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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 히틀러’에 중독된 조선

2004년 3월 9일 2291

‘하일 히틀러’에 중독된 조선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친제국주의적 지식인들 ‘천재적 영웅’으로 섬겨… 대총통 히틀러가 몰고온 제국주의 전쟁의 그림자 정선태/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 일러스트레이션/ mqpm 서영경 1930년대 후반 전쟁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식민지 조선에도 어김없이 들이닥쳤다. 경제공황을 돌파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 제국주의는 1931년 만주사변을 도발한 이래 1937년 7월의 중-일 전쟁과 1941년 12월의 진주만 공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쟁 프로젝트를 실천함으로써 ‘대일본제국’으로 재편된 동아시아 전체를 거센 광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1939년 9월 히틀러의 지휘 아래 폴란드를 침공한 군국주의 독일과 만나면서 전 세계를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와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천황폐하 만세’와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군대에 짓밟혀 때 아닌 죽음을 맞아야 했으며, ‘대일본제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식민지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잡지 앙케트 조사… 지식인들의 우상화 열기 이 시기에 발간된 각종 잡지들을 일별하다 보면 성전(聖戰), 지원병, 창씨개명, 신체제, 생산소설, 전쟁소설, 국민문학, 국민동원 등의 용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거니와 전쟁의 폭풍에 직면하여 ‘천황폐하’의 지령에 따라 식민지 조선인들을 ‘신성한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친제국주의적 지식인들의 선전과 선동이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1940년 ‘대일본제국’ 정부가 발표한 ‘신체제 강령 및 규칙’, 즉 △고도국방국가체제의 확립 △거국적 전체적 공적 대정익찬체제(大政翼贊體制)의 확립 △공익우선 국가봉사제일주의의 국가국민경제문화체제의 확립이라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다투어 전쟁 참여를

“친일규명·보안법폐지 후보 지지”

2004년 3월 9일 1398

“친일규명·보안법폐지 후보 지지” 총선 물갈이 연대 내달초 선정키로 ▲3월8일 오전11시 물갈이연대는 느티나무에서 후보평가에 대한 기준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물갈이연대 ‘2004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물갈이연대)는 8일 지지·당선운동 대상자를 선정할 20가지 세부 기준을 확정해 발표했다. 물갈이연대는 도덕성을 기본전제로 개혁성(30%), 정책지향성(20%), 전문성(10%), 성실성(10%), 지역발전 기여도(10%) 등 다섯 가지 큰 기준을 정했으며, 이를 다시 20개의 세부 기준으로 나눴다. 세부 기준을 보면, ‘개혁성’ 부문에 △친일진상 규명 △국가보안법 폐지 △호주제 폐지 △색깔론·지역감정 해결 △정치개혁 의지 등의 항목을 넣었다. ‘정책지향성’은 △새만금 간척사업 △부안 방폐장 건립 △이라크 파병 등에 관한 반대 태도를 점수로 매긴다. 또 △비정규직 차별 철회 △교육 평준화 △지역 균형발전 등에 대한 노력 정도도 구체적 기준에 포함시켰다. 최열 물갈이연대 공동대표는 “이들 기준을 바탕으로 지역유권자위원회를 꾸려 4월7일께 ‘지지후보’를 선정한 뒤, 다른 시민·사회단체의 평가도 고려해 12일께 본격 당선운동을 전개할 ‘국민후보’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3400000/2004/03/003400000200403081853836.html [2004총선물갈이연대]  http://www.mulgari.com/

‘친일인명사전’ 발간 민족문제硏 20주년 기념식

2011년 2월 28일 359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서울=연합뉴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임 소장은 연구소 창립 20주년을 맞아 ‘친일’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준 것이 일본 강점기 학술 연구와 사회 운동을 결합한 연구소의 20년 성과라고 자평했다. 2011.2.21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의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26일 오후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렸다.이날 행사에는 박재승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 이이화 역사학자, 전 진실과화해위원장 송기인 신부 등이 참석했다. 임헌영 소장은 기념식에 앞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친일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준 것이 일본 강점기 학술 연구와 사회 운동을 결합한 연구소의 20년 성과라고 자평한다”고 말했다.1991년 2월 창립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학술 연구와 시민운동을 병행하면서 창립 18년 만인 2009년 4천389명의 친일 행각을 담은 3천쪽짜리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dk@yna.co.krpersevere9@newsis.com ▶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20주년 기념식(뉴시스, 2011.2.26)

