등이 기재되어 있다. 지도는 모눈의 형식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동일한 축적과 형식을 갖춘 시가도, 특히 경성시가도 같은 지도를 모눈에 이어서 맞춰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범례로 교량, 산악 등고선, 성벽, 철도, 전차선로, 행정구역 경계까지 표시하였는데 이렇게 상세한 범례와 모눈의 형식은 군사용 지도로 사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시가지에는 지번과 함께 주요 건물들을 모양대로 그려 넣었으며 지도의 범위는 북쪽으로 서울역 아래, 동쪽으로 이태원, 서쪽으로 마포, 남쪽으로 용산역까지 보여준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서울지도>의지도전시관에도“용산시가도”를볼 수 있는데1927년에 발행된 것이다. 연구소 소장 “용산시가도”(1929년판)와 다른 지형이 세 곳인데 이는 모두 을축년 대홍수(1925년)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먼저 1927년판에 보이던 용산역 하단의 이촌동 지역 마을이 1929년판에서 사라졌다. 해마다 비만 오면 침수문제로 이재민이 발생하던 이촌동이 을축년 대홍수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고 수많은 피해를 입게 되자 조선총독부는 이촌동 주민들을 노량진(500戶)과 공덕리(215戶)로 나누어 이전시켰다. 원래 이촌동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요청한 이전지는 효창원이었는데 관철되지 못하였다. 대신 효창원 부지에는 용산역에 있던

기증자료

2018년 9월 6일 1379

심정섭 지도위원 제68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256점 보내와 7월 4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68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주요 자료는 박OO이 1950~60년대에 문교부, 전라남도지사 등에서 받은 발령·호봉 통지서, 위촉장, 이력서 등이다.   7월 26일, 고 임종국 선생의 누이동생인 임경화 여사가 작품 1점을 기증했다. 임종국 선생의 어머니가 태몽으로 ‘눈이 하얗게 내리는 밤에 설중매가 나온 장면’을 꾸었는데 임경화 여사가 이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다. 明月孤山處土家 湖光寒浸玉橫斜 밝은 달은 외로운 산속 처사 집을 비추는데 호수 물빛은 차갑게 매화나무 가지를 적시네   이치노헤 쇼코 씨 연구소 방문 후 자료 기증 지난 7월 16일 이치노헤 쇼코 씨가 연구소를 방문하여 <조선 침략 참회기>(2013)과 「명치27년8월5일경성개선그림 我兵京城凱旋之圖」 총 2점을 기증했다. 지난 2016년에 <1907년 경회루에서 찍은 일본과 대한제국 관료들> 사진1점을 기증한 후 2번째 자료기증이며 “식민지역사박물관의 발전을 바란다”며 역사관 기금도 전달했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결산

2018년 9월 6일 1475

2017년 12월 18일 첫 방송을 시작한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2가 2018년 8월 20일 마지막 방송으로 9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으로 좋은 성과를 냈던 시즌1 〈역적〉을 발판삼아 시즌2는 연구소가 보유한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외부단체와 제휴를 통해 청취자를 늘려 장기적으로 연구소 미디어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내역사 시즌2에서는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의 대중역사강의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여행’(아쉽게도 개인사정으로 중단됨)을 필두로 조한성 연구원, 방은희 교육팀장, MC노가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간 ‘역전다방(역사를 전하는 수다방)’과 이순우 연구원의 식민지시대 자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인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가다)’ 그리고 역사이슈에 대한 뒷담화를 나누는 ‘방학진 기획실장의 바하인드히스토리’까지 4개의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총 55개의 에피소드를 방송하였다. 국민TV와 협력하여 3개월간 영상방송을 제작하여 영상방송의 가능성도 타진하였다. 특히 역사적인 4.27남북정상회담에 맞춰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을 모시고 특별대담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청취자들의 많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내역사 시즌2는 5천여 명의 고정 청취자를 확보해 월 8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역사 팟캐스트 분야에서 10위권에 진입하여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는 시즌1, 2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제작노하우를 습득해 향후 장기적인 방송을 할 수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소는 두 달 간 충전기를 갖고 나서 10월말쯤 시즌3에 들어갈 예정이다. 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내역사 시즌2의 모든 에피소드는 오디오 팟빵, 아이튠즈 팟캐스트,

