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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책소개] 김영조,
▲김영조,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인물과사상사, 2011 옛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을까? 백성은, 선비는, 임금은…. 아니 그것이 지금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러나 여기 “옛 사람들의 삶”에서 향기를 찾아내어 알려주는 책이 나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로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 쓰고, 인물과사상사(대표 강준우)에서 펴낸 ≪하루하루가 잔치로세≫가 그 책이다. 김영조 소장은 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터넷으로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를 수많은 사람에게 보내왔다. 그것들 가운데 365일에 맞게 골라 곁에 두고 볼 수 있게 엮어낸 것이 이 책이다. 책은 우선 명절과 24절기를 빠짐없이 챙기고 그날에 행하던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풍속을 따스한 시선으로 소개하고 있다. “입춘엔 적선공덕행이라는 독특한 세시풍속이 있습니다. 적선공덕행은 입춘이나 대보름날 전날 밤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해야 일 년 내내 액을 면한다는 풍속이지요.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 일 따위를 실천하는 것이지요.” (71쪽) 그뿐만 아니라 정월 초이레의 “이레놀음”, 입동의 “치계미”, 동지의 “고수레” 같은 풍습을 소개하면서 김남주 시인이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을 노래했다면서 우리가 잊고 지내던 더불어 사는 정신을 곳곳에서 느끼게 해준다.또한 “자살하는 백성이 나오지 않게 하라.”(166쪽)는 임금의 명령에 따라
김성수 전 부통령 친일반민족행위자결정취소 행정소송 판결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논평> 김성수 전 부통령 친일반민족행위자결정취소 행정소송 판결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조일영)는 김성수 전 부통령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을 취소해 달라면서 유족과 인촌기념회가 제기한 소송에서 사실상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가 반민족행위자 결정에 있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호(징병이나 징용을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와 제17호(일본제국주의 통치기구 외곽단체의 간부로서 적극 협력한 행위) 법조 적용은 타당하다고 보았으나, 제13호(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한 행위)에 대한 부분은 유족들의 주장을 일부 인용하여 김씨가 이를 적극 주도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김성수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은 문제가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연구소는 이번 판결이 다소 미흡한 감이 없지 않지만, 김성수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국가의 결정이 유지된다는 점을 평가하며 이를 환영한다. 거대 보수언론의 설립자이자 부통령을 역임한 거물에 대한 심판을 내리기까지 재판부의 고뇌가 적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온갖 압박 속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이 나온 것은, 역사정의실현을 소망하는 국민여론이 그만큼 압도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하여 진지하고 객관적인 검증과정을 거치고 소송 당사자들에게도 충분한 의견 개진의 기회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사법부의 판단까지 내려진 만큼 관련자들도 역사적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간 국가나 민간에서 이루어진 친일청산작업이 객관적 증거자료에 기초한 엄밀한 검증과정을 거쳤음에도, 자숙해야 할 후손들이나 관련단체들은 오히려 근거 없는
독재’ 인정 않는 친일세력, 민주화 성과까지 차지하려 해”
■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1년 10월 18일 (화) 오후 7시■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연세대 이인재 교수▶정관용> 이번에는 교과서 논란입니다. 얼마 전부터 민주주의 대신에 자유민주주의를 쓰자, 해서 논란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역사교과서에 독재라는 용어를 삭제하자, 이런 움직임이 있어서 또 논란이라고 그러네요. 이 사실 확인을 위해서 교과서 집필기준을 마련하는 국사편찬위원회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었는데,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인터뷰가 곤란하다, 이런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고 계신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연세대학교 이인재 교수를 전화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이인재> 예, 안녕하십니까?▶정관용> 예, 지금 독재라는 용어를 빼자, 라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다고요?▷이인재> 집필기준에 있어서 독재라는 표현이 지금 삭제하려는 시도가 이번에 있습니다.▶정관용> 예, 그걸 좀 설명해주세요. 뭘 근거로 그런 게 나오는지요.▷이인재> 예, 2010년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작성된 중학교 역사교육과정 해설서에도 “이승만 정부의 장기독재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4.19혁명에 의해 무너졌다”, 또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등장한 박정희 정부는 정치적으로 독재체제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학생, 지식인, 종교인, 야당들은 연대해서 박정희 정부에 대항하였다. 1980년 신군부 정권의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우리 정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흐름에 접어들고 있음을 국내외 배경과 연계해서 이해하도록 권장한다.” 이것이 지금 2010년에 설명되어 있던 내용입니다. ▶정관용> 예, 그건 뭐 정확하게 다 독재라고 표현이 되어 있네요?▷이인재> 예, 그런데 2011년
[인터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보탬이 된다면 …
