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img-top-introduce[1]

주요기사

한국에서 교과서 대폭 수정방침, ‘역사’ 재고 움직임-도쿄신문(08.05.16)

2008년 5월 20일 627

한국에서 교과서 대폭 수정방침, ‘역사’ 재고 움직임 (일본 도쿄, 5.16, 6면, 후쿠다 서울發) 한국정부는 15일 사회변화에 맞춰 근현대사 등의 교과서를 예년보다 대폭 수정해 채택할 방침을 밝혔다. 10년만의 보수정부 탄생에 동반된 움직임으로 역사인식에 관한 부분이 포함될 것으로 보여 논의를 부를 것 같다.정부는 6월 중순까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모아 수정계획을 작성. 12월에 새로운 교과서가 발행된다. 동아일보에 의하면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14일 “지금의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은 너무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발언, 진보정부시절의 역사교과서에 의문을 나타냈다.역사교육을 둘러싸고 보수계열의 전문가 그룹이 3월 일본의 식민지시절을 “근대문명을 학습, 실천함으로서 근대국가를 만드는 능력을 축척했다”며 어느 정도 평가를 한 ‘한국근현대사’를 출판했었다.

유엔인권이사회, 일본에 사형제도 폐지 및 ‘위안부’ 피해 여성 지원 촉구-로이터(08.05.15)

2008년 5월 20일 571

유엔인권이사회, 일본에 사형제도 폐지 및 ‘위안부’ 피해 여성 지원 촉구(Japan Urged End Death Penalty, Aid “Comfort Women”/미국 New York Times-영국 Reuters, 5.15, 요약번역) 유엔인권이사회 내 일본 지지자들 및 비판가들은 14일 일본에 사형제도 폐지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이에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와 후회를 표명하며 ‘성실하게’ 이 문제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한편, 국민 여론을 이유로 사형제도는 폐지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위안부 문제’에 대한 비판은 한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부터 나왔다.북한은 이것이 ‘인도(人道)에 반한 죄’라며 일본이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희생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다.한국은 비난의 수위를 약간 낮춰 최근 몇 년간 유엔인권이사회가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좀 더 포괄적으로 다룰 것을 요구한데 대해 “진지하게 응할 것”을 주문했다.지난 해 미국 의회와 캐나다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일본은 1993년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강제 동원한데 정부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1995년 보상금을 제공하기 위해 기금을 만들었다.그러나 많은 이들은 일본 정부가 직접 보상해야 한다며 이 돈을 받길 거부했다. 일본 국수주의 단체들은 성노예는 없었으며 이 여성들이 매춘부였다고 주장한다.

2009년 8월 13일 628

<일제하 법정서도 “조선독립은 하늘의 이치”>(연합뉴스, 09.08.13)

시민 1천886명, 요미우리신문에 4억 손배소

2009년 8월 13일 582

시민 1천886명, 요미우리신문에 4억 손배소(연합뉴스, 09.08.03)

한.일 경비정 대치…해경 “일본 측 EEZ 침범 사실 없다”-뉴시스(08.05.16)

-0001년 11월 30일 671

<종합>한.일 경비정 대치…해경 “일본 측 EEZ 침범 사실 없다”

노컷카툰-cbs(08.05.19)

-0001년 11월 30일 640

국가귀속 친일재산, 충북이 전국 3위

2009년 8월 13일 566

국가귀속 친일재산, 충북이 전국 3위(뉴시스, 09.08.13)

항일.친일로 굴곡된 홍명희家 3대

2009년 8월 13일 742

<클릭>항일.친일로 굴곡된 홍명희家 3대(뉴시스, 09.08.13)

이명박 정부의 역사 뒤집기를 개탄한다

2008년 5월 19일 623

    민족문제연구소      이명박 정부의 망발이 일신우일신 도를 더해가고 있다. 목하 진행되고 있는 백화점식 실정은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제 내놓고 과거 독재정권의 행태를 판박이처럼 되풀이하는 데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일반 공기업도 아닌 전문위원회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안하무인격 낙하산 인사가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노골적으로 과거사 청산을 저해하는 발언을 일삼더니, 이제 밑에서 이를 받들어 구체적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정부는 최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에 한나라당 당료 출신 인사를 내정하고 임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정치와 전혀 무관한 역사문제를 다루는 위원회의 조사연구를 총괄 지휘하는 책임 있는 자리에, 전문가는 물론 행정관료도 아닌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를 앉히려 하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식 밖의 임명을 강행하는 데는 특별한 저의가 있어 보인다. 한나라당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저지하려 했으나 국민적 압박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동의하였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과거사 위원회를 두루 무력화시키기 위한 포석의 시작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세간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반민특위를 와해시킨 이승만 정권의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에 대한 다양한 압박이나 무리한 통폐합 기도가 이를 반증한다. 그렇다면 이 정부에 대한 후세의 역사적 평가도 준엄할 수밖에 없을 것이 명백하다. 과거사 청산은, 어느 특정 정권의 공이 될 수도 없고 어느 특정 정권이 폐기할 수도 없는,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 피할 수

[서면 대담]한겨레신문을 기증한 김옥남 씨

2008년 5월 19일 582

    민족문제연구소   대담자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방학진기증자 : 창원 창간주주 및 20년 독자 김옥남(경남 창원시 반지동 대동아파트)     1.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한겨레를 모으신 동기가 무엇인지요? 제가 1964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거의 20년을 전북 고창이라는 한적한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큰 도회지인 광주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5.16혁명’을 ‘5.16군사쿠데타’라고 알게 되었다.엄혹한 군사정권시대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에 장준하님이 발행하던 “사상계”지를 2년정도 열심히 읽었다.그로부터 군사독제와 직접 맛서 싸울 용기가 없고 교직을 택하여 아이들 속에 묻히다보니 용기 없는 지식인으로 객지에서 생활인이 되었다.그러나 선각자인 장준하, 함석헌, 등으로부터 세상이 바르지 않다는 걸 배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삶이 때로는 답답하고 아이들에게도 참 미안했다. 신문을 봐도 행간에서 진실 된 역사를 읽어야하는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행동하는 지식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내가 직접 하지 못하지만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고 남겨야한다는 나와의 암묵적 약속 때문일 것이다.   ▲ 20여년간 모은 한겨레신문을 연구소에 기증하신 김옥남 씨   2. 20년 치를 모으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어떤 것일까요? 한겨레신문은 태생이 다르고 20년(총 6298호) 동안 지나온 길이 가시밭길이고 기사마다 기존 매체와는 차별되어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창간하고 얼마 후 평양취재를 계획하다 문제가 되어 논설고문 리영희님이 구속되는 위기상황의 긴박했던 신문지면이나 밤의 대통령이라는 조선일보사장 방우영의 큰집을 특별 취재하여 처음으로 지상에 공개했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