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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강제동원 조선인의 생지옥 ‘군함도’…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한다
ㆍ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출간 “집에 돌아가자 얼굴을 아는 면서기와 순사 두 명이 있었다. ‘너 일본에 간다’라며 엽서만 한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나는 그것을 웅덩이에다 버렸다. 화난 순사가 내 팔을 잡자 할머니가 울며 순사 손을 물었다. 순사는 할머니를 뿌리치고 가까운 도로변에 세웠던 트럭에 나를 태웠다. 같은 마을의 남기석도 잡혀갔다. 열여섯 살 때였다.” 1943년 봄 경남 의령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끌려간 서정우는 그 길로 부산으로 이송됐다. 그는 각지에서 붙잡혀온 징용자들과 함께 굴비 엮듯 손을 묶인 채 관부연락선에 부려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징용자들은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나가사키역으로, 거기서 다시 나가사키항으로 이동했다. 얼마 후 배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섬에 도착했다. 조선인들이 ‘지옥섬’이라 부른 하시마, 일명 ‘군함도’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3·1절을 앞두고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 유족, 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생각정원)을 펴냈다. 책은 강제동원 관련 역사적 사실, 강제로 끌려간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진 자료, 아직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속 연구원 7명, 피해자 유족인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 추진협의회 대표, 일본 시민운동가 8명, 한국 변호사 2명 등 18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젊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강제동원 피해자 운동을 기록한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3년부터 1945년 사이에 500~800명의 조선인들이 하시마 탄광에서
심상정 “친일반민족행위자 훈장, 역사의 치욕”
3.1절을 하루 앞두고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훈장을 박탈하고 ‘친일반민족역사관’을 설치해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28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형무소 정문 앞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친일파 서훈 취소 정책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심상정 대표는 “해방 후 70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왜곡된 역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맑은 날씨였지만 강하게 부는 바람에 기자회견문이 자꾸 넘어가 회견은 세 차례나 중지됐다. 그 바람에 심상정 대표는 서대문형무소 정문 앞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가 매단 훈장은 치욕’, ‘역사 바로 세우기 노력’ 이란 말을 3번이나 반복했다. 심 대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이름만 발표됐지, 일부 재산환수를 제외하고 후속조치는 전무했다”라며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기록이 역사 교과서에 반영되지도 않았고 ‘친일반민족 역사관’도 설립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무엇보다 친일파에게 국가가 준 ‘훈장’도 박탈되지 않았다”며 “이는 정부의 명백하고 충격적인 직무유기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심 대표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국가의 훈장을 받은 사람은 44명, 포장(훈장의 바로 밑단계)을 받은 건 78건이다. 뉴스타파는 훈장·포장이 각각 222명, 440건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심 대표는 “훈장은 그 나라 국민의 자랑”이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매달고 있는 훈장은 역사의 치욕이며 우리 스스로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다”라고 지적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훈장을 모두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또 심 대표는 가칭 ‘친일반민족역사관’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심 대표는 중국이 난징대학살을 기억하고자 희생자 기념관을 세운 것을 예로 들며 “친일 행위 피해와
진주 용산고개 민간인 학살지, ‘확인사살’까지 당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2차 학살지 발굴 공개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한국전쟁 전후 집단학살 되었던 민간인들은 확인사살까지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현장에서 나온 ’45구경’ 탄두 2점을 근거로 이같이 추정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3일부터 이곳에서 발굴작업을 벌이고, 28일 현장을 공개했다. 공동조사단은 2014년 2월 1차 발굴 때 유해 39구와 유품 90점을 발굴했다. 이번 2차 발굴조사는 1차 현장에서 100m 아래 쪽에서 진행됐다. 허벅지뼈와 정강뼈, 위팔뼈, 머리뼈 등이 나왔고, 주인공은 남아 어른으로 추정된다. 유품은 버클 5개와 탄두 6개, 안경 1개, 고무줄, 단추 등이 나왔다. 탄두는 카빈 3점, 45구경 2점, M1 1점이다. 유해와 유품은 가로 8m, 세로 2m 넓이에 깊이 30~50cm 정도의 범위 안에서 나왔다. 박선주 발굴단장(충북대 명예교수)은 유품으로 나온 ’45구경’ 탄두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45구경이 나왔다는 것은 확인사살로 추정되는 증거”라며 “45구경은 권총으로 유효 거리가 가깝다. 확인 사살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유해와 탄두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세월이 지나면서 빗물에 씻겨 내려갔거나 이전에 이 장소에 대해 파낸 흔적이 있어서 상당수가 없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경은 도수가 없다. 박 교수는 “1950년대 발굴지에서 나온 안경은 대부분 도수가 없는데, 멋으로 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단추는 둥근 모형 4개, 4열 흰색 11개, 2열 녹색 2개, 4열 검정색 1개가 나왔다. 박