☎ 손석희 / 진행 :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 게시판에 얼마 전에 ‘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드립니다’ 라는 글의 제목이 올라왔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윤수병의 친손자 되시는 윤모씨가 할아버지의 친일을 사죄하기 위해서 직접 글을 올린 건데 이것을 공개하는 데도 또 동의를 해주셨다고 하는군요. 요즘 뭐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땅 찾기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마당에 특별한 분인 것 같습니다. 윤모 선생님 직접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성함은 밝혀드리질 않겠습니다. 윤 선생님 나와 계시죠? ☎ 윤석윤님 : 예. ☎ 손석희 / 진행 : 반갑습니다. ☎ 윤석윤님 : 예, 안녕하세요. ☎ 손석희 / 진행 : 할아버지께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최근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요? ☎ 윤석윤님 : 9월 초에 제가 확인을 했는데요. 제가 가족에 대한 글을 어디에 이제 써야 되는 그런 기회가 있어서 지금 저희 작은아버지가 88세로 생존에 계시는데 할아버지에 대해서 제가 어려서부터 궁금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좀 단편적으로 해주시는 얘기가 좀 부족해서 또 확인을 했는데 별로 이야기가 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우연히 생각하게 된 것이 일제 초기에 저희 할아버지가 군수를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혹시 친일인명사전에 있지 않을까 해서 도서관에 가서 찾아봤는데 거기에 저희 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기록이 다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확인을 해서 작은 아버지에게도 말씀을 드리니까
저는 친일파 손자…역사와 민족앞에 사죄드립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윤수병(尹壽炳 1876~1953)의 친손자인 윤석윤 님(경기 군포 거주)이 9월 7일 회원으로 가입하고 더불어 할아버지의 친일행위를 사죄하는 글을 연구소 누리집에 올렸다. 10월 6일 윤석윤 회원을 직접 만나 전문 게재를 허락받았다. 윤 회원의 용기 있는 결정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 엮은이- 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드립니다. 나는 할아버지를 생전에 뵙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직후 1953년에 타계하셨고 그 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부모님을 통해 들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셨던 할아버지가 상투를 자르고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때 따라 가셨던 증조 할아버지가 펑펑 우셨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와 일본의 게이오 의숙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한제국의 농상공부의 관리로 출발하여 나중에 군수까지 하셨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난 할아버지가 늘 궁금했다. ▲2009년 11월 8일 백범 선생 묘소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그러다 작년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혹시 우리 할아버지도 일제 초기에 군수를 하셨다면 친일파 명부에 있지 않을까 하여 도서관에 달려가 찾아보았다. 내가 궁금해 하고 찾던 할아버지가 바로 거기에 계셨다. 2011년 9월 3일은 나의 뿌리인 할아버지를 찾은 날이다. 아버지도 작은 아버지도 알지 못하시던 할아버지의 50여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력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지금도 말할 수 없다(3화)
만화로 해부하는 금단의 역사, 친일파! 강요된 침묵과 은폐의 시대를 청산하고 진정한 역사 바로잡기를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되다. 열렬한 국민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반민특위의 활동, 그리고 이승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시대의 진실이다. 이 만화는 인문만화교양지 “싱크(SYNC)”에 연재하고 있는 조남준 작가의 “지금도 말할 수 없다” 제3화이다. 전재를 허락해 준 싱크 편집진과 조남준 작가께 감사드린다. 글, 그림 조남준 : 시사만화가. 1966년 서울 출생. 8년간 <한겨레21>에 “시사 SF”를 연재. 그외 내일신문 “만화같은 세상”, 경향신문 “메모리즈” 등으로 활동했다. ※반민특위 제3화 바로보기 ※반민특위 제2화 바로보기 ※반민특위 제1화 바로보기 ※프롤로그 바로보기
한기총,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설립 추진 논란
한기총,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설립 추진-논란 활활 이영란 선임기자 보수 기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 한기총 회장인 홍재철 목사는 12일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와 대치했던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국가를 세운 공이 크다”며 “장기집권 등 일부 문제가 있긴 하나 초대 대통령으로써 업적이 뚜렷한데도 기념관이 없어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기총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등 그리스도교 정신에 입각해 국가를 운영했던 점 등을 감안해 ’이승만 초대대통령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한기총이 중심이 돼 출범시켰다고 덧붙였다. 추진위원장인 홍목사는 ”오늘날은 어느 때 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보수, 반공, 민족주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한기총은 소속 교단과 단체를 상대로 기념관 건립을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했으며,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담은 탄원서를 곧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이 전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하지만, 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의 원칙을 파기한 인물”이라며 “취임시에도 하느님에게 맹세하고, 군종제도에서 기독교를 우대하는 등 타 종교의 자유를 위배했다”고 말했다. 또한 박 실장은 “이같은 기독교우대정책은 종교 갈등을 초래할 수 있어 이 전 대통령을 종교계에서 다시 기념하자는 것은 사회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부산시는 지난 6월 한국전쟁 당시 2년6개월가량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등으로 사용돼오던 임시수도 기념관(사빈당) 옆 옛 부산고검장 관사를 헐어 임시정부 전시교육장으로