“안중근 의사 옆 친일파 흉상 철거하라”

2011년 2월 28일 517

【광주=뉴시스】구용희 기자 = 제92주년 3·1절을 앞두고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광주 한 공원에 설치된 친일 인사의 동상 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28일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등에 따르면 광주 북구 한 공원에 친일인사로 알려진 A전 전남도교육감의 동상(흉상)이 안중근 의사의 동상 인근에 설치돼 있다는 것. A전 교육감은 2009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으며, 그의 동상은 지난 1982년 3월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A전 교육감의 친일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1930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 촉탁으로 근무하다 1936년 편수서기에 임명돼 1941년 6월까지 재직했다. 재직중 친일단체인 녹기연맹의 연맹원으로 참여했다. 학무국 편수서기로 근무하면서 친일잡지에 내선일체와 각종 황국신민화 정책을 찬양하고 선전하는 글을 많이 기고했다’ 등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광복 66년, 3·1절 92주년에도 지역 내 대표적인 친일인사인 A전 전남도 교육감의 동상이 공원 중심에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나란히 세워져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이를 당장 철거하도록 광주시와 광주시교육청 등 관계기관에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주지부 한 관계자는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 항일독립운동의 발상지 ‘의향 광주’의 한 가운데 설치된 친일파 A전 전남도 교육감의 동상은 당장 철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광주지부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지역 내 친일인사와 관련된 공적비, 동상, 표창, 기념행사 등 기념물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광주지부는 시민들의 제보나 연구소가 직접 찾아내 확인된 친일인사 관련 기념물들은 언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릴 예정이다. 또 공적비나 동상 등 구조물은 철거하고 기념행사나 표창 등은

"친일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

2004년 3월 8일 1285

친일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 [정해구의 폴리티시즘]   정해구 논설위원 hgjung@mediatoday.co.kr   ▲ 정해구/본지 객원논설위원·성공회대 교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국회에서는 반민법이 통과되고 이에 의거하여 반민특위가 설치되어 친일파 청산에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친일파 청산 시도는 당시 가장 강력한 친일파세력이었던 경찰에 의해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세기 이상의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그럼에도 친일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첨예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곤 한다. 지금도 한편에서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순식간에 3만 명 이상이 참여하여 7억여 원의 성금이 모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국회에서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친일문제는 왜 지금도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시간으로만 본다면 먼 옛날의 일인 친일문제를 왜 우리는 지금껏 잊지 못하는가?    왜 지금도 ‘친일’이 문제인가 현재 친일문제의 핵심은 기억과 망각 사이의 싸움이다. 기억하고자 하는 측은 말 그대로 잊지 않기 위해 싸운다. 망각하고자 하는 측은 기억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쓴다. 왜 누구는 기억하고자 하고, 왜 누구는 망각하고자 하는가? 전자는 친일이 정의롭지 못했고 그런 만큼 과거 청산 없이 그것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며, 후자는 그것이 떳떳하지 못한 것이기에 빨리 잊혀지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역사 인식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역사의 정의 실현에 대한

"親北이 親日보다 열배나 나쁜 일곱 가지 이유"

2004년 3월 6일 2413

1. 의도성: 親日은 거의가 日帝의 강압에 의해서 이뤄졌지만 親北은 자발적이다. 2. 어리석음: 親日은 거의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이길 것이란 정보부족 사태에서 이뤄졌지만 親北은 북한정권의 실정과 만행이 알려진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 3. 반역성: 親日은 조국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지만 親北은 조국이 엄연히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국가반역이다. 4. 위선성: 親日분자는 일본식 생활을 따라 했지만 親北은 자본주의적 생활을 하면서 말로써만 친북을 주장한다. 보다 위선적이다. 5. 양심 마비: 親日분자들은 동족에 대해 죄책감과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친북세력은 오히려 우월감과 억지를 깔고서 공격적이다. 6. 무능성: 親日분자들은 그 친일의 대가로 근대 국민국가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과학, 기술, 행정, 기업경영 능력을 배우 대한민국이 건설되지 그 기량을 써서 애국했다. 친북세력은 김정일로부터 무엇을 배워 통일 후에 나라를 위해 쓸 것인가. 속임수? 선동술? 위선? 7. 악랄성: 친북은 자신들의 반역성을 감추기 위하여 지구상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친일파를 부관참시하려는 마녀사냥을 꾀한다. 친일파 청산을 외침으로써 친북파는 자신들의 민족반역성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親北은 親日에 비해 보다 의도적이고, 보다 어리석고, 보다 반역적이고, 보다 위선적이며, 보다 비양심적이고, 보다 무능하다. 따라서 세상이 바뀐 뒤 남북한의 민족으로부터 당할 복수와 응징도 보다 심각할 것이다. 과거의 전력으로부터 친북이라 오해받고 있는 사람들은 공개적인 참회와 고백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천명해두어야 세상이 바뀌었을 때 억울한 피해를 피할 수 있다. 친북세력에게

