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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투항했다고 보긴 어려워”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384]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무한도전> 역사 선생님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스타강사 설민석씨의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발언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논란이 되자 설씨는 자신의 SNS에 자신의 표현이 과한 점을 인정하며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24일 공개 질의서를 통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손병희 선생 후손 측은 지난 22일 설씨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의암 손병희 기념사업회는 고소장에서 설씨가 방송과 인터넷 강의 등을 통해 ‘민족대표 33인이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거나 ‘손병희가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 마담 주옥경과 사귀었다’는 등의 표현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조롱해 독립운동가 손병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의암 손병희 기념사업회와 설씨의 법적 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사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난 22일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연구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스타 역사 강사 설민석씨의 민족 대표 33인 태화관 룸살롱 발언이 논란입니다. 설씨의 사과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손병희 선생의 후손은 설씨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는데, 어떻게 보세요? “그랬죠. 저는 법률가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사자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허위사실로 사자 명예를 훼손했을 때 해당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볼 때 내용상으로 설씨가 한 말 가운데 사실이 아닌 경우가 여럿 있거든요. 그래서 법률적으로 다소 문제가 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성명]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를 총괄 주도한 박성민 전 부단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한다
[성명] [다운로드]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를 총괄 주도한 박성민 전 부단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한다 1. 지난 3월 17일 교육부가 박성민 전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부단장을 한국교원대학교 사무국장으로 발령을 내고 “본부 국장급 공무원이 소규모 대학 사무국장으로 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문책성 인사”이기에 가슴 아프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황당한 발언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번 발령은 정권교체 후 국정교과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감싸기 위해 단행한 도피성 인사일 뿐만 아니라, “역사교육에 대한 국가통제를 강화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고 선언한 교원대학교 교수 학생을 능멸하는 인사이다. 이 때문에 교수들은 즉각적으로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총장주재 전교교수협의회 소집까지 검토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출근 저지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인사 철회가 안 되면 교수 학생이 함께 촛불집회를 여는 것까지 추진하겠다고 한다. 2. 교원대학교 구성원이 이처럼 강력히 반발하는 까닭은 박 전 부단장이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총괄 주도한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준식 교육부장관도 국회 교문위에서, 박 전 부단장이 “사실상 그 누구도 맡으려고 하지 않는 힘든 일을 맡아서 참 오랜 동안 고생을 하고 그러한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일을 해 왔다”다고 하여, 그가 박근혜표 국정교과서 개발·편찬을 위해 물 불안가리고 견마지로를 다했음을 인정했다. 3. 박 전 부단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확신범’이기도 하다. 그는 새누리당 교문위 의원들이 공동 주관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자신이 부임한 후 1년 동안 국정교과서 작업을 총괄하면서 ‘전혀 부끄럽지 않게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25) 소설 ‘임진강’의 류주현 작가