[책소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 ☞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구매 바로가기 :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 제목: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출판사 : 생각정원 기획: 민족문제연구소 저자: 김민철, 김승은, 김영환, 김진영, 노기 카오리, 조한성, 조시현, 김미경, 김정미, 마메타 도시키, 소라노 요시히로, 야노 히데키, 야마모토 나오요시, 우에다 케이시, 이치바 준코, 이희자, 장완익, 후루카와 마사키 분야 : 역사 > 한국사 > 한일관계, 일제시대 역사 / 사회과학 > 전쟁사 형태: 페이퍼백 판형 : 152 X 215mm 쪽수 : 496쪽 값 : 19,000원 발행일 : 2017. 3. 1. ISBN : 979-11-85035-85-7 (03910)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인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길게는 20년, 많게는 30차례에 걸쳐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남아 있는 비극의 역사 현장에 찾아가 취재하고, 피해당사자와 유족, 목격자의 구술‧인터뷰를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했다. 노동자, 군인‧군속, 군 ‘위안부’, 전범, 포로, 원폭피해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드러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를 쫓는 이 여정은 참으로 전방위하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말마따나 “하나의 민족운동사”라 해도 좋을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토 분쟁이 전부가 아니다 가려진 역사의 증인들을 만나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진주 민간인 학살지에서 한국전쟁 유해·유품 발견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24일 이어 25일 작업 계속 오랜 시간 동안 땅에 묻혀 있던 한국전쟁 유해·유품이 발견됐다. 25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2차)학살지에서 많은 유해와 유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24일에 이어 이틀째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까지 가로 세로 7~8m 넓이 정도의 땅을 팠다. 유해·유품은 얕게는 3cm 안팎부터 깊게는 70~80cm 안팎에서 나왔다. 사람의 뼈 조각, 치아에다 허리에 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버클 등이 나왔다. 공동조사단 박선주 발굴단장은 “사람의 뼈는 조각으로 나오고, 많다. 뼈 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형태다”며 “아직은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없고, 좀 더 발굴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오는 3월 1일까지 발굴작업을 계속한다. 이번에 발굴하는 현장은 2014년 2~3월에 발굴했던 현장에서 20m 정도 떨어져 있다. 1차 발굴 때 이곳에서 머리뼈 조각 20개, 허벅지뼈 78개, 정강뼈 15개, 위팔뼈 6개 등 모두 129점의 유해를 수습했다. 출토된 유해는 최소 39명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당시 유해 매장지에서는 탄피 15개, 버클 21개, 안경, 단추 등 유품 90점이 출토되었다. 공동조사단은 “유해 매장지 안에서 출토된 탄피와 탄두는 카빈소총이고, 유해 내에서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근접 내지 확인사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진주 명석면 용산리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진주지역 민간인 희생자가 가장 많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67년만에 드러난 ‘보도연맹 학살’ 유골
진주 명석면 민간인 유해 발굴 첫날부터 ‘유해·유품’ 드러나 한국전쟁기 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7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진주시 명석면 민간인 유해발굴이 시작됐다. 24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진행된 경남 진주시 명석면 24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산 425번지 2차 유해발굴은 첫 삽을 뜨기 시작하자마자 땅속 10cm 지점에서 유골 일부와 유품인 단추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차 유해발굴지는 1차 유해발굴지와 불과 20여미터 떨어져 있다. 이날 드러난 유해 일부는 67년 동안 땅속에 묻혔던 까닭에 부식돼 흡사 나무뿌리와 같은 형태로 드러났다.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오래전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땅을 한번 파 헤쳤던 곳이라며 이 때문에 유해가 많이 손상됐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곳은 지난 2014년 2월 1차 유해발굴조사 시기에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이 발굴되기도 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충북대 명예교수)은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며,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일명 용산고개라고도 불리는 용산치는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피학살자가 발생한 곳으로 당시를 목격한 주민들은 용산치 3개 골짜기