tvN’백지연의 끝장토론’, 친일파 재산환수 다뤄

2011년 2월 28일 521

  (서울=연합뉴스) 이연정 기자 = 케이블 채널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은 3.1절 특집으로 오는 26일 오후 9시20분 ‘친일파 후손 재산환수 논란’ 편을 방송한다.프로그램은 광복 60년만에 시작된 친일파 청산 작업의 기준은 과연 무엇이고, 친일 재산 환수 논란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친일파 후손 재산 환수에 찬성하는 쪽으로는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과 이헌환 아주대 법대 교수가 출연하며, 반대하는 쪽에서는 보수 논객 지만원 씨와 이재교 변호사가 출연한다.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날 토론에는 시청자들도 트위터(@tvn_toron)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rainmaker@yna.co.kr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계획(안)

2011년 2월 25일 367

  ※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계획(안) 내려받기

“우리지역 빛낸 인물 친일행적? 글쎄요…”

2004년 3월 6일 3215

인천시 중구가 ‘인천 중구의 역사와 문화’란 책자를 만들면서 친일 인사를 지역을 빛낸 인물로만 소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펴낸 이 책자 제6장에 ‘인천의 인물, 중구의 인물’ 난에 지역을 빛낸 사람을 소개하면서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과 우월 김활란(1899~1970) 여사 등 친일행적이 뚜렷한 인사에 대해 친일행적에 대한 서술 없이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이 책자는 이당에 대해 1개면을 모두 할애해 1928년 제7회 조선민술전시회에서 특선에 올랐으며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는 내용 등을 기술했고, 우월에 대해서도 1963년 막사이사이상 수상 등에 대해서만 소개했다. 그러나 이당은 1937년 김활란 등이 간사로 참여한 ‘애국금차회’가 금비녀 11개 등을 헌금하는 광경을 그린 <금차봉납도>를 일본의 조선 총독에게 바친 사실 등 친일 행적이 잘 알려져 있다. 우월도 매일신보 1943년 12월25일치에 ‘…아세아 10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반도(조선)학도들은 우렁한 진군을 일으켜 특별지원병으로서…영예의 입영을…’라며 내선일체와 참전을 독려했었다. 중구는 2천만원을 들여 제작한 책자(200쪽) 3천부를 관공서와 학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에 중구 관계자는 뒤늦게 5일 “친일인사 기술을 놓고 논란이 있어 이들에 대한 친일행적을 함께 기록해 배포하기로 하고 배포를 중지시켰다”고 말했다. 김영완 기자 ywkim@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3/2004/03/005100033200403052000299.html   ▲이당 김은호김은호친일파로 전락한 어용화사(御用畵師)·金殷鎬, 창씨명 鶴山殷鎬, 1892∼1979 ·1937년 이후 ‘선전’ 참여작가  1941년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 평의원 [금차봉납도]를 미나미 총독에게 증정 김은호는 이 땅이 일제식민지로 전락한 직후 순종의 초상화를 두 차례 그린 어용화가이다. 또 봉건 왕조의

‘만주의 친일파’편

2004년 3월 6일 849

▲ 3월 7일(일) 밤 11시 30분지난 99년부터 한국현대사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파헤치며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조명한 바 있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4년 편은 이전에 비해 한국현대사의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3월7일 방영될 예정인 ‘만주의 친일파’(연출 정길화)는 최근 친일인명사전과 이승연 누드 파문으로 관심이 집중됐던 친일문제의 기원을 쫓는다. 정길화 PD는 “반민특위-친일경찰 노덕술에 이어 이번 만주 친일파는 친일문제의 마지막 장”이라면서 “해방 전 만주 친일문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이들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핵심세력을 등장하게 된 연원을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만주 신경군관학교 졸업식장에서 당시 박정희는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일본 육사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는 “다가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는 칭찬을 하기도 했다. 박정희 향수가 여전한 오늘, 뿌리 깊은 친일청산이 더욱 절실하다.  http://www.imbc.com/tv/culture/cantell/preview.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