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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프레시안] 尹정부가 자랑했던 사도광산 추도식, 올해 또 말썽…정부, 강제성 표현 문제로 불참

2025년 9월 5일 449

외교부 “추도사 내용 중 강제성 표현에 관해 접점 찾지 못해”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 윤석열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성과라고 밝혔던 노동자 추도식에 한국 정부가 지난에 이어 올해도 불참 결정을 내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원만해 보이던 한일 관계가 과거사 문제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삐걱거리게 됐다. 4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오는 13일로 예정된 사도 광산 추도식과 관련 “정부는 올해 추도식이 한국인 노동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방향으로 온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일측과 협의했다”며 “그러나 결과적으로 핵심 쟁점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올해 추도식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핵심 쟁점은 추도사 내용 중 강제성에 관한 표현에 대한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이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한국은 해당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됐다고 보는 반면, 일본은 강제성을 부인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정부는 고인이 된 사도 광산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합당한 애도가 있으려면 그 고난의 근원과 성격이 무엇이었는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 즉 한국인 노동자들이 의사에 관하여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해야 했다는 것이 적절히 표현되어야 추도문의 격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양측의 추도사 내용 중 노동의 강제성에 관한 구체 표현에 대해

[경향신문] “친일파, 해방 혼란 틈타 ‘미 군정 반공파트너’ 둔갑…대량학살 자행”

2025년 9월 4일 578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해방 80주년’ 기획 ⑥ ‘친일’, ‘반공’의 계보와 상호연관성 여순사건 때 제노사이드 문제 시작 ‘빨갱이’ 낙인과 친일-반공 결합 정권이 바뀌어도 끈끈하게 얽혀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 박정희 정부서 ‘반일’ 기치 접고 노골적 ‘친일 정당화·반공 강화’ 권력 기억조작 맞선 민간 투쟁 1970~1980년대 학생운동 토대 5·18과 6월 항쟁 등 거치며 발전 12·3 때 시민·군인 저항으로 연결 “친일과 반공이라는 두 권력의 뿌리는 긴밀하게 얽히며 해방 이후 80년간 하나의 권력 계보로 이어져 12·3까지 왔습니다. ‘친일’과 ‘반공’이 어떻게 처음 연결됐고, 기억의 회로에서 어떻게 끈질기게 작동해왔는지 국가폭력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달 28일 ‘2025 현재사’ 6강을 진행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제주 출신으로, 민간인 학살 관점에서 제주4·3 사건에 대해 석사 논문을 썼고, 이어 국내에선 처음으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박사 논문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국가보안법, 검찰, 또 계엄을 연구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이슈(12·3)와 관련된 모든 폭발적인 주제들을 다 공부한 셈이라고 본인의 배경과 연구 관심사를 소개하며, 강의의 3가지 핵심 주제로 이어갔다. 연결된 권력 계보, ‘친일-반공’ 1945년 8월 해방부터 1948년 정부 수립까지의 미 군정기는 해방은 됐지만, 독립은 되지 않은 시기였다. 강 교수는 이 기간을 “신탁통치 파동 와중에 친일파가 권력의 필요를 업고 반공세력으로 변신하며 성공적으로 친미로 전환한 시기”였다고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모스크바 3상 회담 하루 전인 1945년 12월27일 신탁통치에 관한

[오마이뉴스] “나오는 정책 형편 없어… 대통령실에 일본전문가 없는 듯”

2025년 9월 2일 616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지난 8월 23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강하게 비판해왔기에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가 다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근혜·윤석열 정부의 과거사 합의를 계승한다는 입장이 확인되자 진보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지난 8월 27일, 서울 숙대입구역 인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김 실장과 나눈 일문일답. “미국의 압박 큰 건 알지만… 원칙까지 버려선 안 돼” – 이재명 대통령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윤석열 정부에서 합의한 과거사 문제를 계승한다고 해서 진보 진영이 반발하고 있어요. 이 문제 어떻게 보세요? “전체적으로 과거사 문제는 덮고 미래 지향으로 나가자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진전을 얻을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는 말도 했어요. 올해가 광복 80주년이잖아요. 그런데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그렇고, 그 뒤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대통령 되기 전과는 달리 과거사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 우려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한일 공동선언문이 나왔는데, 내용을 보면 ‘1965년 한일협정의 기반 위에서 미래 지향을 해나가겠다’, 그리고 ‘일본은 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두 문단뿐이었어요. 그런데 이건 일본이 지금까지 계속 써왔던 말입니다. 첫