ㆍ정부도 외면한 ‘60년대 주한미군 만행’…문학으로 다루다 혹독한 조사 받아 보수파들이 집회 때마다 성조기를 요란하게 흔들어 줬건만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행 비행기(3월18일)에서 일본은 최우선 동맹국, 한국은 파트너라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꼬투리를 달아 친미파들 자존심을 긁었다. 만찬 초대를 했느니 말았느니 따위 논란까지 고려하면 이런 콩쥐 처지에서도 왜 사드 배치 부지까지 덥석 내주나 부아가 치민다. 주체성을 갖춘 나라라면 그들이 우리에게 손발 닳도록 간청하며 온갖 무역 특혜를 제안해와도 어깨에 힘줄 판인데 이게 무슨 허수아비 국격 망신인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란 미합중국이 갖춘 풍성한 장단점 중 제국주의 속성을 나타낸 촌철살인이다. 미 대륙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에 머물렀던 독립전쟁 전후의 청교도들이 인디언 살육과 멕시코와의 전쟁 등으로 광막한 토지에다 하와이까지 점령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행진해야 한다. 그것이 백인의 운명이다”라는 데서 ‘명백한 운명’ 사상은 형성됐다. ■ “한국은 미군이 소유한 자회사” 정복의 야욕에는 상한선이 없다. 1894년 오빌 플랫 상원의원은 “현재의 미국 영토는 너무 좁다. 국가방위와 경제발전을 위해 더 넓은 토지가 필요하므로 당장이라도 다른 영토를 정복해야 한다”고 ‘명백한 운명’ 대부흥회의 불을 지폈다. 미국·스페인 전쟁(1898년) 승리 후 카리브해 일대와 필리핀까지 움켜쥘 기회를 포착하자 변호사로 진보적 역사학자였던 인디애나주 출신 상원의원 앨버트 비버리지는 상원에서 ‘미 제국을 지지하여(In support of an American Empire)’란 연설(1900년 1월9일)을 했다. “필리핀은 영원히 우리 것이다. (…) 게다가
[스토리펀딩] 5화 일제 자폭특공대가 된 조선 청년
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
해인사 3·1절 민족대표 합동다례제 ‘친일파’ 제외될듯
올해 3·1절 처음 열린 뒤 33인 중 ‘변절자’ 친일 행각 지적 (합천=연합뉴스) 김선경 기자 = 경남 합천 해인사가 매년 열기로 한 민족대표 33인 합동다례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33인 중 3명이 1919년 독립선언서 서명에 참여한 이후 변절해 친일 인사로 규정됐다는 이유에서다. 해인사 용탑선원은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한 민족대표 33인을 위한 합동다례제를 지난 1일 처음으로 열었다. 용탑선원이 33인 가운데 한 명인 용성선사(용성스님·1864∼1940)의 출가·열반지이자 사리가 봉안된 탑이 있어 합동다례제를 열기에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용탑선원은 판단했다. 용탑선원은 이 과정에서 33인 이름이 적힌 위패 33개를 별도 제작하기도 했다. 합천군도 예산 1천만원을 지원했다. 용탑선원과 군은 합동다례제가 애국정신을 추모하고 미래 세대에 3·1 운동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이에 매년 합동다례제를 봉행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그러나 33인 중 일부의 친일 행적 탓에 민족대표 전원을 대상으로 한 합동다례제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33인 가운데 박희도(1889∼1952)·정춘수(1873∼1953)·최린(1878∼1958) 등 3명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박희도는 1919년 독립선언문에는 서명했지만 그 이후 상반된 행보를 보였다. 1939년 ‘내선일체’ 구현과 일본정신 고취를 위해 동양지광사를 설립하고 일본어 잡지 ‘동양지광'(東洋之光)을 창간했다. 박희도는 동양지광에서 “조선인의 행복은 국민적 의무에서도, 국가적 자격에서도 완전히 일본인으로 돼버리는 것에 있다”고 단언했다. 박희도 등의 권유를 받아 독립선언에 참여한 정춘수는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일제가 항일 민족주의
민족문제연구소 “경남고 교정 친일파 동상 철거해야”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는 23일 부산 서구 경남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파’ 안용백 동상을 즉각 철거하라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경남고 초대 교장인 안용백(1901∼1977)의 친일 이력을 열거한 팸플릿을 등교하는 학생에게 나눠주며 학교 측에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팸플릿에서 조선총독부 관료로 근무한 안용백이 친일 단체에 참여하며 친일 잡지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정책을 찬양·선전하는 글을 많이 기고했다고 말했다. 안용백은 광복 이후 경남중학교 초대 교장을 맡은 뒤 이승만 정부 시절에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편수국장을 역임하는 등 정부 요직에 올랐다. 1958년 5월에는 전남 보성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부정 개표로 당선 무효가 됐고 이후 전남 교육감을 지냈다고 민족문제연구소는 설명했다. 이종민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부장은 “2009년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 행위자 704인에 포함된 안용백은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결코 학생의 존경을 받을 만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와 동문 측은 내부 구성원과 협의해 철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용백 흉상은 2009년 4월 30일 개교기념일 때 졸업생이자 재일교포인 강모(83)씨의 기증으로 경남고 교정에 세워졌다. 1982년 광주시 중외공원에 안중근 동상 등과 나란히 설치됐던 안용백 동상은 시민단체의 거센 항의에 2013년 철거됐다. wink@yna.co.kr <2017-03-23>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경남고 교정 친일파 동상 철거해야”
