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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KBS] 익숙한 금지곡?…시립합창단 ‘친일 음악가’ 곡 논란

2021년 4월 10일 1058

■ 공주시립합창단…’친일 음악가’ 곡 연주 논란 “봄과 어울리는 노래를 골랐을 뿐”이라고 합창단 관계자는 해명했습니다. 오는 20일 열릴 예정인 공주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 ‘꽃이 핀다’ 이야기입니다. 기획 공연을 제외하면 1년여 만에 열리는 정기 공연입니다. 많은 문화 행사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어온 가운데 계획된 공연이라 시민 관심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연을 앞둔 합창단이 왜 ‘해명’을 해야 했을까요? 공연이 때아닌 친일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공연에서 부를 노래 상당수가 ‘친일 음악가’들이 만든 곡이었습니다. 15곡을 부를 예정인데 6곡이 그랬습니다. 시가 주최하는 공연의 절반 가까이 ‘친일 음악가’가 만든 노래가 연주되는 셈이었습니다. ■ ‘친일 음악가’…징병제 축하하고 군가 지도하고 공연에 포함된 친일 음악가는 현제명, 김동진, 이흥렬입니다.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 김동진의 ‘진달래꽃’, ‘수선화’, ‘신아리랑’ 그리고 이흥렬의 ‘코스모스를 노래함’, ‘부끄러움’이 공연에서 연주될 예정이었습니다. 행적에는 논란이 있지만, 친일인명사전 등은 이들을 친일 예술인으로 분류합니다. 특히 현제명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대표적인 친일 음악가로 꼽습니다. 일제의 징병제를 축하하는 연주회에 나서고 일제를 찬양하는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했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 군가를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현제명의 대표곡 중 하나가 공주시립합창단이 선택한 ‘희망의 나라로’입니다. 아래는 ‘희망의 나라로’ 노랫말 중 일부입니다. 배를 저어가자 /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 산천 경계 좋고 /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맞아 /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 자유 평등 평화

[오마이뉴스] 노량해전 자리에 일본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 다리

2021년 4월 7일 2057

[세상을 잇는 다리] 남해대교 앞에서 묻는다, 우리는 꼭 그리 했어야만 했을까? 이 다리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어느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에 나오는 말이다. 붉은 옷을 입은 이 다리는 ‘당시 우리는 꼭 그리 했어야만 했을까?’ 하고 자문하게 만든다. 우리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무엇으로 담보해 낼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저지른 어리석은 행위다. 노량해협을 건너는 남해대교 이야기다. 우리나라 최초 현수교는 1973년 5월 춘천에 만들어진 등선교(登仙橋)로, 철거되어 사라지고 없다. 두 번째 현수교가 남해대교다. 1968년 5월 10일 착공하여 1973년 6월 20일 완공된다. 총길이 660m(128 + 404 + 128)다. 남해군과 하동군에 각각 위치하는 ‘노량리’를 서로 연결하는 다리다. 준공 당시 아시아 최대 현수교였다. 남해안을 대표하는 랜드 마크(Land mark)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양과 색깔도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유사하다. 이웃한 광양만엔 우리나라 최대길이 이순신대교가 있다. 주 경간 1,545m로, 이는 이순신 장군 탄신년도를 상징한다. 두 다리가 위치한 곳은 정유재란 최후 격전지다. 바로 ‘순천 예교성(曳橋城) 전투와 노량(관음포)해전’이다. 정유재란 최후의 전투 정유년 9월, 명량에서 왜군은 참패를 당한다. 이들은 전술을 바꿔 순천에서부터 울산까지 왜성을 쌓아 둔취한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쌓은 순천 왜성은 철옹성이다. 5층 천수각과 각진 내·외성을 몇 겹으로 둘렀다. 성안 왜군은 1만 3천이다.