한나라당 신지호의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을 또 한번 짓밟는가
한나라당 신지호의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을 또 한번 짓밟는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10월 11일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1939년부터 1941년까지는 기업체 모집, 1942년부터 1943년까지는 조선총독부 알선,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 형식”이었으며 “박원순 후보의 할아버지가 1941년에 징용영장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이며,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다면 모집에 응해서 간 것이지 형을 대신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박원순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가 1941년 강제징용 됐다는 말은 거짓말”이며, “할아버지 대신 강제징용을 간 작은 할아버지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양자로 갔다” 는 박원순 후보의 설명은 병역면탈을 노린 `반(反)사회적 호적쪼개기’였음이 명백해 졌다”고 박후보를 비난했다. ▲ 신지호 의원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며 망발이 아닐 수 없다. 신 의원의 말대로 일제강점기 한국인에 대한 동원은 모집-알선-징용 3단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신 의원의 주장과 달리 징용만이 강제동원이 아니었으며, 1939년 모집 단계부터 강제동원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한국정부가 설치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보상지원대상자를 “1938년 4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일제의 의하여 군인ㆍ군무원 또는 노무자 등으로 국외로 강제동원 되어 그 기간 중 또는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 행방불명된 사람, 부상으로 장해를 입은 사람” 단 “사할린 지역의 경우는 1938년 4월 1일부터 1990년 9월 30일까지의 기간 중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강제동원 피해자의 사례조사나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일제는 모집단계에서
“신지호, 박원순 검증하려면 공부 좀 해라”
“신지호, 박원순 검증하려면 공부 좀 해라” [기고] 피해자 심정 안다면 역사의 비극을 함부로 이용 못할텐데…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 ‘전’ 대변인인 신지호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작은 할아버지 강제 징용은 역사적으로 허구”라고 주장한데 대해 <프레시안>은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등이 조사한 실태를 근거로 신 의원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도했다. 신 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나경원 후보 측이 제기하고 있는 박원순 야권단일후보의 ‘보충역’ 판정 의혹 공세에 대한 측면 지원으로 보이지만, 근거는 현저히 부족하다. 오히려 나경원 후보의 자위대 50주년 창립 기념 행사 참석 관련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과 겹쳐 한나라당의 ‘친일파 옹호’ 이미지만 강화시키고 있다. 관련해 <프레시안>은 민족문제연구소에도 신 의원의 주장에 대한 의견을 구했었다. 이에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이 신 의원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프레시안>은 양해를 구하고 김 연구위원의 글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신지호의원의 어설픈 공격 김민철(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며칠 전 음주방송으로 사고를 친 뉴라이트 출신의 한나라당 신지호의원이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건수 하나를 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즉 그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는 기업체 모집, 1942년부터 1943년까지는 조선총독부 알선,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 형식이었다”면서 “박 후보의 할아버지가 1941년에 징용영장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며,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다면 모집에 응해서 간 것이지 형의 징용영장을
이승만 다큐는 여러 가지 속임수가 내재된 것
kbs 이승만 다큐..진실을 보지 못한 후대를 걱정하며 김정륙 임정기념사업회 부회장(연구소 회원) KBS다큐멘터리 담당 프로듀서로부터 취재요청이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제작취지부터 짚어봤다. 세간에 이승만 박사 찬양 미화 의도라 하는데 사실이냐고…PD는 전혀 사실이 아닌 오해라 했다. 그래서 재차, 수많은 단체가 거부하는 이 프로그램을 왜 굳이 고집하느냐고 물으니 만약, 이박사 고무찬양이라면 반민특위에 관한한 과오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인데 왜 비켜가지 않고 굳이 내용에 담겠느냐며 믿으라했다. 수긍이 되기에 취재에 응했었다. 방송을 본 후, 제일 먼저 자라나는 우리 후대들이 걱정 되었다. KBS는 이박사의 功과 過를 모두 아우른 영상을 제작하려는 의도를 가졌으나, 이 프로그램을 반대한 단체들의 예상대로 여러 가지 속임수가 내재된 것을 확인하고 분노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면, 첫째, 국회에서 기초한 최초의 헌법은 내각제였다. 이박사는 대통령제로 바꾸지 않으면 응하지 않겠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요즘, 뉴라이트계열측은 느닷없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논리를 개발해서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건 자유민주주의건 그 요체는 ‘의회정치’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다면 내각제와 대통령제를 의제로 상정해서 다수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 원칙인데 이박사는 초기부터 원칙을 버린 채 아집만 부려 대통령제로 고쳐 당선된 것이나, 영상을 보면 앞뒤의 요점은 빠져있고 이승만 몇 표, 김구 몇 표, 그래서 이승만의 당선을 선포한 것처럼 되어있다.백범 김구 선생은 조국의 분단을 고착하는 이 단정수립을 반대해 정치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당대의 지도자와 경합해서 당선됐다는 판단을 하게한 트릭이 있는 것이다. 둘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