[경향신문] 간토대학살 모르쇠 일본…발뺌 못 할 ‘결정적 물증’ 나왔다

2025년 9월 2일 459

102년 전인 1923년 9월1일. 일본 간토(관동) 지역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수십만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수도인 도쿄 등 주요 도시가 초토화된 가운데, 조선인들이 혐오범죄의 표적이 됐습니다. 자경단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유언비어를 앞세워 학살에 나섰습니다. 희생된 조선인은 최소 6000여명에서 최대 2만30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일본 정부는 100년이 넘도록 “관련 기록이 없다”며 책임을 부정해 왔는데요. 경향신문이 최근 일본 정부의 주장을 뒤집는 ‘물증’을 찾았습니다. 조선인 학살 기록이 상세히 담긴 당시 일본 정부의 공문서 원본이 공개된 겁니다. 문서를 공개한 이는 강덕상자료센터의 이규수 센터장입니다. 센터는 간토대지진 연구에 매진한 재일 역사학자 강덕상 선생(1931~2021)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이 문서도 강 선생이 보관하고 있던 자료입니다. 강 선생은 이 문서를 잃어버린 줄 알고 있었는데, 별세한 뒤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문서가 발견됐다고 해요. 1923년 11월21일 작성된 이 문서의 제목은 ‘지진재해에 따른 조선인과 지나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상황 기타 조사의 건’입니다. 야스코치 아사키치 당시 가나가와현 지사가 관내에서 발생한 조선인 살인 사건 등을 소노다 다다히코 내무성 경보국장(경시청장)에게 보고한 보고서입니다. 54쪽에 달하는 문서에는 조선인 학살 사건의 발생 시간과 장소, 범행 동기와 목적, 피해자·가해자 정보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문서를 보면, 1923년 9월2일부터 4일까지 가나가와현에서만 총 59건의 사건으로 145명이 살해당하고 2명이 다쳤습니다. 학살 당시의 광기와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문서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1923년 9월4일 차태숙씨(당시

[경향신문] 친일파 이두황 삶 그린 연극, 전주 창작소극장 무대 오른다

2025년 9월 2일 295

친일파 이두황의 삶을 소재로 한 연극이 전북 전주 무대에 오른다. 전주 창작소극장은 실존 인물 이두황을 모델로 한 ‘이공칠’을 주인공으로 한 창작극 ‘이공칠의 변’을 오는 4일부터 7일까지 선보인다고 2일 밝혔다. 작품은 권력과 욕망을 좇아 도덕과 양심을 저버린 끝에 파멸로 치닫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린다. 이두황은 1910년 10월부터 1916년 3월까지 전라북도 초대 도장관을 지낸 친일파다. 동학농민군 토벌과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으며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에게 양자로 들어가 전북 도장관 자리에 올랐다. 재임 기간에는 일제의 토지 수탈과 호남 의병 해산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연극은 이두황을 형상화한 ‘이공칠’을 통해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조명한다. 창작소극장 측은 “군인·공직자·정치인·배신자의 길을 걸은 인물이 남긴 흔적을 되짚으며 오늘의 우리와 나를 성찰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공연 준비 과정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사후 100주년인 2016년에 세운 이두황 단죄비가 파손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창작소극장 관계자는 “문제의 인간을 만난 듯한 기이한 경험이었다”며 “그의 흔적은 단순히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 권력자의 비리와 사회적 부조리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공칠의 변’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4시에 창작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번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 주체 창작공간 선정 작품으로, 2025년 기획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김창효 선임기자 <2025-09-02> 경향신문 ☞기사원문: 친일파 이두황 삶 그린 연극, 전주 창작소극장 무대 오른다 ※관련기사 ☞연합뉴스: 연극으로 본 친일파 이두황…창작극회 ‘이공칠의 변’ 공연