[오마이뉴스] 일제시대에도 없던 건물… 연해주에 세운 독립운동가

2021년 4월 6일 3544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② – 이 기사는 1편 조선인 최초로 ‘사회주의 정당’을 만든 사람에서 이어집니다. “한인사회당은 그 뒤 상해파 고려공산당으로 개명되나 이동휘가 이 당을 만든 것은 단순히 한국 독립 후원자를 얻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럴 것이 이동휘란 사람은 원래 구한국군의 정령(正領) 출신으로 열렬한 반일민족운동자이지, 사회주의 이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만큼 초기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짐짓 공산당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 많았는데 볼셰비키 집단이 이들을 항일운동에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동휘는 도량이 넓고 활동력이 큰 독립운동가였다.”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 한인사회당은 조선인 최초 사회주의 정당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사회주의 정당이다. 1918년 출범한 한인사회당은 1921년과 1922년 각각 창설된 중국공산당과 일본공산당보다 더 빨리 탄생했다. 성재 이동휘는 한인사회당을 기반으로 연해주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벌였다. 한인사회당은 기관지를 만들고, 군사학교를 세웠다. 100여 명으로 구성된 한인적위대(韓人赤衛隊)도 구성했다. 한인적위대가 참여한 우수리 전투는 러시아 한인이 참여한 첫 무장투쟁이었다. 한때 개신교도였던 이동휘는 왜 사회주의자가 되었을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사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참된 사회주의자는 그리스도인이 틀림없다.”(A true Christian must be a socialist and a real socialist must be a Christian) 칼 바르트(Karl Barth)의 말처럼, ‘개신교도’였던 그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의 종교이자 이념이었던 ‘독립’ ‘무인’이었던 이동휘가 ‘혁명가’의 길을 걸은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인지 모른다. 여운형은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3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② 미션 찾기

2021년 4월 2일 747

  [박물관은 뭐하니] Ep.3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② 미션찾기 ※관련영상  ☞유튜브: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1 인턴은 뭐하니 VLOG  ☞유튜브: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2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① 미션찾기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1~17편

2021년 4월 1일 1267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오마이뉴스] 일본군 총칼에 죽은 모자, 102년 뒤 세워진 추모비

2021년 4월 2일 1555

[현장] 충남천안 ‘독립운동’ 주도하다 죽은 김구응 열사, 그의 모 최정철 열사 ‘추모비 제막식’ 지난 1일 찾은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의 모자(母子) 무덤에서는 102년 전, 아우내장터의 만세 함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천안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주동자인 최정철·김구응 열사 무덤이었다. 뜻깊은 날을 기려, 무덤 주변에서는 과거 천안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최정철(1995, 애국장), 김구응(1991, 애국장) 열사 모자의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다. 흔히 아우내 만세운동이라고 하면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지만, 102년 전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제 순사의 총검에 의해 현장에서 순국의 길을 걸은 모자(母子)가 있다. 바로 어머니(최정철, 당시 66세)와 아들(김구응, 당시 32세)이 그분들이다.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은 모자는 가전리 산 8-6번지에 묻힌 채, 지난 100여 년간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과거 어떤 일 벌어졌나 보니… ‘독립선언’ 하려 모인 6400명, 일본군과 맞서다 “천안군 병천시장에서 의사(義士) 김구응이 남녀 6400명을 소집하여 독립선언을 할 때 일본헌병(일경)이 조선인의 기수(旗手, 행사 때 대열의 앞에 서서 기를 드는 일을 맡은 사람, 곧 조선인들)를 해치고자 했다.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이를 막느라 피가 낭자했다. 그러자 일본 헌병은 이들의 복부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라, 김구응이 일본 헌병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자 돌연 총구를 김구응에게 돌려 그 자리에서 즉사케 했다. 김구응은 머리를 맞아 순국했으나 일본 헌병은 사지(四肢)를 칼로 난도질했다. 이때 김구응의 노모(최정철 지사)가 일본 헌병을 향해 크게 질책하자 노모마저 찔러

