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때 기록 파기는 일제 관행”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의 비밀기록 관리는 비밀기록이 가질 수 있는 폐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는 것이죠.”
자신의 직업을 ‘아키비스트(archivist)’라고 소개하는 박성진씨(46)와 이승일씨(37)는 지난 5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최근 ‘조선총독부 공문서-일제시기 기록관리와 식민지배’(역사비평사)라는 책을 펴냈다.
일제 식민지 역사 전공자로 박사학위를 받은 두 사람은 각각 국가기록원과 국회기록보존소에 근무하며 틈틈이 책을 썼다. 이들은 식민지기 조선총독부 공문서의 변천 과정과 양식, 분류방식 등을 고찰하면서 일제시기 확립된 공공기록 관리방식이 해방 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것이 비밀기록 관리다. 비밀기록 부분 집필을 맡은 박씨는 “현재 일제시기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에게 의미가 있는 주요 기록물은 표지 앞장에 ‘비(비)’ ‘극비(극비)’ ‘엄비(嚴비)’ 등이 표기된 비밀문서들이지만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일제의 경찰조직인 경무국을 중심으로 한 비밀문서 관리체계는 비밀 기준을 ‘기밀을 요하는 것’ ‘당연히 기밀로 해야 할 사항’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해 기록물 생산자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두는 식이었다. 주로 일본 본국에서 보내온 식민지 조선 통치 정책 내용이나 지방경찰의 보안과, 고등경찰과 등에서 경무국에 보고한 식민지민들의 동향들이 그 대상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모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기록원에서 근무하는 박성진씨(오른쪽)와 국회기록보존소에서 근무하는 이승일씨.
두 사람은 기록을 생산하고 평가, 보존, 활용하는 ‘아키비스트’다. /이상훈기자
기록의 생산만큼이나 폐기 역시 자의적으로 이뤄졌다. ‘비밀기록물은 소각할 것’이라는 규정을 가진 기관이 허다했고, 실제로 1945년 8·15를 즈음해 총독부 건물에서는 며칠 동안 밤낮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증언도 줄을 잇는다. 박씨는 “식민지 경찰의 비밀기록 관리는 업무 효율성을 명분으로 미등록 관행이 정착됐으며 권력의 입장에서 비밀 기준도 만들지 않는 등 반사회적 관행을 형성시켰다”며 “이러한 폐단들이 해방 이후, 독재정권의 등장과 함께 한국사회의 기록관리 관행으로 지속됐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87년까지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씨는 “61년 군사쿠데타 이후 시스템상으로는 미국식 기록관리체계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기록물을 문화유산으로서가 아니라 정권 연장 또는 행정업무 참고용으로 보았죠. 이 때문에 행정환경의 변화나 정권 교체가 일어났을 때 해당 기록을 쉽게 파기한다든가 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제시기 조선총독부와 지방관청의 일원적 기록관리 체계가 확립되며 형식적으로는 근대적 기록관리 체계가 성립됐지만, 식민지 통치행정의 필요성 여부로 보존 여부가 결정돼 역사적·문화적 가치는 기록관리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전통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근대적 문서관리의 가장 큰 특징인 ‘모든 기록은 국민의 것’이라는 원칙의 확립은 요원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승정원 일기, 조선왕조 실록 등 기록문화를 꽃피워 온 수백년간의 전통이 근대식 제도를 도입한 일제시기를 기점으로 최근 100년간 완전히 끊어졌던 셈이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금은 국가의 비밀기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두 사람처럼 ‘기록 민주화’를 신념으로 갖고 있는 ‘아키비스트’들이 이 땅에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다. 아키비스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99년부터다. 이후 명지대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이 생기는 등 18개 대학에 기록관리 협동과정이 생겨났다. 이렇게 배출돼 국가기록원과 각급 공공기관에서 활동 중인 아키비스트는 100명 정도다.
박씨는 “도서관의 사서, 미술관·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있듯 공공기관에는 기록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아키비스트가 있다”며 아키비스트의 정의를 대신했다. 이들의 일은 기록생산 현장에서부터 기록의 수집, 평가, 보존 및 활용을 하는 것이다. 이씨는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아키비스트에 의해 선별 보존된 기록을 중심으로 연구하게 된다”며 역사학과 기록학의 상보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적 기록관리 체계가 확립된 서구에서 아키비스트는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병원, 대학, 기업 등 민간기관에서도 활동하며 기록관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아키비스트들의 활동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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