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친일파 후손들의 땅 찾기가 14년 동안 집요하게 이루어지는데도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전무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유지를 관리하는 재정경제부나 소송의 국가 대리인 자격을 갖고 있는 법무부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치권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다. 1997년 ‘이완용 후손 재산환수 저저 의원 모임’이 만들어지고 의원 162명이 서명을 했지만 입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2월 최용규 의원 등 55명이 ‘친일반민족행위재산의 환수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자동 폐기됐다. ▶관련기사 19면 지금까지 확인 된 소송은 을사오적 이완용 후손 17건, 일진회 총재로 “조선을 1억 엔에 팔겠다”고 말했던 송병준 후손 4건,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이재극 후손 1건,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으로 남작 작위를 받은 이근호 후손 5건 등 모두 27건이다. 이들의 승소율은 절반 남짓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친일파 후손들과 토지사기 브로커들이 결탁해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있어, 실제 소송 건수는 상상할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 2006년까지 일본인 명의 땅 정리 공고
국유재산관리를 맡고 있는 재경부 국고국은 국유지를 지방자치단체나 자산관리공사 토지공사 등에 관리를 위임하고 있다. 국고국 관계자는 “귀속재산처리법에 의해 일본인 명의로 된 땅의 경우 일단 국가에 귀속시켰다가 창씨 개명한 한국인임이 확인되면 소송과 상관없이 돌려주는 사례가 가끔 있다”고 밝혔다. 이때 친일파 후손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경부의 국유재산 관리 소홀은 오랫동안 비판을 받아왔다. 개인의 장기 무단점유로 인한 소유권 상실, 국유지 방치로 인한 기회비용 상실은 물론 해방 59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의도 면적의 9배에 달하는 땅을 일본인 명의로 방치해 왔다.재경부는 지난해에야 대법원 등기전산자료를 통해 전국에 산재한 일본인 명의 땅 명단을 확보했다. 그 규모가 총 2547만평에 달한다. 이중 2070만평이 자연인 명의로 돼 있고 나머지 477만평은 조선총독부나 동양척식주식회사 같은 법인명의로 되어 있다. 재경부는 국유화하기 애매한 땅은 조만간 자산관리공사에 위탁, 소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권리주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계획이다. 창씨개명을 한 한국인이 소유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고는 2006년까지 소재지별로 하는데 6개월간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소송이 제기되면 실무진행은 자산관리공사가 맡는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친일파 후손들과 토지사기 브로커들이 결탁해서 광범위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재경부가 대책도 없이 이런 공고를 내면 줄소송, 문서조작 등 난장판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무부, “대개 국가가 패소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경우 법무부장관이 소송대리인이 되지만, 실제 재판실무는 해당 재산을 관리하는 주무부서가 직접 수행한다. 법무부는 이런 소송에 관련해 따로 자료를 만들거나 현황파악을 하지 않고 있다. 소송 실무를 담당하는 주무부서는 고검 국가소송담당 검사의 지휘와 공익법무관의 실무도움을 받는다. 가령 경기도 오산시가 관리하고 있는 대지에 대해 이근호의 후손이 지난해 6월과 올해 3월에 낸 소송에 대해서는 오산시 회계과 계장이 직접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고검 국가소송 담당 검사는 “친일파 후손들의 토지소송은 브로커들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사기를 쳐서 형사문제로 간 적도 있다”며 “이런 소송은 국가가 대개 지는데 법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검사는 “환수법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위헌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16대 때 자동폐기된 친일재산환수법 다시 제출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은 16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환수에 관한 특별법안’을 올해 정기국회에 다시 제출할 계획이다. 이 법안은 반민족행위자가 축재한 재산을 국가소유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반민족행위자’는 일본정부로부터 훈작을 받거나 을사보호조약이나 정미7조약의 체결을 주창한 대신 등 고위공직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이다.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은 친일행위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거나 친일재신임을 알면서 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처리를 심의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위원회가 설치된다. 국가에 귀속시킨 재산은 독립유공자 예우, 기념사업, 교육사업 등에 우선 사용하도록 했다.
법조계, 헌법정신과 사유재산권 보장 놓고 의견 갈려
친일재산환수법이 제정되려면 위헌시비 고개를 넘어야 한다. 우리 헌법 13조2항은 “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23조1항은 국민이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당장 판결이나 법조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19면 기사 참조) 2001년 친일파 이재극의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지법 민사합의 제14부(이선희 부장판사)는 3ㆍ1운동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앞세워 각하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민감정만 내세워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파기 환송했다. 현재 사법연수원 교수인 이선희 부장판사는 “적극적 친일이 인정될 경우 친일재산환수법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임지봉(헌법학) 교수는 “헌법에 명시된 법률상 불소급의 원칙은 명백한 공익적 목적이 있고 그것이 소급돼 제한되는 것 보다 다른 차익이 월등히 클 때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며 사후입법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법을 생각하는 모임 이승환 변호사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잘라말했다.
/신명식 정원택 이경기 고병수 기자
|