[논평] 문명고 사태는 교육부와 경북교육청, 문명고 재단이 결자해지하라
[논평] [다운로드] 문명고 사태는 교육부와 경북교육청, 문명고 재단이 결자해지하라 새 학기를 앞둔 경산의 문명고등학교가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평가는 이미 끝났다. 애초에 박정희를 위한 박근혜의 교과서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작년 11월 현장검토본 공개와 금년 1월 최종본 공개 이후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오류와 편향으로 가득찬 불량교과서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대다수의 국민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은 더 거세져 지금은 70% 이상에 이른다. 당연히 국민의 뜻에 따라 국정교과서는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교육부는 연구학교에서의 국정교과서 사용이라는 꼼수를 부렸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부의 비교육적 꼼수가 경산의 한 평범한 고등학교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이 추위에 연구학교 지정에 따른 국정교과서 강제 사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철저히 청와대의 기획에 의해 시작된 박정희를 위한 비교육적 정치 교과서이다. 제작과정과 내용도 문제투성이다. 복면집필, 편찬기준 비공개, 뉴라이트 일색의 집필진과 편찬심의위원회 구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는 ‘대한민국 수립’ 서술, 친일행위 축소 서술, 박정희에 대한 과도한 미화 등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최종본에서도 끝없이 발견되는 수많은 오류이다. 오류로 가득 찬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교사는 없다. 그리고 그런 교과서로 배우고 싶어 하는
[스토리펀딩] 1화 “너 일본에 간다” 16살 때 받은 징용장
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
‘헤이그특사 110주년’ 이준 열사 안국동 집터 첫 확인
최초의 ‘부인상점’ 있던 자리…민족문제연구소, 기념 표석 건의하기로 (서울=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됐던 이준 열사의 집터가 최초로 확인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준 열사가 고종 황제에게 특사 신임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열사의 서울 종로구 안국동 집터를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이 열사는 1907년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됐지만 서구 열강의 외면과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분강개한 이 열사는 머물고 있던 호텔 방에서 순국했다. 헤이그 특사 사건의 역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밀사’라는 특성 때문에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 열사의 사위 유자후가 쓴 ‘이준선생전’ 등에 이 열사의 자택 주소가 ‘북서 안현 11통 16호’로 적시돼 있지만 1910년 전후 일제식으로 지번주소체계가 바뀐 뒤에는 정확한 지번이 남겨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몇달에 걸쳐 당시 신문, 책, 토지대장 등 관련 자료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이준 열사의 집터가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도움이 됐다. 당시로서는 여성이 상점을 내고 영업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 열사의 후처 이일정(1935년 작고)이 1920년대 중국요리점 장송루 자리에서 최초로 잡화점을 운영했다는 자료가 남아있었다. 확인작업을 맡은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헤이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관심이 덜했던 것 같다”며 “집터가 시내 중심가에 있는데도 어떤 자리인지 모르고 지내 왔는데 이번 계기로 공간의 역사적인 의미를
[책소개] 역사와 책임 10호
[바로구매] [바로가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최순실에서 시작된 사태가 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음이 저간의 언론보도나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마다 경악과 분노, 충격의 연속이다. 어떤 권한도 없는 사인 최순실이 국가의 주요 사안에 개입해서 대통령을 대리해서 국정을 주물렀다는 사실도 어처구니없는 일이거니와 대통령 또한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심지어 지시를 받아 일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들에게 두 가지 공통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이것이 나라냐’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권력의 사유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국민들 눈치는 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눈치라는 단어마저 사전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다. 정상적인 정책의 입안과 집행 시스템이 박근혜-최순실 하에서는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권력을 사유화한 것을 넘어 권력의 일반적인 작동시스템이나 민주적인 사회 운영의 기본원리마저 부정하는 일이 너무 태연하게 벌어졌다. 비정상성의 일상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정윤회의 국정 개입을 폭로한 세계일보의 조한규 전 사장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강조하며 내뱉은 말도 바로 ‘이게 나라냐’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도저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력과 사법권력, 재벌들의 동맹체제라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꽤나 설득력 높은 해석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