[KBS] 갈 길 먼 ‘일제 적산’ 정리…일본인 명의 토지 83억 국유화

2025년 9월 1일 298

앵커 오늘(29일)은 115년 전 일제에 우리나라 주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일입니다. 일제의 흔적은 광복 80주년이 된 지금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본인 명의로 돼 있던 5곳의 토지가 국고로 귀속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우준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리포트 서울시 용산구의 한 도로. 한남뉴타운 재개발이 진행 중인 금싸라기 땅입니다. 땅값 가치만 81억 원이 넘는 이 땅. 놀랍게도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유자는 일본인 명의였습니다. 이 일본인은 서류상으로 광복 2년 전인 1943년부터 해당 토지의 소유자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명의로 바뀐 이른바 ‘적산’입니다. [엄복규/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 “일본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어떤 지형적으로 약간 고개 지형이고… 이런 지형을 굉장히 이제 고급 주택지로 (일본인들이) 선호했거든요.”] 해방 이후 혼란한 상황에서 제때 정리되지 못하다 서울시가 찾아내 2023년 국고로 귀속된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당초 서울시가 일본인 명의로 추정한 토지와 건축물은 3천여 건. 장부 오류나 지번 변동 등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사례를 제외하고 98건의 재산에 대해 국유화 가능성이 확인됐습니다. 이후 담당 기관인 조달청이 추가 조사한 결과 지금까지 서울 시내에서 국고로 귀속된 일본인 명의 토지는 중구 3곳과 용산구, 영등포구 각각 1곳 등 모두 5곳입니다. 공시지가로 환산하면 83억 원이 넘는 규몹니다. 학계에선 일제 적산을 찾아내 국유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용창/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실질적인 소유권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결과에

[오마이뉴스] 친일파 집안에서 연 ‘광복 잔치’, 이게 말이 되나요?

2025년 8월 27일 1083

[아이들은 나의 스승] 광복 80주년, 전북 고창의 인촌 생가로 떠난 동아리 답사기 광복절 80주년을 뜻깊게 보내고 싶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여름방학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전북 고창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1년에 서너 차례의 답사를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탐구하는 역사 동아리다. 때가 때이니만큼 이번 주제는 ‘광복 후 친일파들의 행적’으로 잡았다. 전북 고창에선 친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세 명의 문제적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친일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찬반이 확연히 갈려 늘 유야무야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광복 후의 공적도 고려해야 한다거나, 친일하지 않았다면 탁월한 재능은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가 전자에 해당하고, 고은 시인이 ‘시의 정부(政府)’라며 극찬한 미당 서정주가 후자의 예다. 두 사람의 생가는 걸어서도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둘은 고창군을 넘어 전북특별자치도가 자랑하는 대표적 역사 인물이다. 둘은 논쟁이 곧 공부인 역사 수업의 자료로 손색이 없다. 모름지기 역사 공부란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 있는 탐구와 논쟁을 통해 자신의 논리와 견해를 수립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곳 고창보다 광복절 80주년에 걸맞은 시의적절한 장소를 찾긴 어렵다. 아이들이 그들의 생가에서 찬반 토론을 벌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토론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예습 자료는 인터넷 등에 이미 차고도 넘친다. 교과서는 물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그들의 공과를 비교적 상세하게

