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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규명은 세계사적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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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과거사 규명은 한국 현대사 전반에 대한 재조명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또 해방 이후 반세기 이상 한국 사회에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소외됐던 세력의 파묻혀지고 왜곡된 역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해석을 그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규명 대상과 주체를 둘러싼 대립 구도는 노무현 정권의 출범 이후 격화된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의 대치 구도와도 대체로 중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격렬한 충돌의 불씨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사 진상 규명을 이제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이른바 주류 세력들은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총공세의 한가지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규명은 1991년 소련 붕괴에 따른 냉전 체제 종식 이후 세계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역사 재조명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냉전 종식과 ‘세계화’ 확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 대립 구도가 해체되면서 체제논리의 구속력이 크게 약화됐다. 대신 자국 역사와 민족의 정통성,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등과 같은 새로운 가치개념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과거사 재조명도 미-소 대립이라는 냉전 공간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했던 지배세력의 권력독점이 와해되고 탄압받았던 세력들이 권력의 중심무대에 등장한 데 따른 자연스런 역사발전의 한 과정이다.


역사 재조명은 가해자가 부끄러운 과거 행위에 대해 솔직하게 사죄하고 피해자에게는 배상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폴란드 출신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대 말부터 가톨릭 교회가 역사적으로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 여러 차례 참회를 해 왔다. 특히 교황은 2000년 3월 ‘회상과 화해-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참회서를 발표하면서 지난 2천년 동안의 교회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했다. 참회는 아랍세계에 대한 약탈과 정복전쟁으로 변질됐던 십자군 전쟁, 중세의 이단자 처형, 신대륙에 건너간 신부들의 원주민 억압, 나치정권의 유대인 강제연행과 학살에 대한 묵시적 동조 등 천년 이상에 걸친 역사를 대상으로 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2차대전 때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약 12만명의 미국 거주 일본 사람들을 강제수용소에 수용했던 일을 사과하면서 생존자 6만명에 대해 각각 2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 역시 1995년 7월 2차대전 때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독일에 의해 수립된 비시 정권에 의한 유대인 강제수용을 두고 비시 정부가 괴뢰정부이긴 하지만 프랑스 정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공식 사과했다.


치욕과 굴절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가해자가 참회를 거부하고 규명 노력에 대해서도 이러저런 이유를 대면서 발목을 잡고 있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과거사 규명의 목적은 가해자를 단죄하는데만 있지 않다. 숨겨지고 왜곡된 반민족 행위를 제대로 기록함으로써 민족의 정통성과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2차대전 때 나치독일에 점령당한 뒤 수립된 대다수 국민들이 비시 괴뢰정부을 열렬히 지지하고 나치 점령군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치욕의 역사를 기록했던 프랑스가 종전 뒤 미국, 영국 등과 함께 서방세계의 지도적인 나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나치에 저항했던 드골 정부의 부역자 처벌 등 철저한 나치 부역자 단죄를 통해 프랑스의 자존심을 회복한 데 따른 것이었다. 전범 국가였던 독일 역시 나치정권 시절의 야만적,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끊임없는 참회와 사죄, 배상을 통해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들과 화해할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실현했다. 지난 6월 2차대전 때 연합군 승리의 전환점이 됐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에 처음으로 초청된 슈뢰더 독일 총리는 “연합군의 승리는 독일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독일을 위한 승리였다”고 나치 과거에 대한 참회를 집약해서 표현했다. 한국에서도 과거사 규명을 거부하는 세력이 “과거사 재조명은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비극의 한국 현대사에 큰 매듭이 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편집부국장>


( 한겨레 0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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