근현대사기념관, 2018 여름방학 청소년 체험교육 진행

2018년 9월 6일 1511

근현대사기념관이 여름방학을 맞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2018 여름방학 청소년 한국사 특강과 청소년 도슨트 아카데미를 열었다. 먼저 한국사 특강은 ‘제1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조선의 운명’을 주제로 총 4강의 연속강좌로 이루어졌다. 올해로부터 100년 전 세계와 동아시아의 상황을 이해하고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의 세계사적 맥락을 살펴보자는 것이 이번 특강의 목표였다. 청소년을 위한 강좌인만큼 주제의 전달력을 높이고자 현직 역사 교사로 강사진을 구성하였으며 강사 섭외에는 도선고 송치중 교사가 힘써주었다. 제1강은 창의고등학교 이종관 교사가 ‘전쟁에 휩싸인 유럽, 혁명의 폭풍을 맞다 –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문을 열었다. 제2강은 가재울고등학교 권오청 교사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각국이 처한 상황과 요구가 세계 질서에 적용되는 과정으로 ‘평화를 위한 노력 뒤에 숨겨진 전쟁의 불씨 – 베르사유 체제와 국제연맹’을 다루었다. 강의와 함께 당시 상황을 반영한 사진 전시를 모둠별로 진행하여 청소년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했다. 세번째 강좌는 ‘아시아의 민족 운동이 확산되다 – 민족자결주의와 동아시아의 민족 운동’을 주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14개조 평화원칙을 두고 매일신보에 번역된 내용과 원문을 비교해서 읽고, 아시아 민족운동의 주역들이 영향을 받은 대표적 조항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노일초등학교 정미란 교사가 강의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교하중학교 이충모 교사는 ‘만세소리와 함께 온 새로운 시대 – 3・1운동과 민주공화국 수립’을 주제로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의 분위기가 국내 민족운동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고자 하는 당시의 열망과 그

게임과 역사의 만남,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 참여

2018년 9월 6일 1291

  재단법인 게임인재단(이사장 조계현)이 한국사 게임 개발 활성화와 우리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2018 게임인 한국사 콘서트’가 7월 23일 경기도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지하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임헌영 소장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한국사 최태성 강사와 역사 게임 개발의 선구자인 김태곤 조이시티 CTO가 ‘한국사 대중화와 게임적 상상력의 융합’을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토크콘서트에 앞서 ‘플레이 한국사’라는 주제로 최태성 강사와 김태곤 조이시티 CTO의 발표 및 토론으로 구성됐다. 최태성 강사는 “경제수준이 향상될수록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며 한국사에는 수많은 게임소재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김태곤 조이시티 CTO는 “최근에는 증강현실(AR)을 통해 역사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설득력 있는 고증이 게임 유저들이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게임인재단 정석원 사무국장은 “역사적 배경과 상상력을 결합한 대중문화 콘텐츠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 받아왔다”며 “가깝고도 낯설었던 한국사를 게임이라는 대중문화와 결합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 앞서 지난 3월 16일 연구소와 게임인재단은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협약식을 가졌고 게임인재단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1천만 원의 기금을 보내준 바 했다. • 편집부

중국 광둥지부(준),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초청 강연

2018년 9월 6일 999

연구소 중국 광둥지부 준비위원회(준비위원장 김유)는 7월 7일 선전(深圳)에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을 주제로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초청 강연회를 열었다. 이날 강연회에는 약 80명의 교민들이 참석했다. 광둥지부 준비위원회는 광둥포럼이 그 중심을 이룬다. 광둥포럼은 광둥지역 교민들에게 우리 역사를 지속적으로 알리기 위해 조직된 단체로서 그동안 영화 〈암살〉 단체 관람, 한글교재 보급, 황포군관학교 등 광둥지역에 남아 있는 한국인 독립운동가 선양사업 등을 벌여왔다. • 편집부

