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시민역사관

사진첩으로 보는 간도와 만주국 실경(1)

896

미리보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전시자료 17

 

사진첩으로 보는 간도와 만주국 실경(1)

박광종 선임연구원

 

일제는 일찍부터 간도지역을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상정, 1909년 9월 청국과 간도협약을 체결하고 일본영사관 개설과 길림과 회령을 잇는 철도 부설권을 손에 넣는다. 이후 일제는 간도를 포함한 남만주지역에 경제 진출을 꾀하고 국제적으로 배타적 이권을 승인받기 위해 힘썼다. 1931년 9월 일제는 관동군의 주도하에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북부지역을 장악하고 1932년 3월 동삼성(요동성, 길림성, 흑룡강성) 일대를 관할하는 만주국을 세운다. 만주국은 청나라 계승을 명분으로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를 집정으로 앉히고 ‘왕도낙토王道樂土와 오족협화五族協和’를 건국이념으로 내세웠지만 관동군의 조종하에 움직이던 꼭두각시 정부에 지나지 않았다. 일제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을 일으키며 파국을 향해 치닫자 만주국 또한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061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는 1910~1940년대 간도와 만주국 상황을 담은 사진첩과 거기에서 가려 뽑은 사진들이다. 자료실에 소장된 사진첩을 시대순으로 나열하면 <남만주사진첩>(滿洲日日新聞社, 1917), <봉천명승사진첩奉天名勝寫眞帖>(奉天山陽堂書店, 1921), <간도사진첩>(간도 尾崎寫眞舘, 1927년 추정), <만주국승인기념사진첩>(大阪朝日新聞社, 1932.10.5), <간도임시파견대기념사진첩>(1933), <대만주국사진첩>(東京堂, 1936), <강덕8년 3월 제4회 졸업기념(앨범)>(國立新京
醫科大學, 1941.12)이다.
이 중 특기할 만한 사진첩은 먼저 <오사카아사히신문> 1932년 10월 5일자 특집호로 낸 <만주국승인기념사진첩>이다. 만주국이 수립된 것은 1932년 3월 1일이지만 그간 리튼보고서를 둘러싼 부정적인 국제여론과 일본 내부 사정으로 인해 만주국 승인이 미뤄지다가 그해 9월 15일 관동군 사령관이자 주만전권대사인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가 신경新京(지금의 장춘)을 방문해 만주국 국무총리 정효서鄭孝胥와 「일만의정서」를 조인하고 만주국을 승인한다. 아사히신문사가 전 과정을 밀착 취재하고 만주국의 이모저모를 함께 담아 특집호를 만든 것이다.
다음으로 <간도임시파견대기념사진첩>이다.이 사진첩은함경북도나남에주둔해있던일본군제19사단에서 선발된 간도임시파견대(파견대장 池田信吉 대좌)가 연길현과 혼춘현 일대에 출몰한 항일유격대를 진압하기 위해 간도로 출동하여 1932년 4월부터 1933년 7월까지 활동한 상황을 수록한 사진첩이다. 3,500여 명의 항일유격대원 토벌은 물론 현지 주민들에 대한 대민봉사활동도 기록하는 등 파견대의 활약상을 선전하는 자료이나 만주국 수립 직후 간도지역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이상 7권의 사진첩은 철저히 일본제국의 시각으로 제작되었다. 일제가 만주에 건립한 위용 있는 근대적 건축물과 철도역, 교육 및 의료 기관을 촬영하는 한편 남루한 현지 주민들의 실태도 함께 수록하여 양자를 대비시켰다. 또한 러일전쟁 등 격전지에 세워진 전적비와 현충탑, 각종 군부대와 경무시설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애국심과 상무정신 고취에 활용하였다.

063

1 1917년 여순 관동도독부關東都督府. 러일전쟁 후 러시아로부터 넘겨받은 대련·여순 지역을 관동주關東州라고 명명하고 식민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를 창설했다. 관동도독부는 1919년에 관동청關東廳으로, 만주국 성립 후인 1934년에 관동주청關東州廳으로 개편되었다. <남만주사진첩>36쪽

2 1917년 금주金州 남산의 충혼비. 러일전쟁 때 전사한 일본군 병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남만주사진첩>46쪽

3 1921년 당시의 봉천역사奉天驛舍. 원래 러시아가 세운 봉천역이 있었으나 1911년 일본의 만철(滿鐵)이 지금의 자리에 봉천역을 신설하였고 이후 남만철도연선에서 가장 큰 역으로 발돋움하였다. <봉천명승사진첩>24쪽

4 연길현 용정시에 위치한 재만주일본제국총영사관. 총영사관은 1908년 11월 용정에 세워진 ‘통감부간도파출소’에서 시작된다. 1909년 9월 간도협약 체결 후 이를 ‘간도일본총영사관’으로 개칭, 이후 재만주일본제국총영사관으로 불렸다. 현재 용정혁명역사전람관龍井革命歴史展覧館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22년 화재로 불탄 것을 1926년 신축한 3층 건물(지상 2층, 지하 1층)이다.

 

064

5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 농가의 빈한한 모습(1920년대 후반 추정) <간도사진첩>21쪽

6 일만의정서 조인식을 마치고 일본국과 만주국 고관들의 기념촬영. 가운데 군복 입은 사람이 무토 전권대사, 무토 왼쪽이 부의 집정, 무토 오른쪽이 정효서 국무총리다. <만주국승인기념사진첩>9쪽

7 신경에 위치한 관동군사령부. 관동도독부와 함께 여순에 세워진 관동군사령부가 만주국 성립 후인 1932년 10월 신경으로 이전한다. 1932년 8월 착공하여 1934년 8월 완공된 사령부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되어 있다. <대만주국사진첩>19쪽

8 항일유격대 진압에 앞장섰던 간도임시파견대가 연길현 명월구의 밀림지대를 수색하는 장면. <간도임시파견대사진첩>23쪽

9 산해관 각산사에 세워진 만주국대기념탑. 왕도로써 극락세계를 만든다(王道樂土)는 만주국 건국이념이 비문에 새겨져 있다. <대만주국사진첩>31쪽

10 1941년 3월에 열린 제4회 신경의과대학 졸업식 광경. 연단 뒤 칠판에 일장기와 만주국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이 이채롭다. <강덕8년3월제4회졸업기념(앨범)>60쪽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