[경향신문] 영도 위안소부터 인천 조병창까지···망각 위에 선 기억

2025년 8월 26일 539

“그곳은 영도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이다. 그 일대에는 히바리마치라는 유곽 거리가 있었다.”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윤두리 할머니가 밝힌 부산 ‘영도 제1위안소’ 위치다. 만 15세에 강제로 끌려갔던 그는 “제1위안소 건물은 옛날 조선사람이 여관 하던 자리를 일본사람이 빼앗은 것”이라고도 말했다. 국내 일본군 위안소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증언한 첫 사례였다. 그로부터 33년이 흘렀다. 아직도 윤 할머니가 말한 영도 제1위안소가 어디인지 모른다. 기억이 부정확했기 때문이 아니다. 영도다리를 건너 왼편으로 400~500m를 걸어가면 1970년대까지 술집, 여관 등이 밀집해 있던 거리가 실제로 나온다. 1940년대 지도, 구술에서 영도다리를 건너면 유곽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된다. 그럼에도 위치를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창피해서’ 혹은 ‘개발을 해야 해서’ 관련 흔적을 전부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1일 찾은 옛 유곽 거리에는 ‘작은 불상’ 하나만이 이곳의 내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월에 닳아 표정조차 희미해진 불상은 ‘고통받는 영혼을 구제한다’고 알려진 지장보살이었다. 일제강점기 유곽 일대에서 종종 발견되는 존재다. 위안소가 있던 시절, 고통받던 이들을 위로했던 존재만이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영도 제1위안소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전국 곳곳에 남은 일제강점기 유적 중에는 사라질 위기이거나 방치 중인 곳이 많다. 이 중에는 제대로 조사 한 번 해보지 않은 곳도 있다. 장소가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사라지거나 방치하거나 신공항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부산 가덕도에는 철새 외에도 유명한 것이 있다. 특별한

[오마이뉴스] 역사시민단체 “한일정상회담, 역사정의 외면” 유감

2025년 8월 26일 359

민족문제연구소, 정의기역연대, 자주연합 등 한일정상회담 비판 논평 내 역사시민사회단체들이 24일 한일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역사 정의를 외면한 회담이었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식민지역사박물관 등 단체들이 24일 한일정상회담을 두고 공동성명을 통해 “역사 정의를 외면한 회담”이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24일 공동성명을 통해 “역사정의를 외면한 이번 한일정상회담의 결과에 실망을 금할 수 없으며, 강력한 유감을 밝힌다”며 “아울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정의의 문제를 지금 외면하고 봉인한다고 해서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도 사죄도 없는 형식적인 수사에 불과하다”며 “이재명 정부는 역사정의 실현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도 입장을 통해 “광복 80년, 국민주권 정부의 수반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주권자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일제 불법적 식민지배와 반인권적 전쟁 범죄에 대한 진실 규명, 사죄와 배상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며 “역사정의는 사라지고, 평화는 멀어지는 한일 정상회담 공동발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도 24일 입장을 통해 “‘실용외교’라는 명분 속에 사라진 역사정의, 한일정상회담에 유감을 표명한다”며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한국 정부의 당당한 외교와 일본 정부의 피해자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죄·배상”을 촉구했다. 같은 날 자주연합도 입장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징용·징병 강제 동원, 후쿠시마 핵 오염수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며 “일본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이를 정치적

[한겨레] ‘조선인 136명 수몰’ 일본 해저탄광서 유골 나왔다…83년 만에

2025년 8월 26일 591

1942년 수심 43m 탄광 물에 잠겨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136명 등이 숨진 일본 조세이해저탄광 사고 현장에서 83년 만에 희생자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유골이 발견됐다. 일본시민단체 ‘조세이 탄광의 물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모임’(새기는 모임)은 25일 한겨레에 “조세이해저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유골 발굴 조사를 위한 안전 조처 도중 한국인 잠수사가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을 여러 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날 수중 수색에 투입된 잠수사들은 조사 현장에 희생자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최소 3점을 공개했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건은 1942년 2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해저탄광에 바닷물이 들어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이 숨진 비극적 참사다. 새기는 모임이 지난해 10월 해안가에 묻혔던 갱도 입구를 82년 만에 찾아냈고, 시민 모금을 통해 유해 발굴작업을 벌여왔다. 이어 지난 8일에는 바다 위에서 갱도로 연결되는 콘크리트 배기구(피야)를 따라 거꾸로 탄광에 진입하는 과정에 사고 현장으로 연결되는 출구를 발견했다. 43m 깊이 바다에서 배기구를 따라가자 갱도를 잇는 문 구실을 하던 벽돌 구조물과 두꺼운 송판이 나타났다. 갱도 입구가 있는 해안가로부터 500m 지점이다. 수몰사고 당시 기록과 비교하면, 희생자들의 작업 공간과 매우 가까운 곳인 데다 시야도 좋아 유해 발굴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유골을 찾아낸 한국 잠수부는 현장 인터뷰에서 “처음에 유골을 발견했을 때는 ‘여기까지 와서 많은 분들이 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