부자(富者) 열전 – 민영휘, 김갑순, 김연수

2018년 8월 1일 9029

열전친일파 20 부자(富者) 열전 – 민영휘, 김갑순, 김연수 민족 수난 시대에도 ‘재벌’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1920년대 최대 현금부자는 이완용, 1930년대 최대 땅부자이자 재벌은 민영휘였다. 김성수도 1920~1930년대에 재벌 소리를 들었고, 1930년대에 신흥 현금부자로 최창학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1930년대 후반 1940년대에는 박흥식, 김연수, 민영휘의 아들 민대식 등도 갑부 소리를 들었다. 이외에도 공주갑부 김갑순, 영남갑부 문명기 등 지역별 갑부도 상당수 있었다. ‘재벌’, ‘갑부’, ‘최대 부자’로 불렸던 그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렸으며, 일제에 협력했는지를 민영휘, 김갑순, 김연수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조선 최대 갑부 민영휘  민영휘. <일한병합기념사진첩>(1911) 일제강점기에 명성황후의 친정 식구들 즉 여흥 민씨 가문은최대의 영화를 누렸다. 한말 고급관료를 지냈던 민영휘는 명성황후를 등에 업고 강점 이전부터 권력에 의한 수탈을 통해 토지를 집적하고 자본을 형성했다. 권력을 배경으로 한 축재였기 때문에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후 그 세력이 한풀 꺾여 1909년에 피해자들로부터 9건에 이르는 소송을 당했고, 그의 부정축재에 관한 기사는 신문에 계속 보도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은 상대측 변호사들을 회유하여 수임을 거부하게 하는 등의 악행을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민영휘(閔泳徽, 1852~1935)가 평안도관찰사를 지내던 시절, 어떤 이는 자기 아버지의 토지 20만 평을 빼앗기자 성인이 된 후 단신으로 민영휘의 집에 뛰어 들어가 육혈포로 위협하고 잃어버린 땅에 대한 돈을 받아낸 일화가 전해진다. 그 주인공인 이갑(李甲)은 그 돈으로 서북학회와 오성학교를 세우는데

[인터뷰] 충무공의 고장 아산에 ‘인권기념관’이 필요한 이유

2018년 8월 1일 1901

현재 국제운송회사 로드 원(ROAD 1) 로지스틱스를 운영하고 있는 홍남화 아산지회장은 2000년 9월부터 연구소 회원에 가입했다. 2016년 5월에는 아산 둔포면에 있는 친일파 윤웅렬, 윤치호 공덕비를 제보하였고, 아산지역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2017년 1월~5월)을 제안하고 이끌었다. 우리에게 ‘톨레랑스’라는 화두를 각인시킨 <나는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선생과사촌지간이다. 찾아간 날, 마침 홍남화 회원은 업무상 무언가 바쁜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이곳저곳으로부터 쉴 새 없이 전화를 받고 처리하면서도, 성의 있고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인터뷰는 아산의 신정호수 인근에서 진행되었다. 문 : 아산지회의 회원은 몇 명이나 되나요? 답 : 저희가 80명 정도 되요. 3년 전까지만 해도 천안아산지회였는데 분리하고 보니까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열성적이고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지회의 발전을 전망하면서 힘들더라도 각자 독자적으로 가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문 : 천안아산지회로 활동하셨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답 : 그때나 지금이나 주로 임종국 선생님 추모사업을 했었죠. 오랫동안 노력이 쌓이니 2016년에는 천안 신부공원에 임종국선생의 조형물을 세웠고 앞으로 지역의 명소로 가꿔 나갈 계획입니다. 문 : 아산에 내려오시기 전에 이미 연구소와 인연을 맺으셨지요? 답 : 제가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는데요. 1997년 또는 1998년 무렵 수원 북문 부근에서 북한동포돕기 캠페인을 보고 그 단체가 어디인가 하고 찾아갔더니 연구소 경기남부지부와 관련되어 있더라구요. 그것이 연구소와의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북한동포돕기 성금으로 5만원을 송금했습니다. 그 무렵 수원지역에서 열린 강연들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수원역전의 경기서적에서 리영희 선생님

임헌영 소장, 44년 만에 무죄 판결

2018년 8월 1일 1719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간첩 누명을 썼던 임헌영 소장이 6월 21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들로부터 불법적인 수사를 받으면서 작성된 진술서 및 피의자신문조서는 모두 그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무죄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은 1974년 문인들이 개헌 지지 성명 등을 발표하자 보안사가 임 소장을 비롯해 이호철·장병희·정을병·김우종 씨 등 문인 5명을 상대로 고문과 가혹행위 끝에 거짓 자백을 받아낸 뒤 처벌한 사건이다. 당시 보안사는 일본에서 발행된 잡지 『한양(漢陽)』에 글을 기고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했고, 법원은 임 소장을 비롯한 이호철·장병희·김우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이 사건을 재조사한 뒤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었던 보안사가 불법 수사했으므로 잘못된 판결”이라며 재심을 권고했다. 이후 이호철·장병희·김우종 씨 등은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편 검찰은 2017년 독재정권 시절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재심 청구를 하지 않았던 임 소장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