민족사랑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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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24) 황산덕 서울대 교수
ㆍ군부 독재 길 여는 헌법 추진…펜으로 거침없이 질타하다 중정에 끌려가 “지도자는 대중과 유리되어 그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자나 특권계급이 아니라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고 그들의 편에 서서 동고동락하는 동지로서의 의식을 가진 자라야 한다. 국민을 지도함에 있어서 친절하고 겸손하며 모든 어려운 일에 당하여 솔선수범하여 난관을 돌파하며 사를 버리고 오직 국민을 위하여 희생한다는 숭고한 정신을 그는 가져야 한다. 지도자로서 가지는 모든 권력의 연원은 국민이다. 자기 스스로 창조한 권력도 초인간적 존재로부터 수여된 여하한 특권도 있을 수 없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대중에 깊이 뿌리박고 전근대적 특권의식을 버리라.”(<지도자도(指導者道)> ‘좌빨’ 냄새 물씬 풍기는 이 글은 5·16 쿠데타 총성의 메아리가 미처 사라지지도 않은 1961년 6월29일 조선일보에 박정희의 이름으로 실렸다. “공보부에서 27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박정희 육군소장이 저술한 <지도자도>라는 팜플렛을 공무원 및 일반에게 배부하였다. 지난 16일자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발행한 동 소책자(비매품)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라는 ‘편집자 주’를 달아 3회에 걸쳐 연재했다. “박정희가 이 글을 쓴 날부터 1979년 10월26일 죽음을 당하기까지 그런 지도자도를 걷지 않았다는 사실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문영희·김종철·김광원·강기석 저, <조선일보 대해부> 3권). 그의 딸도 그렇다. ■ “권력 연원은 국민”이라던 군인 박정희 “애국심과 양심에 의해 일으킨 쿠데타는 거의 없었다” “애국심이니, 정의니 하는 본래 아름다웠던 말들이 형편없이 오염되게 된 것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마구 그런 말을 써먹었기 때문”(이병주, <그해 5월>)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5월23일 포고 제11호를 공포, 전국
[스토리펀딩] 4화 “일본 정부의 조건부 사과는 모욕”
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
[보도자료]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후지코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3차 소송 판결
[보도자료] [다운로드] 1. 2017년 3월 16일, 오전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근로정신대 피해자 이춘면(李春綿)의 ㈜후지코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3차 소송 선고공판이 열렸습니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 주식회사 후지코시에서 근무한 사실이 인정되고, 원고를 동원하여 피해를 입힌 잘못을 들어 원고 이춘면에게 손해배상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2. 이 사건은 일제말기, 군수기업 후지코시사의 도야마 공장에 강제동원 되어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가 가해자인 주식회사 후지코시를 상대로 정신적 ․ 육체적 고통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소송입니다. 한국에서 주식회사 후지코시를 상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건 중 세 번째 소송이고, 세 번째 1심 승소판결입니다. 이 사건의 원고와 같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는 강제동원 당시 13세~15세의 어린 소녀들이었습니다. 동원시에도 국민학교 교원과 공무원이 거짓말로 피해자들을 유인하여 끌고 간 것으로 명백히 민법, 국제법상 불법행위입니다. 3. 일제강제동원 문제는 일본의 가해기업이 대한민국 국민을 강제로 동원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피해자들의 행복추구권, 생존권,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하며 노동을 강요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기업에 대한 피해자들의 제소는 단순히 피해자들의 민사적 피해를 해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일 간의 불행한 과거사를 극복하고 올바른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입니다. 4. 2017년 3월 현재,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 미쓰비시 중공업, 주식회사 후지코시 등을 상대로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은 11건이 넘고 있습니다. 하지만 90세 전후로 한계 수명에 달한 원고들은 법원의 최종적인 답변을 기다리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