[오마이뉴스] [주장] 전봉준·최시형, 독립유공 서훈해야

2021년 4월 2일 905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에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순국선열에 해당하는 자는 독립유공자로 서훈된다. 그런데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 심사위원들은 이 법률에 의거하여 독립유공자를 심사하지 않고 있다. 을미년(1895년)에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싸운 인사는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에 갑오년(1894년)에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을 제거하기 위해 거병한 인사는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지 않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을미의병 참여자는 1962년부터 독립유공 서훈을 시작하여 2020년까지 총 120명을 포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너무도 잘한 일이었다. 1962년 안승우(1865∼1896)에게 독립장을, 1963년에 이춘영(1868∼1896)·서상렬(1856∼1896)·홍사구(1888∼1896)에게 각각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2018년에 김진림(1838∼1900, 63세)·윤병의(1822∼1899, 78세)·이강하(1873∼1940, 68세)에게 각각 대통령표창을, 2020년에 이면수(1833∼1898, 66세)·류인목(1839∼1900, 62세)에게 각각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상의 총 120명은 을미의병 참여만으로 서훈을 받은 분들이다. 을미의병 참여와 이후의 의병 참여로 서훈을 받은 분은 58명으로 확인되었다. 이로써 1962년에 이병도와 신석호(둘 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됨)가 정한 독립유공 내규 즉 ‘독립운동의 기점은 을미의병이다’라는 내규에 의거하여 심사하고 있음이 분명히 확인됐다.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거병한 2차 동학농민혁명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애국적인 행동이었다. 항일 독립운동인 2차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항일 투쟁의 총사령관이 전봉준이었고, 최고 지도자가 최시형이었다. 전봉준·최시형과 함께 1894년과 1895년에 걸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나 싸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항거하였고, 그 반대와 항거로 인하여 순국하였다. 같은 시기 일본군을 몰아내다가 순국한 을미의병(1895)·을사의병(1905)·병오의병(1906)·정미의병(1907)

[성명]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눈물과 한을 매순간 기억하라!

2021년 3월 25일 1683

[다운로드][공동성명]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첫 번째 위원회 개최에 부쳐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눈물과 한을 매순간 기억하라! 지난해, 12월 10일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국회의 위원 추천이 지연되어 출범 100일을 넘겨서야 첫 번째 위원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잊히지 않는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과 유족들, 대한민국의 올바른 과거사정리와 진실규명을 기다리는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진실규명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첫 번째 위원회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한 지 넉 달 만에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피해자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유족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피해자들, 군의문사 유족들, 권두영, 김두황, 문승필, 박창수, 박태순, 안치웅, 이내창, 이덕인, 이윤성, 이재문, 이진래, 이철규, 장준하, 정경식, 정성희, 김용권, 최우혁, 한영현, 한희철 등 의문사 유족들을 비롯하여 2,774건, 5,180명에 이르는 진실규명신청이 접수되었고 앞으로도 수천 건, 수만 명의 진실규명신청이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진실화해위의 활동기한 3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피해자들과 유족들 중에는 고령의 어르신들도 많으시고, 여러 후유증으로 건강이 상한 분들도 많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진실규명 없는 날은 하루하루가 고통일 뿐이다. 진실화해위의 위원들과 조사관들이 그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다면 앞으로는 진실화해위의 단 하루도 허투루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진실화해위의 모든 구성원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피와 눈물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위원회 활동에 임해야

[한겨레] ‘전범이 된 조선청년’ 한맺힌 65년 투쟁 빈손으로 떠나다

2021년 3월 30일 1410

[가신이의 발자취] ‘마지막 비시급 전범’ 이학래 회장 별세 17살 때 ‘콰이강의 다리’ 포로감시원 일제 패망뒤 연합군 재판 ‘사형선고’ 전후 일본 국적 박탈해 보훈도 제외 55년 70여명 동진회 결성 ‘보상’ 요구 65년 ‘한·일협정’ 구실로 ‘창구’ 닫아 91년부터 법정 투쟁 99년 최종 패소 지난해까지 의회 상대로 ‘입법’ 촉구 “슬픈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마지막 조선인 비·시(B·C)급 전범’ 이학래 동진회 회장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는 짤막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이 집단 거주하는 오사카 이카이노에서 ‘샛바람 문고’를 운영하는 후지이 고노스케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회장이 이날 오후 숨졌다고 밝혔다. 향년 96. “이학래상이 지난 26일 자택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히고 다리가 부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료의 보람도 없이 28일 오후 2시10분 숨졌습니다. 학래상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먼저 숨진 동료들을 생각하고 (비시급 전범들을 구제하기 위한) 입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베 신조 정권이 힘으로 입법화를 가로막았습니다.” 후지이의 설명대로, 조선인 비시급 전범 이학래의 일생은 부당한 일본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투쟁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1925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3남매의 첫째로 태어난 그는 1942년 봄 면장에게서 갑작스런 호출을 받았다. “‘남방 포로감시원’을 모집하는데, 자네가 가소!” 근무 기간은 2년, 한 달 월급은 50원이라고 했다. 17살 소년은 2년만 고생하면 징용과 머잖아 시행될 징집을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1942년 8월19일 부산에서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뒤 일제가 패망하면서 연합국

민족사랑 2021년 03월호

2021년 3월 26일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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